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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화 〉여자와 기계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는 것 [2] (108/108)



〈 108화 〉여자와 기계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는 것 [2]

"뭐야, 이 새끼  이래?"

물이 끓는 주전자 같은 소리를 내며, 깡통이 일어났다. 그러고는 뭐라 큰 소리들을 지껄이기 시작했는데, 어째 죄다 욕뿐이라 자세히 들을 마음은 들지 않았다.

<이 좆간 새끼들, 니들은 다 뒤져야 돼!>

"이야, 니가 마시던 술을 넣어서 그런가? 되게 너 같다."

<닥쳐, 이 동정 년아>

짝!

내 얼굴을 지키고 있던 손바닥에 마법사의 손바닥이 맞닿았다. 이 새끼, 니가 그 말을 할 때부터 난 이렇게 될  알고 있었다.

"어.. 안녕?"

짝!

멋쩍게 인사하는 마법사의 뺨을 후려쳤다.

"씹새끼가."

그리고 욕을 박아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안 맞아놓고 너무하네."

마법사는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자기 잘못은 아는지 별 다른 지랄은 없다. 다만, 옆에 있는 깡통놈이 대신해서 지랄을 떨어대고 있었다.

"저거부터 어떻게 하라고, 시발. 시끄러워 죽겠네."

"뭐? 드디어 연료를 자급자족 할 수 있게 됐는데 멈추라고? 그게 말이 돼? 절대  멈출 거야."

머리통을 흔들며 완강히 거부하는 마법사였다.

<멈추는 법도 모르는 게.>

깡통이 마법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 시선에는 경멸이 서려있다.

"그렇다는데?"

못 들었을 마법사를 위해 다시 한 번 그 말을 전했다.

"진짜 말 한  좆같이 하네? 망치 맛 좀 볼래?"

마법사의 품 속에서 망치가 나왔다. 하지만 그건 무언가를 수리할 때 쓰는 망치가 아니라.. 아, 이것도 어째보면 수리할 때 쓰는 망치긴 하다. 대상이 한정적이긴 하지만.

<죄송합니다. 조용히 하겠습니다.>

봐라. 사용하기도 전에 고쳐지는 것이, 성능이 아주 기가 막히다.

"와, 근데 진짜 오로넬 같았어."

멀찍이 떨어졌던 용사가 어느새 돌아와서는 자리에 착석한 깡통을 둘러보고 있었다. 대체 뭐가 비슷하다고.

"욕만 하면 다 나냐? 억지부리지마 이 새끼들아."

"에이, 망치 드니까 조용해지는 게 똑같던데 뭘."

아니 그럼 망치를 들면 조용히 해야지, 누가 그걸 처맞으면서까지 씨불이냐고.

<그럼 망치를 들었는데 그걸 처맞으면서 씨불여야 되냐, 이 등신아?>

"이거 봐, 이거 봐. 똑같지!"

"하하하. 아, 웃기네, 이거."

등신 두 명이 까무러질 듯이 웃기 시작했다. 왠지 모를 모욕감을 느낀 나는, 테이블 아래로 팔을 숨긴 채 주먹을 장전했다.

<닥쳐.>

팍!!

쇳덩이가 인체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옆을 보니 무언가에 나가떨어진 용사가 허공에  채 날아가고 있었다. 곧, 취객이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가게 안을 맴돌았다.

"봐. 너도 나 때리려고 했지?"

마법사가 숨기고 있던  주먹을 붙잡아, 테이블 위로 들어올렸다. 눈치 채기 전에 팼어야 했는데.

"음, 확실히 내가 하려던 걸 대신 해주니까 좋긴 하네."

그래도 용사는 조용해졌으니 내가 할일의 절반은 해낸 셈이었다. 여전히 주먹을 쥐고 있는 깡통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근데 진짜 술 때문이냐? 다른  꺼도 한 번 넣어봐."

"어, 그럴까? 재밌겠다."

곧바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마법사였다. 약삭스럽게도 눈동자를 굴리는 모습이 갑자기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그놈에게 하나의 술잔을 내밀었다.

"이거 먹여."

"응? 누구 건데?"

"니꺼."

"어..? 내꺼?"

마법사의 눈이 천천히 움직이며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내가 맞고만 끝내줄  알았나 보지. 나는 한대를 맞으면 반드시 그 한대를 돌려주는 인간이다.

"왜? 너랑 닮은 놈은 보기 싫냐?"

"으, 음. 좀.. 그렇지?"

"그럼 지금 내 기분이 어떤지도 잘 알겠네?"

"음.. 거기에 대해선 서로 동의가 이루어진  아니었나..? 그래도 아주 유감이라 생각하고 있어.."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묵묵히 술잔을 들이밀었다. 마법사가 아닌, 깡통에게.

<이게 뭐지, 좆간?>

"술."

<누가 술인 줄 모르냐? 무슨 술이냐고.>

새끼 말하는 본새  봐라?

"잠깐만 오로넬! 하, 한 번만 봐줘!"

마법사가 내 옷을 잡아끌었다. 나를 말리려는  보니, 더욱 저지르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그래, 이제 이 놈도 이 기분을 느끼게 된다는 거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좆같이도 말을 뱉어대던 깡통은 마법사와 눈앞의 술잔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하.. 럼주 이외에는 술이 아닌데.>

"그깟 럼주 타령 좀 한다고 날 따라했다고 할 셈이냐? 지금 그딴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 텐데?"

깡통이 내 눈을 바라봤다.

"마셔라, 깡통. 그걸 마시고, 저놈을 좆같게 만들어라."

내 말을 듣고도 한참을 바라보기만 하던 그놈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술잔을 받아들었다.

<맞은 만큼 돌려준다. 그게 몇 대든 간에.>

치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깡통의 눈이 점멸했다.

"깡통?"

<뭐.>

"세상에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내가 알고 있는 신은 등신과 병신뿐이다.>

"됐군."

"아하핳!! 이번엔 시오야, 하하하!"

바닥에 엎어진 자세 그대로, 배꼽을 잡고 웃고 있는 용사가 보였다.

확실히 마법사랑 하는 말이 비슷하긴 한데, 이게 뭐가 웃기다는 거지? 하나도 안 웃긴데? 이 등신들의 수준을 기대한 내가 병신이지.

"야! 이게 어딜 봐서 나야?! 하나도  똑같잖아!"

당사자가 인정하지 않는  당연한 수순인 듯하다. 아까의 내 모습도 저랬겠지. 저 행위가 등신들에게 확신을 주는 줄도 모르고.

"근데 니네 여관 있잖아.."

그럼 마법사에게도 알게  주는 수밖에.

"갑자기 뭐?"

"니 옆방은 가봤냐? 신이 거기 산다던데?"

"지랄하지 마!"

<지랄하지 마!>

"따라하지 마, 깡통!"

<따라하지 마, 주인!>

푸흡!

실소가 터져 나왔다. 뒤에서 들려오는 폭소가 아닌 실소. 결국 이놈들의 수준은 나를 실소시키는데서 그쳤다는 말이다. 그래. 등신들 수준이 그렇지 뭐.

푸흡, 푸흐흡!

마법사와 깡통이 계속 등신 같은 짓을 반복한 탓에, 실소가 조금 더 길어졌다. 하지만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다. 아무튼 웃은 건 아니었다.

"안 되겠어. 나만 당할 수는 없지. 야, 거기!! 시트린이 마시던 술잔 어떤 거야!?"

깡통의 손을 붙잡고, 마법사는 용사가 놀던 테이블로 향했다. 멀리서 그걸 지켜보고 있던 등신들은, 흔쾌히도 용사의 술잔을 마법사의 손에 넘겨주었다.

"우흐흫, 어, 어! 안 돼! 시오!"

드러누워 있던 용사가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인간이 저렇게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다니, 어지간히도 당하기싫은 모양이다. 그러게 작작좀 쪼개지.

치이이익.

빠르게 달려간 용사였지만 깡통의 목으로 넘어간 술보다 빠르지는 못했다.  한 번 고개를 숙인 깡통이, 다시금 그 면상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야!! 얘들아 놀자!! 술래잡기? 숨바꼭질? 어떤 걸 하고 놀까?! 정말 신난다!!>

용사가 고개를 숙이며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평소에는 잘만 씨불이더니, 남의 입으로 들으니 쪽팔리는가 보다. 제발 자기 입으로 씨불일 때도 그걸 느꼈으면 하는데 말이다.

"크흡, 크핳핳하!!"

테이블의 끝에서, 음침하고도 유쾌한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용사를 보며 웃고 있던 등신들은, 모두 그 소리에 웃음을 멈추었다.

"아저씨까지 웃는 거야!?"

웃음소리의 주인을 발견한 용사는 귓불까지 붉혀가며 방방 뛰어댔다.

"에잇, 아저씨 것도 내놔!"

자신에게 향하는 웃음의 방향을 돌리기 위해, 용사는 가게의 반대편을 향해 달려갔다. 따로 데려가지 않아도, 그 뒤에는 발랄하게 뛰고 있는 깡통이 함께였다.

"아, 시트린, 잠깐만..! 내 건 그렇게 추천하진 않는데..!!"

이미 그 손에서 술잔을 낚아챈 용사는, 자신의 입에 털어 넣을 때보다도 빠르게. 그것을 부어넣었다.

그런데..

그걸마신 깡통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정확히는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잠깐 사이에 맨정신으로도 먹기 힘든 거지같은 술들을 오지게도 때려 박은 탓일지도 모른다.

"야. 근데, 기계가 포만감도 느끼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서 묻는 거야?"

"그럼 저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읍! 우욱!>

깡통이 자신의 입을 틀어막은 채 용사의 손을 벗어나 비틀거렸다.

"헉! 깡통! 무슨 일이야!"

한참 전부터 보고 있던 주제에,그제서야 그놈에게 달려가는 마법사였다.

<ㅇ,오지,오,ㅈ마..!>

불꽃이 이는 소리와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들이 깡통의 속으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깡통은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려는 마법사를 밀쳐내고,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뒤, 이제는 뭐라고 하는지도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들을 되뇌이며, 가게 밖으로 걸어 나갔다.

펑!

짧은 폭발음. 그리고 뒤따르는 쇳소리. 멍하니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마법사는, 곧바로 그곳을 향해 뛰쳐나갔다.

"깡토오옹!!"

마법사는 나사들과 부품들을 토해내고 있는 깡통을 껴안고 있었다.

원통하게도 갔구만.

시신처럼 누워있는 깡통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같은 감정들이 새겨져 있었다.

"시, 시오.. 미안해!!"

깡통 하나의 목숨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는지, 그 보호자인 마법사에게 달려가는 용사였다.  손에는 범행에 사용된 흉기가 아직도 쥐어진채였다.

"욱, 시트린, 알겠으니까, 일단 그것 좀.. 치워봐. 우욱, 시발.. 대체 무슨 술이야 그거!?"

"어.. 그러게? 아저씨 이거 뭐야?"

"귀빈용 술."

용사를 따라 나온 흰놈이 대답했다. 그 미친 술을 마시는 새끼가 실제로 있었구나. 그보다 용사놈은 저걸 들고 있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지?

"어. 피난다."

아무렇지도 않은 게 아니라 이미 이상해진 것이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새빨간 선혈이 용사의 코를 타고 흘러내려왔다.

"빨리  치워!"

코를 막은 마법사가 용사의 손을 아무렇게나 쳐냈다.

촤악.

미처 깡통에게 먹이지 못한, 그 안에 남아있던 잔여물들이 엎어졌다.

"아."

죽어있는 깡통의 면상 위로 말이다.

잠시동안의 침묵이 찾아왔다.

잠시 후, 그 냄새가 대기 중으로 퍼져가는 게 느껴졌다. 등신들은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안고 있던 깡통을 놓고, 마법사도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주섬주섬 품속에서 꺼내든 담배에 불을 붙이고, 허공에 시선을 놓은 채, 마법사는 그것을 빨아들였다.

"시발.."

모든 것을 놓은 것 같은  한마디에, 등신들은 가게 안으로 돌아갔다. 남아있다간 모종의 개소리를 듣게 될 것이 뻔했음으로, 나도  인파에 섞여 자리로 돌아가기로 했다.

"제리스. 럼주  잔."

"네에~"

남아있는 럼주를 들이키고,  잔을 제리스에게 넘겼다. 탐스럽게도 잔을 가득 채운 럼주가 자리 위에 올려졌다.

뭐라  말을 찾을  없었다. 방금까지 일어난 일들이 올해 중에서도 손에꼽을 정도의 정신 나간 일이라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굳이  말을 꼽자면, 그래.. 이번 뻘짓에서 내가 얻을  있었던 교훈은, 기계든 인간이든, 먹을 것으로는 장난을 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시바아아아알!!!'

그 교훈을 뼈저리게 깨우친 자의 목소리가, 산중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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