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역의 사촌으로 살아남기-19화 (19/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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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동물을 안 좋아할 거 같은 성격이긴 했다.

“버려라.”

“네?”

강아지를요? 나는 겁도 없이 공작과 눈싸움을 하는 강아지를 꼭 안으며 고개를 저었다. 강아지는 뭔 죄냐고.

“설마 키울 건가?”

“네. 이미 받았는걸요. 지금 버리면 이 아이는 죽을 거예요.”

“안 죽는다.”

“그래도 버리긴 불쌍하잖아요. 저희가 키우면 안 될까요?”

“불허한다.”

어떻게 그렇게 단호하게! 누가 단호박 공작님 아닐까 봐. 나는 더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얼떨결에 받아서 나도 당황했지만 지금 돌려주기도 늦었고, 이대로 버리기엔 강아지가 너무 불쌍했다. 나는 이 귀여운 생물을 지키기 위해 큰 결심을 했다.

“삼촌, 그냥 키우면 안 돼요? 제발요. 네?”

나는 울먹이는 척하며 공작에게 매달렸다. 최대한 눈을 크게 뜨면서 애교를 떨었다.

‘이 나이 먹고 애교 떨려니까 현타 온다.’

오랜만에 거한 현타를 느꼈지만 강아지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솔직히 공작이 내 애교에 마음을 돌릴 사람은 아니지만 눈물까지 보이면 쌍둥이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계산까지 깔려있었다.

“…….”

공작은 한참이나 말없이 강아지를 노려봤다. 애교 괜히 떨었나. 나는 온도조절기 없이 서늘해진 마차 안에서 뒤늦은 후회를 했다. 쌍둥이도 내 편을 들기 위해 입을 달싹였으나 쉽사리 말을 꺼내진 못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공작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깊은 한숨이 들려왔다.

“대신 네 방에는 출입금지다.”

공작은 여전히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으나 조건을 걸고 허락했다. 나는 단번에 표정이 밝아졌다. 세상 해맑게 웃으며 공작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네! 마당에서만 키울게요! 삼촌 정말 고마워요!”

공작의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다행이었다. 강아지는 자신이 방금 버려질 뻔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꼬리를 흔들며 내 손등을 핥았다. 귀여워라.

“이름을 뭐라고 지을까?”

“검은색이니까 흑철 어때요?”

“검은색이니까 잉크 어때요?”

무심코 중얼거린 혼잣말에 쌍둥이가 동시에 외쳤다. 그들은 검은색이라는 공통점으로 다른 단어를 선택했다.

“누가 강아지 이름을 흑철이라 부르니?”

“뭐? 잉크는 어떻고!”

아리엘과 에리얼의 싸움이 더 커지기 전에 내가 나섰다. 어차피 검정이라면.

“밤이라고 하자. 귀엽지? 밤하늘에서 따온 밤이!”

“밤이요? 누님의 네이밍 센스도 그다지…… 아!”

“언니가 좋으면 그걸로 하죠.”

내 네이밍 센스를 지적하던 에리얼이 아리엘의 구두에 찍혔다. 그는 고통을 참으려는지 고개를 파묻고 발등을 잡고 있었다. 에리얼에게 애도를. 그렇게 별로인가. 까만 밤하늘을 닮았으니까 밤이. 먹는 밤이 생각나긴 하지만 뭐 어때! 나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밤아, 네 이름은 이제부터 밤이야!”

“멍!”

검은색 강아지는 자신의 이름을 알아들었는지 유쾌하게 짖었다. 좀 똑똑한 것 같은데. 의도하지 않았으나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이 아이가 있으면 쌍둥이를 아카데미에 보내더라도 덜 적적하지 않을까.

***

3. 우정은 진심으로

발단은 편지 한 통에서 시작됐다.

“아가씨 정말 혼자 가실 겁니까?”

“응. 아리엘이랑 에리얼은 별로 안 좋아하니까.”

나는 마차에 올라서며 데인에게 말했다.

그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봤으나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데인은 다른 말은 더 하지 않고 문을 닫으며 나를 배웅해줬다.

‘나중에 잔소리 들으려나.’

나는 지금 제이페인 백작가로 가고 있었다.

제이페인 백작가는 원래 자작 가문이었다. 수도와는 거리가 먼, 작고 척박한 땅을 가지고 있었는데 3대 전, 영지에서 금광이 발견됐다고 한다.

황제는 금광에서 나오는 금 50%를 받기로 하고 제이페인 가문을 백작가로 승격시켜줬다.

‘돈 많은 졸부 같은 이미지.’

명예로운 일도 아니고 단순히 운 좋아서 백작가가 된 가문이니 귀족사회에서 곱게 볼 리는 없었다. 더군다나 백작가로 승격된 후 제이페인 가문의 행동도 문제였다.

그들은 갑자기 출세해서인지, 아니면 귀족들이 가문을 무시한다고 생각해서인지 과시욕이 많아졌다. 가난한 귀족들을 면박 주기 일쑤였고, 뭐든 돈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재벌이 졸부들과 안 어울리는 느낌이려나.’

그래서 제이페인은 돈으로도 갖지 못한 혈통을 가지고 싶어 했다. 나는 창밖을 보며 제이페인에 대한 정보를 조합했다.

뜬금없이 제이페인 백작가가 왜 나왔냐면 오늘 만날 사람, 카나린 제이페인 때문이었다.

황태자 탄신연회에서 나를 밀고 나중에 용서를 빌러 왔던 범인! 나는 카나린이 공작가에 와서 사과했던 일을 떠올렸다.

그날 나는 눈이 통통 붓도록 울고 있는 카나린을 용서했다. 그녀의 처지가 안타까웠고, 솔직히 그녀를 동정했다. 원작 등장인물과 엮이지 말자고 생각했으나 매주 오는 그녀의 편지를 무시하지 못했다.

‘카나린은 원작 비중도 별로 없었고 친해져도 상관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이미 여주인공 빼고 다 만난 마당에 안 엮이려고 노력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그냥 답장해 줬다. 펜팔 친구를 사귄 느낌이었다.

카나린은 아리엘과 에리얼과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츤데레. 사랑받고 싶어 하면서도 솔직하지 못했고, 자신이 사랑받고 싶어 하는 걸 표현하지 못했다.

편지에는 자기가 뭘 했는지 자랑을 잔뜩 적어놓고선 ‘세르니아가 부탁한다면 드릴 수도 있어요.’ 이런 식이었다. 그게 좀 귀여웠다.

‘아리엘은 아직까지 화가 안 풀린 것 같지만.’

어쨌든 오늘은 며칠 후에 열릴 건국제 때문에 수도로 올라온 카나린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나는 흔들리는 마차 위에서 카나린이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를 펼쳤다. 내가 제이페인 백작가를 방문하게 만든 편지 한 통.

‘요약하자면 백작이 나랑 카나린이 편지를 주고받는 것을 알게 되어서 백작가로 초대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지.’

3장이나 되는 긴 편지의 내용이었다. 그녀의 상황이 구구절절 적혀있고, 어떻게 해서든 피하려고 했으나 아버지의 강압에 어쩔 수 없어서 이런 요청을 한다고. 마지막 줄에는 ‘어쩌면 아버지가 세르니아의 기분을 상하게 할지도 몰라요. 만약 정식으로 초대장이 간다면 거절해주세요.’라고. 그렇다고 어떻게 거절하겠는가.

‘이미 나는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는걸.’

그렇다! 나의 첫 친구.

편지를 주고받다 보니 우정이 싹텄다. 마치 동창 친구들처럼 멀리 있어서 자주 만나진 못하지만 연락은 자주 하고 내가 있었던 일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쌍둥이와 공작가의 사람은 가족 같은 느낌이었기에 친구랑은 달랐다.

‘카나린이랑 친구가 될 줄 몰랐는데. 근데 카나린은 날 친구라고 생각 안 하는 건 아니겠지?’

딱딱하게 ‘세르니아 님, 세르니아 영애’라고 불러서 편하게 불러도 되고 말도 놔도 된다고 했는데 신분도 높고, 나이도 많으니 그건 아닌 것 같다고 칼같이 거절하던 카나린이었다. 에이, 카나린도 친구라고 생각해주겠지. 나는 흔들리는 마차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았다. 흔들리는데 글자를 봤더니 멀미가 났기에.

***

“도착했습니다. 대기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시간에 맞춰서 다시 올까요?”

“귀찮겠지만 3시간 뒤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알겠습니다.”

마부는 마차를 몰고 공작가로 돌아갔다.

아르덴타인 공작가에서 제이페인 백작가까지는 마차를 타고 3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대기해도 상관없지만 혹시 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 공작가에서 데리러 와 가야 한다는 변명을 대기 위해서였다.

‘카나린이 거절하길 원했다는 건 내게 난감한 상황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한편으론 카나린의 가족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과연 어떤 사람이기에 카나린의 자존감을 갉아먹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어서 오시지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차에서 내리자 백작이 나를 맞이했다. 공작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제법 멀끔하게 생겼다. 내가 내리고 마차가 떠나자 그는 어딘가 당황한 눈치였다.

“혼자 오셨습니까?”

“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세르니아 아르덴타인이라고 합니다.”

나는 드레스를 살짝 들며 예의를 갖추어 인사했다.

첫인상은 중요하니까!

백작은 내 인사에 답도 없이 얼굴만 와락 구겼다. 뭐야? 보통 인사를 마치면 화답을 해줘야 고개를 든다. 그러나 백작의 묵묵부답에 나는 어정쩡하게 인사를 한 상태에서 고개를 못 들고 있었다.

“흠, 흠 백작님 안에서 이야기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됐다. 잘 왔소. 안에 카나린이 기다리고 있으니 들어가 보시오.”

동전 뒤집히듯이 돌변한 백작의 태도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굳어버렸다.

옆에 있는 집사만 땀을 뻘뻘 흘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공손하던 말투도 바뀌었고, 고개를 들고 바라본 그의 표정엔 짜증만 남아있었다.

‘아하. 이 녀석 목적은 쌍둥이였구나.’

황태자 탄신연회 때 공작과 쌍둥이가 나를 아낀다는 소문이 생겼을 것이다. 백작은 나와 카나린이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라는 것을 알고 초대한 것도 그 때문이겠지.

‘나를 초대하면 쌍둥이가 따라올 거라고 생각했나 보군.’

백작은 자신의 계획이 틀어져서 짜증이 났을 것이다. 카나린이 어째서 초대를 거절하길 바랐는지 이해가 됐다. 백작은 아직 약혼자가 없는 에리얼이 목적이었을 것이다. 제국의 하나뿐인 공작가와 사돈이 된다면 그들은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터이니!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혼자 획하고 들어간 백작과 다르게 집사는 최대한 정중하게 나를 대했다.

‘뭐 카나린의 편지를 받을 때부터 대충 예상했던 일이니.’

딱히 기분 나쁘진 않았다. 예상했던 그대로랄까. 나는 집사의 뒤를 따르며 백작가를 구경했다. 공작가의 성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어서 고풍스러운 매력이 있다면 백작가는 말 그대로 번쩍번쩍했다. 인테리어 컨셉이 없는지 비싼 사치품으로 가득 채웠으나 통일성이 없어 난잡해 보이는 풍경이었다.

‘어휴, 저기에 들어간 돈이 아깝다.’

황금색에 눈이 아파서 구경하는 것을 포기했을 무렵 나는 카나린의 방에 도착했다. 그녀의 방은 예전에 쓰던 내 방과 비슷했다. 입구에서 가장 멀고, 구석에 있는 방.

정중하게 문을 열어주고 안내를 마친 집사는 돌아가고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카나린이 나를 반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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