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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린도 그렇고 시리우스도 내가 쿠키를 직접 만들었다는 것에 더 의미를 두고 좋아했다.
카나린에겐 하트 모양이었다면 시리우스에겐 별 모양이었다. 그의 이름은 별을 연상시켰기에. 그는 쿠키를 조심스럽게 품에 넣고 겉옷을 나에게 걸쳐줬다.
“안 먹으세요?”
“네.”
“빨리 안 먹으면 상해서 못 먹어요.”
이런 점까지 카나린이랑 똑같네. 나는 시리우스에게도 상하면 못 먹게 되니 빨리 먹으라고 재촉했으나 그에겐 통하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영구 보존 마법을 걸어놓으면 됩니다.”
와우. 누가 고작 쿠키에 영구 보존 마법을 거냐고.
보존마법은 실생활에도 종종 쓰이는 마법이지만 영구 보존은 많은 마나량을 필요로 하기에 웬만한 귀중품에도 잘 걸지 않는다. 가보로 내려오는 물건에나 사용될 정도.
“다음에 또 만들어 드릴 테니까 그냥 드세요.”
그럼에도 시리우스는 빙긋 웃기만 했다.
결국 안 먹겠다는 거네. 나는 얕은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시리우스에게 겉옷을 돌려준다는 목적을 이뤘다. 이제 파티장으로 돌아가도 되지 않을까.
‘시리우스랑 둘이 있는 것도 불안하고.’
그의 이상 행동은 언제나 나를 곤란하게 했다.
첫 만남도, 두 번째 만남도, 세 번째 만남도. 왜 내게 관심 있다는 듯이 행동하는지, 어디까지가 연기고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끊임없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벌써 돌아가시는 겁니까.”
“네. 옷을 돌려주려고 만난 거니까요.”
지금도 어째서 저런 눈으로 나를 보는 걸까. 나는 그의 눈을 피했다. 왠지 똑바로 마주 볼 수가 없었다. 시리우스는 머뭇거리더니 내 눈치를 보며 물었다.
“제가 뭘 잘못했나요?”
“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저희는 아무 사이도 아니고 여기서 뭐 더 할 이야기도 없으니 돌아가는 거예요.”
잘못했냐고 불쌍한 목소리로 물어오는 시리우스에게 고개를 저으며 선을 그었다.
“아무 사이라.”
“…….”
시리우스는 고저 없는 건조한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
주위의 온도가 더 서늘해 진 건 내 착각일까. 나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위험하다.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다.
“당신에겐 제가 별거 아닌 존재일지라도.”
“!”
하필 나무가 있는 방향으로 갔는지 뒷걸음치던 내 등에 나무가 닿았다. 도망갈 곳이 없었다.
‘설마 유도당한 건가?’
시리우스는 내가 물러설수록 다가왔다. 가깝게, 더욱 가깝게 다가오던 그는 내가 멈춰도 멈추지 않았다.
“저에게 당신은 특별합니다.”
시리우스의 가슴팍이 얼굴 앞까지 다가왔다. 나는 당황했지만 열심히 머리를 돌렸다. 사실 알고 있었다. 다만 왜 내가 그에게 특별한지 이해가 안 됐다. 그에게 특별한 존재는 내가 아니라 데이지여야 했으니.
“얼굴을 들어주십시오.”
“…….”
저번에 했던 약속 때문인지 시리우스는 내 몸에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다. 그의 손이 몇 번이고 허공을 휘저었으나 내게 닿진 않았다.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쉰 시리우스가 허리를 굽혀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나는 갑자기 튀어나온 분홍색 눈동자에 놀라 굳어버렸다.
“……왜 피하시는 겁니까.”
시리우스의 분홍색 눈동자가 달빛을 받아 요요히 빛났다.
나는 그의 눈동자에 홀려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제가 저주에 걸렸기 때문입니까?”
허스키한 목소리가 애달프게 들렸다. 그게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제 와서 도망가는 겁니까? 제게 빛이란 걸 알려 주고 이제 무서워진 겁니까?”
정중한 말투였지만 그의 진득한 눈빛은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모습이었다.
평소의 가식 섞인 연기가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는 진심이었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을 솔직하게 나에게 부딪혀 오고 있었다.
“제발, 제발 더 이상 물러서지 마십시오. 얼마나 참을 수 있을지 저도 모르겠으니.”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는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파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에게 특별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나여서는 안됐다.
“당신이란 빛이 제 세상에 들어온 순간 흑백의 세계가 당신의 색으로 물들었습니다.”
분명 추운 날씨인데 그의 눈동자에 담긴 열기가 전해져 손에 땀이 났다. 끓어오르는 그의 감정이 선명하게 느껴져서.
“제가 시리우스 님의 세계를 물들일 만한 특별한 행동을 한 기억은 없는걸요.”
“세르니아 님과의 만남 자체가 제겐 특별했습니다.”
연못에 빠져있던 게 특별했다고? 확실히 헬리오스나 그렌드윈과 달리 시리우스와의 만남은 급작스러웠다. 전혀 만날 거라고 생각도 못 했고, 만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만났다. 남주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우연히 만난다는 것이 희박한 확률이긴 하다만.’
빛이라느니 색으로 물들였다느니 하기엔 만난 시간이 너무 짧았다. 심지어 시리우스는 두 번째 봤을 때부터 묘하게 호감을 나타냈었다. 연기라고 생각했었는데.
“착각이에요. 당신에게 어떠한 경멸을 담지 않고 다가온 사람이 내가 처음이라 한 착각이에요.”
“착각이 아닙니다.”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으나 나를 바라보는 분홍색 눈동자엔 기이한 욕망이 담겨있었다.
오롯이 나에게 향한 그의 집착을 보자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시리우스 님이 저를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건 새끼 오리가 처음 보는 생물을 어미라고 착각하는 각인효과 같은 거예요.”
나는 애써 부정했다. 내가 친절하게 대했기에, 저주를 신경 쓰지 않고 다가섰기 때문에 잠시 착각한 것이라고.
“새끼 오리의 각인이라니 착각이라 칭하는 것보단 낫네요.”
시리우스는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종잡을 수 없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절절하게 부딪혀 오던 감정을 순식간에 갈무리했다.
그러나 일렁이는 집착과 욕망의 일부분이 그의 눈동자에 남아있었다. 그것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세르니아 님은 제가 어떤 저주를 받았는지 알고 계십니까?”
“…….”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공식적으로 시리우스의 저주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전무했다. 그저 인간에게서 나올 수 없는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눈동자를 가지고 태어났기에 불길하다고 알려졌을 뿐이었다.
‘아는 사람은 본인과 헬리오스, 황후뿐.’
나야 시리우스가 데이지에게 자신의 저주에 관해 털어놓는 것을 소설로 읽었기 때문에 알고 있었지만 표면상으론 몰라야 했다.
“저는 감정이 없습니다. 좋고 싫음도 증오나 원망, 기쁨과 슬픔. 어떠한 감정도 느낄 수 없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왜?
왜 내게 고백하는 거지? 이 대사는 내가 아니라 데이지에게 해야 한다. 이건 원작이 틀어져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은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나는 진작 죽었어야 했으니.
‘시리우스가 데이지에게 끌리는 이유는 그녀의 주위에 몰려있는 정령 때문이었어.’
그러니 더욱 내게 끌렸다는 것이 말이 안 됐다. 외전에서 세르니아에 대한 이야기는 쌍둥이와 있었던 사건에 관한 것뿐이었다. 정령과 연관된 것은 하나도 없었고, 언급되지 않았더라도 내게도 정령이 몰려있다면 성인이 되기 전에 정령술사로 발현했어야 했다.
“삶 자체에 흥미가 없었습니다. 당장 죽더라도 미련이 없었죠. 그런데 세르니아 님을 만났습니다.”
알고 있었다. 그는 죽음에 미련이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데이지를 대신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희생했겠지. 시리우스는 무릎을 꿇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행동은 지난밤을 떠올리게 했다.
“저도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당신에게 끌렸습니다. 새끼 오리의 각인처럼요.”
나는 손을 올리지 않았다. 아무리 무덤 파는 게 특기라지만 그에게 잡히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으니 제게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마세요.”
단호하게 말했다. 시리우스는 느릿하게 웃었다.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진 눈은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다.
“세르니아 님, 각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잘못됐을지라도.”
시리우스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기분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저 드레스 자락만 꾹 움켜쥐었다. 잠시의 침묵. 겨울이라 그런지 풀벌레 울음소리도 없는 고요한 후원은 스산하게 느껴졌다.
“손을 잡아도 되겠습니까?”
진득하게 달라붙은 시선이 나를 옭아맸다.
나는 궁지에 몰린 생쥐 꼴이었다. 시리우스는 나를 협박할 수 있으면서도 내게 선택권을 줬다. 마치 내 의사를 존중해 준다는 듯이.
“아니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시리우스는 진심으로 아쉽다는 얼굴로 일어섰다. 달빛조차 흡수하는 새카만 머리카락이 찬바람에 흔들렸다.
“한 가지만, 단 한 가지만 알아주세요.”
시리우스는 가슴에 손을 올렸다. 심장이 있는 곳에.
“저는 이미 당신에게 각인 됐다는 것을.”
창백하리만큼 새하얀 피부가 달빛을 받아 투명해 보였다. 그는 어두운 감정을 갈무리하며 담백하게 웃었다. 그와 나눈 대화가 모두 꿈같았다.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내 목에 얼굴을 박고 핥아대던 그 날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지금 고백받은 건가. 이걸 고백이라고 쳐야 하나?’
모솔인생 최대 고비였다. 전생 현생 통틀어 무려 처음 받는 고백. 얼굴은 매우 잘생겼고, 내 취향이지만 그의 광기 어린 집착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시리우스를 이해하려는 것을 포기했다.
‘그래. 사랑에 이유가 어디 있나. 첫눈에 반할 수도 있고, 갑자기 끌릴 수 있지.’
아니,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원래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저 소설에 서술되었던 이유가 마음에 걸려서 쉽사리 인정하지 못했다.
“그러니 제게서 도망가지 마세요.”
시리우스는 내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
허락 맡고 만진다더니 머리카락은 제외인가. 나는 심술이 났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시리우스와 만나면 언제나 휘둘리는 것은 나였다. 좋아한다는 건 저쪽인데 왜 내가 휘둘려야 해? 작은 충동이 일어났다.
나는 손을 뻗어 시리우스의 하얀 뺨을 쓰다듬었다.
밖에 오래 있어서 그런지 그의 볼은 내 손보다 훨씬 차가웠다. 하얗고 말랑해서 찹쌀떡 같았다. 내가 아무 말도 없이 볼을 조몰락거리자 시리우스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이 서렸다.
“읏…….”
흔들리는 분홍색 눈동자는 나를 잡아먹을 듯이 바라봤으나 정작 그의 손은 내 손에 닿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