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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을 만졌는데 왜 저렇게 야릇한 신음을 흘리는 거지.
“그만, 해주십시오.”
억눌린 그의 목소리는 숨소리와 섞여 들려왔다. 그는 머뭇거리며 내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똑바로 마주 본 분홍색 눈동자에 내 얼굴이 비쳤다. 내 손을 덮은 그의 손이 내가 볼을 만지작거리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나는 시리우스를 향해 부루퉁하게 말했다.
“만져도 된다고 허락 안 했는데요.”
“죄송합니다.”
그는 순순히 손을 놓았다. 말은 잘 듣네. 이걸 진짜 순수하다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며 양손으로 시리우스의 뺨을 주물렀다.
‘눈 색이 변했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런데 소설에서는 데이지와 키스를 하고 나서야 색이 변했는데 지금은 왜 변했지? 스킨십이라고는 목을 핥았을 뿐. 키스 마크를 남긴 것도 아니고 정말 사탕 핥듯이 할짝댔는데 그걸로 저주가 풀렸다고?
‘아니야.’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날을 분명히 기억한다. 내게 스킨십을 하기 전에 이미 눈 색은 변해있었다. 저주가 풀리는 기준이 감정을 느끼는 것이라면 시리우스는 나와 마주 보고 있을 때 이미 감정을 느꼈다는 뜻이다. 으음, 복잡하네. 상념에 빠져 있던 나는 잘게 떨려오는 떨림에 정신을 차렸다.
시리우스는 움찔움찔 거리며 두 눈을 꼬옥 감고 있었다. 뭔데 왜 갑자기 눈감는 건데.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간식을 앞에 두고 ‘기다려’라는 말을 들은 강아지처럼 보였다.
‘심했나?’
내가 하도 만져서 그런지 창백하던 피부는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약간 양심의 가책을 받으며 붉게 물든 뺨에서 손을 뗐다. 그제야 게슴츠레 눈을 뜬 시리우스는 아쉬운지 옅은 숨을 뱉으며 내려가는 내 손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흠흠, 시리우스 님.”
“……네.”
나는 민망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헛기침을 하며 그를 불렀다. 시리우스는 나른한 목소리로 느릿하게 대답했다. 아까는 안절부절못하는 강아지 같았는데, 뺨을 붉히며 색기 넘치는 표정을 보고 있으니 갸르릉 거리는 고양이 같았다.
“우선 시리우스 님이 저주에 걸렸다고 피한 건 아니었어요. 제게 그런 감정을 가지고 다가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부담스러워서 그런 거예요.”
“그건 다행이군요.”
뭐가? 어느 부분이 다행인 건데.
나는 헬리오스처럼 능글맞게 웃는 그를 살짝 노려봤다. 지금 고백 처음 받았냐고 놀리는 거 같은데. 입술을 비죽이며 하던 말을 이어갔다. 그에게 할 설교는 길었기에.
“그리고 저는 시리우스 님이 생각하는 것만큼 특별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사람이에요.”
“당신이 그리 생각할지라도 제겐 특별합니다.”
콩깍지가 아주 제대로 꼈구나.
나는 한숨을 쉬었다. 쌍둥이보다 심각할 수도 있겠다. 중요한 건 콩깍지를 벗기는 것이 아니니 일단 넘어가자. 내가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사람은 물건처럼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각자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아갑니다. 그런데 사랑한다는 이유로 집착하고 독점하고 소유하려는 생각은 잘못됐어요. 설사 부모가 자식에게조차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죠.”
과한 집착은 사람을 숨 막히게 한다. 비틀린 사랑은 사랑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을 망가뜨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쌍둥이도 그랬으니.’
나는 시리우스에게서 원작 쌍둥이의 일면을 봤다. 어쩌면 시리우스에게도 잘못됐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물론 그가 나에게 직접적으로 감정을 부딪쳐 왔었기 때문이었지 나와 엮이지 않았더라면 그냥 지나쳤으리라.
뜬금없이 이어지는 설교에 시리우스는 입을 벙긋거리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변명할수록 내 설교가 길어진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나?’
나는 팔짱을 끼고 연설 아닌 연설을 했다. 인간의 존엄성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방법 등을. 도덕 선생님도 하지 않을 이야기에 시리우스는 옅은 미소를 띠며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 녀석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네.’
내가 유치원 선생님 경력 3년이었다. 7살만 되어도 잔소리 듣기 싫어서 딴청을 피우거나 이해했다는 듯이 행동하는 어린이들을 많이 봐왔다. 지금 시리우스의 표정이 딱 그랬다. 내 설교는 씨알도 먹히지 않네.
“마지막으로.”
“마지막인가요?”
기뻐 보이는데.
왠지 얄미워서 잠시 잔소리를 더 할까 하다가 목련처럼 하얀 웃음을 짓고 있는 시리우스를 보고 포기했다. 그래. 말해봤자 안 듣는데.
“네. 마지막으로 자신을 좀 더 소중히 여겨요.”
“…….”
“뭐 제가 이래라저래라 할 입장은 아니지만, 그냥 그랬으면 좋겠어요.”
직업병이 나와서 훈계를 시작했지만 사실 내가 시리우스에게 강요할 순 없었다. 내가 정말 그의 선생님인 것도 아니었고, 내가 말했던 대로 자신의 인생을 자유롭게 산다는데 어떻게 왈가왈부하겠는가. 다만 원작처럼 자신을 희생하는 일은 너무 쉽게 결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기가 인어공주도 아니고.
“그렇군요. 약속하겠습니다. 세르니아 님과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저의 목숨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저와 관련됐더라도 시리우스 님을 먼저 생각해주세요.”
“그건 무리입니다.”
단호한 그의 대답에 나는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애초에 시리우스는 생명을 가볍게 여겼다.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생명을. 공감 능력이 없는 그에게 연민이나 동정은 너무 먼 단어였다. 유일하게 데이지만이 존재가치를 가지고 있었었다. 그게 지금 나인 거고.
“그럼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겨주세요. 함부로 죽이지 마세요. 아무리 하찮은 동물이라도.”
나는 논리를 뒤집었다. 나를 제외하고 다른 목숨을 가볍게 생각할 거라면 차라리 나를 포함한 모든 목숨을 무겁게 여기라고.
“……노력하겠습니다.”
시리우스는 잠깐 침묵한 후에 대답했다. 확신이 거의 담겨있진 않았지만 그게 지금의 시리우스에겐 최선의 대답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상황이 정리되자 긴장감이 풀리고 서늘한 한기가 밀려왔다. 밖에 너무 오래 있었어.
“이제 정말 가야겠어요.”
“네. 오늘 만나 너무 기뻤습니다.”
나는 걸치고 있던 겉옷을 시리우스에게 돌려줬다.
겉옷을 건네받은 시리우스는 달빛을 등지고 내게 말했다.
“신년에 평안이 깃들기를.”
딱.
내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청초한 웃음을 머금은 시리우스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순간 시야가 일렁이더니 풍경이 바뀌어 있었다. 파티장 문 앞으로. 홀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녀가 당황해서 다가왔고, 나는 별일 아니라며 후다닥 파티장 안으로 들어갔다.
‘황궁으로 텔레포트 할 거면 사람 없는 곳으로 해주지.’
마법 금지인 황궁에 갑자기 텔레포트를 하고 나타났으니 감옥 안 가서 다행이라 해야 할까. 시녀는 내 얼굴을 알고 있는지 미묘한 표정을 할 뿐 나를 붙잡지는 않았다.
파티장 내부는 여전히 흥에 겨운 귀족들로 떠들썩했다. 중앙에서는 춤을 추고 있었고, 한쪽에선 이야기꽃을 피우는 귀족들도 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단상부터 쳐다봤다. 황후가 꺼림칙해서. 그러나 황후의 자리는 텅 비어있었다. 건강이 안 좋다더니 먼저 들어갔나?
“언니! 제가 얼마나 찾은 줄 아세요?”
“누님! 어디 갔다 오셨습니까?”
내가 홀에 들어서기 무섭게 쌍둥이가 나를 발견했다.
황후에 대한 고민은 접어두고 눈을 도르르 굴리며 적당한 변명거리를 짜냈다.
“화장실 가려다가 길을 잃어서 헤맸거든. 다행히 친절한 기사분이 안내해주셨어.”
“진작 말하지 그랬어요. 다음엔 저랑 같이 가요.”
“응.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
쌍둥이는 내 양옆에서 손을 잡고 이끌었다. 이걸 양손에 꽃이라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애칭 잘 지었다고 뿌듯해해야 할지. 그들의 손에 이끌려 도착하자 카일렌 남매와 카나린이 대화하고 있었다. 그들도 내게 어디 갔었냐며 잔소리를 시작했고, 나는 똑같은 변명을 늘어놓으며 생각했다. 시리우스에 대해.
‘일방적으로 텔레포트 시키는 것도 금지해야겠다.’
어떻게 넘기긴 했으나 기사나 다른 사람이 봤더라면 분명 잡혀서 문책당했으리라. 거기다 갑자기 이동해서 시리우스에게 신년 인사도 제대로 못 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테라스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신년에 평안이 깃들기를.”
***
아직 밖은 쌀쌀했으나 곧 봄이 오려는 듯 따뜻하게 내리쬐는 볕을 받으며 복도를 걸었다. 고요한 복도에는 내 발소리만 들렸다. 빛을 받아 선명하게 보이는 먼지가 춤추는 것 같다는 시답잖은 생각에 잠시 멈췄다.
‘아, 서재에 가야지.’
나는 잊고 있던 목적지를 상기시키며 다시 발을 부지런히 놀렸다.
건국제가 끝나고 2개월 정도 지났다. 공작가는 다가오는 쌍둥이의 입학식 준비로 부산스러웠으나 서재는 다른 세계에 있는 것처럼 조용했다.
사락사락.
침묵이 내려앉은 서재에는 내가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 들렸다.
쌍둥이의 아카데미 입학식은 소설의 시작을 뜻한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으나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었고.
‘여기도 생명을 대가로 하는 저주는 없네.’
나는 저주에 관해 조사하고 있었다.
어릴 적 종종 조사했었는데 쌍둥이가 악역 루트에서 완전히 벗어 난 것 같아 그만뒀었다. 그런데 건국제에서 황후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꺼림칙함이 지워지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정말 마법사라면 절대 방심하면 안 됐다.
‘서술 트릭 때문에 가려졌을 수 있다.’
어설픈 가설이었으나 정말 그녀가 제국을 삼키기 위해 뒤에서 계획을 세웠을 가능성도 있었다. 내가 노력해서 악역 루트를 피하더라도 제국이 망한다면 부질없는 짓이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나쁠 건 없으니.’
또 석연치 않은 부분은 내가 이상하리만큼 소설 등장인물과 엮이는 것이었다. 건국제 이후에 깨달았는데 아리엘과 에리얼이야 사촌이라 어쩔 수 없다지만 나머지는 달랐다. 공작가의 일원이다 보니 고위 귀족끼리 생기는 접점은 있을 수 있으나 벨라부터 시작해서 등장인물들이 내게 가지는 호감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컸다.
‘그렌드윈이나 헬리오스는 미묘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