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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머리를 쥐어 짜내서 변명했다.
최대한 잘생겼다와 비슷한 칭찬을 만들어냈다. 내 대답에 검성은 기분 좋아졌는지 호탕하게 웃으며 아직 총각 취급받기도 한다고 말했. 그건 좀.
“너는 내 생각보다 당차 보이는군.”
생각을 어떻게 하셨는데요.
차마 입 밖으로 뱉진 못하고 웃음만 지었다. 검성의 머릿속에 내 이미지가 궁금하긴 했으나 왠지 들어도 나만 손해일 것 같은 느낌이었기에.
“쌍둥이가 하도 과보호해서 난 건드리기만 해도 부서질 녀석인 줄 알았지.”
어찌나 극성인지 쌍둥이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앤 줄 알았다며 사족을 덧붙였다.
‘어떻게 말하면 저런 이미지가 되는 거지? 그보다 검성에게까지 내 이야기를 한 거야?’
그건가. 자신이 굉장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어린이의 마음인가. 아니 그건 유치원생들이 하는데. 초등학생도 그런 행동을 하나? 나는 곰곰이 초등학생들이 어땠는지 고민했다.
‘잠깐, 쌍둥이는 이제 고등학생 나이잖아.’
나도 쌍둥이를 애 취급하다 보니 그들의 현실 나이를 깜빡 잊었다. 엄마 눈에 자식은 영원히 아이인 것처럼.
“쌍둥이가 저를 많이 좋아해서 그런가 봐요.”
설마 대놓고 내 이야기를 했겠어. 검성이 담당하는 반에는 내가 아는 사람들이 많으니 대화하다가 설핏 들은 것이겠지. 하고 합리화했으나 왠지 부끄러워져서 나는 검성의 시선을 외면했다.
흔들리는 마차에 익숙해질 때쯤 텔레포트 게이트에 들어섰다. 여기서부터 아카데미까지는 금방이었다. 데이지를 만났던 숲길을 지나 아카데미에 도착했다. 가볍게 생각하고 임시 선생님을 한다고 했으나 막상 닥치니 조금 떨렸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멈춘 마차에서 내린 그는 태울 때와는 다르게 손을 잡아줬다. 굳은살이 박인 거친 손에서 그가 살아온 세월이 느껴졌다.
“바로 원장님에게 가자. 간단한 자기소개만 하면 될 거야.”
검성은 나를 끌고 원장실로 직행했다. 그의 걸음이 너무 빨라서 따라잡기 위해 뛰다시피 뒤따라갔다. 성큼성큼 앞서가던 검성은 커다란 문 앞에 도착하자 조심스럽게 노크를 했다.
똑똑.
“들어오세요.”
문 너머로 들린 목소리에는 연륜이 묻어나왔다.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자 햇살 냄새가 났다. 원장실이라기에 공작의 집무실처럼 좀 더 딱딱하고 서류에 베인 잉크 냄새가 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방 안에는 식물이 가득 차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제자와 재회였을 텐데 빨리 오셨네요.”
“그 녀석 얼굴은 오래 봐서 좋을 게 없거든요.”
검성과 만난 시간은 짧았으나 그의 입에서 존댓말을 듣게 되니 낯설었다. 예의라는 단어와는 인연이 없어 보였는데. 하긴 황실기사단 단장까지 했으면 웬만한 귀족들보다 예법에 능숙할 것이다.
커다란 책상에는 빛바랜 금발을 단정히 틀어 올린 인자한 인상의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햇살만큼이나 포근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인사했다.
“세르니아 양, 반갑습니다. 저는 베리언 아카데미 원장 샬롯이라고 합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원장님도요?
대체 어떻게 하면 원장님이 내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는 걸까. 어이가 없어서 한 박자 늦게 인사가 나갔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세르니아 아르덴타인입니다.”
“급작스러운 부탁임에도 수락해주어 감사합니다. 세르니아 양이 와서 한숨 돌렸습니다.”
나를 왜 이렇게나 높게 평가하는지는 의문이었으나 겉치레라고 생각하고 저야말로 불러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그녀는 아카데미에 관해 가벼운 설명을 했다.
“우선 세르니아 양은 현재 루카리온이 담당하고 있는 2학년 룬반 임시 선생님으로 들어갑니다. 그 반엔 괴짜가 많아서 루카리온이 아니면 통제가 불가능했으나 세르니아 양이라면 괜찮겠죠.”
아, 저는 조련사역할이었나요.
그녀의 설명에 어째서 아카데미 졸업도 하지 않은 나를 불렀는지 단번에 이해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통제도 안 될 정도로 말썽꾸러기는 아니었을 텐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얌전히 경청했지만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과목을 하나 맡아줬으면 합니다. 강요하는 것은 아니나 정말 인력이 부족하거든요. 아직 선생님을 못 구한 과목이 약초학, 마법 기초이론, 제국의 역사, 경제학 심화반입니다.”
일단 경제학 심화는 빼고. 제국의 역사야 나도 가정교사에게 배웠으나 아카데미 수준이면 그보다 더욱 심화 과정으로 가르쳐야겠지. 약초학은 온실에 자라는 화초밖에 모르니까 제외고. 남은 건.
“마법사가 아닌데 마법 기초이론을 가르치는 게 되나요?”
“네. 마법사가 가르친다면 가장 좋겠지만 대부분 마탑에 모여 있으니까요. 물론 아카데미에 몇 없는 마법사 선생님이 있으나 그들은 기초수업은 시간 낭비라 생각하더군요.”
기초 이론 정도면 내가 가르칠 수 있지 않을까. 최근까지도 저주를 조사한다고 마법 이론서를 계속 읽어왔으니 다른 과목보다는 수월할 것 같은데. 잠시 고민에 빠져있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마법 기초이론은 교양 수업이라 다른 과목에 비해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됩니다. 1학년 수업이거든요.”
아카데미에서 1학년은 적응하기 쉽도록 필수교양과목 위주로 진행되고, 2학년부터 자신이 원하는 수업을 정해서 듣도록 자유도를 높여 준다.
“그럼 마법 기초이론으로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자세한 안내는 케인이 해 줄 겁니다.”
케인은 짙은 주황색 머리에 안경을 쓴 전형적인 비서 같은 남자였다. 당연히 나를 데려온 검성이 안내해 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당황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검성은 내 어깨를 토닥였다.
“이래 봬도 내가 좀 바쁘거든. 내가 안 가면 그 녀석이 너를 안 보내 줄 거 같아서 공작가로 직접 찾아간 거야.”
가벼운 토닥임인데 왜 이렇게 아플까.
검성과 원장님은 둘이서 할 이야기가 있다며 남았고, 나는 케인이라는 사람을 따라 이제부터 지내게 될 방으로 향했다.
‘아깐 빨리 간다고 못 봤는데 정말 크다.’
고등학교에서 지내다가 처음 대학교 캠퍼스를 거닐던 느낌!
크기는 비슷했으나 대부분이 성으로 이루어진 황궁과 다르게 아카데미는 각각 개성이 담긴 여러 건물을 모여 있었다. 주위를 구경한다고 두리번거리면서 걷다가 케인이 멈춘 줄 모르고 그의 등에 얼굴을 박아버렸다.
“앗,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곳이 교직원 기숙사입니다.”
사무적인 케인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교직원들이 사는 기숙사였다. 학생들 수에 비해 교직원은 적어서 건물도 작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컸다.
“세르니아 님은 임시 카드가 발급됩니다. 카드가 있어야 기숙사 출입이 가능하므로 분실 시 재발급받으셔야 합니다.”
“아, 네.”
이거 완전 최첨단인데.
카드에 마법 회로가 인식되어야 통과가 가능하다는 부가설명을 들으며 마법과 과학의 차이는 뭘까 생각했다. 문과 출신인 나로선 둘 다 미지의 영역이었기에.
‘공대생과 마법사는 동급인가!’
시답잖은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내가 3개월 동안 지낼 방에 도착했다. 나는 방을 둘러보며 조금 쉬려고 했는데 케인이 방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뭐지?
“확인하셨으면 이동하겠습니다.”
“어디로요?”
“연구실입니다.”
연구실이라니?
그는 내가 질문을 하기도 전에 방을 나섰다. 앉지도 못하고 다시 방을 나선 나는 그의 등을 따라 열심히 걸었다. 넓은 건 역시 보기에만 좋지 생활하기엔 너무 힘들어. 내 체력은 여전히 저질이었기에 기숙사에서 본관으로 이동하는 데 에너지를 다 써버렸다.
“이곳이 세르니아 님이 사용하실 연구실입니다.”
케인이 안내한 연구실은 3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도 있었으면 편할 텐데. 옻빛이 도는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자 책상과 의자만 덩그러니 있었다. 내가 굳이 연구실까지 배정받을 필요가 있을까.
“저는 딱히 연구할 게 없는데…….”
“연구실이라 칭하지만 개인 공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본관에서 기숙사까지 제법 거리가 있으니 왔다 갔다 하시면 불편하기 때문에 제공되는 겁니다.”
교무실 대용이구나.
유치원에 익숙해져서 교무실을 떠올리면 선생님이 다 같이 모여 있는 곳만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대학교 때 교수님은 각자 방이 있었지.
“연구실에 개인 아티팩트를 배치하는 것은 괜찮으나 몇몇 금지 물품이 있으므로 행정실에 등록허가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아, 네.”
행정실도 있고, 정말 대학교와 다를 바 없구나. 새삼 제대로 된 교육기관이라는 것을 느꼈다. 케인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었는데 그가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곧 종례시간이라고 했다.
“세르니아 님, 정식 출근은 내일부터지만 담당 교실에 가보시겠습니까?”
종례도 하는구나. 소설에는 허구한 날 놀고, 수업 째고, 사건에 휘말리고, 연애하기에 수업은 대충하는 줄. 아, 그러니까 문제아 반으로 찍혔구나.
“꼭 오늘 안 가도 괜찮죠?”
“네.”
그럼 갈 필요가 없지.
추가 수당도 안 나오는데. 내가 거절하자 케인은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 물어보라며 자신의 연구실 위치를 알려주고 떠났다. 원장님 비서라 생각했는데 선생님이었나 보다. 나는 연구실 창문을 열었다.
가을의 시원한 바람이 연구실에 머물던 공기를 순환시켜줬다. 나는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책상에 걸터앉았다. 임시 선생님 일이 걱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왜 나를 직접 데려왔을까?’
데이지는 테러 사건 현장에 있었다. 그와 달리 나는 완전한 외부 사람이었다. 검성의 편지가 오기 전까지는 테러 사건 자체를 잊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쩌다 보니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와 버렸다. 심지어 데이지가 발견할 단서를 나만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