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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우스는 병결이다.”
“병…… 병결이요?”
멀쩡해 보였는데? 아니지. 벌써 일 년 넘게 못 만났다. 그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것이 작년 여름이었으니.
“뭐, 시험 칠 때는 알아서 기어 나오니까 걱정 말고.”
걱정한 건 아니지만. 아프다니까 조금, 아주 조금 신경 쓰이긴 했다. 조례를 마친 검성은 정말 바쁜지 바람처럼 사라졌고, 아직까지 일거리를 받지 못한 나는 시간이 텅 비어버렸다.
원래 ‘마법 기초이론’을 가르치던 선생님은 현재 테러 환자들이 모여 있는 임시 병동에 있다. 케인이 선생님을 만나서 교재와 수업 범위를 물어보겠다고 했다. 그때까지 나는 대기.
‘시리우스가 아프다니. 상상이 안 돼.’
그에게 약한 모습은 어울리지 않았기에. 나는 할 것도 없으니 시리우스 병문안이나 가기로 했다. 언제부터 아팠는지, 어디가 아픈지 직접 물어봐야지.
‘남자 기숙사에 출입이 가능하려나.’
임시 선생님의 출입 가능한 곳은 어디까지일까.
우선 가보고 안 된다고 하면 돌아가면 되겠지 하고 태평하게 생각했다. 남자 기숙사는 교직원 기숙사보다 안쪽에 있었다. 거리가 멀어서 조금 힘들었으나 날씨가 시원해서 다행이었다. 여름이었으면 쿨하게 포기했겠지.
“여기는 남자 기숙사입니다. 여자는 출입금지에요.”
역시 못 들어가는구나. 나를 막아선 남자 기숙사 사감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이번에 임시로 들어온 선생님인데 반 아이가 아프다고 해서 얼굴을 보러왔다고.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저요?”
“아프다는 학생이요.”
착각할 수도 있지. 그런 표정 지을 필요는 없잖아.
나는 사감의 표정을 애써 무시하며 시리우스의 이름을 말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왜 이렇게 어리바리해.’ 하는 표정이었는데 시리우스의 이름을 듣자 돌변했다. 마치 괴물을 본 얼굴처럼 알 수 없는 공포와 혐오가 섞인 표정이었다.
“그 학생은 방에 안 들어와요.”
“방에 안 들어온다고요? 그럼 어디서 지내는데요?”
“저야 모르죠.”
“사감 선생님이 모르면 어떡합니까? 책임지고 관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내 말에 사감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는 느낌. 사감은 잠시 입을 벙긋거리다가 한숨을 푹 내뱉었다.
“선생님이 임시라서 잘 모르시나 본데, 그 학생은 저주에 걸려서 다른 학생들이 같은 건물에 있는 걸 싫어합니다. 교육자 입장으로서 편견 없이 대해야 하겠지만 그게 말처럼 쉽습니까? 그래서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하는 거죠. 그 학생도 차라리 그게 편할 겁니다. 선생님도 괜히 상관하지 마시고 할 일 하세요.”
나는 사감의 말을 듣고 머리가 띵해졌다.
맞는 말이었다. 저주받은 사람과 엮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랬기에 다들 방관을 택한 것이겠지. 알고 있는데 왜 가슴이 아플까. 그가 평생토록 받아 왔을 취급이 너무나도 뻔히 보였기에.
순간적으로 욱해서 말을 뭐 그렇게 하냐고 화내려다가 꾹 참았다. 사감에게 화낸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화풀이밖에 안 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아카데미 지리나 파악할 겸 시리우스를 찾아보자.’
묵직하게 누르는 감정을 털어내기 위해 걷기로 했다. 무작정 걸으면 힘드니까 새로운 변명을 만들어서.
‘시리우스 성격상 사람이 많은 곳에 있을 것 같진 않고.’
물어볼 만한 사람 없겠지? 그나마 헬리오스가 가능성 있긴 하지만. 예전에 시리우스가 헬리오스를 별로 안 좋아했던 것을 떠올리고 선택지에서 지웠다.
‘아니면 검성은 알고 있으려나. 그래도 담임이었으니.’
근데 검성은 어디 있지. 한동안 찾지 말라고 했는데. 무슨 보물찾기하는 것도 아니고 왜 다들 꼭꼭 숨어있는 걸까. 나는 일단 인적이 드문 장소들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어디 있는지 모를 검성을 찾아서 물어보는 것보다 직접 시리우스를 찾는 게 빠를 것 같다고 판단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지도라도 받을걸.’
후회해봤자 늦었다. 지도도 없이 시리우스를 찾아 나선 여정은 험난했다. 길치는 아니었는데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모르니 당연한 결과였다. 아니 시리우스는 마법으로 내가 어디에 있던 쉽게 찾았는데. 왠지 모르게 억울했다.
‘종이 새는 어떻게 만드는 걸까.’
시리우스를 만나면 만들어 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끊임없이 걸었다. 걷다가 힘들면 쉬고 다시 걷고. 행정실이나 선생님들의 개인 연구실이 있는 본관을 지나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 교육 기관이 모여 있는 곳도 지나쳤다. 계속 걷다 보니 최근 테러를 당해서 일부분이 파손되어 있는 연구 기관 쪽 건물도 보였다.
‘이야, 시리우스 덕분에 아카데미 지리를 벌써 다 외운 느낌인데.’
연무장과 도서관을 지나자 온실이 나왔다. 꽃이 잔뜩 심어진 화원도 있던데 온실까지. 아카데미는 정말 넓구나! 대체 시리우스는 이 넓은 아카데미에서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 점점 지쳐가던 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높은 곳에 가면 보이려나.’
체력과 함께 지성도 사라졌는지 깊게 생각하지 않고 시계탑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 마법이 너무 발전해서 잊고 있었으나 이 세계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사실을 잊었다.
“와. 미쳤네.”
꼭대기까지 이어져 있는 계단을 보고 있으니 육성으로 욕이 터져 나왔다. 텔레포트는 있는데 승강기가 없다니. 나는 깔끔하게 포기했다. 높은 곳에 오른다고 시리우스를 찾을 리가 있나. 나는 징글징글한 계단을 피해 시계탑을 탈출하려고 했다.
그런데 기이한 감각에 발걸음을 멈췄다. 뭔가 굉장히 어둡고 질척한 것이 발목을 감싸는 느낌. 시선 끝에 어두운 계단이 들어왔다. 끊임없이 위로 뻗은 계단과 대조적으로 지하를 향하고 있었다. 발을 들이는 순간 어둠에 집어 삼켜질 것 같았다.
‘어쩌면 여기 있을지도.’
충동적이었다. 어둡고 사람 없어 보였기에. 나는 쿵쿵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지하의 계단으로 한걸음 내디뎠다. 발목을 붙잡았던 기이한 감각이 짙어졌다. 너무 어두워서 앞이 보이지 않았으나 벽에 손을 짚으며 조심조심 내려갔다.
‘빛이다!’
흉가 체험도 아니고 멀쩡한 아카데미 시계탑 지하인데 왜 이렇게 무서운지. 얼마나 내려왔는지도 헷갈릴 때쯤,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빛을 내고 있는 건 문 옆에 박힌 마력석이었다. 푸르스름한 빛이 공포감을 더욱 불러일으켰으나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문 앞에 섰다.
‘여는 순간 귀신이 튀어나오는 건 아니겠지. 봉인되어 있던 악령이라던가. 그렇다고 이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가기도 좀.’
공포심과 시리우스를 찾기 위해 여기까지 온 노력이 마음속 저울에 달렸다. 저울이 살짝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결정이 나자 행동은 빨랐다. 나는 무서워서 쿵쾅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살며시 문을 열었다. 나무문은 살짝만 건드렸는데도 끼익하고 열렸다. 떨면서 문틈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호기심 강해서 이런 거 열어보는 역할은 제일 먼저 죽던데.’
안은 어두웠다. 뭐가 있는지 구분이 안 갈 만큼. 시각이 차단되자 자연스럽게 다른 감각이 예민하게 살아났다. 쿵쿵거리는 내 심장 소리와 섞여 얕은 숨소리가 들렸다. 내 숨소리가 아니었다. 우선 방 안을 살피기 위해 문을 활짝 열었다. 마력석의 푸른빛이 조금이나마 방 안을 밝혀줬다.
“흡!”
나는 너무 놀라서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푸른빛이 섞여 연보라색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다. 마력이 없는 나조차도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서 어두운 기운이 넘실거렸다.
캉! 철그럭, 철컹!
검은 기운에 가려져 눈치채지 못했으나 자세히 보이 그의 몸은 쇠사슬로 묶여있었다. 죄인을 묶는 쇠고랑이 아니라 온몸을 사슬로 칭칭 감고 있었다. 경악스러웠다.
“시, 시리우스?”
분홍색이었을 눈동자가 어둠에 잠식된 듯이 일렁거렸다. 그는 내 목소리를 듣자 더욱 격하게 움직였다. 쇠가 부딪히는 소리는 커졌으나 사슬은 끊어지지 않았다. 충격적인 광경에 잠시 넋을 놨으나 이내 정신을 차렸다.
“시리우스 괜찮아?”
일단 사슬을 풀어야 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일으켜 그에게 다가갔다.
“세르……니아…… 님?”
평소에도 허스키한 목소리였으나 마른 입술로 겨우 뱉은 목소리는 심하게 갈라져 있었다. 대체 누가 시리우스를 묶어 놓은 거지? 나는 덜덜거리는 손으로 사슬을 더듬었다. 연결 부위가 있을 텐데. 그러나 튼튼한 사슬은 돌벽에 고정되어 있어서 손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었다.
‘사람을 불러야 하나?’
사감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들 시리우스를 그렇게 볼 텐데 도와주려는 사람이 있을까. 쌍둥이나 헬리오스라면 도와줄 수도.
“도…… 도망 가십……시오.”
시리우스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도망가라니, 누구로부터?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의 얼굴을 감쌌다. 우선 그의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내 손이 닿자 그는 흠칫 떨었다.
“시리우스, 무슨 일이야? 천천히 설명해봐.”
“…….”
사슬을 풀려면 사람을 불러야 했으나 그를 그냥 두고 가기도 걱정됐다. 하얀 얼굴이 푸른빛에 의해 더욱 창백해 보였다. 입술도 갈라졌고, 살도 빠진 것 같았다.
‘감금당한 건가.’
나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시리우스를 묶은 걸까. 나는 그의 얼굴을 살피고 있었는데 초점이 흐릿하던 시리우스의 눈동자가 서서히 감겼다. 마지막으로 입술이 작게 달싹였지만 뭐라고 말했는지는 듣지 못했다. 나는 발을 동동 굴리며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사람을 불러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