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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의 사촌으로 살아남기-52화 (5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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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나 그 친구들이 내 이야기를 자주 하는 걸 들은 검성이 나라면 반을 맞을 수 있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검성이 빠지더라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테니.’

부상당한 선생님 대신 임시 선생님이 올 수 있으나 검성은 부상자가 아니었다. 아카데미 테러 사건은 확실히 중요한 사항이긴 하나 검성까지 움직여서 조사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다른 선생님들이 조사하거나 안 된다면 황궁에 인력지원을 요청해도 되니까. 그가 빠진다면 누군가 트집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검성 대신 내가 왔고, 쌍둥이의 눈치를 보는 학생들은 얌전하겠지.’

굳이 태클을 걸자면 헬리오스 정도.

그마저도 재작년 건국제에서 춤을 췄기에 친분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를 부른 이유고, 나를 불러가면서까지 검성이 테러 사건을 조사하는 이유는 뭘까.’

직접 수사를 맡아 사건을 미궁으로 만들기 위한 계획인가? 이게 길일까 흉일까. 범인이 테러 장소를 조사하면 증거를 조작하기 쉬워진다. 그러나 그만큼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 범인은 범행 장소에 돌아온다는 진리 불변의 법칙으로 정체가 탄로 난 범인이 한가득이었으니.

‘증거를 일단 숨기고 생각하자.’

어쩌면 검성이 발 빠르게 움직여서 나보다 먼저 증거를 회수했을 수도 있지만 확실하게 확인하고 가야 했다. 나는 개인 연구실로 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연구 기관 건물로 향했다. 연구 기관과 개인 연구실은 비슷해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개인 연구실은 선생님 개인 사무실 같은 곳이고 연구 기관은 다양한 연구 시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연구 기관에서 시행되는 연구는 대체적으로 공익을 추구한다. 새로운 마법 아티팩트나 회복 효율을 높이는 포션 같은 마법 분야에서부터 병충해 피해를 적게 받는 작물 개발같이 평민들을 위한 농업 분야까지 한쪽 신분에 편중되지 않고 활발하게 연구가 이루어졌다.

‘근데 갑자기 프룩인지 트룩인지하는 후작가 차남이 황궁에 있다가 아카데미에 온 것도 이상하네.’

보통은 황궁에서 일하는 사람은 웬만하면 아카데미로 내려오지 않는다. 그들에겐 이동 자체가 좌천이기 때문이다. 수습하기 힘든 사고라도 치지 않는 이상 후작가의 차남이 아카데미로 내려올 리가 없었다.

‘본인이 원했다면 모를까.’

생각을 정리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연구 기관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했다. 바깥쪽에 있는 건물은 멀쩡했으나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금이 가거나 일부분이 부서진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테러가 발생했던 건물은 꽤나 처참하게 부서져 있었다. 사상자가 없었던 것이 신기할 정도!

‘사고 현장을 지키는 사람이 없다니. 부실해.’

혹시 몰래 들어가야 하는 경우가 생길까 봐 긴장했었는데, 쓸데없는 기우였다. 검성과 다른 선생님들이 조사 중이랬는데? 아직 범인이 잡히지 않아서 일반 연구원들이 없는 것은 이해가 갔으나 기본적인 경비도 없는 게 이상했다.

‘이래서 학생인 데이지와 헬리오스가 멋대로 조사하고 참견할 수 있었던 건가.’

나는 정리되지 않는 건물을 파편들을 훑어보며 테러의 중심지인 마법 연구관으로 들어갔다. 인적이 없어서 폐가 같이 느껴졌으나 낮이라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아카데미는 어린 귀족이나 똑똑한 인재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다른 왕국에 노려지기 쉽다. 그래서 제국 가장 안쪽, 바다가 아닌 이상 침입할 수가 없는 장소에 설립한 것이고 또한 황궁을 보호하는 방어 마법과 같은 마법을 대마법사가 설치했기에 외부로부터 위협받지 않았던 것이다.

‘아카데미 내부에서 공격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고.’

그랬기에 아카데미의 보안과 안전이 무참히 무너진 것이다.

뭘 믿고 내부를 안전하다고 생각한 건지. 의문을 속으로 삼키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가 제일 많이 파괴되긴 했네.’

후작가의 차남이 있던 걸물은 다른 건물보다 훨씬 피해를 많이 받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건물을 훑어보면서 석연치 않은 사실을 발견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부터 느꼈던 껄끄러움이 점점 커졌다.

지키는 경비병이 한 명도 없는 점, 무너진 건물에 비해 부상자가 얼마 없는 점, 복수의 대상이 가벼운 경상이라는 점까지도.

‘아티팩트를 이용한 폭발 테러라고 했었는데 정작 폭탄은 사람이 없는 방에 설치됐다고 했다.’

원작에서 데이지가 그 부분을 언급했었다.

후작가 차남과 그의 일행들 말고는 휘말리지 않도록 일부러 사람이 없는 방에 폭탄을 설치 한 거냐고. 검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그건 좀 이상하잖아. 다른 사람이 휘말리지 않길 바랐다면 굳이 테러라는 방법을 썼을까?’

아니었다. 소드마스터가 굳이 테러라는 방법을 택했다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러웠다. 건물을 부수는 간접적인 방법이 아니라 사고를 가정한 다른 방법으로 충분히 복수가 가능했을 것이다.

‘보여주기식도 아니고.’

마치 ‘여러분 제가 사고를 냈습니다. 관심 좀 가져 주세요.’라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는 게 목적인 것처럼.

‘뭘 놓쳤지.’

내가 수첩에 적어 놨던 문장은 ‘1층 마력석 연구실에서 황실 문양이 새겨진 단검 데이지가 발견. 이후 루카리온 방에서 일기장을 찾음.’이었다. 사건 현장에 도착해서인지 에피소드에 관한 정보가 계속 떠올랐으나 정작 내 의문을 해결해줄 사실은 하나도 없었다.

‘답이 안 나오는 문제를 계속 고민할 시간에 증거부터 찾아보자.’

나는 찝찝한 의문들을 머릿속 한구석에 밀어 넣고 1층 마력석 연구실로 향했다. 우선 단검부터 찾아야 했다. 일기장은 검성의 방을 뒤지지 않는 이상 들키지 않을 테니.

‘그보다 검성이 일기라니 안 어울리는데.’

황실 문양이 새겨진 단검은 매우 희귀하다. 국가적으로 대단한 업적을 이룬 사람에게만 하사되는 하사품이었다. 아카데미에서 그 단검을 가지고 있을 사람이 검성뿐이었기에 변명할 여지도 없는 완벽한 증거품이었다.

‘분명 여기에 있다고 했는데.’

나는 무너져버린 책장 더미를 뒤지고 있었다. 책 사이에서 금색이 반짝이는 것을 발견했다고 했었는데 왜 없을까.

“여기서 뭐 하고 계시나요. 선생님.”

아이고, 놀라라.

기척도 없었는데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들고 있던 책을 던져버렸다. 뒤에 있던 헬리오스는 던진 책을 가뿐히 잡으며 능글맞게 웃고 있었다.

“놀랐잖아. 너야말로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제가 먼저 물었습니다. 테러 사건과 아무 연관이 없을 선생님께서 어째서 여기 계시는 거죠?”

귀찮게 됐네.

헬리오스와 엮이지 않는 것이 제일 베스트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플랜 B를 실행하기로 했다.

“아카데미 졸업도 안 한 내가 갑자기 임시 선생님이라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

헬리오스는 순식간에 웃음을 지웠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필 이 타이밍에 아카데미 졸업도 하지 않은 내가 임시 선생님이라니. 테러 사건과 연관됐다고 의심할 만했다.

‘헬리오스는 독자적으로 움직여서 선생님들의 사정은 모른다.’

그 부분을 이용하기로 했다. 나를 완전히 믿진 않아도 납득은 갈 만한 거짓말을 만들었다. 이렇게 부딪힐 상황이 있을 거라 예상해서.

“루카리온 선생님과 삼촌이 사제관계인 건 알고 있지? 테러 사건을 전해 들은 삼촌이 직접 추천한 거야. 내가 이래 보여도 추리는 잘하거든.”

직접 찾아온 건 검성이었지만.

헬리오스는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확신이 서지 않아서 섣불리 믿지 않았다.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는 갈등을 종결시킬 대사를 뱉었다.

“아티팩트를 이용한 폭발 테러로 사상자는 없으나 현재 마법 연구관에서 실험 중이던 모든 연구가 중지, 그러나 연구 자료가 목적은 아닌 것으로 추정. 아직까지 의심 인물조차 없으며 범인의 동기조차 파악 못 한 상태.”

“꽤나 자세히 알고 있군요.”

내가 알고 있던 테러 사건에 관한 정보를 늘어놓자 헬리오스의 눈이 커졌다. 일반 학생이나 선생님은 모르는 정보들이었다.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던진 떡밥이었다.

상식적으로 임시 선생님이 되려면 원장의 승인이 필요하다.

아카데미 테러 사건이 어디에 얽혀있는지 밝혀진 것은 없으나 청렴결백하기로 소문난 원장까지 의심하진 않을 것이다.

그녀는 원장을 맡기 전 개인의 사리사욕이나 마탑에 관련되지 않고, 오직 아카데미 발전을 위하겠다는 맹세를 했었다. 마법사의 생명이라 불리는 마나 심장을 걸고. 그 결과 그녀가 원장이 되는 것을 반대하던 기존의 교직원이나 귀족들의 불만이 쏙 들어갔었다. 맹세는 강력했기에 그녀가 아카데미를 테러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원장님은 아카데미 안에서 절대적인 선이다.’

그녀가 사심을 가지고 테러를 했다면 곧장 마나 심장이 부서졌을 테니.

“원장님이 알려주신 정보를 토대로 조사 중이었어. 내가 범인 같아?”

“너무 쉽게 정체를 밝히니 의심이 사라지지 않습니다만. 보통 이런 조사는 비밀리에 진행하는 거 아닌가요?”

의심이 가득한 헬리오스는 내가 원장을 들먹여도 못 믿는 눈치였다. 의심병 말기 환자가 여기 있었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준비한 거짓말은 여기까지였기에 더 이상 그에게 할 말이 없었다. 거기다 덧붙여 말해봤자 변명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내 정체를 솔직히 털어놓지 않는 이상 네가 끝까지 의심할 것 같아서. 지금도 안 믿고 있는데 내가 정체를 숨겼다면 너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럼 저의 뭘 믿고 순순히 털어놓는 거죠? 제가 범인일 수도 있을 텐데요. 제가 황태자라서?”

오, 이건 예리한데. 확실히 소설을 읽지 않았더라면 사건 현장에서 마주친 헬리오스를 의심했을 것이다.

“네가 범인이었다면 인기척을 숨긴 상태로 나를 죽였겠지. 네가 먼저 말 걸기 전까지 나는 너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잖아. 내가 만약 범인이었고, 그 상황이었다면.”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죽 긋자 헬리오스가 유쾌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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