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역의 사촌으로 살아남기-63화 (6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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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내가 왜?”

“해주신다면 좋을 텐데. 아쉽네요.”

아쉬울 게 따로 있지.

그는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달짝지근하게 속삭였다. 아까 내가 볼을 만질 때는 어쩔 줄 몰라 하던 녀석 맞나? 끈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리우스에게 거리감을 느꼈다. 나는 미묘해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주제를 돌렸다.

“그보다 복면인을 조사해서 뭐가 나왔는데?”

평소답지 않게 정색까지 해가며.

시리우스는 내 반응에 그저 빙긋 웃었다. 새카만 눈동자가 내게서 떨어져 드란에게 향했다. 고저 없는 건조한 저음이 방안에 퍼졌다.

“아라네아. 고대어로 거미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이어진 설명은 듣기 힘들 정도로 끔찍했다.

복면인은 ‘아라네아’라는 비밀 조직에 소속됐다고 한다. 그들은 돈을 받고 살인을 하는 단순한 살인청부업자와는 차원이 달랐다.

조직에 소속된 조직원들은 대부분 고아거나 집이 가난해서 팔려 온 아이들이었다. 여기까지는 이 세계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조직에서 아이들을 데려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금제를 거는 것이다.

‘물론 암살자도 암살기술을 교육받지만 이건 심했잖아.’

절대복종 명령.

조직의 명령을 거부하면 죽는 금제였다. 심지어 강도가 센 마법이라 성공할 확률이 50%밖에 안 되고, 실패하면 죽는다.

이 50%의 확률을 뚫고 금제에 성공한 아이들을 조직원으로서 교육하는데, 남은 아이들끼리 서로 죽이거나 자신의 기억에 있는 사람을 죽이는 등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잔인한 행위들이 교육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지속적으로 교육을 받아 살아남은 자들이 여태까지 봤던 복면인들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 수 있는 거야?”

나는 담담하게 이어진 시리우스의 설명을 자르고 물었다. 그의 설명은 직접 겪은 것처럼 너무 생생했다.

“복면인의 기억을 뒤졌습니다.”

“정신 마법을 사용했어? 그거 부작용 있다고 했잖아.”

드란을 협박했던 일이 스쳐 지나갔다. 공포에 질려 하던 표정도 같이.

“네. 현재 복면인은 부작용으로 인해 폐인이 됐습니다.”

시리우스는 아무 감정도 담지 않고 말했다.

연민이나 동정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기계처럼 건조한 설명은 조직원들조차 수장이 누군지 모른다는 것과 거점을 알아냈으나 이것도 크게 도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며 끝났다.

“거점이 어딘데?”

묵묵히 듣던 검성이 묻자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바로 답했다.

“이 녀석의 경우 수도에 용병들이 이용하는 술집으로 보였습니다. 다만 수도에, 아니 제국에 이런 거점이 셀 수 없을 정도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점조직으로 이루어진 건가. 골치 아프군.”

“거기다 명령을 전달하는 자도 일회용이라 전달이 끝나면 죽습니다. 저희가 봤던 자들도 일회용으로 목적을 다하면 죽었겠죠.”

그렇게 쉽게 죽일 거면 오랜 시간 동안 끔찍한 과정을 굳이 거쳐야 했을까.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누군가의 욕심으로 사람이 도구처럼 다뤄지는 게 가슴 아팠기에. 시리우스의 말이 끝나자 검성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복면인이나 드란의 기억 속에는 황실을 압박할 물증이 없어 보입니다.”

검성은 짧게 혀를 찼다.

결국 결정적인 물증을 찾지 못했다. 황실 문양이 새겨진 단검은 증거라고 하기에는 부족했다. 그 단검이 원래 검성에게 내려졌던 거였으니 그가 가짜 하사품을 반납하고 진품을 빼돌린 다음 이제 와서 황실을 우롱하는 거라고 반박할 수도 있기 때문에  오히려 황실이 우리에게 죄를 뒤집어씌울 여지가 있었다.

“세르니아 너라면 어떻게 할 거냐?”

“네? 뭘요?”

“테러 사건 말이다. 나는 역시 머리 쓰는 건 못 해겠어. 어찌 됐든 여기까지 온 것도 네 덕분이니 끝까지 네 선택을 따르겠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검성이 진지한 얼굴로 내 의견을 물었다.

갑자기 부담스러운데요. 내가 천재도 아니고, 그저 원작 내용과 다른 점들을 짚어가며 추리한 건데. 나는 크게 도움 될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존재니 이번엔 우리가 참아야 해. 그렇다면 사건을 어떻게 덮어야 할까.’

사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어차피 배후가 황실이라고 말도 못 한다. 더욱 안타까운 건 검성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아카데미까지 온 트룩 후작가의 차남조차도 엮을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그들은 운 나쁜 피해자일 뿐이었으니.

‘대신 죄를 뒤집어쓸 사람이 필요하다. 말이 없는 사람으로.’

이 조건에 딱 맞는 사람이 두 명 있었다. 드란과 레베카.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그들을 이용해서 테러 사건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저라면 드란과 레베카를 테러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할 거예요. 테러 사건에 관여한 것도 맞고, 다른 고위 귀족과 연이 닿아 있는 것도 아니니 저희 쪽에서 말을 지어내기 편할 테니까요.”

죽은 사람에게 죄를 떠넘기는 것이 찝찝하긴 했으나 그 방법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기에. 뒷맛이 썼다.

“드란과 레베카인가.”

검성도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

한차례 태풍이 휩쓸었음에도 아침 해가 떴다. 아무것도 모르는 태평한 아이들의 얼굴은 가을 햇살만큼 밝았다.

“안녕하세요.”

나는 간단한 조례를 마치고 원장실로 직행했다.

검성에게 뒷정리 보고를 부탁받았기 때문이다. 노크를 하고 들어간 원장실에는 향긋한 홍차 향기가 감돌았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원장님은 보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으며 나를 맞아줬다.

그녀는 어젯밤부터 서류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피곤한 기색은 전혀 안 보였다. 그녀의 체력에 대단함을 느끼며 어제 검성과 합의 봤던 이야기를 전달했다.

“그렇군요. 안타깝네요. 드란과 레베카가 먼저 배신을 했지만 우리도 그들에게 불명예를 준거니까요.”

원장님은 식은 홍차를 한 모금 머금고 말했다.

멈춰있던 손이 다시 움직이고 고요한 원장실에는 서류를 넘기는 소리만 들렸다.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이제 나가도 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세르니아 양, 어젯밤 사이 저도 새로운 사실을 찾아냈습니다.”

그녀는 내가 앉아 있던 맞은편 소파에 앉으며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새로운 사실이라니. 테러 사건에 아직 숨겨진 것이 있었던 걸까. 호기심을 품은 눈동자로 종이에 적힌 글을 읽었다.

‘건국제 지원 인력 차출 명단?’

종이가 왠지 낡았다고 생각했더니 10년 전 서류였다.

그리고 종이에 빨간 잉크로 체크되어 있는 부분이 있었다. 드란과 레베카의 이름.

“이건?”

내가 종이에 대해 묻자 원장님은 과거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레베카는 백작가의 장녀였으나 집안이 풍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문을 이을 레빌에게만 투자했고 레베카는 아카데미만 겨우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드란도 자작가의 차남이라 졸업하고 갈 수 있는 곳이 마땅히 없었습니다.”

둘 다 마법을 배웠으나 마력이 거의 없어서 마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아카데미 연구실로 들어오기엔 성적이 썩 좋지 못했다고 한다. 막막한 미래 속에서 졸업한 그들을 딱하게 여긴 원장님이 우선 인턴 자격으로 연구실에서 일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정직원은 아니었으나 나름 열심히 했습니다. 저는 그들을 좋게 봤어요. 마력은 없어도 마법을 사랑하는 것이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그들이 건국제에 지원을 갔다 온 후 변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녀도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둘은 어느 날을 기점으로 갑자기 마력이 크게 상승했고 그 실력을 인정받아 드란은 마법 선생님으로, 레베카는 결계 관리사로 배정받았다.

“저는 그들의 능력이 뒤늦게 개화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딱 건국제 지원을 갔다 온 이후였습니다.”

확실히 부자연스러웠다. 하필 같은 시기에 황궁에 갔다가 마력이 늘었다니.

‘역시 황후가 금제를 걸고 대가로 마력을 증폭시키는 방법을 알려준 걸까?’

그게 가능한 일인가?

나도 다양한 마법서를 많이 읽었으나 마력을 인위적으로 늘리는 방법은 난생처음 들었다. 하지만 나는 겨우 기초 이론을 가르칠 정도 밖에 안 되고 솔직히 마법과 관련해선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 없으니 이건 나중에 시리우스에게 물어봐야겠고 생각하며 넘겼다.

‘둘의 공통점은 마법사라는 것과 낮은 신분이라는 것. 그리고 건국제 이후 갑자기 마력이 늘어났다는 것.’

이 공통점으로 아카데미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조사한다면 남은 내통자를 가려내기 수월해질 것이다. 그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것을 토대로 마력이 갑자기 늘어난 사람을 먼저 조사해보기로 했어요. 어느 정도는 가려낼 수 있겠죠.”

이틀 후에 공식적으로 테러 사건에 대해 발표하겠다고 했다. 황실 문양이 새겨진 단검이나 황실에 관련된 부분은 전부 덮고, 그저 아카데미에 대한 불만 때문에 테러를 저지른 것이라고. 짧은 대화를 마치고 나는 원장실에서 나왔다.

‘아니 해결했다고 하기도 애매한가.’

김빠진 사이다를 마신 기분이었다. 해결되긴 했으나 시원한 맛이 없었다. 적이 너무 컸다.

지금 상황에서 섣불리 황실이나 황후를 건드릴 경우 역풍을 맞을 것이다. 적은 10년이나 넘는 시간 동안 천천히 공들여서 준비했다.

‘황후가 정말 제국을 삼키는 게 목적이라면 황제는 모르고 있는 거겠지.’

나는 생각을 정리하며 남자 기숙사로 향했다.

원장님과 검성에겐 말하지 않았으나 마지막으로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또 오셨네요.”

며칠 전에 봤던 사감이 떨떠름한 얼굴로 맞이했다. 나도 그를 보기 싫었기에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헬리오스 학생 좀 불러주시겠어요?”

“헬리오스 학생이요?”

시리우스에 이어 헬리오스를 부르자 ‘대체 이 선생은 뭐 하는 사람일까.’ 하는 표정으로 변했다. 그래도 시리우스를 찾았을 때처럼 거부하지 않고 불러 줄 테니 여기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했다. 나는 건물로 들어가는 사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다.

‘원작에서 헬리오스가 테러 사건을 조사한 이유가 나오지 않았어. 그저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서 혼자 조사한다고 데이지에게 말했을 뿐.’

나는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대체 헬리오스가 느낀 미심쩍은 부분이 뭘까. 소설로 읽을 때는 스토리 진행을 위한 장치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데이지도 없고 진행될 스토리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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