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너는 긴장 안 했어? 너무 여유로운데.”
나 말고 다른 사람이랑 해보기라도 했나 봐.
하고 말하려다가 급하게 입을 닫았다. 혀를 살짝 씹었으나 목까지 올라왔던 치졸한 문장 때문에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미쳤나 봐. 감정을 깨닫기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어떻게든 피하려고 했던 상황에서 이런 생각하는 내가 너무 웃겼다.
“공부했습니다.”
“공부?”
자괴감을 느끼고 있는데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던 시리우스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공부라니.
“네. 그때는 저의 욕망을 채우기 급급했으니까요. 많이 서툴고 부족했습니다. 그날 이후 한동안 반성했습니다.”
반성까지 했다는 시리우스의 음성에는 사뭇 진지함이 어려 있었다. 그의 대답에 나는 뭐라 반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오늘은 세르니아 님도 쾌감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민망했다.
살면서 타인에게 쾌감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소리를 듣는 날이 올 줄이야. 단연코 처음이었다.
‘지금이라도 무를까.’
사실 쥐구멍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필 날씨는 왜 이리도 좋아서.
밤도 아니고, 술기운도 없이 시리우스를 침대에서 마주 보고 있으니 부끄러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입술이 바짝 마르고 초점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모르겠다.
“불안하십니까?”
시리우스는 언제나 내 상태를 기민하게 알아차린다. 내 얼굴에 감정이 잘 드러나는 편이기도 했으나 그는 유독 내 생각마저 꿰뚫을 때가 있었다.
그의 물음에 나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오늘 깨달은 내 감정까지 얼굴에 드러났을까 봐 초조해졌다.
‘드러내도 상관없으려나?’
잠시 고민했지만 아직은 안 돼. 그런 기묘한 본능이 내가 가진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가로 막았다. 거기다 섣불리 말했다가 실망할 수도 있어 걱정되기도 했다. 시리우스가 내게 가지는 감정과 내가 시리우스에게 가진 감정의 무게는 저울에 달아보지 않더라도 다르다는 것을 알았기에.
말없이 시리우스를 올려다보고 있자 그의 얼굴이 천천히 내려왔다.
시리우스의 입술이 내 눈꺼풀 위를 지그시 눌러서 시야가 강제적으로 차단당했다. 이마저 기분 좋다고 느끼고 있으니 이미 물러서기엔 많이 늦어 버렸다.
“제게 집중해주세요.”
눈에서 시작된 키스 세례는 이마, 코끝, 양 뺨을 지나 입술에 도착했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입술을 벌렸다. 이제는 익숙한 시리우스의 혀가 여린 살을 건드렸다. 치열을 샅샅이 훑고 천장을 건드리더니 내 혀를 탐했다. 혀가 얽히고 타액이 섞였다. 키스만 했을 뿐인데 몸이 붕 뜨는 기분이었다.
‘달콤해.’
몽블랑을 크게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의 행복감과 겹쳤다.
시리우스의 목덜미에 팔을 감으며 살짝 눈을 떴는데 그의 분홍색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대체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거지? 내 표정을 모두 관찰당했다고 생각하자 민망해서 숨을 들이마셨다. 다만 키스를 하고 있었기에 내 폐로 들어온 공기는 시리우스의 숨결이었다.
“하……. 눈, 감아야지.”
“죄송합니다. 속눈썹을 파르르 떨면서 매달리는 세르니아 님이 귀여워서 시선을 뗄 수 없었습니다.”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밀어내자 간단하게 떨어진 시리우스가 옅은 웃음을 흘리며 내 입술을 쓰다듬었다. 키스가 익숙해졌다곤 하나 어디까지나 그의 움직임에 맞춰 같이 혀를 얽히는 정도였다. 키스만으로 벅찬 나와는 다르게 여유를 부리며 즐겁게 웃는 시리우스가 얄미웠다.
“아…….”
그래서 입술을 쓰다듬던 시리우스의 엄지를 잘근 깨물었다.
그는 한숨 같은 신음을 뱉었다. 그리 아프지 않게 깨물었는데 시리우스는 움찔거리더니 모든 동작을 멈췄다.
“도발, 하시는 겁니까?”
분홍색 홍채가 탁해졌다. 도발이라니 나는 얼른 고개를 저으려 했으나 이사이에 있던 그의 엄지가 내 혀를 꾸욱 눌렀다. 턱을 잡고 혀를 눌러서 어떤 변명도 할 수 없게 됐다.
“그렇다면 기꺼이 받아드리겠습니다.”
왼쪽 귓가에 속삭인 시리우스는 그대로 귓불을 덥석 물었다. 말캉한 혀가 귓바퀴를 쓸고 지나갔다. 기묘한 감각이었다. 축축하고 말캉한 혀가 지나가자 더운 숨을 불어 넣으며 내 이름을 불렀다. 지독히도 낮은 목소리로.
“세르니아 님.”
“읏! 간지러워.”
수도 없이 불리던 내 이름이 그의 입에서 나오자 가슴이 간질거렸다.
귓불 밑으로 내려간 그의 입술은 목덜미에 희미한 열꽃을 수놓으며 아래로 향했다. 그리고 능숙한 솜씨로 가운을 벗기고, 드러난 가슴을 움켜쥐었다. 부드럽게 마사지하는 것처럼 가슴을 주무르다가 검지로 유륜를 간지럽혔다. 꼿꼿하게 선 유두 끝을 이로 잘근 씹더니 혀로 굴렸다. 납작한 배를 쓰다듬고 움푹 들어간 배꼽을 폭 찔렀다. 강압적이지도 않고, 시녀들이 목욕을 시킬 때처럼 조심스럽게 나를 만졌지만 시리우스의 손길은 훨씬 자극적이었다. 열기가 올라오고 호흡이 가빠졌다.
이윽고 더 밑으로, 더 깊숙이 내려간 시리우스의 손은 속살 사이에 감춰진 음핵을 눌렀다.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던 터라 그의 손가락이 돌기를 살살 문지르자 발가락이 절로 오므려졌다. 손가락의 리듬에 맞춰 움찔거리고 있었는데 막 절정에 다다르려던 참에 그의 손이 떨어졌다.
“벌써 가시면 안 됩니다.”
기분 좋게 해준다더니 나를 놀리는 건가?
나는 시리우스에게 핀잔이라도 던지려고 했으나 급하게 손으로 입을 막아야 했다. 짓궂은 웃음을 머금은 시리우스가 비부에 얼굴을 묻었기 때문이다. 그의 은색 머리카락은 허벅지를 간지럽혔고 그의 혀는 방금까지 손가락이 있던 장소를 빨았다.
손가락이나 그의 성기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보다 훨씬 부드럽고 말랑한 혀가 돌기를 핥았다. 손가락으로 만져줬던 돌기는 한껏 부풀어 있어서 그의 혀가 닿을 때마다 예민하게 반응했다. 저릿저릿한 감각이 아랫배에 퍼졌다. 나는 신음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입을 막았으나 소용없었다.
“아아!”
허리가 들썩이고 시야가 번쩍였다. 가벼운 절정의 쾌감이 몸을 덮쳤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입술을 떼지 않았다. 내 반응에 더 신이 났는지 이번엔 달콤한 디저트를 먹는 것처럼 음핵을 쪽쪽 빨았다. 나는 그의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어떻게든 떨어뜨리고 싶은데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밀어낼 수가 없었다. 손가락 사이에서 살랑거리는 그의 머리카락만 움켜쥘 뿐이었다.
“제, 제발…….”
그만이라는 소리는 차마 뱉지 못했다. 그는 정말 쉴 틈 없이 나를 공략했다. 클리토리스에서 겨우 떨어지나 싶더니 아래로 미끄러진 혀가 질구를 지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꿈틀거리며 내부로 침입한 혀는 그의 페니스보단 짧지만 유연한 혀끝으로 내벽을 툭툭 건드렸다.
아프진 않았으나 질을 휘젓는 감각은 너무나도 생소했다.
오늘 있었던 일 중에서 가장 민망한 순간을 꼽으라고 한다면 망설임 없이 지금이라고 답할 수 있었다. 그는 아래에서 흐르고 있는 내 애액을 전부 마실 생각인지 좀처럼 놔주지 않았다.
“하아, 중독될 것 같습니다.”
그의 애무가 너무 다정하고 부드러웠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익숙지 않아 그런지 부끄러웠다. 차라리 처음 했을 때처럼 서툴고 정신없었던 경우가 덜 무안했다. 나는 쾌감이고 뭐고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냥 넣자.”
“부끄러우십니까?”
또다.
정말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내가 들키기 싫은 부분을 정확하게 캐치해낸다. 왠지 자존심 상해서 인정하고 싶지 않아 시선을 회피했다. 내가 지식은 더 많다고 생각했는데!
“사랑스러운 걸요. 이 모습을 아는 사람이 저뿐이라는 사실에 더 없는 축복이라 느껴질 만큼.”
방심한 찰나 시리우스가 내 심장을 쳤다.
쿵 하고 내려앉은 심장은 도통 제자리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빨라지는 맥박 소리가 시리우스에게 들릴까 봐 걱정됐다.
하얗고 기다란 손가락이 혀가 지나갔던 길을 그대로 건드렸다. 두 개가 세 개가 되고 질척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흐…….”
비음이 섞인 탄식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릿한 감각은 구멍을 쑤시는 그의 손가락이 깊은 곳으로 들락거릴수록 쌓여갔다. 음핵을 자극한 만큼의 쾌감은 아니었으나 그의 손가락이 지나갈 때마다 줄줄 흐르는 애액 때문에 창피했다.
“몸은 솔직하네요.”
저런 대사도 공부했을까. 나는 흐려진 시야에서 시리우스의 표정을 보기 위해 미간을 찌푸렸다. 평소에 창백하리만큼 하얗던 피부가 상기되어 있었다. 단정하던 머리칼이 내가 헤집었던 모양으로 흐트러져 있었다. 빛이 닿은 은발은 눈부셨으나 그의 얼굴은 그늘져 있었다. 달의 이면처럼.
“세르니아 님, 이제 넣겠습니다.”
경고인지 예고인지.
헐떡거리는 숨을 고르고 있었는데 시리우스의 귀두가 입구를 열고 들어왔다. 가벼운 절정과 정성스러운 애무를 받았는데도 그의 성기가 들어가기에는 빠듯했다.
“괜찮습니다.”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눈치챈 시리우스는 내 눈시울에 입을 맞췄다. 깃털처럼 보드랍게 닿은 입술 사이에서 혀가 눈물을 훔쳤다. 아, 정말 미치겠다.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보물처럼 다루는 그의 행동 때문에.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심장 때문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그의 성기가 느릿하게 움직였다.
확실히 처음보다는 덜 아팠다. 내부를 가득 채운 이물감과 둔통은 느껴졌으나 참을 만했다. 어쩌면 육체가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힘을 뺐거나.
나는 천천히 진퇴를 반복하는 시리우스에게 몸을 맡겼다.
천천히 움직이는 기둥이 내벽의 주름들을 긁는 느낌이 생생했다. 뻐근한 통증 속에서 기묘한 감각이 피어올랐다.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으나 신음이 비집고 튀어나왔다.
“입술은 깨물지 마십시오. 상처 납니다.”
내가 깨물고 있던 입술을 지분거리더니 엄지손가락을 쑥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