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역의 사촌으로 살아남기-100화 (10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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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르덴타인이 나선다고 그게 될까?’

어찌 되었든 황족. 그녀에게 칼을 드는 순간 반란이 되어버린다.

아무리 검성이 황실을 싫어할지라도 제국을 배신할 순 없었다. 그는 제국의 사람이었고, 제국에는 그가 지켜야 할 제자들과 친우들이 있었으니.

‘제일 골치 아픈 문제는 반란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는 건데…….’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무리 황후가 내통자라 할지라도 증거 없인 움직이지 못한다. 그것이 진실이더라도. 정치판에서 중요한 건 진실이 아니라 명분이니까.

‘녹음이나 영상을 녹화 할 수 있는 마법 아티팩트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걸 구해야 하나.’

황후가 왕국과 내통한다는 증거를 어떻게 잡을지 고민하는 사이 검성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내게 다가왔다. 상념에 잠겨 있다가 머리를 쓰다듬는 거친 손길에 정신을 차리자 검성이 눈을 찡긋거리며 내 칭찬을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세르니아 덕분에 범인을 잡을 수 있었다. 이 녀석의 머리는 꽤나 쓸 만하더군.”

“세르니아. 어째서 말하지 않았지?”

검성은 나를 치켜세웠으나 공작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눈빛이 무서워!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노려보는 공작은 언뜻 화난 것같이 보였다. 그러나 공작부인과 마찬가지로 분노의 원인이 걱정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느껴져서 나는 복잡한 고민을 밀어두고 재빨리 변명했다.

“루카리온 님께서 비밀 엄수하라는 당부를 하셔서……. 삼촌과 숙모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모든 것은 검성 탓!

이라는 마음을 담아. 맞는 말이라 검성도 입술만 달싹일 뿐 반박하지 못했다. 한순간에 공작 부부의 시선이 검성에게로 쏠렸다.

“흠흠, 둘 다 진정하게. 위험한 일은 아니었어!”

“테러 사건 조사는 애들 장난이 아닐 텐데요. 사상자가 없었다지만 아카데미에 피해를 준 최초의 사건이었습니다.”

“건국제 때문에 아카데미의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니아는 어디까지나 임시 교사로 갔습니다. 그런데 조사에 참여했다니…….”

공작과 공작부인의 말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그들은 아카데미 테러 사건의 진상보단 어째서 ‘임시 교사’로 갔던 내가 테러 사건에 휘말렸는지에 대해 추궁했다. 검성은 흉흉한 기세를 뿌리는 공작 부부를 진정시키려 했으나 실패했다. 아니 그렇다고 왜 날 보는데. 검성은 내게 어떻게 해보라는 눈짓을 보냈으나 나도 무서워서 검성에게 미룬 것이었다. 그는 공작 부부가 이렇게나 격한 반응을 보일 줄 몰랐겠지.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야.’

나는 목 끝까지 차오른 한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본론은 시작도 안 했는데 여기서 시간 낭비를 할 수 없었기에.

“그보다 오늘 찾아오신 건 테러 사건의 배후 때문인가요?”

“맞아. 네 편지를 받고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원장님께서 나를 보내셨다.”

주제를 돌리자 당황하던 검성이 순식간에 진지한 얼굴로 바꾸고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 부부는 일단 넘어가지만 나중에 두고 보자는 눈빛을 보냈다.

“흠흠, 오늘 공작가에 방문한 것도 아르덴타인의 힘이 필요해서다.”

스산한 눈빛을 받아넘긴 검성은 목을 가다듬고 테러 사건 때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사건 발생부터 현재 아라네아의 배후까지. 그들도 심각성을 깨닫고 검성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큰일이라고 생각했던 아카데미 테러 사건은 곧 다가올 태풍의 전초였다는 것은 충격이었을 테니.

“아라네아라는 조직은 처음 듣습니다.”

“나도 테러 사건이 일어나기 전엔 몰랐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루 이틀 사이에 급조된 조직이 아니었다. 어둠에 숨어서 세력을 키운 지 적어도 10년 이상.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야. 거기다 최근 알게 된 사실을 조합하니 배후가 황후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이 나왔다.”

“!”

공작부인이 눈을 크게 떴다. 그녀와 달리 공작은 황실 문양이 새겨진 검을 들었을 때부터 눈치챘는지 크게 놀라진 않았다.

“황후가 브릴리언과 붙어먹어서 내란을 일으킬 거라 생각하십니까?”

공작은 원래 그녀를 탐탁지 않아 했는지 황후에 대한 예는커녕 잇새로 으르렁거리듯 내뱉었다.

“아마도.”

검성의 대답에 공작은 가만히 눈을 감았고, 공작부인은 침음을 삼켰다. 나는 집무실에 내려앉은 정적 속에서 편지에는 적지 않았던 내용을 말할 타이밍을 쟀다. 공작 부부가 아카데미 테러 사건의 심각성을 알았고, 검성이 배후가 황후라고 확신하는 때. 지금이 어제 있었던 일을 말할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어제 황태자님을 만났습니다.”

뜬금없이 헬리오스 이야기를 꺼내자 다들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 검성이 테러 사건을 차근차근 설명한 것처럼 나도 헬리오스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황태자와 진실의 맹세를 했고, 그 내용도 말했는데 공작부인은 내가 제일 처음에 했던 말 때문에 놀랐다.

“잠깐, 아리가 지금 저주에 걸렸다고?”

정확히 말하자면 저주와 금제가 합쳐진 것이지만 정정해봤자 좋을 게 없기에 가만히 있었다. 차분함을 유지하던 공작부인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리엘이 아프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저주라니. 그녀는 당장이라도 집무실을 나가려고 했지만 내가 다급하게 말렸다.

“숙모, 진정하세요. 저주를 푸는 방법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루카리온 님과 황태자님의 힘을 합쳐야 해요.”

자신이 아리엘의 곁에 달려가더라도 도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머리로 이해했으나 딸이 아픈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답답하겠지. 공작부인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자리에 앉았다. 나는 멈췄던 이야기를 마저 했다.

“황태자님에겐 황후의 눈을 피해 황궁 밖에서 움직일 수 있는 세력이 부족하고, 루카리온 님께선 황후를 잡을 명분이 없죠. 그렇기 때문에 두 세력은 힘을 합쳐야 합니다.”

헬리오스는 황후의 눈을 피해 세력을 모았다고 했다. 나도 아직 그들의 세력을 정확히 파악하진 못했지만 단독으로 황후를 치기엔 모자라 보였다. 반대로 검성을 따르는 검사들은 많았지만 황궁까지 들어간 제자는 손에 꼽았다. 검성을 존경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평민이기 때문.

“황태자님도 황후를 견제하고 있었다는 것은 의외군.”

“확실히 믿을 수 있나?”

공작은 내 말을 바로 믿었으나 검성은 약간 못 미더운지 한 번 더 확인했다. 직접 들은 나도 의심했었지. 검성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네. 심장을 걸고 한 진실의 맹세였는걸요.”

“황태자님이 아라네아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으니 반드시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그건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황후의 금제 증상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금제에 걸린 사람들을 걸러 낼 수 있죠. 뭐, 아주아주 어릴 적 이미 걸린 사람이 있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요.”

더군다나 헬리오스는 10살쯤 부터 황후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유심히 지켜보며 세력을 키웠을 것이고 약간이라도 황후와 접촉이 있었던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지나가듯 말했었다.

‘그래도 황태자 쪽의 세력이 얼마나 되는지 제대로 확인해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검성이 편지에 적었던 내용을 상기했다. 아라네아에 관한 것들. 조직의 대부분이 평민이라거나 일회용품 취급받는 것. 때문에 비슷한 금제가 걸려 있더라도 귀족들보다 가볍게 쓰이고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었다.

‘일회용품인 아라네아로 헬리오스의 감시를 맡겼을 리 없다.’

차라리 금제를 걸어 놨던 귀족을 이용했을 것이다. 아카데미 테러 사건 때처럼. 드란과 레베카는 황후와 거래를 통해 마력을 증폭시키고 대가로 황후의 세력에 들어갔다. 달리 아카데미에 침입했던 복면인들은 단순히 살육 인형처럼 키워져서 어떠한 대가도 없이 금제에 걸렸다. 엄연히 다른 취급. 아라네아는 황후가 얼마든지 버릴 수 있는 패가 아닐까. 나는 생각을 정리하며 검성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하지만 루카리온 님이 불안해하시는 것도 이해 갑니다. 그러니 직접 만나서 황태자님의 전력을 파악하는 방법이 좋지 않나요?”

“흠,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차피 나도 그를 다시 만나야 했다. 아리엘의 저주를 풀기 위해선 모두의 힘이 필요했으니. 검성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으나 이내 수긍했다. 그도 만약 아라네아의 배후가 황후일 경우 또 다른 황족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

“그래서 황태자님에겐 벌써 말했나?”

“아니요. 아직 루카리온 님에 대한 건 자세히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카데미 테러 사건에 관해서만 말했습니다.”

“음, 황태자님과 만나서 계획을 새로 짜기엔 시간이 빠듯하군.”

생각에 잠긴 검성은 깊은숨을 내뱉으며 오늘 방문 목적을 밝혔다.

그는 슈델리안 거리에 있는 꽃집을 기습할 계획이라고 했다. 슈델리안의 꽃집은 편지로 한 번 언급한 적 있는 아라네아의 거점. 대충 예상하고 있었으나 의외로 상세한 계획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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