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4 : 그 아이들의 모험(2)-
그들은 라이트 마법을 사용하면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빛에 끌려 몬스터가 공격할 수도 있어 라이트 마법은 사용하지 않은 채 어둑한 숲을 탐험했다. 긴장했던 것과 다르게 탐험은 순조로웠다. 초입에서 단숨에 중심부까지 들어서자 몬스터들이 하나둘씩 등장했다.
“데네브, 앞에 두 마리.”
“알겠어.”
바람의 정령을 소환한 데네브가 순식간에 오크의 목을 갈랐고, 리겔도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는 마법을 사용해서 빠르게 몬스터를 해치웠다. 몇 번의 전투가 이어졌으나 어려움은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울창한 나무 기둥 사이에서 은은한 빛이 새어 나왔다. 빛이 닿지 않는 숲에서 유일하게 빛을 내는 꽃이리라. 그들은 망설임 없이 빛이 나오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까워질수록 빛이 강해졌다.
“예쁘다! 이거 인간이 만지면 시든다고 했지?”
빛을 삼키는 꽃은 나무들 사이사이에 여러 송이씩 뭉쳐서 피어있었다.
리겔은 경이로운 광경에 감탄했다. 반투명한 꽃잎에서 달빛처럼 포근한 빛이 어두운 숲을 밝히고 있는 풍경은 신비로웠다. 빛이 없는 곳에서도 스스로 빛을 내며 인간의 손이 닿으면 시드는 꽃. 그렇기에 희귀하고 가치가 있는 꽃을 어떻게 꺾을지는 이미 상의를 마친 상태였다.
“데네브 얼른 정령에게 꽃을 꺾어달라고 부탁해.”
꽃을 관찰하던 리겔이 데네브에게 말했다. 그는 이미 소환해둔 바람의 정령에게 부탁하려다 미묘한 공기의 흐름을 느꼈다. 마력과는 다른 기분 나쁜 느낌. 정령 친화력이 높은 데네브였기에 미세한 위화감을 알아차린 것이다.
“뭔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
“여기 들어올 때부터 음습한 기운이었는데.”
“아니. 그거랑은 좀 달라.”
데네브는 꺼림칙한 느낌 때문에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별다른 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불안이 사라지지 않아서 데네브는 새로운 정령을 소환했다.
“르미엘 근처를 밝혀줘.”
뭉게구름같이 생긴 털 뭉치가 빛을 내며 나타났다. 중급 빛의 정령을 소환한 데네브는 그들의 주위를 밝혀달라는 부탁을 했다. 어차피 빛을 삼키는 꽃 때문에 다른 곳보다 밝아서 조심할 필요도 없다고 판단해서.
“딱히 이상한 건 없어 보이는데.”
리겔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꽃이 핀 곳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그녀는 인간이 만지면 어떻게 시드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여러 송이 피어있으니 한 송이 정도는 시들어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꽃에 접근하는 리겔을 보던 데네브는 이상한 움직임을 포착했다.
“누나! 잠깐!”
그가 황급히 리겔을 불렀으나 어둠이 더 빨랐다. 나무 그늘 사이 숨어 있었던 이질적인 어둠이 움직였다. 그림자라고 생각했던 새카만 것이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빛이 닿지 않는 숲의 지형 때문에 돌연변이 몬스터가 가끔 나타난다지만 그것은 몬스터라고 부르기 어려웠다. 두 발로 서는 몬스터가 녹은 듯한 형태를 가진 검은색 덩어리였다. 정령이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을 날렸으나 검은 덩어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리겔은 갑자기 나타난 괴생명체에 놀랐으나 금세 대처했다.
“실드!”
투명한 막이 검은 덩어리를 막았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마법으로 만든 방어막에 괴물의 손이 닿자 막이 녹아내렸다. 찰나의 시간이었으나 리겔은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빼며 파이어 볼을 던졌다. 데네브도 바람의 정령과 빛의 정령으로 공격했으나 어떤 공격도 괴물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누나 텔레포트 해!”
“하지만 아직 꽃을 못 꺾었는데.”
데네브는 숲을 탈출하자고 했으나 리겔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미련 때문에 바로 텔레포트 하지 않았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침입자가 있었네.”
검은 덩어리가 가까워지기 전에 텔레포트를 재촉하려던 데네브의 말을 막는 목소리가 들렸다. 음침한 숲과 어울리지 않는 맑은 목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남매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소녀가 서 있었다. 맑은 목소리와 달리 데네브가 마주한 붉은 눈동자는 먹이를 훑어보는 몬스터 같았다. 그녀가 등장하자 리겔을 공격하려던 검은 덩어리의 행동이 멈췄다. 남매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눈앞에 있는 소녀가 자신들보다 강하다는 것을. 데네브는 일단 대화가 가능해 보이는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이곳에서 사는 건가요?”
예상치 못한 등장에 당황했으나 그녀가 했던 말을 놓치진 않고 침착하게 물었다. 그녀는 분명 ‘침입자’라고 지칭했다. 그러나 빛이 닿지 않는 숲에 주인이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더군다나 이 숲은 브릴리언 왕국과 샤르테 왕국의 경계에 있는 숲이라 어느 왕국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지대였다.
‘주인이 있을 리 없을 텐데 어째서 당연하게 우리를 침입자라고 지칭하는 거지?’
데네브는 소녀를 경계하며 대답을 기다렸으나 들려온 것은 웃음소리였다. 그녀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눈까지 접으며 웃었다.
“이렇게 만나게 될지 몰랐는데. 반가워. 에레스라고 불러줘.”
데네브는 그녀의 인사에 섣불리 대답하지 않고 거리를 벌렸다.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자기소개를 하는 에레스는 마치 남매를 아는 것처럼 말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런 소리를 듣는다면 누구라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정적이 내려앉은 숲속에서 의외로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리겔이었다.
“나는 리겔이야.”
“……데네브라고 합니다.”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았으나 리겔이 먼저 나선 것에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해서 어쩔 수 없이 같이 인사를 했다. 에레스는 남매를 흥미로운 눈으로 쳐다봤다. 자칫 기분 나쁘게 느낄 수 있는 시선을 받으면서도 흔들림 없는 리겔은 태연하게 에레스에게 질문을 했다.
“우리는 빛을 삼키는 꽃을 구하러 왔어. 너는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빛을 삼키는 꽃을 구하러 왔다고? 뭐에 쓰게?”
한껏 경계하고 있는 데네브와 달리 리겔은 솔직하게 목적을 말했다. 에레스는 질문에 대한 대답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남매에게 묻기만 했다.
“희귀하다고 해서 엄마에게 선물로 드리려고.”
“흐음, 그렇군.”
검지로 자신의 뺨을 톡톡 만지던 에레스가 근처에 있는 꽃 한 송이를 꺾었다. 그러자 은은한 빛을 뿜어내던 꽃이 단번에 재가 되어 바람에 날렸다.
“빛을 삼키는 꽃이 왜 그렇게 불리는지 알아?”
“아니.”
사실 리겔도 궁금해하던 부분이었다. 빛을 내뿜는데 어째서 삼킨다고 표현한 건지.
“이 꽃은 인간이 만지면 시드는 게 아니라 마력이 닿으면 시드는 거야.”
에레스는 장황한 설명을 이어갔다. 빛이 닿지 않는 숲의 유래와 빛을 삼키는 꽃에 대해서.
“고대에는 마력을 빛이라고 불렀어. 마법을 사용하면 마법진에서 빛이 나오고, 여러 자연현상을 만들어냈기 때문이지. 빛이 닿지 않는 숲이라는 명칭에서 빛이 가리키는 것도 마력이야. 최근에는 빽빽하게 자란 나무 탓에 햇빛이 들지 않아 그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처음 빛이 닿지 않는 숲을 발견한 초대 마탑주는 이곳이 위험한 장소라는 것을 알아차렸단다.”
분명 남매와 비슷한 얼굴이었으나 그녀가 알고 있는 지식은 라칸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마탑에 소속된 마법사들조차도 고대어로 적혀있거나 기록조차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초대 마탑주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의 행적을 아는 사람은 시리우스나 라칸 정도. 리겔은 눈앞에 있는 소녀가 시리우스에 버금가는 천재거나 외모보다 훨씬 나이가 많을 거라 추측할 수 있었다. 에레스는 리겔이 어떤 생각을 하든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할 말을 이어갔다.
“빛이 닿지 않는 숲은 마력이 흐르지 않고 고이는 장소. 그래서 여기 있는 몬스터들은 통상적인 몬스터들보다 강하지. 순환하지 않는 마력이 응축되어 생물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빛을 삼키는 꽃도 그런 생명체 중 하나야. 응집된 마력비료로 꽃을 피우는 식물이거든. 그런데 어째서 마력이 닿으면 죽는 걸까?”
긴 설명을 마친 에레스는 돌연 질문을 던졌다.
간단한 문제처럼 가볍게 물었으나 내용은 전혀 간단하지 않았다. 잠시 고민한 리겔은 확신이 없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꽃이 보유하고 있는 마력과 다른 성질의 마력이 들어가서?”
“너 의외로 똑똑하구나. 맞아. 응축된 마력은 일반 마력보다 무거운 성질을 가지고 있어. 그래서 인간이 보유하고 있는 성질이 닿으면 마력의 충돌이 일어나고 연약한 꽃은 가루가 되는 거지.”
데네브는 별로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였기에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
그가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에레스의 정체. 초대 마탑주가 금역으로 지정했고, 자신과 누나가 힘을 합쳐야 쓰러트릴 수 있는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곳을 집처럼 드나드는 사람. 다만 묘하게 그들에게 친절한 점이 걸렸다.
“정답을 맞혔으니 선물을 줘야겠지.”
미소를 머금은 에레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멈춰있던 검은 덩어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계하고 있던 데네브는 상급 정령을 소환하려고 했으나 리겔이 말렸다.
“잘 봐. 우리를 공격하는 게 아니야.”
리겔은 에레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작게 속삭였다.
그녀의 말대로 검은 덩어리는 남매와 반대쪽으로 이동했다. 빛을 삼키는 꽃이 피어있는 쪽이었다.
“빛을 삼키는 꽃은 단순히 빛을 내서 희귀한 식물이 아니야. 이 꽃은 다른 마력이 섞이지 않으면 시들지 않아. 뿌리가 없어도 새로운 마력을 공급하지 않아도 죽지 않고 영원히 피어있어.”
에레스가 만졌을 때는 바로 재가 되었던 꽃은 신기하게도 검은 덩어리가 꺾자 시들지 않았다.
“이제 너희들의 질문에 대답해줄게. 나는 여기서 저주를 통해 몬스터를 강화하는 연구를 하고 있어. 아까 리겔을 공격했던 검은 녀석이 내 실험체고.”
“…….”
“……키메라 제조는 불법일 텐데.”
데네브는 경악스러운 대답에 할 말을 잃었고 리겔은 인상을 찌푸리며 문제를 지적했다. 에레스는 말간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키메라가 아니야. 강화마법에 가깝지. 녀석은 원래 이 숲에 살고 있어서 꽃을 만져도 시들지 않아. 거기다 너희들도 만질 수 있도록 마력으로 코팅해줄게.”
“당신이 숨겨야 할 비밀 같은데 어째서 우리에게 알려주는 거죠? 왜 저희에게 이렇게까지 해주는 겁니까?”
데네브는 한층 경계심이 짙어진 얼굴로 물었다.
그는 에레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함부로 알려줘서는 안 될 것 같은 비밀을 처음 만난 이에게 쉽게 털어놓는 거나 상관도 없는 남매의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행동은 상식 밖의 것이었다.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다면 강해지라는 충고를 하기 위해.”
소름 돋을 만큼 서늘한 마력이 그들을 옴짝달싹 못 하게 했다.
실질적인 경고. 어설프게 덤볐다간 바로 죽을 수 있었다. 데네브는 뱀의 먹이가 된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서 움직일 수 없었다.
“라고 겁을 줬지만 사실 그리 경계할 건 없어.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여기뿐. 제국도 마탑도 건드릴 생각은 없으니까. 그리고 세르니아에게 안부나 전해줘.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과 함께.”
강한 바람이 불었다.
갑자기 불어 닥친 돌풍에 잠시 시야를 뺏겼는데 그사이 에레스가 사라져 있었다. 어째서 그녀가 세르니아를 알고 있는지 묻고 싶었으나 그 궁금증은 풀 수 없었다.
***
세르니아는 마리와 함께 내일 있을 결혼기념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족끼리 하는 소박한 파티지만 음식 메뉴나 테이블 장식 등 은근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아서 미리 준비해야 했다.
“도련님과 아가씨가 안 보이네요.”
음식 재료를 사러 마을에 갔다 온 레나가 세르니아에게 말했다. 레나의 말을 들은 세르니아는 붉게 물든 하늘을 봤다. 남매가 텔레포트 장치로 마탑에 간 것은 알고 있었다. 저녁쯤 알아서 들어올 거라 생각했는데 연락이 없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한창 사춘기가 올 나이고, 자립심을 키우기 위해 간섭하지 않으려 했으나 걱정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이었다. 세르니아는 목걸이를 만져서 시리우스에게 연락을 했다. 아이들이 마탑에 갔다면 그가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기에.
“시리, 지금 마탑이지? 혹시 리겔이랑 데네브도 거기 있어?”
[리겔과 데네브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요?]
“아직……. 거기도 없어?”
[네. 일단 제가 찾아볼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알겠어. 찾으면 연락해줘.”
세르니아는 애써 불안한 마음을 떨쳐냈다.
시리우스라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아이들을 찾아낼 테니 더 이상 걱정은 무의미하다고 합리화를 하며.
***
마탑에서 남매를 찾던 시리우스는 오전에 라칸이 그들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돌아갔다고?”
“네. 리겔이 세상에서 제일 희귀한 것이 뭔지 물었고 제가 대답하자 순순히 돌아갔습니다.”
“갑자기?”
“데네브와 리겔이 내기를 했다고 했습니다.”
시리우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데네브와 리겔이 내기를 했는데 순순히 돌아갔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그는 입구를 지키고 있는 실라에게도 물었다.
“데네브와 아가씨는 서쪽으로 텔레포트를 했어요.”
“서쪽인가…….”
“네. 무슨 일 있나요? 저는 당연히 샤르테 수도로 가는 줄 알았거든요. 구할 게 있다고 해서…….”
실리가 입구 담당인 이유는 미세한 마력으로 대략적인 방향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서였다. 그녀가 말한 서쪽에는 샤르테 왕국의 수도가 있는 방향이었으나 서쪽으로 더 간다면 브릴리언 왕국과 맞닿은 장소가 나온다. 라칸이 말했던 꽃이 있는 장소. 실라의 이야기를 들은 시리우스는 머뭇거리지 않고 빛이 닿지 않는 숲으로 텔레포트 했다.
‘별일 없겠지.’
시리우스는 숲에서 나타날 몬스터들보다 숲의 위치 때문에 불안했다.
현재 내란으로 혼란스러운 브릴리언 왕국과 맞닿아 있는 숲은 꺼림칙한 존재를 떠올리게 했기에. 황후 에레니에스는 아슬란데 제국의 반란을 일으킨 주동자로 지목되었고, 공식적으로 사망 처리됐다. 하지만 그녀는 살아있었다. 세르니아가 몇몇 신뢰하는 사람에게 털어놓은 진실. 시리우스도 에레니에스가 쉽게 죽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더 이상 제국과 마탑을 건드리지 않아서 찾지 않고 있는 것이지 지금 일어난 브릴리언 왕국의 내란도 에레니에스가 관여했을 거라 추측하고 있었다.
“아빠!”
시리우스가 심각한 얼굴로 숲으로 들어서자 그를 부르는 리겔의 외침이 들렸다. 데네브도 함께 있었다. 시리우스는 남매가 어디 다치진 않았는지 빠르게 훑었다. 그리고 리겔이 한 아름 안고 있는 빛을 삼키는 꽃이 눈에 들어왔다.
“그걸 구하러 여기까지 온 건가?”
“네.”
그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진한 안도가 묻어 있는 한숨이었다. 그러나 시리우스는 딱딱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아이들이 무사해서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선 안 됐다.
“여기가 위험한 장소라는 것도 알고 왔겠지?”
“네…….”
“죄송합니다.”
세르니아의 교육방침대로 자립심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나 시리우스는 지켜야 하는 선을 확실하게 알려줄 필요도 있다고 생각했기에.
“뭘 잘못했는지 말해봐.”
“저희끼리 위험한 곳에 간 것이요.”
“허락 없이 금역에 들어간 거요.”
시리우스는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화난 게 아니라 너희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까봐 걱정했단다. 나도 이렇게 놀랐는데 엄마는 얼마나 놀랐겠어. 자라면서 위험한 일에 뛰어들 수도 있고, 더 이상 우리에게 말하지 않고 행동하는 일이 늘겠지만 너희는 아직 어려. 그러니 우리를 생각해서라도 너무 위험한 일은 하지 말거라.”
“네.”
“네.”
시리우스는 자신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꼭 끌어안았다.
그와 세르니아의 보물이자 사랑의 결실. 시리우스에게 남매는 특별했다. 세르니아를 제외하고 더 이상 소중한 것은 절대 생기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부순 존재. 그래서 아이들이 다칠까 언제나 전전긍긍한다. 이 아이들은 절대 모르리라. 시리우스가 그들을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는지.
“돌아가자.”
그들이 사랑하는 세르니아가 기다리는 집으로.
***
“어서 와!”
“다녀왔습니다.”
“엄마! 다녀왔어요.”
저택에 도착하자 세르니아가 그들을 반겨줬다.
시리우스의 연락을 받고 준비해둔 저녁을 먹기 위해 다 같이 식당으로 이동했다.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둠이 찾아왔으나 숲과 달리 무섭지 않았다. 따뜻한 어둠. 그것은 가족의 존재 때문이라는 것을 남매는 알고 있었다. 남매는 오늘 있었던 모험을 신나게 이야기했다. 세르니아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가슴이 철렁이긴 했으나 에레니에스가 아이들에게 적의를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걸 받았어요.”
“누나 내일 드릴 거 아니었어?”
“깜짝 놀라게 하고 싶었는데 이미 다 들켰잖아. 하루라도 빨리 드리면 하루 더 볼 수 있으니까 이득 아니야?”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누나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됐지.”
리겔은 오늘 구해온 꽃다발을 세르니아에게 건네며 데네브와 투덕거렸다. 평소와 같았다. 세르니아는 그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은은하게 식당을 밝히는 따뜻한 빛이 가족을 포근하게 감쌌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 자칫 지루한 일상으로 느낄 수 있으나 그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 사람은 성장하고 변해간다. 그리고 이 아이들도 언젠가 그들의 품에서 떠나리라. 그리 먼 미래가 아니었다. 평화로운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무사히 지나간 오늘에 감사를.
-악역의 사촌으로 살아남기 외전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