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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이혼은 쉬울 줄 알았다-7화 (7/148)

악녀의 이혼은 쉬울 줄 알았다 7화.

앤시아가 말하는 어머니가 친모라고 생각한 로사는 거침 없었다.

이와 반대로 호위였던 기사들은 앤시아를 아가라 부르며 동행이라도 하게 해 달라 매달리며 처절하게 울던 백작 부인을 떠올렸다. 무례함을 지적하기도 전 앤시아가 한 발 다가섰다.

혹시라도 시녀장의 뺨을 치거나 울부짖기라도 한다면 핏줄을 운운하며 치욕을 줄 생각으로 로사는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그런 로사의 예상과 달리 앤시아는 어깨에 걸치고 있던 두툼한 숄을 바닥으로 떨구었다.

손이라도 떨려서 저러나 지켜보던 로사는 앤시아가 어깨를 감싼 드레스를 붙잡아 내리려 하자 당황했다.

“무, 무슨 짓을 하시는 겁니까?”

“검사해야 한다면서요.”

순진하게 생겼다 싶더니 멍청하구나 싶어 로사는 다급히 앤시아에게 다가섰다.

“가져온 짐은 모두 보았으니 되었습니다.”

“왜요? 공작가에 위험한 걸 들이면 안 된다면서요.”

오히려 앤시아는 한 걸음 물러 서며 어깨가 드러날 만큼 드레스를 끌어 내렸다. 흔들림 없이 서 있던 사용인들이 놀란 듯 처음으로 움직임을 보였다.

· 알겠습니다. 탈의할 장소로 안내를 할 테니.”

“시간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데요.”

앤시아는 한 걸음 더 뒤로 물러 서며 드레스를 쥔 손을 조금 더 내렸다.

“공작 부인으로서 입게 될 첫 드레스를 갈가리 찢고 대대로 내려온 가문의 유산을 가루로 만들만큼 시간이 없었던 거 아닌가요? 그러니 어서 검사하셔야죠.”

거의 속옷이 보일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내려진 드레스에 기사들이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감았다. 황급히 다가온 시녀장은 앤시아의 드레스를 잡아 올리려 했다.

그 손을 몸을 틀어 피하며 로사에게 바싹 다가선 앤시아는 처음으로 애교 섞이지 않은 본 목소리를 냈다.

“날 여기서 헐벗기든지, 당신이 저지른 무례함을 사과하든지.”

가장 가까이에 선 로사에게만 들릴 만큼 작은 소리였으나 지금까지 보인 처연함과 달리 단단했다.

이렇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앤시아는 침착하려 했으나 이것만이라도 챙겨 줄 수 있어다행이라며 눈물짓던 백작 부인의 얼굴이 떠올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당신이 한 행동에 책임져.”

로사는 지금 제 귀가 잘못된 게 아닌가 의심했다. 공작가에 속한 사람이라면 결코 로사에게 이런 식으로 대들 수 없었다.

저 순해 빠지다 못해 멍청해 보이는 자작 영애가 자신에게 이런 망언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울며 나자빠지거나 충동적으로 덤벼들겠지 싶었다.

앤시아는 눈물을 글썽이기는 했으나 그뿐이었다. 천진하게 웃던 어린 소녀의 기세가 아니었다.

기가 막힌 로사가 잠시 침묵한 사이 앤시아는 다른 사람에게 들만큼 목소리를 살짝 높였다.

“얼마나 급하시면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망가트리셨겠어요. 어서 제 옷도 검사하셔야죠.”

이어 각오를 굳혔다는 듯 앤시아 스스로 어깨까지 내려온 드레스를 잡아 내렸다.

“영애는!”

하지만 이미 앤시아의 옷자락을 함께 붙들고 있던 로사의 손에 힘이 들어가 벗겨지기는커녕 오히려 도로 입혀졌다.

“영애는 수치도 모르는 겁니까?

여인끼리 있더라도 귀족 사이에서 속살을 보이는 일은 없습니다.”

사과할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는 태도로 로사는 오히려 앤시아를 타박했다. 예법도 모르고 수치도 모르는 한미한 가문이라고.

앤시아는 시녀장이 이 정도로 물러서지 않을 건 알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이처럼 강경하게 굴면 어느 정도는 통할 줄 알았는데 로사는 역시 만만치 않았다.

‘원작에서도 틀어박힌 앤시아에게 동정론이 잠깐 형성될 때조차 꿋꿋하게 구박을 일삼았고.’

당장 로사가 무슨 짓을 벌인 것인지 조목조목 따져 볼 수는 있었다.

공작저에 발을 들이기 직전인 검문대 앞에서 앤시아가 속옷을 노출할 만큼 옷을 끌어 내린다면, 그 원인이 로사가 벌인 지나친 수위의 검문 때문임이 알려진다면. 제아무리 제멋대로 공작가를 주물러 온 시녀장이라 해도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

책임 소지를 따지고 든다면 로사의 편에 서 있는 공작가의 사용인들 역시 앤시아의 말에 수긍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게 과연 앤시아에게 도움이 될까?

얼마 남지는 않았으나 아직 성인식도 치르지 않은 예비 신부가 남편이 될 공작가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벗으며 추태를 보이다니. 추문을 넘어서 자칫 정신 이상설까지 돌 수 있었다.

악녀로 보이는 건 괜찮지만 정줄을 놓은 것처럼 보이면 곤란했다. 게다가 여기서 확 엎어 버리기엔 앤시아의 입장이 불리하기도 했다.

‘일단 한발 물러설까.’

앤시아는 추위에 자연스럽게 떨리는 어깨를 감싸며 고개를 떨구었다. 조금 전 로사에게만 들릴만큼 작지만 강했던 어조는 싹지우고 다시 순수함이 느껴지는 여린 목소리를 꾸며 냈다.

“할머니의 유품인데… 어머니께서 소중히 아끼시던 건데 사과도 안 하시는 거예요?”

“절차라고 했을 텐데요. 그 정도 구분도 못 하시는 겁니까?”

“너무하세요. 제게는 드레스 한 벌과 장신구 세트 하나가 전부였는데.”

울먹이며 호소하는 앤시아의 서글픔이 선명하게 퍼져 나갔다.

사용인과 기사들의 시선이 바닥에 떨어진 찢어진 드레스와 부서진 목걸이로 향했다.

입고 있는 옷까지 검사하라며 울먹이던 가녀린 소녀가 가져온 유일한 혼수품이었다.

예비 공작 부인으로는 보기 힘는 수모를 겪으며 추위에 떠는 자그마한 체구의 앤시아는 보는 이들마다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유일하게 조금의 영향도 받지 않은 로사는 턱까지 치켜들며 앤시아를 타박했다.

“영애야말로 공작가의 품위를 떨어트리는 짓을 벌이고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하지만 어머니가 주신건데…….”

“공작가의 격에 맞는 물품으로 갖춰 드릴 테니 그만 징징거리세요.”

징징거린다니.

아무리 본래 신분이 자작이라고는 하나 곧 공작 부인이 될 사람에게 해도 될 만한 말은 아니었다.

공작가의 사용인들조차 저렇게까지 함부로 말해도 되나 싶어 시녀장을 힐끗거렸다.

앤시아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오자 로사는 오히려 이제야 제대로 통했다는 듯 어깨를 죽폈다.

“이런,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다니. 정말 손이 많이 가겠군요.”

로사는 이제야 저 멍청한 영애가 알아들었구나 싶어 굳었던 입술을 한껏 끌어 올렸다.

고작 자작 영애 주제에 어디 기어올라. 로사는 그리 생각하며 의기양양해했지만, 상황을 지켜보는 주변 시선은 그렇지 않았다.

한 달을 내리 달려 공작가에 도착한 예비 신부가 북부의 추위에 맨 어깨를 드러낸 채 덜덜 떨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웅크린 몸이 너무 작아 보여 애처로웠다.

그 모습을 누구보다 안절부절 못하며 지켜보던 기사부단장 아서가 참다못해 움직였다.

바닥에 떨어진 숄을 주워 든 아서는 투박한 손으로 열심히 먼지를 털어 내어 앤시아의 가녀린 어깨에 둘러 주었다.

“랜피스 자작 영애. 아니, 주인마님.”

“네, 네? 저요?”

당황하며 고개를 돌린 앤시아의 콧등이며 눈가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고여 있는 눈물이 드레스의 보석처럼 영롱하기까지 했다.

사랑스러우면서도 애처로운 모습에 아서가 잠시 숨을 삼킨 사이 로사가 신경질적으로 다가섰다.

“모겐스 경, 영애를 보고 마님이라니요.”

“이제 공작저에 도착하셨으니 마님으로 모시는 게 맞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서약 의식을 치르기 전까지는 영애가 맞지요.

모겐스 경답지 않게 전통을 무시하는 겁니까?”

공작가의 전통이라는 말에 아서는 잠시 흔들리는 듯했으나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호칭에는 주의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한 달이나 마차에서 시달린 이분을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로사를 힐끗 쳐다 본 아서는 마차 주변으로 정렬해 있던 기사들을 돌아보았다.

“우리의 임무는 마님을 저택 안까지 모시는 것, 다들 대형을 유지하라!”

“네! 전원 정렬!”

“잠깐, 모겐스 경!”

신경질적인 로사의 부름에도 아서는 태연히 앤시아를 작은 마차로 옮겨 태우려 했다.

로사와 아서를 번갈아 보던 앤시아는 아서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자 로사가 참지 않고 앤시아의 앞을 막아섰다.

“제가 허락해야 들어갈 수 있다는 말, 아직 이해 못 하시는 거 같군요.”

“시녀장, 아니 로사 마일 님.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이분은 곧 우리의 주인마님이 되실 분이잖습니까.”

“모겐스 경. 이 일의 중요성을 모르시는 거 같군요. 외부인을 공작가 안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철저하게 해야지요.”

로사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에 아서가 답을 망설이는 사이 로사는 오히려 되물었다.

“아니면, 아직 정식 서약도 하지 않은 영애가 공작님 명보다 더 위에 있다고 착각하시는 겁니까?”

사촌이 아니고서야 신붓감으로 외부인이 들어오는 게 당연한 일이건만 로사는 마치 도둑이라도 들어오는 것처럼 예민했다.

저렇게 치를 떨며 싫어했으니 끝까지 앤시아를 괴롭혔겠지.

원작에선 앤시아가 진즉에 틀어 박혀 이 정도로 격렬하게 싫어하는지는 몰랐다.

“저기…….”

기껏 편들어 준 기사부단장을 곤란하게 해서야 한 달 내내 멀미에 시달리면서도 웃으며 버렸던 시간이 아까웠다.

앤시아가 소심하게 부르는 소리에 아서와 로사가 동시에 돌아보았다.

“시녀장님? 로사 마일 님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이름을 부를 필요는 없습니다.

쓸데없이 친밀감을 가지시면 서로 불편할 테니까요. 시녀장으로 부르세요.”

“음……. 네, 시녀장님. 그럼 전 로사 시녀장님과 함께 가면 들어 가도 되는 건가요?”

이미 시녀장 쪽으로 걸어온 앤시아가 살짝 앞서 걷자 로사가 짜증스럽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쫓아왔다.

“하아……. ‘시녀장’이면 충분하다니까요. 정말이지 앞으로 가르칠 일이 까마득하군요.”

가르칠 일이 까마득하다면서도 로사는 앤시아에게 하대를 하라고 정정해 주지는 않았다. 그저 한심스럽다는 듯 혀를 차면서도, 제 입맛대로 다룰 수 있을 것 같은 부족하기 짝이 없는 공작 부인의 존재가 만족스럽다는 듯 입술 끝을 올릴 뿐이었다.

앤시아의 눈에 로사는 공작가를 관리할 능력은 있을지언정 인성은 형편없었다.

기고만장한 로사를 보고 있자니 순순히 당해 주고 싶지만은 않았다.

“그럼 가르치지 마세요.”

기사들에게서 조금 멀어졌으나 사용인들은 아직 가까웠다. 그런데도 앤시아는 배시시 무해한 웃음을 보이며 태연하게 속내를 드러냈다.

“저도 배울 생각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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