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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이혼은 쉬울 줄 알았다-19화 (19/148)

악녀의 이혼은 쉬울 줄 알았다 19화.

줄리와 엘리에게 뒤를 맡기고 호위와 함께 돌아온 앤시아는 뿌듯했다.

아이들을 동정하는 마음을 감추고 불편해하는 모습을 꾸며 냈다.

나름 악녀다운 발언을 실컷 했던 앤시아는 막판에 잊지 않고 공작가의 돈을 마음껏 쓰라는 말도 전했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다고 했으니 더러운 아이들을 보기 싫다던 앤시아의 뜻대로 한동안 애들끼리 꽃을 꺾으러 다니지 않도록 조치할 것이다. 부모에게 돈을 쥐여 주는 아이들끼리 놀 수 있게 장난감을 사 주든지하겠지.

울퉁불퉁한 도로를 메우기 위해 아동 노동 착취를 실천하며 악녀다운 행동을 했으니 거기에 좀 더 보태 흥청망청 낭비하는 것도 포함하고자 전언한 것이다.

본인이 쓸 것도 아닌 일에 돈을 쓰다니 이 얼마나 쓸모없는 낭비인가.

“이번에는 정말 못된 악녀 처럼 보였을 거야.”

앤시아는 자신이 혀를 깨물어가며 최대한 싸가지 없게 말했음을 확신했다.

이 정도면 크게 한 건 터트린 셈이다. 자신에게 호의를 보였던 두 사람조차 황당해할 만큼 열심히 노력했다.

이번 악행은 최소 10포인트는 되겠지. 대체 얼마나 포인트를 모아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속 악녀 스티커를 한꺼번에 열장 붙이는 상상을 하니 하루 정도는 쉬어도 되겠다 싶었다.

그렇게 홀로 만족하며 일찍 잠든 앤시아의 기대와 달리 공작부인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두 하녀의 얼굴은 벅찬 감동으로 가득했다.

- 영지민이 피죽도 못 먹은 꼴로 땟국물을 줄줄 흘리고 다녀?

-저렇게 더러운 걸 그냥 두는 거야?

-뭐야, 저 앙상한 뼈들은.

- 의사에게 확인받은 것도 아니잖아.

앤시아가 지적했던 내용을 떠올리며 하녀 둘은 각오를 다졌다.

아이 대부분은 앤시아가 시킨 대로 흙을 날라 길을 메우기 시작했다. 여러 명의 아이가 그리 길지 않은 길을 흙으로 정돈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에 대한 보상으로 종일 일해도 받기 힘든 은화 하나씩을 챙겨 주었다.

그 후 더러워진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기 위해 인적 드문 이곳에 자리 잡은 한적한 여관 마당을 빌렸다. 줄리는 먼저 지친 아이들을 데려다 씻기고 엘리는 옷을 사 와 아이들에게 입혔다.

병을 걱정하던 앤시아의 말대로 의원을 불러 아이들의 건강 상태까지 확인했다. 몇몇 아이는 미약한 감기 기운이 있어 약을 처방받기도 했다.

아이들은 밤이 깊어야 돌아오는 부모들 탓에 딱딱한 빵을 지겨워했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여관 주인은 퍼석거리기는 해도 잘 보관된 빵과 건더기가 듬뿍 들어간 수프를 끓여 주었다.

물론 비용은 공작 부인의 사인을 대필하는 것으로 지급했다.

잠깐이나마 마님을 오해할 뻔했지만, 돈은 얼마든지 들어도 좋으니 믿고 맡기겠다던 앤시아의 화사한 웃음에 모든 오해가 풀렸다.

낯선 사람의 호의에 쭈뼛거리던 아이들의 환한 웃음에 줄리와 엘리 역시 절로 웃음이 났다.

“마님이 원하신 대로 잘한 거겠지?”

“응. 역시 마님은 외모만큼 마음도 너무 예쁘셔.”

우리 마님은 천사라며 줄리와 엘리는 초과 근무에도 뿌듯함을 느꼈다.

앤시아가 봤다면 그거 아니라며 억울해할 만큼 정반대의 해석이었다.

밤이 깊도록 공작 부인의 방을 지키는 두 하녀의 그림자가 바삐움직였다.

“마님, 팔을 닦아 드리겠습니다.”

“으응…”

고작 하루 긴 외출을 한 것만으로도 앤시아는 밤새 열이 올라 침대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백작가에 있을 때도 종종 무리하게 정원에 머물거나 신경을 많이 쓰면 이런 식으로 열이 나고는 했다. 쓰러지는 일이 워낙 잦아서 그러려니 할 만큼 앤시아의 몸은 허약했다.

안과 밖으로 악행을 쌓아 가려던 앤시아의 계획은 수포가 되었다.

시무룩해진 앤시아의 우울한 표정에 줄리는 밤새 간호해야 할 텐데도 명랑하게 굴었다.

“먼 길을 오시느라 아직 피로가 덜 풀리신 걸 거예요. 며칠 푹쉬면 괜찮아지실 거예요.”

그렇지 않다는 걸 알기에 앤시아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공작가로 오는 한 달 동안 마차에서 잘 버텼기에 건강해진 거로 착각했다. 조금만 무리해도 쉽게 쓰러질 만큼 제 몸이 엉망진창임을 잠시 잊었다.

나름 공작가에서 악녀로서 열심히 지내보려 했건만 삼 일째 되는 날 침대에 붙어 있는 신세라니 한심하게 느껴졌다.

지금이라도 원작 앤시아가 한 것처럼 칩거와 우울함으로 무장해야 하나. 커튼을 치고 빛 한 줄기 들지 않게.

‘그건 싫어.”

툭하면 이렇게 쓰러지고 마는 몸뚱어리를 가지고 반년이라는 긴 시간을 우울함과 어둠 속에서 자신을 갉아먹고 싶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정말로 원작 앤시아가 돼 버릴 것 같았다.

앤시아는 고개를 흔들며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 내려 애썼다. 연약하다는 것조차 이득이 될 수 있도록 살아왔다. 아프면 오히려 투정 부리기 쉬워졌다. 겸사겸사갑질도 하고.

“마님. 수프를 가져왔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무척 고소하게 느껴졌던 수프에서 누린내가 풍겨 왔다. 그간 든든하다 했더니 고기가 듬뿍 들어갔던 모양이었그랬다가는 정말로 원작 앤시아가 돼 버릴 것 같았다.

앤시아는 고개를 흔들며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 내려 애썼다. 연약하다는 것조차 이득이 될 수 있도록 살아왔다. 아프면 오히려 투정 부리기 쉬워졌다. 겸사겸사갑질도 하고.

“마님. 수프를 가져왔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무척 고소하게 느껴졌던 수프에서 누린내가 풍겨 왔다. 그간 든든하다 했더니 고기가 듬뿍 들어갔던 모양이었다.

“먹고 싶지 않아.”

“그래도 드셔야 힘이 나시죠.”

“저리 치워.”

힘없이 밀쳐 내는 앤시아의 손에 엘리는 안타까워하면서도 조용히 물러섰다.

갑질도 기운이 있어야 하지.

체력이 달리니 짜증을 쥐어짜내는 것도 힘들었다.

차라리 자 버리자 싶어 눈을 감자 순식간에 수마가 몰려왔다.

비몽사몽간에 입술에 물기가 닿았고 목이 말라 받아먹으며 까무룩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허억!”

악몽 속에서 헤매던 앤시아가 헐떡거리며 눈을 떴다. 어두워야 할 방 안 한쪽 벽이 마석으로 인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방 안에는 앤시아 혼자뿐이었다.

앤시아가 열이 나거나 쓰러져 누워 있을라치면 아무리 바빠도 항상 찾아오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열이 오르면 악몽을 꾸는 앤시아를 위해 메리가 특별히 말려 둔 향 주머니의 은은한 향이 어디에서도 맡아지지 않았다.

뒤척일 때면 조심스럽게 머리를 쓰다듬고 다정하게 속삭여 주던 나단의 부드러운 음성도 들리지 않았다. 달콤한 꿈을 꾸라며 마시지도 않을 꽃 차를 연거푸 우려내 주고 열이 떨어질 때까지 찬 수건을 갈아 주던 백작 부인 이 없었다.

“어머니…”

마차에 시달리며 멀미와 사투를 벌일 때는 그래도 버틸 수 있었다.

공작가에 도착해 두 다리를 땅에 디디자 그 어느 때보다도 불안정한 바닥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괜찮았다. 반년 뒤면 돌아갈 테니까.

“흑……. 흐윽…….”

열이 오르고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자 묻어 두었던 그리움이 특튀어 올랐다. 저도 모르게 흐느끼는 소리를 내며 현실에서 나를 버린 부모인지 백작 부인인지 알수 없는 대상을 향한 그리움을 흘려 냈다.

“어……엄마…….나 아파”

울먹이던 앤시아는 다시 열이 올라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

개운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청명한 하늘만큼 몸도 마음도 개운했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제대로 휴식을 취한 듯 맑아진 머리로 몸을 일으키자 언제부터 곁에 있었는지 줄리가 부축해 왔다. 푹 자고 일어난 듯 개운한 앤시아와 달리 줄리는 밤새 곁을 지킨 듯 얼굴이 퍼석했다.

“나 때문에 밤샌 거야?”

“엘리랑 교대하면서 잠깐씩 쉬었습니다. 그보다 마님, 이제 좀 괜찮으신가요?”

“응. 괜찮아.”

“갑자기 열이 나셔서 다들 놀랐습니다. 주치의께서 긴장 많이 하셔서 그런 거라고 해열제만 주고 가셨을 땐 속상했지만…….

열이 내리셔서 다행입니다.”

줄리의 안도한 얼굴에 앤시아는 불길함을 느꼈다.

“앗, 마님! 깨어나셨군요. 역시 명의 셨네요.”

호의 그 자체인 순수한 기쁨이 막 문을 열고 들어오던 엘리의 얼굴에도 피어났다.

저건 연기가 아니었다. 대체 잠든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기라도 한 걸까.

앤시아의 자는 얼굴이 천사 같아서 악행조차 모조리 까먹은 건 아니겠지.

이러다 기껏 쌓아 둔 악녀 포인 트가 날아가게 생겼다.

“못된 짓 해서 벌 받은 거니 너무 걱정하지 마.”

“네? 못된 짓이라뇨?”

“응? 나 어제 못되지 않았어?”

뭔가 말이 통하질 않았다.

뭐지?

의아해하면서도 앤시아는 자신을 돌보느라 잠이 부족한 줄리에게 잘 떠올릴 수 있도록 차분히 설명했다.

“애들한테 흙 나르라고 시켰잖아. 마르고 더러워서 보기 싫다고 했고.”

“아, 그거요.”

뭐야, 실은 악녀 적성은 줄리였나?

너무도 태연한 반응에 오히려 앤시아가 당황했다.

“애들이 어찌나 야무진지 울퉁불퉁하던 길이 거의 다 메꿔졌습니다.”

“응, 그렇지? 아동 착취는 나쁜 일이야.”

“안 그래도 더럽던 애들이 더 더러워져서 근처 여관을 빌렸습니다.”

“응?”

“옷도 너무 낡았길래 전부 새옷을 사다 입혔고요.”

“새 옷을 사 입혀?”

“네. 마님께서 돈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셔서 알차게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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