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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이혼은 쉬울 줄 알았다-40화 (40/148)

악녀의 이혼은 쉬울 줄 알았다 40화.

“아니, 이게 무슨.”

“그럴 리가요. 차를 내오도록 하겠습니다.”

답을 하려던 로사를 집사장이 몸으로 가로막으며 슬쩍 밀어내기까지 했다. 집사는 로사와 앤시아의 사이가 좋지 않음을 알고 중재하려 노력하는 듯 보였다.

집사장은 앤시아의 편을 들면서도 로사의 눈치를 보느라 안절부 절못했다.

은퇴가 멀지 않아 보이는 나이는 집사장이 저리 쩔쩔매는 걸 보고 있자니 평소 로사가 얼마나 제멋대로 굴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애쓰는 집사장에게는 미안하지만, 앤시아는 로사와 잘 지낼 생각이 없었다.

“로사, 굳이 인사를 받아야 한다거나 불손한 눈을 했다고 해서 벌을 주고 싶지는 않아.”

“마, 마님.”

정작 로사는 신경도 안 쓰는 듯 꼿꼿하게 서 있는데 집사장이 당황한 듯 식은땀까지 흘렸다.

“난 아랫사람에게 관대한 공작부인이니까. 로사가 시녀장답게 군다면 로사의 권한을 건들 생각은 없어.”

아랫사람이라는 말에 로사는 눈썹까지 꿈틀거리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더 심한 표현도 있는데 집사장 앞이라 나름 자제한 거였다.

고작 이 정도로 저리 불편해하다니 은근 로사는 속이 빤히 들여다보였다.

“안주인 놀이라도 하고 싶으신가 본데 제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건 주인님뿐입니다. 그러니 어쭙잖은 협박을 하러 오신 거라면 제가 좀 바빠서 그러니 비켜주시지요.”

“로사! 그대는 어찌 마님께 그런 말을!”

어허. 집사장 저러다 뒷목 잡겠네.

태 볼까 싶어 곧장 말을 이었다.

“공작 부인을 보필하는 건 가장 능숙한 시녀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안 그래도 전담 시녀 후보를 몇 명 보내 드리려고 했습니다.

남작 가문의 영애도 있으니 친해 지기 쉬우시겠죠.”

일부러 앤시아의 원래 가문과 같은 급의 영애를 구해 둔 모양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앤시아를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만들고자 노력하는 로사를 보면 존경심마저 생기려 했다.

“다른 귀족은 싫어. 로사도 알다시피 날 우습게 볼 수 있잖아.”

“그런 작은 일부터 스스로 해결하실 수 있어야 정식 안주인이 되실 수 있겠지요.”

“싫다니까. 내가 로사 말고 누굴 믿겠어. 공작가는 로사가 다 알잖아, 응?”

능청스러운 앤시아의 거절과 부탁에 로사는 미간까지 찌푸리며 짜증스러워했다. 집사장조차 안절부절못하다 조심스럽게 앤시아를 설득하려 했다.

“마님, 아무래도 시녀장은 해야 할 일이 많다 보니 주인마님을 모시기에 부족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응? 부족하다니. 로사가 부족할 리가 없잖아. 오히려 내가 부족하겠지. 그렇지, 로사?”

집사장은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미로 한 말임을 알면서도 앤시아는 못 알아들은 척 로사를 바라봤다.

당장에라도 수긍하고 싶은 듯 입술을 씰룩이면서도 답을 하지 못하는 로사에게 앤시아는 화사한 웃음을 보였다.

“로사는 공작가를 위해서라면 뭐든 하잖아. 부족한 안주인을 곁에서 보살피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 아냐?”

“부족하다는 걸 알고 계신다면 최소한 기초적인 예법부터 배우시지요. 그에 맞는 영애를 시녀로 붙여 드리겠습니다.”

“싫어. 로사가 알려 줘.”

“전 바쁩니다. 지금도 저택의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확인할 시간이 빠듯하군요.”

“그럼 내가 로사를 따라다니면 되잖아. 어디로 갈 거야?”

황당해하는 로사의 곁으로 살랑거리며 다가서자 로사가 불쾌한 듯 굳은 얼굴로 돌아섰다. 그런 로사를 천천히 쫓으며 앤시아는 천연덕스럽게 입을 열었다.

“로사, 여기 액자에 먼지가 쌓인 것 같은데?”

“그건 다른 하녀에게 지시해 두겠습니다.”

“그렇구나. 로사, 좀 천천히 가.

너무 빨라서 못 쫓아가겠어.”

“쫓아오지 않으시면 될 일입니다.”

“로사가 내 전담 시녀인데 항상 함께 있어야지. 자꾸 먼저 가면 기사에게 안아 달라고 할 거야.

그럼 또 로사가 공작님께 이르겠지? 천박하고 엉덩이 가벼운 공작 부인이라고.”

금방이라도 소리를 지르지 않을까 싶을 만큼 찌푸려진 로사의 뺨이 파르르 떨렸다. 간신히 입술을 짓씹으며 참아 낸 로사는 조금 전보다 약간 느려진 걸음으로 앞서 나갔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뒤를 쫓는 앤시아의 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오늘 하루 사사건건 방해해 줄게.

귀찮게 하다 보면 로사가 폭발하겠지.

몇 년 동안 공작가를 위해 헌신해 온 시녀장과 이제 막 시집온 철없는 공작 부인의 다툼에 사용 인들은 자연스레 로사의 편을 들게 될 것이다. 그렇게 시작될 공작 부인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덩치를 부풀릴 테고 그것이야말로 앤시아가 원하는 일이었다.

단순하기에 쉬운 계획이었다.

앤시아는 마구잡이로 보이는 것 마다 트집 잡기 시작했다.

“홀은 행사 때만 쓰는 곳 아냐?

사용하지도 않는 날인데 청소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공작가는 항상 완벽해야 합니다.”

“복도는 바닥 왁스 칠을 하기보다 겨울도 오는데 카펫을 깔면 따뜻하고 좋은데.”

“이 넓은 저택 복도를 채울 만큼 재고가 있는 가게가 있을 것 같습니까?”

“주문 제작하면 되잖아. 공작가 예산으로 그 정도는 별거 아닐 텐데.”

“카펫을 매일 쓸고 털려면 얼마나 힘든지도 모르시니 가볍게 일을 벌이려 하시는군요.”

“배고파. 간식은 안 먹어? 걸어만 다녀도 이렇게 힘든데.”

핀잔도 귓등으로 흘리고 로사의 말을 중간에 툭툭 끊어 가며 뒤를 쫓았다. 로사의 걸음걸음마다 앤시아는 사사건건 참견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마다 로사는 공작가 전통이다, 사용인들 관리는 자신에게 맡겨라, 아무것도 모르면서 참견하는 건 곤란하다며 받아쳤으나 앤시아는 생글거리며 연신 말을 보탰다.

마침 빨래 바구니를 들고 가던 대여섯 명의 시녀에게 로사가 새로운 일을 시키려는 순간 앤시아가 먼저 말을 가로챘다.

“너희들, 주방에 가서 간식 받아 가렴.”

“이 애들은 할 일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한 말을 듣기는 하신 겁니까?”

“응. 쓸데없이 인력을 굴리고 있다는 걸 알겠어. 쉴 땐 쉬어줘야지.”

“저희 공작가의 체계는 완벽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주어진 일을 당연히 해내지요.”

“응. 그럼 오늘부터 이틀에 한번으로 바꿔. 구역은 돌아가면서 하면 되잖아. 대신 사용인들이 쉴 시간이 생기고 다들 좋겠다, 그렇지?”

사용인들이 쉴 틈이 있어야 윗사람 뒷말도 좀 하고 그러는 거지.

간식 정도야, 서비스.

간식 시간은 잠깐 달콤할 뿐 빈 틈없이 설계된 공작가의 업무가 뒤틀릴 테니 결과적으로 더 힘들어질 게 분명했다. 간식에 기뻐하는 건 잠시. 시녀장의 꼬투리를 잡는 철없는 공작 부인에 대한 평가는 팍팍 떨어질 것이다.

앤시아에게 악의를 가진 로사를 골탕 먹이는 건 부수적인 즐거움이었다.

했다.

“마님, 오늘은 이만 쉬시는 게 나을 듯합니다.”

“안색이 너무 안 좋으세요. 저한테 업히세요.”

종일 말없이 뒤를 쫓던 줄리와 엘리는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앤시아는 역시나 자신의 체력이 한참 부족함을 깨달았다.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업어 주겠다는 두 사람을 마다하고 다리가 아파 비틀거리며 방으로 돌아온 앤시아는 결국 열이 올랐다.

로사를 쫓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퉁퉁 부어 버린 탓에 줄리와 엘리가 번갈아 가며 쉼 없이 마사지를 하고 주치의가 살펴보고 갔다. 다행히 미열이라 그런지 열은 금세 떨어졌다.

푹신한 침대에서 축 늘어진 채 마사지를 받으며 앤시아는 한숨만 푹푹 쉬어 댔다.

‘그러면 그렇지. 이 비루한 몸뚱이가 북부에 왔다고 짠! 하고 좋아질 리가. 개똥 같은 약까지 먹었는데 너무한 거 아냐?’

이른 시간부터 누워 있느라 저녁도 걸렀더니 몇몇 사용인이 들러 얼음물이나 간식을 두고 갔다.

얼핏 문틈으로 보인 시선에 안타까움과 호의가 느껴져 앤시아는 당황했다.

자기들 일에 참견하고 방해한다고 싫어할 줄 알았더니 오히려 호의 가득한 눈빛이라니.

‘뭐야, 얘들? 설마 간식에 낚인 거야? 아, 간식 이야기는 하지 말걸. 아니, 그래도 뭘 먹어야 수다도 떨고 뒷말도 하고 그러지.

하아……. 진짜…… 난 뭐 하러 노력한 거니.’

노력이라고 해 봤자 로사를 졸졸 따라다니며 트집 잡은 게 전부긴 했다.

그래도 그 탓에 열이 오르고 방에 틀어박히게까지 됐는데,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어쩔 수 없지.’

빠르게 마음을 접은 앤시아는 침대와 전담 하녀들의 손에 몸을 맡긴 채 축 늘어져 버렸다.

***

다행히 그녀들의 노력으로 다음 날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한 앤시아는 곧장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드레스 맞추러 갈 거니까 외출준비 서둘러 줘.”

“앗, 드레스라면 영지에서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를 불러 맞추시면 어떨까요?”

“그건 나중에. 실물 드레스를 직접 보고 싶어.”

“마님, 어제도 한참 못 일어나셨는데……. 디자이너에게 드레스를 가지고 오라고 하겠습니다.”

“아니, 오늘은 충동구매를 할 거니까. 어서 준비해 줘.”

어설프게 못된 짓을 하느니 돈을 팍팍 쓰자 싶어 곧장 실행에 옮길 생각이었다.

이전에는 실패했지만, 오늘은 어떻게든 사인회를 열 기세로 돈을 쓸 테다.

줄리와 엘리는 그런 의욕 가득한 앤시아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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