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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이혼은 쉬울 줄 알았다-50화 (50/148)

악녀의 이혼은 쉬울 줄 알았다 50화.

“부정하지 않는군.”

이 웃음이 안 먹힐 줄은 몰랐다. 그래도 앤시아는 웃었다.

앤시아가 천사처럼 웃기만 하니 지켜보는 리샤르의 구겨진 미간이 조금씩 펴지는 듯했다.

앤시아 랜피스. 공작가에 시집와 이제는 앤시아 그윈티드가 된 여인.

북부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참으로 이곳저곳 열심히 돌아다녔다. 그러면서도 연약한 몸은 몇 번이고 쓰러지기까지 했다.

리샤르는 가녀린 앤시아를 손으로 쥐어 봤기에 얼마나 가냘프고 부드러운지 알게 되었다. 아니, 알게 되었다. 여겼으나 앤시아는 그 이상으로 연약했다.

그런 여인이 리샤르의 외도 상대로 오해한 비앙카를 대하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비앙카를 태연하게 집으로 들이라 권해 오기까지 했다.

처음 만난 사이일 뿐이라는 진실을 알렸음에도 앤시아는 여전히 오해하는 게 분명했다.

말을 태워 무리하는 바람에 기절한 앤시아가 한참이 지나도 깨어나지를 않아 방을 나섰던 그 때. 리샤르는 밖으로 나오기가 무섭게 앤시아의 작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비앙카에 관해 묻는 앤시아의 의심을 리샤르는 이해했다.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차분히 상황을 이해시키면 되리라 여기고 일단 자리를 피해 주었다. 그러나 앤시아는 리샤르가 권한 아침 식사를 거절했다. 이후 비앙카를 통해 간식을 들려 보냈을 때는 제대로 앤시아와 대화해야 함을 확신했다.

아내는 확신하고 있었다. 비앙카가 리샤르의 연인이라고.

곧바로 비앙카를 물리려 했으나 앤시아가 꼭 리샤르에게 간식을 맛보게 하라 했다며 접시를 코앞까지 가지고 왔다.

아내가 처음으로 보낸 간식을 거부할 수 없어 한 입씩 베어 먹자 그때마다 비앙카는 조잘조잘음식에 관해 설명해 왔다. 그러면서 리샤르가 한 입 먹고 내려놓은 간식을 아깝다며 집어 먹기까지 했다. 이런 격의 없는 행동은 아무리 평민이고 무지하다 한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무척 친밀한 연인 사이나 부모와 자식 간에서나 있을 법한 행동이었다.

이것도 공작 부인이 시켰느냐 물으니 간식을 우물거리며 눈을 깜박거릴 뿐이었다.

처음부터 거슬리던 여인이었다.

앤시아가 오해하는 걸 쉽게 풀수 있었음에도 묘하게 비껴 대꾸한 탓에 자꾸만 얽혀 들어갔다.

지금도 비앙카는 교묘하게 앤시아가 시킨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하기 힘들게 했다.

앤시아가 리샤르에게 원하는 것이 간식을 먹어 치우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앙카를 일부러 보낸 거라면 그 뜻을 명확히 해야 했다.

자꾸만 자신을 피하고 비앙카를 보내는 앤시아를 곧장 찾아가 오해를 확실히 풀고 싶었지만 참았다. 리샤르 그윈티드가 성인이 된 이후 자기 뜻에 반하는 자에게 인내심을 발휘하는 건 황가를 상대할 때를 제외하곤 낯선 일이었다. 무엇보다 누군가 자신을 오해하는 것으로 인해 이렇게까지 감정이 휘둘린 적은 드물었다.

눈을 감고 피하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연약한 아내를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해서, 자꾸 주변을 맴도는 비앙카가 거슬렸지만, 앤시아가 계속 챙기는 탓에 내버려 두었다.

이렇게나 감정이 널뛰고 자제심이 사라진 것이 놀라웠다. 다행히 공작으로 살아온 시간이 감정을 능숙하게 갈무리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리샤르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감추고 삼켰다.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 자연스럽게 자신이 존재해도 되는 상황을 기다렸고 그게 바로 지금이었다.

앤시아를 만나자마자 비앙카란 여인은 자신과 아무런 관련도 없으니 당장 내보내고 오해를 풀생각이었다. 그러나 앤시아는 상처투성이로 돌아온 예비 기사들을 보고 눈시울을 붉혔다.

다른 사내들을 위해 눈물짓는 앤시아가 못마땅하면서도 당장 끌어안아 품 안에 가두고 싶었다.

“레슬리 소백작도 없는데 나를 계속 보내려고 하는 이유가 뭘까.”

혼잣말처럼 퉁명스럽게 내뱉으면서도 시선은 앤시아에게 고정했다.

조금의 찔릴 일도 없다는 듯 앤시아가 천진한 웃음을 지었다.

“공작님께서 마수 토벌을 나가 시면 한 달 정도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들었거든요. 공작님이 이곳에 계시면 마수는 누가 잡나 해서요.”

다.

“당분간 저택에 머물 거요. 부인을 지킬 생각이니.”

“네? 절 왜 지켜요?”

“툭하면 쓰러지지 않나. 엉뚱한 오해를 하지를 않나. 그러고는 식사조차 함께하지 않고 표적 맞히기를 하질 않나.”

예상은 했지만 단 하나도 빠짐없이 리샤르의 귀에 들어간 것에 앤시아는 머쓱해졌다.

“운동해야 건강해지니까요.”

“하긴. 이 가는 팔로 나무 따위를 던지는 것만 해도 용하지.”

가볍게 팔을 잡아 오는 커다란 리샤르의 손아귀가 무슨 용암이라도 쥐었던 것처럼 뜨거웠다.

“……혹시 열나시는 거 아니에요?”

“부인 몸이 차다는 생각은 못하나 보군.”

리샤르는 자연스레 앤시아의 등뒤를 차지하며 양팔을 교차해 끌어안았다.

거대한 난로 인형을 뒤집어쓴 것처럼 한순간에 열기로 둘러싸이자 앤시아는 난감해졌다.

“저기, 공작님? 좀 답답한데요.”

“익숙해져야 할 거요.”

“네?”

“일단 저녁 식사는 함께하도록 하지. 부인이 원하던 화채라는 걸 올린다고 하더군.”

그놈의 화채.

모든 원흉이 된 화채를 거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앤시아는 리샤르의 뜨끈뜨끈한 품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화채는 맛있었다.

거품까지 퐁퐁 만들어 내는 특수마석 덕에 미미한 탄산까지 느낄 수 있어 백작가에서 만들었을 때보다 훨씬 더 본래의 화채와 비슷했다.

단지 화채 국물 한 입, 과일 한 입 먹을 때마다 요리장과 사용인들, 거기에 기사들의 시선까지 한 번에 받고 있자니 도저히 목으로 넘어가지를 않았다.

게다가 북부의 서늘한 공기와 함께 삼키는 화채는 앤시아의 몸을 떨게 했다.

본의 아니게 스푼을 내려놓자 요리장 하몬이 당장에라도 제 손을 제물로 바칠 기세로 무너져 내렸다.

“제 비루한 솜씨 때문에 마님의 입맛을 맞추지 못하고!”

“그런 거 아니에요. 야식으로 먹을 거야. 이따 밤에 방으로 가져다줘.”

“예, 마님. 더 완벽하게 레시피를 재현하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응. 기대할게, 하몬.”

“크흑……. 가, 감사합니다, 마님.”

다른 때라면 일부러 못된 짓을 하기 위해 내버려 뒀겠으나 이 화채에 담긴 온갖 정성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앤시아의 웃음에 절망으로 물들었던 하몬의 얼굴이 밝아졌다.

풀 죽은 불곰 같던 기사들도 그제야 기운을 차린 듯 조용히 기둥 뒤로 사라졌다.

당분간 주는 대로 먹어야지 결심하면서도, 차마 기름진 고기 요리에는 손이 가지 않아 수프와 빵만 뜯어 먹었다.

짧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앤시아는 벽난로 덕에 훈훈한 방 안 공기를 만끽했다.

따뜻한 방에서 먹는 화채를 기대하며 뒹굴뒹굴하던 앤시아는 사용인이 가지고 온 리샤르의 전 언에 한숨이 절로 나올 만큼 심란해졌다.

“화채가 부부 침실에 도착하였으니 드시러 오시라는 주인님의 전언이십니다.”

“공작님이? 부부 침실로?”

“예, 주인마님.”

반년을 기다려 준다던 리샤르는 어째서인지 자꾸 앤시아를 부부 침실로 끌어들였다. 저번에는 문이 부서져서 였다지만, 오늘은 고작 먹는 거로 꼬시려 들었다.

‘꼬신다라. 공작이 마음에도 없는 공작 부인을 꼬셔야 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비앙카를 가까이 두게 해 준 포용력 있는 공작 부인에게 감사의 인사라도 하려는 건 아닌지. 아니면 바람피운 후 괜히 아내에게 잘해 주는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앤시아가 부부 침실에 갈 이유는 되지 못했다.

“하암……. 오늘 운동을 과하게 해서 그런지 무척 피곤하구나.

야식을 먹기에 늦기도 했고, 화채는 공작님께서 맛있게 드시면 좋겠다고 전해 드리렴.”

하품까지 해 가며 살포시 웃는 앤시아에게 사용인은 머뭇거리면서도 조심스럽게 재차 권했다.

“주인마님, 피곤하시다면 호위는 건 무례한 일이었다.

“루크, 네가 아무리 공작님 전 언을 가져왔다고 해도 주인마님께 의견을 내는 건 주제넘은 짓이야.”

“주인마님께서 너그러우신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겁니다.”

곧장 반발하는 줄리와 엘리만 봐도 전언을 가져온 사용인이 선을 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루크라고 불린 사용인 역시 여전히 삐질삐질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사과의 말이나 물러서는 기색이 없었다.

‘그래. 이게 공작가에서 내 위치지.’

가까이 지내는 줄리와 엘리, 매일 보는 요리장 하몬, 대놓고 적대적인 로사 정도가 앤시아와 자주 부딪치다 보니 공작가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잠시 망각했다.

물론 앤시아가 짜증이라도 낸다면 당장 사용인은 머리가 바닥에 닿도록 사과할 테지만 자잘한 일에까지 계산하고 신경 쓰기 귀찮았다.

공작이 부른다니 가면 될 일이었다.

“피곤해. 한 걸음도 안 움직일 거야. 호위를 부르는 들것을 가져오는 알아서 옮겨 줘.”

“예, 예. 그럼 호위가 안아서 옮겨 드리는 거로…….”

“누가 누구를 안는다는 거지?”

부부 침실에 있어야 할 리샤르의 등장에 모두가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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