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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이혼은 쉬울 줄 알았다-55화 (55/148)

악녀의 이혼은 쉬울 줄 알았다 55화.

“세상에, 마님은 정말 천사세요!”

비명처럼 기쁨을 표출하는 비앙카에게 앤시아는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아직 공작가에 익숙하지 않을테니 줄리와 엘리에게 많이 배워야 해.”

“네, 마님. 감사해요. 지금부터라도 배울 수 있어요. 시켜만 주세요.”

“의욕적이라 기쁘구나. 그래도 남은 일은 잘 마무리해야지.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도 하고.”

“아……. 친구까지는 아니지만…… 네, 마님! 배려해 주셔서 감사해요.”

혼잣말처럼 작게 친구가 아니라고 중얼거리던 비앙카는 금세 환하게 웃으며 앤시아에게 꾸벅 인사해 왔다. 그러고는 곧장 뒤돌아 빨래터의 하녀들에게로 달려 갔다.

“비, 비앙카. 마님이 아직 계시는데 여길 오면 어떡해?”

당황한 하녀들이 앤시아 쪽을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앤시아는 어차피 전할 말은 다 전했으니 되었다 싶어 뒤돌아섰다.

앤시아가 하녀들과 멀어지자 눈치 보던 하녀들이 비앙카에게 달라붙었다.

“비앙카, 마님께서 여기까지 널 찾아오신 거 맞아?”

“맞아. 리라, 샤샤. 마님께서 내게 전담 하녀가 되라고 제안해 주셨어.”

신입 하녀들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 뭐? 전담 하녀? 엊그제 들어온 널?”

“응. 공작가에 들어오게 된 것도 마님 덕분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날 전담 하녀로 써 주신다니.

마님은 정말 신기한 분이야.”

앤시아를 향해서는 천사 같다고 말하던 비앙카가 하녀들에게는 신기하다며 의아해했다.

“그, 그렇구나. 정말 신기한 분이네…….”

“어……. 축하해, 비앙카.”

“고마워. 너희들도 기뻐해 주니까 정말 행복해.”

어딘지 모르게 한풀 꺾인 축하에도 비앙카는 꿈이라도 꾸는 듯한 기대에 찬 눈으로 고마워했다. 이에 퍼뜩 정신을 차린 두하녀는 얼른 비앙카에게 친근하게 굴었다.

“비앙카, 마님의 전담 하녀가 되더라도 우리 모른 척하기 없기야.”

“그래, 우리를 잊지 말아 줘. 우린 세탁 시스터즈잖아. 좋은 일있으면 우리도 불러 줘.”

이틀짜리 얄팍한 우정으로 은근슬쩍 매달리는 하녀들에게 비앙카는 환한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비앙카에겐 그 어떤 권한도 없기에 거리낌 없이 해맑게 긍정할 수 있었다.

“응. 마님께서 하녀가 더 필요하다고 하시면 말씀드려 볼게.”

“정말? 역시 비앙카는 예쁘기만한 게 아니라 착하기까지 해.”

“맞아. 참, 비앙카 빨래는 우리에게 줘. 넌 내일부터 새로운 일을 해야 하니까 쉬어.”

“에이, 아냐. 그래도 내가 하던 일인데 미안하잖아.”

“괜찮아. 주인마님께 가서 우릴 잊지만 말아 줘.”

두 사람이 빨랫감을 나눠 가져가자 비앙카는 제 품 안에 넣어둔 손수건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하녀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닿자 비앙카는 그저 뺨을 붉히며 손수건을 비눗물에 조심스럽게 담갔다.

결국, 참다못한 하녀가 질문하고 비앙카는 감추는 듯하면서도 리샤르와의 우연한 만남을 세세하게 풀어놓았다.

비앙카는 우연일 뿐이라며 리샤르에게 오르골을 선물 받은 이야기라든가, 앤시아가 자신을 정부로 오해한 부분을 털어놓았다.

두 하녀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차가워진 빨랫감에 손이 어는 줄도 모르고 비앙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비앙카는 몇 번이고 이 일은 우연이라는 말로 포장했으나, 하녀들이 듣기에는 마치 귀족과 평민의 운명적인 만남과 사랑의 시작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비앙카가 조심스럽게 손에 쥔 손수건이 공작의 물건이며 어떤 경로로 입수했는지 끝까지 말해 주지 않는 태도에 더욱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볼 수밖에 없었다.

실상은 방금 막 앤시아에게 건네받은 손수건이었으나 비앙카의 숨기는 듯한 태도는 의미심장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세탁 후 마무리는 자신들에게 맡기라는 하녀들의 이유 있는 배려에 비앙카는 마냥 기뻐하며 쉬기 위해 방으로 돌아갔다.

여럿이서 한 방을 쓰는 하녀들과 달리 비앙카는 작지만 개인 방을 쓰고 있었다. 그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비앙카는 다른 하녀들의 방을 보고서야 알았다.

비앙카가 사용하는 방과 비슷한 크기의 방에 꽉 들어찬 이 층 침대와 지저분하게 벽면을 가득 채운 옷가지들, 그 돼지우리 같은 공간이 하녀들의 방이었다.

비앙카는 항상 행운이 따라다니는 자신의 삶이 익숙했다.

“안 그래도 부르려고 했는데 일이 일찍 끝났나 보구나.”

“앗, 시녀장님.”

그렇기에 비앙카는 제 방에 찾아온 시녀장 로사를 보고도 놀라거나 두려워하기는커녕 반갑기만 했다.

로사는 비앙카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비앙카가 공작에 관한 이야기를 마음 편히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이기도 했다.

“시녀장님, 이것 좀 보세요. 공작님의 손수건이래요.”

냉큼 앤시아에게 받은 손수건을 꺼내 보이자 힐끗 눈으로 살핀로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주인님께 어지간히 잘 보였나 보군.”

“마님이 주신 거지만, 공작님께 돌려드리면서 만날 기회를 만들지 제가 가질지 고민돼요.”

“당연히 만날 기회로 삼아야지.

주인님의 연인이 된다면 손수건보다 더한 것도 가질 수 있는데 고작 천 쪼가리 하나에 고민할 필요가 있니?”

로사의 차분한 지적에 비앙카는 오히려 해맑게 웃으며 손수건을 고이 접었다.

“내일부터 마님의 전담 하녀가 되니까 공작님도 자주 뵐 수 있을 거예요.”

로사는 조만간 어떻게든 공작의 주변에 비앙카를 배치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로사가 노력할 것도 없이 앤시아가 연적이 될 비앙카를 전담 하녀로 삼았단다.

앤시아의 멍청함에 웃음이 나왔다.

로사의 웃음에 비앙카는 더욱 환한 웃음을 보였다.

“시녀장님 말씀대로 공작님이 이 외롭고 쓸쓸하신 분인데 마님이 그걸 몰라준다면, 제가 채워 드릴 수 있을 거예요.”

로사는 비앙카에게 공작에 대해 몇 가지 거짓 정보를 알려 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어린애같은 아내를 맞게 된 공작이 사내로서 얼마나 외롭고 힘들어하는지, 그 속내를 감추고 일에만 매달리는 공작님이 안타깝다며 그분을 위로할 여인이 필요하던 차에 비앙카를 만난 건 천운이라고,어찌 보면 터무니없는 말이었으나 비앙카는 시녀장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다. 비앙카가 공작부부를 위한 구원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비앙카는 항상 사랑받아 왔다.

어릴 적부터 무척 사랑스러운 외모와 밝은 성격으로, 마치 신의 축복이라도 내린 양 어려운일 없이 평탄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

조금의 실수 정도는 그녀의 사랑스러움으로 가벼이 넘어가고는 했다. 처음 만난 사람조차 비앙카를 보면 사랑스럽고 착하다며 칭찬했다.

사랑의 신이 빚어낸 아이. 너를 보면 누구든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단다.

그 말을 비앙카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당연하게 여기고 오히려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이는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내심 생각했다.

앤시아가 처음 만난 자신에게 하녀 제안을 하거나 로사가 다른 하녀들과 달리 비앙카를 편애하는 행동을 하는 것도 아무 의심없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왜냐? 자신은 사랑스러운 존재이니까.

로사에게 공작 부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비앙카 본인이 나선다면 공작님과 마님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외롭고 힘들어하는 공작님을 달래 주면서 나이 어린 마님이 짊어지기 힘든 일을 대신 해 주게 된다면 두 분 모두에게 예쁨을 받을 거라는 다소 황당한 생각까지 했다.

“공작님은 분명 절 사랑하게 되실 테니까요.”

로사는 자신의 거짓말에 홀랑 속아 넘어간 비앙카가 우스우면서도 편리한 도구로 적절하다 느꼈다.

“너의 그 긍정적 사고는 나쁘지 않다만 미적대지 말고 서두르는 게 좋을 거다. 주인님은 무척 바쁘신 분이라 저택에 머무는 시간이 길지 않으니. 네 모든 걸 이용하는 게 좋을 거야.”

“앗, 그렇군요. 알려 주셔서 감사해요. 역시 시녀장님은 제 편이세요.”

“…그래. 보고하는 거 잊지 말고. 내가 여기까지 와야겠니?”

내 머리를 흔들며 의심을 털어냈다.

감히 그분을 의심하다니. 주제넘은 생각이었다.

그분의 말을 따르면 여태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으니 이번에도 그냥 하는 수밖에.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패는 돌아갔으니 어떻게든 손에 쥔 거로 해결해야 했다.

어차피 천한 핏줄이 공작가에 들어올 거라면 순종적이기라도 해야지.

이 정도 미인이라면 이미 첫날밤을 치르며 여인을 한번 품어 본 공작으로선 쉽게 넘어올 것이다.

비앙카 역시 앤시아 못지않게 천하디 천한 핏줄인지라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그분의 명이니 따르는 게 옳았다.

그분의 말을 따를 때마다 로사의 지위는 견고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맹랑한 앤시아와 달리 천진한 비앙카는 로사의 손안에 쥐고 굴리기에 손쉬운 상대였다.

부디 자신의 예상이 맞기를 바라는 로사의 입술 끝이 말려 올라갔다. 꼴도 보기 싫은 앤시아가 우는 모습을 볼 날이 머지않았다.

***

앤시아의 전담 하녀가 된 비앙카는 착실하게 앤시아의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비앙카. 공작님께 언제쯤 오실 예정인지 물어봐 주겠니?”

“네, 마님.”

비앙카는 그 어떤 일을 시킬 때 보다도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대답과 동시에 문을 박차고 나가는 수준이었다.

예상보다 꽤 긴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앙카는 상기된 얼굴로 돌아왔다.

“마님, 공작님께서 4시쯤 오시겠다고 하셨어요.”

4시까지 30분도 채 남지 않았다.

비앙카의 답을 듣자마자 앤시아는 줄리와 엘리를 데리고 방을 나섰다. 따라 나오려는 비앙카에게 앤시아는 상냥한 미소로 임무를 주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비앙카. 방에 남아 있다가 공작님이 오시면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전해 주겠니? 차를 내어 드리면 좋겠지만 잘 모른다면 줄리를 두고 갈…….”

“할 수 있어요. 시녀장님께 배웠거든요.”

저택에 들어온 지 이틀밖에 안된 신입 하녀가 다른 이도 아닌 시녀장을 통해 차 내는 방법을 배웠다라.

이쯤 되면 비앙카와 시녀장 사이에 무언가가 있음을 확신해도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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