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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이혼은 쉬울 줄 알았다-72화 (72/148)

악녀의 이혼은 쉬울 줄 알았다 72화.

리샤르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의 행복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웃음에 앤시아 역시 환한 미소를 보였다. 뺨과 턱에 닿은 손이 자연스레 앤시아를 이끌었다.

리샤르는 다정하게 입을 맞췄고 앤시아는 거부하지 않았다.

몇 번이고 부드럽게 맞닿던 입술이 뺨과 콧등으로 이어지자 간지러워 살짝 웃음이 났다. 앤시아의 웃음에 리샤르는 조금 가라 앉은 목소리로 은근하게 속삭였다.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았으면 좋겠군.”

“욕심쟁이시네요.”

“부인을 보면 욕심이 나니 맞는 말이지.”

부드럽게 속삭이며 오가는 부부의 대화가 간질간질했다.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앤시아는 리샤르가 상처에 마석을 잘 대고 있는지 확인했다. 새치유 마석을 꺼낸 덕분에 상처회복이 순조로워 다행이었다.

리샤르의 존재가 제 안에서 얼마나 커져 있는지 인정하니 그간 문제 되지 않았던 일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악녀로 지낼 생각이었기에 내버려 둔 시녀장의 일이라든가 아이를 갖기 힘든 몸이라든가.

공작 부인으로 살게 된다면 후계 문제를 생각해야 했다. 애초에 백작가에서 내민 손을 거절한 이유도 아이 때문이었다.

‘공작을 좋아한다는 걸 자각한건 좋지만, 오히려 백작가에 있을 때보다 상황은 더 안 좋은 걸지도.’

마음을 인정하니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근심이 깃든 앤시아의 얼굴을 본 리샤르는 그녀를 위로하듯 얼굴선을 따라 섬세하게 매만졌다.

리샤르의 다정한 접촉에 앤시아의 고민이 흐려졌다.

온화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치유 마석 효과로 리샤르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었다. 이를 확인한 앤시아는 기다렸다는 듯 본론을 꺼냈다.

“공작님께 드릴 말이 있어요.”

앤시아는 이대로 리샤르와 붙어 있고 싶었지만, 그와 해야 할 이야기를 더 미룰 수 없었다.

“이미 아시겠지만, 비앙카는 계속 하녀로 데리고 있을 거예요.”

“그렇군.”

어딘지 모르게 체념한 듯한 리샤르의 대답에 앤시아는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 전과 같은 일은 없을 거예요. 비앙카가 공작님을 따로 찾아간다거나, 두 사람이 어울린다고 일부러 만나게 하는 일 같은 건 이제 안 해요. 못 하게 할 거고요. 그러니 공작님께서도 비앙카를 제 곁에 두는 걸 허락해 주셨으면 해요.”

통보가 아닌 허락을 구하는 앤시아에게 리샤르는 기꺼이 답을 내주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허락하지.”

“감사해요.”

“단, 이것만은 꼭 기억해 줬으면 해. 난 절대 비앙카와 어떠한 사이도 아니라는 걸.”

“네. 알아요. 착각해서 미안해요.”

앤시아의 순순한 사과에 리샤르는 그녀 앞에서만 자주 보이는 웃음을 지었다.

비앙카의 이야기가 마무리되자리샤르는 이 기회에 그간 마음에 걸렸던 로사에 대해 언급했다.

“시녀장에 대한 처분은 따로 하지 않는 건가?”

“네?”

갑자기요?‘라고 묻는 앤시아의 눈을 바라보며 리샤르는 태연히 답했다.

“시녀장이 편지를 통해 부인을 모함하려 했던 것뿐 아니라 다른 때도 불편하게 하지는 않나?”

리샤르의 질문에 앤시아는 잠시 망설였다. 마음에 걸리는 것 투성이였으나 따로 뒷조사하지는 않은 듯 보였다.

“혹시 공작가를 위해 참는 거라면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군.”

공작가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악녀라고 소문나기를 바란 것뿐이었기에 앤시아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부인을 음해한 시녀장을 지금까지 내버려 둔 건 부인의 배려 심이겠지. 그러지 않아도 돼. 부인을 불편하게 하는 모든 건 부인의 뜻대로 치워 버려도 되니까.”

친밀한 이를 대하듯 말투가 편해진 리샤르의 속삭임이 다정했다.

그 은근한 속삭임에 귓가가 간지러워져 괜스레 얼굴까지 붉어졌다.

“걱정 마세요. 앞으로 제대로 할 생각이라 로사도 신경 쓰려고요.”

지금까지는 활개 치게 내버려 두었으나 비앙카까지 이용해 부부 사이를 제멋대로 휘두르려 한 것은 넘어갈 수 없었다.

“다만, 좀 더 알아볼 게 있어서 당분간은 지켜보려고 해요.”

“그렇군. 부인의 뜻대로.”

눈웃음까지 치는 리샤르를 보고 있자니 이 모습 어디가 북부의 냉혈 공작이냐 싶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제 권한을 생각해 주셔서 감사해요.”

앤시아 역시 지지 않고 사르르웃었다. 앤시아의 웃음이 옮겨 간 듯 리샤르 역시 조금 더 자연스러운 웃음을 보였다.

‘아, 진짜 잘생겼다 이 남자.’

웃고 있는 리샤르는 그림처럼 잘생겨서 저도 모르게 손이 움직였다.

리샤르의 웃는 입술 끝을 앤시아가 톡톡 건드리자 자연스레 키스해 오는 바람에 잠시 대화가 끊겼다.

입맞춤이 짙어지기 전, 앤시아는 손끝으로 리샤르의 입술을 살며시 눌렀다.

“공작님. 정말 중요한,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이런. 우리 부인은 남편을 애타게 하는 재주가 있군.”

리샤르는 입술에 닿은 앤시아의 손끝에 가벼운 소리가 날 만큼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부드럽게 손끝을 물었다.

앤시아는 부끄럽기도 하고 간지럽기도 해서 손끝을 꼼지락거리다 결국 살짝 떨어져 섰다.

앤시아의 태도가 신중해지자 리샤르 역시 경청하겠다는 듯 자세를 바로 했다.

“제가 하는 말이 공작님이 듣기에 영지 정책과 맞지 않을 수도 있어요.”

“괜찮으니 편히 말해 주시오.”

“마수 이상 증식의 가장 큰 문제는 인력 부족이잖아요.”

작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내에게서 나온 갑작스러운 주제였으나 리샤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그래도 1, 2주 정도는 공작가의 기사들로 막아 낼 수 있죠?”

“토벌이 아닌 경계라면 충분하지.”

“그럼 2주간은 경계만 하시고 그동안 용병을 불러들이세요.”

“용병의 비용을 충당 못 할 건 아니지만, 그들을 무척 거친 자들이오. 영지민들이 불편해하고 자칫 사고가 일어날 수 있지.”

“그걸 축제와 규칙으로 어느 정도 강제할 수 있을 거예요.”

축제와 규칙이라니.

뜬금없는 앤시아의 말에 리샤르의 고개가 살짝 기울었다.

이후 앤시아는 원작에서 해결책으로 등장한 ‘마수 사냥 축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 영지민과의 갈등, 용병 간의상해 사건 발생 시 즉각 모든 수익과 마석을 압수하고 축제 종료일까지 투옥. 이후 길드를 통해 경고.

-무사고, 높은 토벌 점수를 가진 용병에 한해 영지 내 집터 제공 가능. 영지에 기사 외의 전력이 될 수 있고 가족과 함께하는 경우 소속감을 높일 수 있음.

- 영지민들의 신청을 받아 노상음식점, 숙소 영업 허가.

는 흔한 내용이었다.

많이 잡으면 그만큼 포상금을 준다거나, 잘못을 하면 벌을 받는다거나.

그러나 마수 토벌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감히 축제와 연결하지 못했다.

마수 토벌은 북부의 평생 숙제이자 숙명이었다. 그윈티드 공작가가 무엇보다도 우선시하는 일이기에 황제가 거슬려 하지 않는 선에서 기사단의 숫자를 아슬아슬하게 늘리며 버텨 왔다.

지금의 숫자로는 감당하기 버거운 마수 이상 증식에 무작정 몸으로 덤비려 했던 리샤르는 앤시아의 발상이 무척이나 특별하고 고마웠다.

앤시아가 제안한 내용은 마수토벌뿐만 아니라 영지민의 안위와 수익까지 두루 염려한 흔적이 보였다.

게다가 용병은 거칠기는 해도 전부 미친놈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들이 마수 토벌로 벌어들이는 이득을 이해하고 정착하게 된다면 황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유용한 전력이 늘어나는 셈이었다.

“역시 우리 마님은 정말…… 천사 같은 분이 오셨습니다.”

안 그래도 마음 약한 집사장은 앤시아의 생각이 무척 마음에 드는 듯 종이에 써진 글씨를 감동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녀 한 명조차 귀히 여기는 공작 부인이기에 떠올릴 수 있는 방식으로 보였다.

데, 되게 해야죠.”

“아무리 봐도 망할 것 같아. 마수가 득실득실한 영지에서 벌이는 축제를 누가 보러 와.”

보좌관은 걱정스러운 심경을 토로했다. 아서는 종이에 잔뜩 적힌 계획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주어진 기간은 고작 이 주. 축제를 홍보하고 치르기에 무척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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