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정도 심술은 이해해 줘야지.
솔직하기까지 한 모습에 앤시아는 웃음이 나왔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앤시아가 웃고 있음을 알아챈 리샤르 역시 고개를 들어 마주 웃었다.
무뚝뚝해 보이던 얼굴에 미소가 깃드니 눈을 떼기 어려울 만큼 미모가 살아났다.
빨리 단둘이 되고 싶은 마음이 불쑥 튀어나왔다.
‘지금은 안 돼. 할 일이 태산이야.’
돌아가기 전에 축제 노점 동선도 알아보고 가야 할 텐데.
귀가가 늦어지는 것에 리샤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약간 걱정이 되면서도 기대가 됐다. 이 모순적인 감정은 대체 뭘까.
앤시아는 이런 감정들이 무척 즐겁게 느껴졌다.
마냥 웃고 있던 앤시아는 리샤르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는 걸 보고 당황했다. 리샤르가 이쪽으로 달려오려는 것과 동시에 호위가 앤시아의 앞을 가로막았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할 틈도 없이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가까운 방에서 들려왔다.
펑!
“마님, 뒤로 물러서 십시오!”
“이게 무슨 소리…….”
앤시아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호위가 다급히 온몸으로 그녀를 감싸 안았다.
쾅!
“부인!”
“꺄악!”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건물이 흔들렸다.
갑작스러운 폭발음에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호위가 망토와 팔로 앤시아를 감싼 채 쏟아지는 벽을 막아 냈으나 역부족이었다. 떠밀리 다시피 해 간신히 멀쩡한 벽 쪽에 기대선 앤시아는 먼지투성이의 호위 기사와 눈이 마주치자 놀란 와중에도 안심할 수 있었다.
콰광!
“꺅!”
또다시 이어진 폭발음에 앤시아는 복도 반대편의 리샤르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벽이 부서져 내리는 소리와 진동에 앤시아가 주저앉자 호위 기사가 그 위를 철저히 막았다.
이러다 발 밑까지 무너지는 건 아닌지 공포가 몰려왔다. 그러면서도 리샤르의 안위를 확인할 수 없어 더욱 두려웠다. 온몸이 덜 덜 떨릴 만큼 긴장한 채 몸을 웅크렸다.
“괜찮으십니까?”
“네, 네.”
더는 굉음이 이어지지 않자 호위 기사가 앤시아를 조심스럽게 일으켰다. 그 덕에 간신히 몸을 일으킨 앤시아는 그제야 주변을 볼 수 있었다. 일부 벽이 파손되고 먼지에 휩싸인 복도는 거의 반파되어 있었다.
“가일! 아내는 괜찮은가?”
“주인마님은 무사하십니다!”
리샤르의 부름에 호위가 대답했다. 앤시아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리샤르를 찾았다.
반파된 복도 반대편에 리샤르가 비앙카를 보호하듯 끌어안은 채 앤시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리샤르가 다치지 않고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러면서도 그가 비앙카를 보호하는 모습에 심장이 지끈거렸다.
벽이 부서지며 흩날리는 먼지조차 그들의 서사를 빛내 주는 빛 무리로 느껴질 만큼 두 사람이 함께한 모습은 잘 어울렸다.
이전이었다면 감격했을 장면이었으나 이제는 달라졌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팠다.
영문 모를 폭발에 휩쓸릴 뻔한 위기 속에서도 질투가 날 정도로.
앤시아는 자신이 이렇게나 속좁은 인간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리샤르가 무시해 오던 비앙카를 구해 준 것에 기뻐해야지 질투를 하다니 자신의 속 좁음에 위가다 아려 왔다.
“부인은 그대로 있어. 내가 그쪽으로 갈 테니까.”
리샤르가 이곳으로 온다는 말에 앤시아는 복잡한 감정을 갈무리하고 고개를 들었다.
“아뇨. 기사님이랑 창문 쪽으로 나갈게요. 공작님은 제 하녀들을 챙겨서 안전한 곳으로 가 주세요.”
반쯤 부서진 바닥을 걷는 것보다 멀쩡한 창문을 통해 나가는 게 나았다. 건물 주인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공작님은 제 하녀들을 꼭 밖으로 데려가 주세요.”
리샤르가 부서진 복도를 단숨에 넘어올 것 같아 앤시아는 망설임없이 호위에게 팔을 뻗었다.
“절 안고 내려가 주실 수 있죠?”
“예. 무서우실 테니 잠시 눈을 감아 주시면 금방입니다.”
“괜찮아요. 고작 이 층인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