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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이혼은 쉬울 줄 알았다-79화 (79/148)

악녀의 이혼은 쉬울 줄 알았다 80화.

“하지만 저번에도 마수 토벌을 나간 공작님께 내 부정을 알리는 편지를 보냈잖아. 공작님을 흔들어 놓을 생각이었던 거 아냐? 공작님의 마음을 흔들리게 해서 다치게 하려고.”

“멍청한 소리 좀 작작하세요.

편지를 보낸 건 당신의 추잡한 행동을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감출 필요도 없는 쉬운 질문들만 이어지자 로사의 입이 점점 더 가볍게 열렸다.

“이미 답이 나와 있는 질문에 의미가 있나요? 당신은 저랑 수다나 떨려고 오신 겁니까?”

“로사. 당신이라는 호칭은 좀 그런데.”

일부러 로사를 긁기 위해 지적 했으나 신경도 쓰지 않고 제 할말에 열중했다.

“주인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질문조차 제대로 못 하다니. 하등 쓸모가 없군요. 핏줄이 천하다 해도 이렇게까지 무식한건 백작가에서 교육조차 하지 않은 겁니까?”

“로사 님!”

아서는 아무리 앤시아가 말린다 해도 이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아서가 앞으로 나서려는데 그보다 한발 빨리 앤시아가 손에 들고 있던 물병의 물을 로사에게 끼얹었다.

“무, 무슨 짓이에요!”

“불필요한 말을 계속 하면 다른 물병도 가져오게 할 거야.”

감옥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앤시아는 어깨에 두른 숄을 여밀 만큼 서늘함을 느꼈다.

평상복이 찬물로 흠뻑 젖었으니 로사의 몸이 식는 건 순식간일 것이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지. 나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나는 로사의 의중을 물은 건데.”

“콜록……. 고작 이깟 걸로 제가 입을 열 거라고 생각하나요?

정말이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보다 못하군요.”

입을 다물고 있어도 될 텐데, 앤시아가 질문을 던질 때마다 로사는 말로라도 할퀴겠다는 듯 꼬박꼬박 대답을 해 왔다.

앤시아가 로사의 신경을 긁는 질문만 하기도 했지만, 리샤르의 말대로 밤새 이곳에 갇혀 있으면서 꽤나 초조함을 느낀 듯했다.

“좋아. 로사는 공작님을 해칠 생각은 없었고 나만 공격하려고 했다는 거지?”

이번엔 대답 대신 노려보기만 하는 로사를 향해 가벼운 어투로 말을 건넸다.

“하긴, 날 죽이려던 거라면 다른 방법도 많았을 텐데.”

로사가 화해를 청하며 독이 든 찻잔을 내밀었다면 무슨 꿍꿍이 일까 고민하면서도 잔을 받았을 것이다.

왜 하필 건물에 폭탄을 터트리는 불확실한 방법을 택한 걸까.

“전 누구도 해칠 생각은 없었습니다. 설령 안주인으로 도저히 모시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말이죠.”

지하 감옥에 갇힌 로사는 이미 드러난 사실에 대해선 변명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마음껏 앤시아를 비웃고 헐뜯으며 제 속내를 쏟아 냈다.

어제 아침. 로사는 폭탄을 설치한 건물로 앤시아를 유인하려 했다.

로사의 의도대로 였다면, 앤시아는 오전 일찍 건물을 찾았을 것이다. 리샤르 없이, 하녀와 호위만 대동한 채로 말이다.

만약 그때 폭탄이 터졌다고 해도 지금처럼 아무도 다치지 않는 경우도 충분히 가능했다.

‘나를 노린 게 아니라, 건물만 상하게 하고 싶어서라면?’

그런 이유라면 굳이 건물에 사람이 있을 때 할 필요가 없었다.

폭탄이 터진 순간은 사람이 많을 때였지만, 로사는 사상자가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정말로 제가 당신을 해치려던 거라면 더 큰 폭탄을 가져다 두었겠죠.”

그녀의 악의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순간 그때의 폭발과 굉음이 떠올라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앤시아가 몸을 떨자 로사는 기세등등해졌다.

“이 두꺼운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도 겁을 먹는군요. 공작가의 앞날이 진심으로 걱정됩니다.”

“로사. 내가 죽을 수도 있었어.”

“공작가의 기사단을 우습게 보는군요. 건물이 무너졌다 해도 호위가 있는 한 무사히 빠져나왔을 겁니다.”

“그럼 로사는 내가 다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어?”

“안타깝게도 그렇네요.”

이미 들통 난 부분을 반복해서 묻자 로사는 거침없이 답을 내주었다. 그런 로사에게 앤시아는 아무렇지 않게 가장 궁금한 걸 물었다.

“그럼 왜 내가 있을 때 폭탄을 터트린 거야?”

로사가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앤시아는 한 가지 가정을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아마도 폭탄은 리샤르 없이 앤시아 혼자 방문했어도 터졌을 것이다. 누구와 함께 있든지 앤시아가 건물에 있는 순간을 노린 것이다.

사건을 벌인 이유는 앤시아가가 공작가를 위해 움직이고 실패하는 것.

‘고작 그걸 위해 죄 없는 영지 민의 건물을 망가트린다고?’

“내가 제안한 축제 준비가 실패하기를 바란 거야?”

혹시나 해서 묻자 로사는 노려볼 뿐 답을 주지 않았다. 그걸로 충분한 답이 됐다.

앤시아는 진심으로 몸이 떨려 왔다.

대체 무슨 정신으로 이런 일을 벌였단 말인가. 앤시아는 사고에 휘말린 것일 뿐, 무슨 큰 흠이 되지도 않는다.

건물의 벽과 바닥이 무너져 내릴 만큼 위력 있는 폭발에도 기적적으로 다친 이가 없는 건 천운이었다.

아무리 공작가의 기사가 대단하다 해도 하녀들과 영지민을 한꺼번에 돕기는 힘들었다.

“마님, 죄인에게 다가가지 마십시오.”

아서가 막아섰으나 앤시아는 거침없이 로사에게로 다가갔다. 아서는 앤시아의 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에 로사의 돌발행동을 주시하며 물러섰다.

로사가 도발하듯 창살에 가까이 다가서기에 앤시아는 주저 없이 손을 내밀었다.

“스푼보다 무거운 건 들어 본적도 없는 연약한 손으로 뭘 어찌하려고요?”

뭘 어쩌긴.

로사의 멱살을 잡아 손목을 비틀자 연약한 앤시아의 힘으로도 불편할 만큼 목이 조였다.

“큭, 무슨!”

갑작스럽게 멱살을 잡힌 탓에 휘청이는 로사의 얼굴을 향해 그대로 다른 손바닥을 높이 들어 내리쳤다.

철썩!

창살 탓에 시원하게 후려치지는 못했지만, 위에서 아래로 휘두르듯 내리친 덕에 큰 소리가 났다.

손바닥이 후끈거릴 정도의 타격감이었으나 앤시아는 한 번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이게 뭐 하는!”

철썩철썩!

연달아 얻어맞은 후에야 로사가 잡힌 멱살을 풀려고 앤시아의 손등을 긁으려 했다.

그러나 로사의 손톱이 세워지기도 전에 아서의 손에 가려져 가죽 장갑만 긁어 댔다.

“마님. 저희에게 맡겨 주십시오.

손이 상하십니다.”

“콜록, 기품 따위 대체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악!”

마지막으로 한 대 더 때린 이후 다시 한 걸음 물러섰다.

뒤에 있던 호위가 앤시아의 손이 괜찮은지 확인 후 다시 제자리로 갔다.

로사는 얼굴이 새빨개졌으나 아픔을 느끼기보다는 치욕스러운 듯 분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 말로 안 되니 폭력인가요?

당신과의 대화는 하찮군요. 주인님께 전해야 할 중요한 말이 있으니 불러 주시죠.”

“그래? 그럼 가기 전에 한 가지 로사에게 알려 줄 소식이 있어.”

벌건 얼굴로 입을 다문 채 노려보기만 하는 로사의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예상대로 찬물을 뒤집어쓴 몸이 식어 추위를 타는 듯했다.

“축하해. 로사가 원하는 대로 비앙카는 임신에 성공했어.”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로사가 이성적이었다면 임신 여부를 알 수 있는 시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겠지만, 지금의 로사는 앤시아가 실컷 흔들어 놓은 탓에 감정이 우선이었다. 그 덕에 즉각적인 반응이 먼저 튀어 나왔다.

“역시……. 그분은 틀리지 않았어.”

작게 읊조리는 말은 희미했지만다가 퍼뜩 깨달은 듯 고개를 들었다.

“뭐, 좋아. 이제 못 보겠네. 잘지내라고는 못 하겠어.”

앤시아는 마치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뒤돌아섰다.

그제야 로사가 다급하게 철창을 붙들며 앤시아를 향해 소리쳤다.

“뭐든 말하겠습니다. 벌을 내린다면 겸허히 받을 테니, 잠깐만이라도 주변을 정리할 시간을 주세요.”

“지레짐작하지 마세요.”

곧바로 되돌아온 앤시아를 보며 로사가 경계심을 드러냈다.

“비앙카의 임신 소식을 알리는 일이 네 악행을 숨기는 것보다 중요한가 봐? 누구에게 전해야 하는데?”

“아니라고 했습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제가 그걸 말할 리 있겠습니까?”

“응. 말할 것 같아. 말하지 않고 어떻게 전하려고?”

이미 로사는 앤시아의 앞에서 중요 단서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그분이라니. 누굴 말하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지만, 비앙카의 임신 소식을 꼭 전해야 하는 상대라는 건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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