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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이혼은 쉬울 줄 알았다-107화 (107/148)

악녀의 이혼은 쉬울 줄 알았다 108화.

그녀를 믿었다.

그간 앤시아가 자신에게 보인 애정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익히 알고 있던 앤시아의 다정함이 리샤르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앤시아는 리샤르를 만나기 전부터 나단과 감정을 나누었고, 비앙카에게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큰 애정을 보였다. 하필 그 두 사람과 동시에 사라졌다는 게 몹시 마음에 걸렸다.

“당장 실행하도록.”

“예, 각하.”

리샤르의 지시에 아서는 수긍하면서도 조심스럽게 확인했다.

“그런데 정예를 보내시는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어떤 흔적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지금은 앤시아의 행방을 찾는 게 먼저였다. 보다 전문적인 추적이 필요할 때다.

아서는 가판대에 수북이 쌓여 있는 신문을 힐끗 확인한 후 고개를 숙였다.

“최선을 다해 마님의 안전을 확보하겠습니다.”

“그 외엔 인근을 샅샅이 뒤지게 해. 최소한의 병력만 남기고 모두 이 일에 투입하겠다.”

“예, 각하.”

“전 하겠습니다, 주인님.”

아서와 전령 소년이 바삐 움직이는 걸 바라보는 리샤르의 시선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저 이 일이 단순한 사고이기를 바라며 앤시아에게 아무 일이 없기를. 제 손으로 그녀가 아끼는 이를 해치지 않기를 바라며 깊은 한숨을 흘렸다.

***

“말도 안 돼, 진짜…….”

비앙카는 지난 일주일간 일어난 일을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일주일 전.

야경을 보러 가기 위해 올라탄 마차에서 수면초 향이 나는 차를 받았다. 약초에 익숙한 비앙카가 이를 알아챘을 때는 다들 마셔버린 후라 말릴 새도 없었다. 차를 마시는 척만 하고 버린 후 어떻게 해야 할까 긴장하고 있던 상황을 지켜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쪽 마차는 버려지고 앤시아가 탄 마차만 숲속으로 사라졌다.

‘마님과 미남이 도망쳤어? 아니면 납치?’

나단을 향한 앤시아의 반가움, 앤시아를 바라보던 나단의 따뜻하면서도 애정 어린 시선은 최근엘리와 함께 즐겨 읽는 연애 소설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었으나, 비앙카는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잠든 호위와 엘리는 아무리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았다. 이쪽 마차를 몰던 마부가 말을 타고 도망가 버렸기에 비앙카는 남은 한 마리의 말에 올라탔다.

앤시아가 탄 마차는 검은 숲 안쪽으로 들어가자마자 방향을 틀었다. 수풀에 가려 설마 길이 으리라 생각지 못한 곳이었다.

거리를 두고 뒤를 쫓던 중 수풀에 버려진 호위의 시체를 목격했다. 얼굴만 아는 정도였지만, 아는 이의 죽음은 충격적이었다.

사람이 죽었다.

이 상황에 대해 비앙카는 어떤 판단도 내릴 수 없어 최대한 모습을 감추며 미행했다.

한참을 달리다 멈춘 마차에서 내린 마부는 도끼로 나무를 베어 길을 막았고, 어디선가 나타난 다른 마부의 말을 타고 사라졌다. 비앙카는 마차를 쫓는 내내 다른 마부의 인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기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계획된 도망이라고 보기에는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의구심이 들자 두 사람 앞에 함부로 나설 수가 없었다.

이후 마부는 검은 숲 깊숙한 곳에 마차를 버리고 유유히 도망쳤다.

비앙카는 오늘 처음 본 나단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나단이 사주한 일이라면?

앤시아가 원하지 않는 일이라면 비앙카는 어떻게든 그녀만 데리고 도망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앤시아가 계획한 일이라면?

호위의 죽음은 충격이었지만, 비앙카는 지금 벌어진 일을 모른 척할 마음도 있었다. 두 사람이 사랑의 도피 중이라면 비앙카는 앤시아의 행복만을 빌며 응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쪽도 확신할 수 없어 당분간 지켜보는 쪽을 택했다. 어차피 검은 숲은 앙카에게 익숙했기에 두렵지 않았다.

그렇게 지켜보게 된 두 사람의 행보는 어이없는 불행의 연속이었다.

기껏 찾아간 곳은 도적들의 쉼터였고, 조금만 올라가면 멀쩡한 다리가 있는 걸 몰라 부서진 다리 아래로 향해 길을 잃었다.

산짐승을 피하다 방향을 잃고는 기어코 그윈티드와 정반대로 가기까지 했다. 비앙카는 어쩔 수 없이 나단 앞에 나타나 숲을져나가는 길과 잠시 쉬어 갈 만한 나무꾼 쉼터를 알려 주었다.

간신히 쉼터 도착했나 싶었더니 몇 달에 한 번씩 오는 산지기가 불쾌해하며 쫓아내는 불운까지 겹쳤다.

시간이 지날수록 앤시아의 상태는 상당히 안 좋아졌다. 멀리서도 그게 보여 비앙카는 초조함에 안절부절못했다.

그나마 가까운 마을로 안내하기 위해 중간중간 앞질러 가 일부러 말발굽 자국을 남겼다.

이 모든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비앙카는 앤시아가 자신을 구했듯 그녀를 돕고 싶었다.

그렇게 꼬박 일주일가량 고생한 끝에 산속 깊은 곳 자리 잡은 마을에 도착했다. 비앙카의 마을과도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공작가와는 상당히 먼 위치였다.

줄곧 반대로만 달려온 두 사람이 기가 막히면서도, 비앙카는 이제 앤시아가 쉴 수 있겠구나 싶어 안도했다.

중간에 잠깐 개입하기는 했지만, 모든 걸 숨어서 지켜본 비앙카는 여전히 망설였다.

이 일은 누가 벌인 일일까.

나단이 꾸민 일이라면 앤시아의 몸이 낫는 대로 어떻게든 데리고 도망칠 것이고, 앤시아가 원한 일이라면 무사히 도망칠 수 있게 돕고 싶었다.

비앙카는 앤시아에게 확실한 답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앤시아는 거의 의식이 없는 데다 나단이 한시도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는 탓에 접근할 수 없었다.

‘그래도 마을에 있다 보면 기회가 생기겠지.’

비앙카는 로브를 꽉 붙잡으며 멀찌감치 떨어져 뒤를 쫓았다.

그런 비앙카의 생각은 안일했음이 마을에 들어선 지 한 시간도안 돼 드러났다.

마을의 여관 겸 주점에 이방인 둘이 들어섰다.

“드문 손님이 오셨군.”

‘톰 하우스’의 주인장 톰은 누가 봐도 외지에서 흘러들어 온 잔뜩 지친 귀족 커플을 보고 삐딱한 웃음을 보였다.

귀족을 보면 허리부터 굽히기 바쁜 평민들이 대다수이지만, 숲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에선 이런 귀족들에게 잘 보일이유가 없었다.

특히 현물로 값을 지불하려는 허여멀건 귀족의 주머니를 터는 건 가벼운 즐거움이기도 했다.

“부족할 텐데요?”

굳이 하대하거나 무시할 필요도 없었다.

잘생긴 청년이 꺼내 놓는 보온 마석에 냉큼 손을 뻗고 싶은 걸 꾹 참으며 고개만 저으면 될 일이었다.

“하루 묵는 거야 가능하지만, 거 아가씨 몸이 안 좋아 보이는데 약초꾼이라도 찾아가 보려면 돈이 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두세 개 정도 더 있으면 금화로 바꿔 줄 수도 있습니다만.”

“그렇군.”

나단은 처음부터 보온 마석을 꺼내 든 것을 후회했다. 빨리 앤시아를 가장 좋은 방에 눕히고 싶다는 생각에 서두른 것이 화근이었다.

덩치 큰 여관 주인의 얼굴에 비친 선명한 욕심에 나단은 어쩔 수 없이 마석을 더 꺼내려고 했다.

“묵을 곳이 필요하면 제가 안내할게요.”

청량하고 맑은 목소리에 모두가 뒤돌아보았다.

여관 입구를 활짝 열고 들어선 아름다운 여인이 풍성한 갈색 머리카락을 넘기며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익숙한 얼굴에 나단의 미간이 찌푸려졌다가 뒤늦게 알아챈 듯 활짝 펴졌다.

“아, 그대는 앤시아의 …….”

“네, 비앙카예요. 일단 밖으로 나가요.”

비앙카는 나단이 부축하고 있는 앤시아의 반대편으로 다가가 도왔다.

당황한 주인장 톰이 헛기침을 하며 주의를 끌려 했으나 누구도 돌아보지 않자 다급해졌다.

“어허, 거참. 이 작은 마을에 갈데가 어딨다고 그러십니까. 괜히 헤매다 눈이라도 오면 숙박비만 더 오를 텐데.”

그러나 끝내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향하는 그들을 보며 톰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으니 그뿐이었다. 어차피 이 마을에서 다른 숙소는 찾기 힘들었다. 기껏 해야 맘씨 좋은 집에 신세를 지는 건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었다.

귀족 여인 쪽 안색을 보아 하루 이틀로 멀쩡해지기 힘들어 보이고 곧 폭설이 올 시기였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된 귀족의 보온 마석을 조만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아 히죽거렸다.

그런 톰의 욕심 섞인 생각과 달리 비앙카는 멀지 않은 곳에 빈 집으로 두 사람을 데리고 갔다.

겉보기에 허름하기는 했어도 열쇠도 제대로 달려 있고, 내부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으나 부서진 곳은 없어 보였다.

침대가 있는 방에 앤시아를 눕히고 이불 대신 로브를 덮어 준 후에야 나단은 한숨 돌린 듯 비앙카와 마주했다.

“어떻게 빈집을 얻은 거지? 여기엔 어떻게 온 거고?”

비앙카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이곳에 오기까지 로브를 푹 눌러 쓰긴 했어도 몇 번이나 마주치고 대화도 했던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다니, 놀라울 지경이었다.

“여긴 저희 마을이랑 가깝거든요. 산 하나만 넘으면 돼서 자주 놀러 왔었어요. 이 집은 아는 사람이 있어서 저렴하게 빌렸고요.

조금 이따 값을 치르러 가야 해요.”

산 하나를 가깝다 표현한 비앙카를 황당하다는 얼굴로 쳐다보던 나단이 재차 물었다.

“우리를 어떻게 찾은 거지?”

나단의 질문은 단순했지만, 비앙카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정말 자신을 못 알아보는가에 대한 의문도 있었으나 그건 앤시아에게 집중하던 나단을 떠올리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보다 나 단을 의심하는 상태에서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바로 답을 못하자 앤시아가 있는 방 앞을 가로막는 나단의 태도에 비앙카는 감동하면서도 발끈했다.

“마님을 지키려는 모습은 백 점이지만, 마님의 동의 없이 납치한 거라면 빵점이에요.”

비앙카는 권모술수 따위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단순한 이였다.

그렇기에 고민하며 미행하는 동안 아주 답답했었다.

어차피 얼굴 보고 있는 이상 톡까놓고 대화하는 게 나았다.

무엇보다 이 어리바리한 도련님은 납치극을 벌인 것 같지도 않았고, 비앙카의 예상대로 나단은 그녀가 가진 오해에 어이없어했다.

“납치라니. 그런 오해를 할 만큼 내가 수상해 보였는가?”

한풀 꺾인 허탈한 웃음인데도 그 안에 묘한 기쁨이 서려 있었다. 나단의 복잡한 감정을 알 길없는 비앙카는 한 번 더 확인했다.

“두 분, 도망치시는 건가요?”

“아니.”

단호하다 못해 화까지 묻어나는 나단의 답에 비앙카는 긴장했다.

“앤, 아니 앤시아의 명예에 흠집이 날 일을 내가 할 리가. 이 일은 마부에게 납치를 당하고 방치 된,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

나단은 그간의 고생을 떠올린 듯 쓸쓸하고 힘들어 보였으나 목소리만은 단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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