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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이혼은 쉬울 줄 알았다-109화 (109/148)

악녀의 이혼은 쉬울 줄 알았다 110화.

공작 부인 실종 소식은 아무리 정보를 단속하려 해도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한참 활기를 띠던 그윈티드 영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스산한 분위기까지 풍겼다.

공작가의 기사를 비롯하여 의뢰를 받은 길드원까지 굳은 얼굴로 하루에도 몇 번씩 영지를 가로질렀다. 그러다 보니 관광차 방문한 외지인들의 발걸음이 뚝 끊기고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때때로 잘못된 정보를 직접 확인하러 리샤르가 나타날 때면 그 흉흉함에 모두 숨을 죽였다.

축제 기간, 앤시아와 함께 있던 리샤르는 무뚝뚝할 뿐 과거 알고 있던 두려운 공작의 모습과 사뭇달랐다. 공작의 변화가 공작 부인의 영향임을 알아챈 영지민들은 두려움을 내려놓고 든든함을 느꼈다. 그러나 앤시아가 사라진 지금, 서늘하다 못해 살기까지 띠는 공작의 존재는 등장만으로도 영지민들을 불안하게 했다.

공작가는 말할 것도 없이 더욱 어두웠다. 살얼음 위를 걷듯 모두가 숨죽인 채 칼날처럼 날카로운 기운을 내뿜는 주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자 필사적이었다.

조심스럽게 보고를 한 아서는 미동 없이 지도만 바라보는 리샤르를 주의 깊게 살폈다. 잠을 거의 자지 못해 충혈된 눈은 때때로 번뜩이며 두려움을 주었다.

아서가 아니면 말을 거는 것조차 힘들 만큼 리샤르는 언제 분노를 터트릴지 몰라 위험해 보였다.

리샤르는 자신의 인내심이 바닥을 보인 지 오래임을 알기에 필사적으로 이성을 붙잡았다.

몇 날 며칠을 주변 영지까지 이 잡듯 샅샅이 뒤졌으나 새로운 정보는 얻지 못했다.

백작가로 향한 정예 기사단에게서 날아온 전서구에는 어떤 이상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내용 뿐이었다. 혹 앤시아나 나단을 발견할 경우 황족에게 알려지더라도 길드의 통신구를 사용하라 일러둔 터였다.

목격자를 통해 흔해 빠진 마부의 인상착의를 알아냈으나 계획적으로 접근했다면 찾기 힘든 것이 자명했다. 그런데도 인근 영지까지 탈탈 털어 모든 마부를 심문하는 통에 원성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어떤 불만도 리샤르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당장 들끓으려는 분노의 방향을 정하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이나 원망을 지나 앤시아의 안위만이 중요해졌다.

처음에는 침착하려 노력했으나 일주일이 다 되도록 정보 하나 찾지 못하자 두려움이 엄습했다.

혹여나 앤시아를 잃게 되는 건 아닌지 가정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혀 왔다.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벌써 이러면 안 될 일이었다.

리샤르는 머리를 감싸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리샤르를 지켜보던 아서는 다시 추적을 시작하기 위해 움직이려 했다. 바깥에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 문을 열어 주니 보좌관이 숨을 헐떡이며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각하, 마부를 찾은 것 같습니다!”

아서와 리샤르의 눈이 마주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움직였다.

보좌관은 마부가 먼저 찾아왔으며 심문실에 가둬 놓았음을 알렸다.

심문실에 도착하니 고문관까지 도착해 마부를 압박하고 있었다.

리샤르의 등장에 마부를 둘러싸고 있던 고문관과 병사들이 일제히 벽으로 물러섰다.

주눅이 들어 눈치를 보는 마부의 얼굴은 정말로 평범했다. 목격자들이 딱히 기억나지 않을 만큼 평범하다.‘고 했던 게 이해 될 만큼 평범 그 자체인 얼굴이었다.

리샤르는 이미 남은 인내심이 없었다. 고문하고 시간을 들일생각조차 없었다.

“단 한마디라도 거짓을 고할 때마다 손목부터 잘라 주마.”

“히익! 이, 이러지 마십시오, 나으리!”

곧바로 검을 빼 들 기세인 리샤르를 정면에서 본 마부가 허둥지 둥 뒤로 물러나다 의자와 함께 넘어졌다.

뒤로 물러났던 고문관이 아슬아슬하게 마부를 붙잡고 리샤르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자는 소문을 듣고 스스로 찾아온 자입니다. 마님과 그자의 인상착의 역시 일치합니다.”

즉, 스스로 걸어 들어온 이를 겁박하기보다 달래라는 의미였다.

리샤르의 턱짓에 아서는 구석에 비치된 상자를 열어 금화와 마석이 들어 있는 걸 보여 주었다.

협박 외에 회유가 필요한 경우 자주 써먹는 방법이었으나 마부는 금화를 쳐다보지도 않고 억울하다는 듯 웅얼거렸다.

“전 글을 읽지 못해 신문의 초상화만 보고 내가 태운 손님이다.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워낙 예쁜 분인 데다 특이한 경우라 기억에 남았으니까요.”

“특이한 경우라니?”

“단정하니 잘생긴 귀족분께서 사랑하는 여인과 비밀 여행을 가고 싶다며…… 흐익!”

“내 아내는 어디에 있지?”

어눌하게 말을 잇던 마부는 눈으로 사람을 죽일 것 같은 리샤르가 두려워 험악한 인상의 고문관 뒤로 몸을 숨겼다.

지나친 살기에 결정적 단서를 잃게 될까 걱정한 아서가 끼어들고 나서야 리샤르는 한 걸음 물러서 두 눈을 감았다. 팔짱까지 끼며 공격 의사가 없음을 내비친 후에야 마부는 거의 울먹이며 말을 토해 냈다.

“야경 때까지 마차를 줄 세워 놓으려 했는데, 그 남자분이 찾아왔습니다. 귀족 아가씨와 여행을 가는데 호위와 하녀가 방해된다며 도와 달라 하셨고요. 차에 섞으라며 약초 가루도 주셨습니다. 전 인적 드문 곳까지 두 분을 모셔다드린 죄밖에 없습니다.”

이게 전부 나단이 계획한 일이라고?

그럴 리 없다, 납치일 것이다 단정 지어 가던 리샤르는 뒷목이 뻐근해짐을 느꼈다.

“그곳이 어디지?”

“검은 숲 갈림길에서 동쪽으로 죽 달렸습니다.”

이건 함정인가. 아니면 진실인가.

당장에라도 달려 나갈 것 같던 리샤르는 불안해하는 아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한숨 자고 오겠다.”

“예?”

갑작스러운 상황에 아서가 되묻자 리샤르는 느슨하게 풀린 말투로 답을 주었다.

“마부의 증언과 지금까지 모은 자료를 비교해 사실 여부를 따지도록.”

“예, 예. 철저히 확인하겠습니다.”

“마부의 말이 진실이라면……

레슬리 백작가에 직접 찾아갈 것이니 기사단을 준비 시켜.”

결국, 리샤르가 직접 움직이게 된 것이다. 앤시아의 후견인인 백작가는 황궁과 가까워 여간해선 리샤르가 갈 일 없는 곳이었다.

아서는 고개를 숙여 리샤르를 배웅 후 여전히 겁에 질린 마부에게로 향했다.

증언의 허점을 낱낱이 파헤칠 시간이었다.

***

이건 꿈일까. 아니면 환상일까.

무척 긴 잠을 잔 것 같은 감각이 현실감을 둔하게 만들었다.

몽롱함 속에 앤시아는 무거운 눈꺼풀을 느릿하게 깜박였다.

나단과 비앙카가 대파인지 셀러리인지를 들고 논쟁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 뿌연 시야에 비쳐 꿈이구나 결론짓고 다시 눈을 감았다.

“……니까.”

·라고요. 몸을

:하는 데

좋아요.”

점점 선명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멍하던 머리가 점차 선명해졌다.

“그러니까 열이 저렇게 펄펄는 앤을 더 뜨겁게 만든다니 걱정이 돼서 그렇지.”

“그럼 열이 나니까 이불도 치우고 창문도 활짝 열까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고개를 기울여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자 이마에 올려져 있던 물수건이 미끄러져 떨어졌다.

그 작은 소리만으로도 대파를 붙잡고 있던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몰려왔다.

“마님?”

“앤시아!”

두 사람의 절실한 부름에 앤시아는 흐릿하게 남아 있던 잠기운이 싹 달아났다. 여전히 몸은 무겁고 기운은 없었지만, 두 사람의 애절한 시선이 앤시아의 몸을 일으켰다.

등이며 허리가 빠개질 듯 아픈걸 보니 최소 48시간은 누워 있었겠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마님, 정신이 드세요?”

“비앙카…….”

나단과 함께 숲을 헤매던 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비앙카가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었으나 눈에 보이는 나무 벽이나 좁은 방은 공작가와 거리가 멀어 보였다.

“어디…… 콜록!”

“마님, 물 드세요.”

입 안이 바싹 말라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앤, 날 알아보겠니?”

당연한 질문에 앤시아가 느릿하니 고개를 끄덕이자 나단이 감동한 얼굴로 비앙카를 돌아봤다.

“그대가 옳았어. 그간 정신을 차리지 못해 걱정했건만.”

“역시 약초 배합을 바꾼 게 효과가 있었나 봐요.”

비앙카가 건넨 물컵을 받아 드는 앤시아의 손이 달달 떨렸다.

‘얼마나 오래 누워 있었길래 손에 힘이 하나도 없는 거지?’

앤시아는 컵에 담긴 물을 다 마신 후에야 자신만 바라보는 두 사람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긴 어디……?”

“저희 마을이랑 가까운 눈눈 마을이에요.”

뭐야 그 눈 오는 날 적당히 지은 닉네임 같은 마을 이름은.

이런 상황에서도 피식 웃음이 날 만큼 단순하면서도 은근 귀여운 마을 이름이었다. 앤시아의 은은한 웃음에 비앙카는 신이 나서 설명을 이어 갔다.

“겨울이 되면 눈으로 뒤덮이거든요. 그래서 눈눈 마을이에요.”

“설명해 줘서 고마워, 비앙카.

그런데 왜 우리가 여기에 있는지 알고 싶은데.”

혹여나 엉뚱한 설명이 죽 이어질까 봐 앤시아는 빠르게 질문을 이었다.

나단과 비앙카는 서로를 바라보더니 나단 쪽에서 앤시아의 손을 잡으며 다정한 웃음을 보였다.

마치 오늘 먹을 환약은 개똥 맛이지만 그리 쓰지 않다는 하얀 거짓말을 할 때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백작가로 편지를 보냈으니 곧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다.”

“백작……가요? 공작가가 아니 고요?”

“물론 공작가에도 보내 두었단다. 비앙카가 알려 주길, 이곳은 동부가 더 가깝다고 하는구나.”

의식이 없는 동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그윈티드와 레슬리 저택은 부지런히 마차로 달리면 보름, 말을 타고 달려도 열흘은 잡아야 했다.

어디를 어떻게 헤매면 며칠 만에 동부와 더 가까워질 수 있는가.

“제가 얼마나 의식이 없었나요?”

“거의 기억이 없나 보구나. 마을에 도착한 지 일주일은 지났을 거야.”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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