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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이혼은 쉬울 줄 알았다-113화 (113/148)

악녀의 이혼은 쉬울 줄 알았다 114화.

이미 그득하게 쌓여 있는 마석창고에 한 줌 보태는 수준이었으나 황가에서는 그윈티드에서 마석을 긁어내는 걸 멈추지 않았다.

축제에 직접 다녀온 제1 황태자 카일루스에게 해당 마석의 권한이 주어졌다. 최근 건강이 악화된 황제의 화통한 결정이었다.

이 중 일부는 신년회 때 찾아올 수많은 황제파 귀족 중 카일루스를 지지하는 이들을 위한 선물이 될 것이었다.

최근 카일루스는 계획하는 일마다. 잭팟을 터트려 무척 기분이 좋았다.

그윈티드 저택에는 물론이고 영지 곳곳에 뿌려 둔 세작 중 하나가 큰일을 해냈다. 그윈티드 영지의 소식을 전하는 것과 더불어 기회가 있다면 공작을 방해할 만한 일을 하도록 명해 두었더니 공작 부인을 납치해 적당히 숲에 방치한 것이다.

그에겐 두둑한 사례를 해 두었다. 이래서 다양한 인물을 심어둔 것인데 효과를 톡톡히 봤다.

자신에게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애쓰면서도 공작 부인을 아끼던 리샤르를 떠올리니, 그녀의 실종으로 얼마나 미쳐 있을지 짐작이 갔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못 찾다니. 너무 무능한 것 아닌가.”

마부로 위장한 세작이 얼마나 일을 잘 처리한 것인지 보름이 지나도록 공작 부인의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혹 숲에서 잘못 됐다 해도 문제 될 건 없었기에 카일루스는 느긋하기만 했다.

게다가 조금 전 통신구를 통해 전해 들은 소식은 카일루스를 폭소하게 만들었다.

“푸하, 정말이지 제정신이 아니군. 기사단을 이끌고 동부로 달려오다니.”

황궁과 그리 멀지 않은 레슬리 백작가를 찾아온 것이다. 설마 반역을 꾀하는 건 아닌지, 북부를 지켜야 할 자가 위치를 이탈한 것에 대한 책임 소재를 묻기에 충분했다. 이 일을 빌미로 얼마나 또 쥐어 짜낼 수 있을지 기대가 될 지경이었다.

“황태자 전하, 제2 황녀 샬롯드미트리 전하께서 독대를 요청하셨습니다.”

“허락하지.”

카일루스는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제2 황녀가 창백한 얼굴로 몇 번이고 찾아올 때마다 거절했던 독대를 허락할 만큼.

오늘은 이전과 달리 다소 상기 된 얼굴을 한 샬롯이 카일루스를 향해 한 치의 어긋남 없는 예법으로 인사를 해 왔다.

“어서 와, 누이.”

“독대를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

짐짓 친근하게 불린 호칭에도 샬롯은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

“그간 시간을 내기가 힘들어서 이제야 누이 얼굴을 보네. 매번 찾아 주니 나야말로 고맙지.”

계승권은커녕 이렇다 할 권력조차 갖지 못한 샬롯을 대하는 카일루스의 태도는 뜻밖에 살가웠다.

“누이가 나를 찾는 일은 드물지. 내게 할 말이 있다면 편히 말해 봐.”

지금까지 만남을 거절해 온 게 고의가 아니라는 듯 상냥하기까지 했다.

“레슬리 소백작의 실종에 손을 쓰셨습니까?”

“레슬리 소백작? 그가 누군데?”

태연하게 되묻는 카일루스의 태도에 샬롯의 공손히 모인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전하께서 손을 쓰신 게 아니라면 제 측근을 움직여도 되겠습니까?”

“누이의 몇 안 되는 사람을 쓰는 일에 내 허락이 필요할 리가.

아, 자금이 부족하면 보태 줄까?”

카일루스가 가볍게 턱짓하자 시종이 곧장 움직였다. 샬롯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거절의 뜻을 비쳤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벌써 가려고? 오랜만에 보는데 섭섭하네.”

그간 거절했던 사람이라고 보이지 않을 만큼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던 카일루스는 샬롯이 인사를 하고 나가자 혀를 찼다.

몸을 사리고 있는 주제에 끈질 기게 확답을 받아 가는 샬롯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 봤자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게이트를 이용해 사람을 푸는 것 정도였다. 그런 정도의 일은 이쪽에서도 벌써 진행하고 있었다. 카일루스는 손에 패를 쥐기 위해 애쓰는 중이었다.

“토끼처럼 조그마해서 어디로 사라진 건지.”

*

드디어 눈이 그쳤다.

눈눈 마을을 하염없이 눈으로 덮어 가던 먹구름이 물러가고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으아, 이게 얼마만의 태양님이야?”

“햇볕이 이렇게 따뜻한지 잊고 살았네요.”

하루에도 몇 번씩 눈을 치우느라 몇 벌 없는 옷을 모닥불에 말려 가며 고생하던 나단과 비앙카가 다시 삽과 빗자루를 들었다.

눈이 그치자마자 치울 준비로 바쁜 두 사람의 행동에 이불 속에 있던 앤시아가 몸을 일으켰다.

“눈이 그쳤는데 어디 가?”

“그동안은 우리 집만 치웠던 거고 눈이 그쳤으니 마을 안에 쌓인 눈 치우는 거 도와야죠. 안그러면 미운털 박혀서 뭐 살 때마다 바가지 더 써요.”

공동체 생활이 그러했다. 외지 인이기에 더더욱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게 나았다.앤시아가 도우려는 듯 일어서자 나단이 오늘도 보글보글 끓고 있는 스튜냄비를 가리켰다.

“앤, 점심때쯤 스튜 냄비에 재료를 추가해 줄래?”

이제 막 아침을 먹은 참이었다.

한참 뒤에 할 일, 그것도 고작 10분이면 될 일을 핑계로 앤시아를 집 안에 있게 하려 했다.

나단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앤시아가 미안한 마음에 저도 모르게 일어서기는 했으나 다시 허약해진 몸으로 찬바람을 맞는 건 피해야 했다.

“부탁할게, 앤.”

“네, 그럴게요.”

“마님, 약초를 넉넉히 구해 놨지만 이대로 겨울을 보내려면 아슬아슬해요. 아프시면 안 돼요.”

“으응, 알았어. 미안해.”

오랜 시간 약한 몸으로 살아왔기에 누구보다도 자신의 몸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잘 알고 있는 앤시아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녀올게요, 언니.”

문을 열자마자 외부에 들릴 수 있다는 듯 비앙카는 앤시아를 부르는 호칭을 바꿨다.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자신을 대하는 두 사람의 태도가 여전히 같아서 더욱 미안해졌다. 저택에 서와 달리 이곳에서는 할 일이 끊이지 않았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두 사람을 보며 앤시아는 마음이 무거웠다.

“일단 아프지 말자. 아픈 게 제일 큰 민폐야.”

나단과 비앙카는 쉼 없이 움직였다.

창밖에 쌓여 있던 눈은 수시로 치 워졌고, 창고를 열 때마다 새로운 건조 식량이 늘어나거나 장작 뭉치가 높이 쌓여 갔다.

앤시아가 낮잠을 자는 사이 나 단이나 비앙카가 조용히 물품을 사다가 정리하고 다시 나가기를 반복했다.

앤시아는 점심때까지 딱히 할 일도 없어 재고 파악이라도 하기 위해 창고로 들어갔다. 문 두 개를 열고 들어선 창고는 상당히 추워서 숄을 여며야 했다.

“와, 너무 추워.”

이곳에 놓인 커다란 물 항아리가 얼지 않은 걸 보니 온도가 지나치게 낮은 건 아닌 듯했다.

볼 때마다 물이 차오르는 물 항아리는 마치 제습기 같았다. 실제로도 창고는 건조하게 잘 유지되고 있었다.

하룻밤이 지나면 물이 넘치는 물 항아리 덕에 강이 얼어붙어도 걱정 없었지만, 대신 넘치기 전에 부지런히 다른 항아리로 옮겨 둬야 했다.

“많이 하면 혼나니까 조금만 옮기자.”

옆에 놓인 빈 항아리에 바가지로 물을 옮기며 신기한 물 항아리에 대해 다시금 떠올렸다.

비앙카는 이 근처 산에서 나는 흙으로 항아리를 빚으면 높은 확률로 물이 솟아나는 항아리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이 항아리만 팔아도 부자 마을이 될 것 같아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이 일대를 벗어나면 물이 생기지 않는다 했다.

지역 특징일까? 아니면 흙의 특성일까?

혹시 모르니 공작가로 돌아갈 때 몇 개 사 갈까 싶었다.

“정말 신기하단 말이야.”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니 새롭고 신기한 것 투성이였다.

바가지로 몇 번 물을 옮겨 뜬 것 뿐인데도 손끝이 차게 식었다. 그것만으로도 어깨를 움츠러들고 으슬으슬 몸이 떨렸다.

“으으, 이 연약한 몸뚱어리. 이정도도 못 버티다니.”

앤시아가 아프면 나단은 잠들지 못했다. 비앙카는 이곳에서 구한 약초를 새로 조합하느라 시간을 쪼개야 했다.

괜히 어설프게 도우려다 병을 얻으면 안 그래도 일이 많은 두 사람에게 짐을 지우는 셈이었다.

이 작은 집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손이 가는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부산해질 지경이었다.

두 사람의 말대로 앤시아는 최대한 자신의 몸 상태를 평균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데 신경 써야 했다.

“추워어~!”

방으로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니 간신히 몸의 떨림이 잦아들었다. 공작가나 백작가에서 사용하던 이불과 비교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볼품없었지만, 노숙까지 감행했던 걸 떠올리면 깨끗한 이불을 덮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집 안을 훈훈하게 데우는 모닥불의 열기에 앤시아는 졸음이 몰려왔다. 최근 졸음을 참기 힘들었기에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뜨니 시간이 꽤 지나 있었다.

잠깐 잠든 것 같았는데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앤시아는 급히 부엌 공간으로 향했다.

이러다 고작 스튜 건더기를 추가하는 쉬운 일조차 하지 못할만큼 몸이 안 좋다는 오해를 살수도 있었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에 앤시아는 놀라 멈춰 섰다. 두 사람은 열쇠를 가지고 있기에 문을 두드릴 리 없었다. 연달아 두드리는 소리에도 문으로 향하기가 망설여졌다.

“안에 있죠? 집주인인데 잠깐 물어볼 게 있어서 왔어요.”

“아, 네!”

집주인. 건물주. 언제 어디서든 갑.

집주인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다는 본능이 앤시아를 문 앞으로 이끌었다.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한껏 밝고 무해한 웃음을 지으며 문을 연 앤시아는 누가 봐도 환불하러 온 인상의 언니들을 보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앤시아가 무언가 팔았던 물건이 있다면 두말없이 돈주머니부터 내밀고 싶을 만큼 문 앞을 빈틈없이 막아선 여러 명의 여인이 주는 압박감은 상당했다.

몇 초간 서로 아무 말도 없이 대치하던 중 마구 들이치는 찬바람에 앤시아가 몸을 웅크리며 재채기를 했다.

“에, 에취!”

단 한 번의 재채기. 작게 움츠리는 몸.

질끈 감은 눈이나 재채기하느라 작게 다물린 입 모양조차 귀여운데 민망한 듯 커진 눈망울은 더욱 사랑스러웠다.

무언가 단단히 마음먹고 온 여인들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몸이 정말 약하긴 한가 보네…….”

“가까이서 보니까 더 예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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