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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이혼은 쉬울 줄 알았다-114화 (114/148)

악녀의 이혼은 쉬울 줄 알았다 115화.

저희끼리 속살거리는 소리였지만 원체 목소리들이 커서 그런지 생생하게 들려왔다. 앤시아의 뺨이 민망함에 붉게 물들었다.

“우리 안으로 들어가도 되죠?”

“아, 네. 들어오세요. 에취!”

급하게 문을 여느라 온열 마석이 든 숄을 걸치지 못했더니 재채기가 나왔다.

자신들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가느다란 여인이 몸을 웅크리며 연달아 재채기하는 모습은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 쉬웠다.

여러 명의 여인이 집 안으로 당당하게 들어가다 말고 널려 있는 옷가지와 좁은 내부에 머뭇거렸다. 그녀들 역시 북부인답게 덩치가 큰 데다 이 집은 임시 거처이다 보니 비좁았다.

앤시아는 서둘러 옷가지를 한쪽으로 밀어 치우고 세 개뿐인 의자를 빼내 주었다.

“앉으세요.”

그러나 서 있는 사람은 다섯이었기에 앉기에 모호했다.

무엇보다 이곳에 있는 사람 중 가장 의자가 필요해 보이는 사람은 앤시아였다.

본인을 집주인이라 소개한 여인 이 총대를 메고 다가서자 앤시아는 방긋 웃으며 눈을 마주했다.

무해하고 귀여운 소동물을 보는 것 같은 감각에 여인들의 굳은 표정이 슬며시 풀어졌다.

“흠흠, 아가씨. 물어볼 것만 물어보고 갈 거니까 솔직하게 말해 줘요.”

“네. 말씀하세요.”

“같이 온 남자랑 정말 부부예요?”

“네?”

비앙카가 열심히 어필하고 다닌이야기를 따져 물으러 온 듯한 여인의 태도에 앤시아는 당황했다. 물론 겉으로는 왜 그런 당연한 걸 묻냐는 묻냐는 듯 살짝 고개를 를 기울이며 의문을 표했다.

앤시아의 반응에 머쓱해진 집주인은 들어올 때보다 누그러진 목소리를 냈다.

“그, 남편이 비앙카랑 맨날 같이 다니고 아가씨는 코빼기도 안보이니까 다들 신경이 쓰여서 말이죠.”

“실은 비앙카랑 사귀는 사이고 아가씨는 솔로 아닌가 다들 궁금해해요. 특히 남자들이 아가씨이야기로 매일 시끄러울 정도야.”

단도직입적으로 물어 오는 여인들에게 앤시아는 미리 정해 둔 대로 답을 했다.

“네, 부부 맞아요.”

“그런데 왜 아가씨는, 아니 새댁은 집에만…… 어디 아파요?”

처음엔 따져 물으려던 집주인의 기세는 연약해 보이는 앤시아를 살피며 슬며시 줄어들었다.

“네, 보시다시피 제가 몸이 좀 약해요. 솔직히 말하자면…….”

앤시아는 아직 납작한 자신의 배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아이가 생겨서 조심하는 중이에요.”

좁은 마을에 벌써 소문이 퍼졌는지 임신 소식을 전했음에도 집 주인은 고개만 끄덕일 뿐 놀라지 않았다.

“저는 예전부터 몸이 약해서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어요. 이 마을에 와서 임신했다는 걸 알게 돼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이 마을에 온 건 행운이에요.”

몸이 약한 걸 어필하며 마을에 대해 칭찬을 하자 집주인의 동공이 흔들렸다. 뒤에 서 있던 다른 여인들은 마을 칭찬이 기뻤는지 무서운 표정이 풀어지기까지 했다. 앤시아는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자 살짝 눈물까지 고이게 했다.

“실은…… 어머님이 내년까지 아이를 가지지 못하면 첩을 들이라 하셨거든요.”

“세상에, 미친!”

“남편은 뭐래요? 설마 시어머니 편을 든 건 아니죠?”

“하여간 남편 가족들이 제일 문제라니까!”

역시 친해지는 데는 시댁 욕만한 게 없다.

방금까지 앤시아를 향했던 적개심이 한 방에 날아가 버렸다. 지금 그녀들의 눈에 앤시아는 마을 남자를 유혹하는 외지인이 아닌, 시어머니의 구박 끝에 간신히 임신에 성공한 같은 여인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잠깐 집주인이 시어머니와 남편에 대한 분노를 터트리는 동안 앤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쳐 주었다.

실컷 분을 터트린 여인들은 앤시아의 상냥한 미소에 뻘쭘해졌는지 그녀를 걱정해 왔다.

“맘고생이 많았겠네요.”

“마음도 여리게 생겼는데 잘 버텼어요.”

“감사해요. 하지만 이제 괜찮아요. 아이가 생겼으니까요. 눈눈마을에서 비축 식량을 충분히 팔아 주셔서 굶을 걱정도 없고요.

정말 감사해요.”

앤시아가 허리를 숙여 인사하려 하자 집주인이 황급히 앤시아의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어허, 배가 티도 안 나는 거보니 아직 임신 초기인 것 같은데 몸도 약하다면서요? 내가 괜히 찾아와서 불편하게 했네. 우리는 이만 가 볼 테니 어서 쉬어요.”

“아니에요. 남편이랑 동생이 오기 전에 스튜도 끓여야 하고….”

“스튜? 그까짓 거 재료만 때려 넣으면 되지. 앉아 있어 봐요.”

“네? 앗, 그럼 제가 너무 죄송하죠.”

“어허, 우리 마을에서 겨울을 날 텐데 그럼 마을 식구랑 다름없어요. 이 정도 호의는 받아도 돼요.”

“그래도…….”

앤시아의 만류에도 집주인은 주방을 쓱 살펴보고 팔을 걷었다.

“재료가 죄다 비축용이라 건조뿐이네. 이따 저녁에 채소 좀 가져다줄까요?”

다른 건 거절해도 채소는 도저히 거부하기가 힘들었다. 앤시아는 큰 눈을 반짝이며 양손을 모은 채 진심이 담긴 감사의 말을 전했다.

“어머, 그럼 너무 감사하죠. 비용은 시세대로 드릴게요.”

“됐어요. 겨울 한 철 집 빌려주는 거치고 돈도 넉넉히 받았으니 서비스예요.”

온열과 보온 기능이 있는 마석은 이 마을에서 가치가 제법 높았다.

앤시아가 나단의 로브에 붙여 둔 여러 개의 마석 덕에 마을에서의 생활은 모자람이 없었다.

집주인도 처음엔 남자들의 지대한 관심이 몰린 외지인에 대한 경계심으로 다가왔다가 앤시아의 솔직하고 밝은 모습에 마음을 푼듯했다.

“그래도…….”

“한 번쯤은 그냥 받아도 돼요.

우리 형님이 마을에서 제일 부자 거든요. 이 마을 유일한 겨울 텃밭 주인이라니까.”

“그나저나 이 집에 향신료도 너무 없네. 내가 마늘 좀 가져다줄 게요.”

“냄비가 이거 하나뿐이에요? 우리 집에 안 쓰는 팬이랑 그릇 좀 가져와야겠네.”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어느새 앤시아에게 마음을 풀다 못해 호감이 생긴 여인들은 집안의 부실한 세간살이를 보고 저마다 팔을 걷어붙였다.

앤시아가 당황하며 거절하는데도 저마다 집에 다녀오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다들 집으로 돌아간 사이 집주인은 안절부절못하는 앤시아를 대신해 스튜의 간을 맞췄다.

“매일 이것만 먹으면 질릴 텐데. 매운 거 먹을 줄 알아요?”

“앗, 네. 없어서 못 먹죠.”

“마음에 드는 새댁이네. 다음에 올 때 가져다줄게요.”

“와, 감사해요. 제가 몸이 좀 나으면 눈토끼라도 잡아다 드릴게요.”

은혜를 갚으려는 앤시아의 태도에 집주인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몸이나 잘 추슬러요. 남편이랑 마실도 좀 다니면서 부부인 거 티도 좀 내주면 더 좋고요.”

집주인은 첫인상의 매서움과 달리 말투가 제법 부드러워졌다.

그녀의 배려에 앤시아는 웃음으로 답했다.

“네, 그럴게요. 참, 제 이름은 앤이에요.”

“난 해라예요. 늦었지만 우리 마을에 머물게 된 걸 환영해요.”

집주인 해라의 호의적인 반응에 앤시아는 진심으로 안도의 웃음을 보였다.

최근 마을에 소문이 자자한 미인의 소문을 확인하러 빌려준 집에 들렀던 집주인 해라는 수줍게 거절하는 앤시아에게 자꾸만 뭔가 퍼 주고 싶어지는 마음을 가까스로 진정시키고 밖으로 나왔다.

마을에 외지인이 들어오는 일은 흔했다.

단지 그 안에 눈이 번쩍 뜨일만한 미인이 둘이나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한 명은 인근 마을 출신이라 이곳 남자들의 수작질에도 코웃음을 쳤지만, 정작 부부로 소문난 다른 쪽 여인은 아무리 날이 지나도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첫인상이 워낙 강렬한 데다 기웃거릴 때마다 비앙카가 나타나 빗자루를 휘둘러 대고 덧문을 보강하니 다들 궁금해 미치는 것이다.

감추면 감출수록 더 보고 싶은 게 사람 마음.

마을 여인들이 직접 앤시아에게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를 남자들에게 전하고 단속하면 어수선한 분위기도 좀 잡힐 것이다.

해라가 집으로 향하는데 멀리서 비앙카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해라 아줌마!”

“아이고, 귀 떨어지겠다.”

“아줌마가 왜 그 집에서 나와요?”

목소리도 어찌나 크고 행동도 과격한지 아무리 미인이라 해도 남자들이 주춤거릴 만큼 힘이 넘쳤다.

“내 집에 내가 들렀는데 웬 난리?”

“빌린 동안엔 우리 집이죠. 할말 있으면 저한테 하시지 왜 집까지 찾아오고 그래요?”

“어쭈? 맨날 우리 집에 와서 남녀 간의 은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며 조르던 꼬맹이가 머리 좀 컸다고 바락바락 대가릴 들이대네?”

“조르긴 언제 졸랐다고 그래요?

맨날 이야기판 벌리고 동네 사람 다 들리게 떠들어 놓고선.”

비앙카와 해라의 인연은 같은 마을에서 시작해 이웃 마을까지 넘어와서도 계속되었다.

사실 해라는 비앙카의 거짓말을 눈치채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마을 여인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일부러 나선 것이다. 이 철없는 비앙카는 해라의 의중도 모르고 제 언니를 괴롭힌 거 아니냐며 빽빽거렸다.

“언니한테 이상한 소리 한 거 아니죠?”

“그놈의 언니 소리는 잘도 술술 나온다?”

“우리 언니는 귀엽고 사랑스럽고 몸이 약해서 절대 안정 해야 하거든요. 막 찾아가고 그러지 마세요.”

“몸이 약한 거랑 귀엽고 사랑스러운 게 무슨 상관이야?”

“자랑하는 거예요. 우리 언니 최고로 예뻐. 예쁜 게 최고야.”

해라의 핀잔에도 비앙카는 당당하기만 했다. 얼마나 앤시아와 사이가 좋은 건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비앙카, 내 집에 잠깐 들러.”

“왜요? 우리 언니랑 밥 먹어야 해요.”

“고춧가루 가져가라고.”

“윽, 그 매운 걸 왜요?”

“너희 언니가 매운 거 없어서 못 먹는다더라. 동생이라면서 그것도 몰라?”

해라의 타박에 비앙카는 입술을 삐죽이며 마지못해 뒤를 따랐다.

그때 나단은 잡화점에 들어서고 있었다.

하늘이 맑아져 전서구를 보낼 수 있다는 비앙카의 말을 듣고 곧장 서둘러 움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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