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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이혼은 쉬울 줄 알았다-116화 (116/148)

악녀의 이혼은 쉬울 줄 알았다 117화.

이 기쁨과 불안감, 그런데도 기대감이 드는 다양한 감정을 리샤르와 나중에라도 나누고 싶었다.

모조리 편지로 보내고 싶었으나 육로는 눈으로 막혔고, 전서구는 가격이 비싸니 글로 마음을 남겨두고 싶었다.

나단과 비앙카가 애써 주는 걸 알기에 앤시아는 밝게 지내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매일 수시로 떠오르는 리샤르에 대한 그리움은 어쩔 수 없었다.

갑자기 사라져서 리샤르가 얼마나 걱정할지, 나를 잊은 건 아닌지, 그럴 리 없을 걸 알면서도 온갖 감정이 물밀듯 들이닥치고는 했다.

‘내가 리샤르를 보고 싶어 하는 만큼 그도 내가 보고 싶을 거야.

부정적인 감정은 최대한 지우고 다시 만나면 얼마나 기뻐할지 매순간 떠올렸다. 이곳에서 지내며 생겨난 그리움의 감정을 마냥 흘려보낼 수 없어 글로 써 두었다.

노트의 처음을 펼쳐 보면 납치된 것 같아서 무서웠지만, 어떤 흐름으로 이곳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여행 기록처럼 시작됐다.

그 후에는 불안하기는 해도 오라 버니와 비앙카가 열성적으로 자신을 돌봐 주어 견딜 수 있다는 내용과 더불어 리샤르가 보고 싶고 당신과 나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하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마을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물항아리 이야기부터 이웃이 알려준 요리 레시피까지 소소하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한 줄 한 줄 채워졌다. 그렇게 써 내려간 노트가 벌써 두 권째였다.

앤시아는 자리에 앉아 글을 쓸 때면 그리움에 눈시울이 붉어지고는 했다.

남은 마석을 탈탈 털어 여러 번 보낸 전서구는 한 번도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도 도착하지 못한 게 아닐까 짐작할 뿐이었다.

한두 달만 더 버티면 높이 쌓인 눈이 녹기 시작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으려 했지만 한번 터진 그리움은 눈물이 되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둔 나단과 비앙카는 그런 앤시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는 대신, 노트를 펼치는 일이 잦아지고 있음을.

나단은 그간 몇 번이고 비앙카와 의견을 나눴던 계획을 실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번 주에 마을 사람들이 외부로 이동한다고 했지?”

“네. 쌓인 눈이 단단하게 굳어서 속도는 느려도 눈 속에 빠질 일은 없는 시기라 혈기 왕성한 몇몇 남자들이 탈출을 감행하곤 하거든요. 그때 값은 비싸지만 편지를 보낼 수 있어요. 제 보온 마석을 팔까요?”

“아니. 그들과 합류하려고.”

“예? 나단 님이요?”

이번에 마을을 빠져나가는 이들은 모두 튼튼한 장정들이었다.

고립될 정도로 높이 쌓인 눈이 돌처럼 굳고 얼음길은 평소처럼 말을 타고 이동할 수 없어 직접 걸어야 했다.

반나절 거리를 며칠에 걸쳐 빠져나가야 하기에 굳이 사서 고생하겠다는 젊은이들을 이해할 수 없어 하는 마을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혈기 넘치는 장정들은 말려도 소용없었기에 차라리 유용하게 써먹고는 했다. 그중 하나가 편지 심부름이었다.

“남에게 맡기는 편지는 이제 못믿겠어. 내가 직접 가야겠다.”

비앙카는 나단을 말리려다 두달간 제법 튼튼해진 외양을 보고 고민에 빠졌다. 앤시아가 종종 우울해하던 모습을 떠올린 비앙카는 결국 나단의 의견에 동의했다.

“나단 님도 매일 눈 치우느라 이전보다 건강해지셨으니 괜찮을 거예요. 얼음길만 빠져나가면 그 뒤로는 인근 마을에서 말을 빌릴 수도 있고요.”

“그래. 동부가 더 가깝다 했으니 집에 들러 사람들과 함께 돌아오마.”

“힘내세요, 나단 님. 마님은 제가 지킬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몇 달간 함께 지내다 보니 비앙카의 가벼워 보이는 밝음 속에 확고한 의지를 알 수 있었다. 나 단은 그녀라면 앤시아를 맡길 수 있다는 판단이 섰기에 직접 움직일 마음도 먹었다.

“그럼 부탁할게.”

나단은 앤시아가 만류할 것을 알기에 곧장 준비를 서둘렀다.

앤시아가 뜨고 있던 아기 옷을 살며시 쓰다듬은 나단은 각오를 굳혔다.

***

단단히 각오하고 떠난 길.

나단은 마을 장정들이 짊어진 거대한 짐들이 죄다 술과 고기였음을 깨닫고 황당할 지경이었다.

정말 어울리기 힘든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험한 얼음길을 홀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종일 기어가 느릿느릿 이동한 끝에 해가 질 때쯤에야 야영지를 차릴 수 있었지만, 천으로 지은 막사는 밤의 추위를 막아 주기에 역부족이었다. 나단의 외투에 보온 마석이 달려 있기는 하나 발끝과 손끝까지 온기가 전해지지는 않았다.

그들이 내미는 술이 몸을 데우고 지친 몸을 풀어 주는 걸 느끼며 나단은 이 순간 앤시아가 따뜻한 집에 있음을 감사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얼음길을 걸었다. 얼어붙은 길이 퍼석거리는 소리를 낼 때쯤에야 그럭저럭 걸을 만한 길이 나타났다.

이미 발바닥은 퉁퉁 부었으나 마을이 멀지 않았다며 신이 난 장정들의 걸음은 빨라지기만 했다. 그 과정에 반쯤 녹은 얼음물에 부탁받은 편지 꾸러미를 떨어트려 엉망이 되는 걸 목격한 나 단은 역시 직접 움직이기를 잘했다고 확신했다.

멀지 않았다는 마을은 꼬박 이틀을 걸은 후에야 도착할 수 있었지만, 다행히 말을 빌릴 수 있었다.

제대로 된 길을 알아내고 하루 내내 쉬지도 않고 달린 끝에 눈에 익은 길에 들어섰다.

아직 갈 길은 멀었으나 분명 나 단이 알고 있는 길이었다.

“드디어. 길을 찾았어.”

나단의 긴장이 일순간에 풀려 잠시 휘청였다.

어차피 며칠 더 달려야 했다.

쉬어야 말도 나단도 움직일 수 있으리라.

가까운 여관으로 향하면서도 나 단은 들뜨는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조금만 기다려, 앤. 공작을 만나게 해 줄게.’

***

폭우가 휩쓸고 간 길은 엉망이었다.

말을 타고 달리면 일주일 정도 되는 거리에 있는 눈눈 마을은 눈이 녹지 않아 고립될 지경인데 동부는 폭우가 내릴 정도로 따뜻했다.

진흙투성이가 된 길을 내달리는 말은 금세 지쳤고 나단의 모습도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렇다 해도 레슬리 영지가 코앞이었다. 나단은 쉬지 않고 달렸다.

편지를 받지 못했으리라 확신하고 저택에 도착한 나단은 귀신이라도 본 듯 화들짝 놀란 사용인들을 보고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오랜만이야, 다들.”

“도, 도련님!”

“아이고, 도련님!”

앤시아가 시집간 이후 소백작이라 부르던 사용인들이 저마다 나 단을 도련님이라 부르며 달려왔다. 그들의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져 나단은 반갑기만 했다. 말에서 내려선 나단은 그들의 당황한 얼굴에도 최대한 밝게 웃으려 했다.

“그렇게 놀라지 마. 부모님은 안에 계시지?”

“도련님, 당장 도망…… 히익!”

“응?”

놀라며 뒷걸음질 치는 사용인들의 반응에 나단은 그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확인하려 뒤돌아섰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날아는 창이 활짝 열린 정문과 바닥 사이에 꽂혔다. 마치 문을 닫지 못하게 하려는 듯 절묘한 위치였다.

“백작, 저 정문에 창을 던지다니. 누가 백작가를 위협하는가?”

명백한 도발이자 침입에 나단은 흑마를 타고 다가오는 이를 노려보다 이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윈티드 공작께서 여기엔 어쩐 일…… 아, 혹시 편지를 받으셨습니까?”

몇 달간 보지 못했어도 그 풍채나 외형은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었다.

창이 날아온 건 의아했지만, 백작가에 도착하자마자 리샤르에게 연락할 생각뿐이었던 나단은 그를 만난 것이 마냥 반가웠다.

리샤르가 냉기를 풀풀 풍기며 자신을 노려보는데도 나단은 할말이 너무 많다는 듯 웃는 얼굴로 다가갔다.

“아, 편지를 받으셨다면 여기로 오셨을 리가 없겠군요. 비싼 돈을 들여 몇 번이나 전서구를 보냈는데 아무도 오지 않으시더군요. 아무래도 사기당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전서구?”

리샤르는 태연하다 못해 자신을 반기는 듯한 나단의 행동에 끊어 오르던 분노가 갈 길을 잃어버렸다.

***

열흘 전,

리샤르는 공작가에서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미쳐 버릴 것 같아 다시 백작가로 향했다. 그곳에 심어 둔 기사단을 믿지만,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어떤 말보다도 튼튼한 흑마가 거품을 물고 쓰러질 만큼 혹독하게 내달려 일주일 만에 동부에 도착한 리샤르는 하염없이 백작가를 지켜보았다. 그렇게 며칠간의 기다림 끝에 생각지도 못한 나단 레슬리를 발견하고 눈이 돌아갔다.

리샤르는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닫히려는 백작가의 정문을 향해 기사단이 가지고 있던 창을 던져 길을 만들고 곧장 나단에게로 향했다. 저자를 잡아 고문을 해서라도 앤시아의 행방을 알아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단는 당황하지도 않고 반가워하는 기색으로 리샤르를 맞이했다.

편지와 전서구를 보냈는데 아무도 받지 못한 걸 보면 사기당한 게 분명하다며 툴툴대는 태연함이 꾸며진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마부의 증언과다양한 증거들을 머릿속에서 수백 번 곱씹었던 리샤르는 서늘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레슬리 소백작. 무슨 여유인가.”

“여유라니요. 필사적으로 달려 왔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소식을 전하려고요.”

지금 나단이 웃는 얼굴로 전하려는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수 없으나 리샤르는 왠지 모를 기대감에 휩싸였다. 리샤르의 침묵에 나단은 뜸을 들이지도 않았다.

“앤시아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앤시아. 그녀의 이름이 들려오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소리를 내며 부서지는 것 같았다.

말에서 뛰어내린 리샤르가 나단의 코앞까지 무시무시한 기세로 다가가는데도 그는 겁먹지 않고 술술 정보를 털어놓았다.

“검은 숲 깊은 곳에 있어 지도에도 없는 마을입니다. 장난 같은 이름이긴 한데, 눈눈 마을이라고 하며 위치는 기억해 두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리샤르는 나단의 목을 조르고 싶은 손을 멈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힘을 주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거짓이라면 찢어 죽일 테지만, 한 조각 진실이나마 숨어 있다면 이건 앤시아를 되찾을 수 있을 기회였다.

“제가 따라가면 기동력이 달릴테니…… 지도에 표시를 해 드리겠습니다.”

나단이 지도를 찾기 위해 등을 보이자 리샤르의 손이 본능적으로 그의 목덜미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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