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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이혼은 쉬울 줄 알았다-144화 (144/148)

악녀의 이혼은 쉬울 줄 알았다 145화.

“공작 부인께서 정식으로 결혼식을 치르시는 건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그걸 구경거리로 삼는 건 귀족의 체면에 맞지 않는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마지막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안나의 질문에 사용인들 역시 동감하는 듯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러나 앤시아는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노아를 지키기 위해 불미스러운 소문까지 퍼트렸던 지난 몇 개월 동안 영지의 경제는 쭉 침체되었다. 결혼식 같은 큰 이벤트라면 영지를 빠르게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안나, 항상 날 먼저 생각해 줘서 고마워요.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아닙니다. 당연한 일을 한 것 뿐입니다.”

“하지만 날 치켜세우는 일보다우리 영지를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 내게는 더 중요해요. 영지가 살기 좋아지고 단단해지는 일이 결국 공작님과 저를 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앤시아의 솔직한 발언에 안나는 감격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결정적인 순간 이렇게 설명을 해야 하는 게 번거롭기는 했지만, 안나의 질문 덕에 사용인들의 의아해하던 시선에 호의가 깃들었다.

“다들 알았지? 그날 내가 입거나 들고 다니는 모든 게 광고가 될 거야. 팔릴 만하면 몇 개든 상품화될 테니까 아이디어를 내줬으면 해.”

공작 부인은 걸어 다니는 광고 판과 다름없었다.

앤시아는 자신의 외모를 잘 알고 있었다. 이브 숍에서 새로운 의상을 입는 날이면 주문이 폭주한다는 걸 경험하기도 했다.

결혼식 자체도 기대가 됐지만, 영지 활성화에 대한 기대도 컸다.

“여기 천과 꽃은 다들 필요한만큼 받아 가. 남는 천은 나중에 나눠 줄 테니까 적당히 가져가고.”

아무도 나서지 않자 앤시아가 물러서기 전 한마디 덧붙였다.

“참, 채택되지 못하더라도 참가 비와 보너스를 받을 수 있으니 되도록 참여해 주길 바랄게.”

“참가비요?”

“보너스?”

앤시아가 홀을 떠나기도 전 사용인들이 우르르 천을 향해 다가갔다.

“리본을 만들어 볼까?”

“여기에 자수를 놔도 예쁠 거 같아. 실을 염색하면 좋겠는데.”

“내가 도와줄까? 할머니한테 배워서 염색하는 방법을 알아.”

예전처럼 다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용인들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축제 준비에 결혼식까지 치르려면 외부인이나 돌발 상황을 조심해야 했다. 그러나 앤시아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일을 망치려고 작정한 황태자의 개입이 가장 큰 문제였는데, 그 부분이 해결됐기 때문이었다.

첫 만남 이후 편지를 주고받으며 부쩍 친해진 샬롯과의 대화를 통해 카일루스의 입지가 매우 약해졌음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앤시아가 황궁에 방문한 이후, 황제는 자신이 쇠약해진 원인이 차에 섞인 약재 때문임을 확신하게 됐다. 그 자체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나 황제가 즐겨 먹는 음식과 섞이면 독이 되는 약재였다.

요리사나 궁의가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황태자가 뒤에 있음을 확신한 후에도 황제는 카일루스를 가두거나 벌을 내리지 않았다. 대신 황태자의 수족을 남김없이 참수했다.

카일루스에게 발을 걸치고 있던 귀족들이 정신없이 흔적을 지우며 황제나 다른 황족의 줄을 타느라 난리가 났다. 오죽하면 후 계자 자격이 없는 2황녀 샬롯에게까지 줄을 대러 달려온 이들이 수두룩했다.

거기에 황제는 건강을 되찾았으니 후계자를 다시 생각해 보겠다며 자식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유일 후계자인 황태자 아래 주눅들어 있던 형제들이 저마다 감춰둔 능력을 드러냈다. 이에 황제는 매우 흡족해했고, 카일루스의 안색은 나날이 어두워져 갔다.

모든 일이 앤시아의 예상보다 빠르게 정리되어 감에 안도했다.

설령 세작이 남아 있다 해도 주인이 없으면 걱정할 일도 없었다.

이제 축제와 공개 결혼식만 철저히 준비하면 될 일이었다.

***

가을이 깊어 가는 계절.

공작가는 물론 영지민들 모두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안정감을 느꼈다.

공작가 안쪽 별채에 생긴 생뚱맞은 탑은 예전과 달리 활짝 열려 있었다. 그 앞에 정원은 공작부인이 매일 찾을 만큼 평화로웠다.

“마아….”

“세상에, 우리 노아. 벌써 엄마를 부르는 거야?”

“흐으응….”

“노란 꽃이 예뻐? 아니면 옆에 코스모스가 좋아?”

앤시아의 품에 안긴 노아 역시 향긋한 꽃 냄새와 다양한 꽃을 보는 걸 좋아했다. 작은 손을 꼬물거리며 꽃을 향해 움직일 때면 앤시아는 상냥하게 설명해 주고는 했다.

평화로운 풍경에 사용인들의 시선도 푸근하기만 했다.

한동안 어수선했던 공작가가 이토록 평화로워진 건 전부 공작부인의 세심함 덕이었다. 세작으로 의심되는 이를 함부로 벌하기보다 명확하게 상황을 따져 본 후 확정된 후에야 벌을 내렸다.

의심받은 이들에게는 보상했고 충직한 이들에겐 더 큰 상을 주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간 의심스럽게 굴며 사용인들을 속인 일에 대해서는 사과까지해 왔다. 귀족이 그런 일로 사과까지 하다니. 사용인들은 자신을 인간적으로 대하는 공작 부인을 향한 호감이 더욱 커졌다.

물론 분위기가 좋아진 가장 큰 원인은 축제와 결혼식 준비로 인한 부가 가치였다.

사용인들은 휴식 시간만 되면 받아 온 천을 꿰매거나 수를 놓으며 기대감에 부풀었다. 자신이 만든 물건이 상품화되고 수익이 난다는 게 신기해하면서도 무언가 만들어 낼 때마다 보상을 받을 수 있어 의욕적이었다.

앤시아의 하녀로 돌아온 엘리도 한가할 때마다 천을 꺼내 이리저리 매만지고는 했다. 그런 엘리를 못마땅해하면서도 안나는 딱히 말리지는 않았다. 주인인 앤시아의 묵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앤시아가 노아를 안고 꽃을 구경시켜 주는 사이 계속 곁에서 지켜보던 유모가 손을 내밀었다.

“마님, 무거우시죠? 아기님은 제가 안을게요.”

“고마워, 유모, 실은 팔이 뻐근했거든.”

앤시아는 최근 들어온 유모로 인해 무척 편안해졌다. 지금도 갑자기 잠이 든 노아를 알아챈유모가 능숙하게 데려간 덕에 뻐근하던 어깨가 편안해졌다.

“노아가 요즘 부쩍 무거워졌어.

유모 덕분인가 봐.”

“제가 도움됐다니 기쁩니다, 마님.”

안나를 통해 소개받은 믿을 만한 유모는 그녀를 보고 낯설어 울기만 하는 노아를 살뜰히 보살폈다. 유모의 정성과 능숙함에 얼마 지나지 않아 노아도 울음을 그치고 의지하기 시작했다. 그 덕에 앤시아는 종종 유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쉴 수 있었다.

“마님, 아기님께서 잠투정이 많이 줄어드셔서 제가 모시고 자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 주면 고맙지만, 괜찮을까?”

“아기님이 마님을 계속 찾으시면 늦은 시간이라도 찾아뵙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마님. 다른 귀족 집안에선 더 일찍 아기님을 따로 재우시는걸요. 마님께선 백일 넘게 함께 지내오셨잖아요.”

“그런가?”

“그럼요, 마님. 그럼 오늘은 부부 침실에서 주무시도록 준비해 드릴게요.”

엘리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앤시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엘리와 비앙카가 그녀를 욕실로 이끌었다.

오랜만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향을 듬뿍 먹여 가며 마사지까지 받았다.

모두의 노력 덕에 앤시아는 몇 달 만에 부부 침실에 누울 수 있었다.

막상 부부 침실에 눕기는 했으나 해야 할 일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간 아기 돌보랴 축제에 결혼식 준비하랴 초대장을 보내는 것까지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지금도 리샤르가 오기 전까지 초대장이라도 써야 하나 손끝이 근질거렸다. 오랫동안 탑에서 뒹굴뒹굴했던 게 무척 오래전 일처럼 느껴질 만큼 하루하루가 바빴다.

“부인.”

“아, 오셨어요?”

침대 위에 얌전히 누워 손끝만 움직이던 앤시아가 리샤르의 부름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앤시아 딴에는 사심 없이 몸을 일으켰으나 바라보는 리샤르의 시선은 그렇지 못했다.

기사단과 마수 토벌을 다녀온 리샤르는 부부 침실에서 편안히 누워 있는 앤시아를 보고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이곳에서 앤시아와 함께하는 시간이 무척 오랜만이었다.

며칠 만에 한껏 꾸민 앤시아와 마주한 리샤르는 곧바로 그녀를 끌어안았다. 흙먼지와 마수의 피냄새만 맡았던 기억이 한순간에 날아갈 만큼 달콤한 향을 흠뻑들이마시며 부드러운 아내의 몸을 다치지 않을 만큼 강하게 안았다.

“앤시아. 보고 싶었소.”

“저도요.”

앤시아를 끌어안은 채 침대에 누운 리샤르는 눈을 마주하며 뺨을 쓰다듬었다.

“오랜만에 함께 눕는 것 같군.”

“맞아요. 당신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도 오랜만이에요.”

“이런. 더 가까이서 봐도 돼.”

풍부해진 리샤르의 표정에 앤시아는 푸스스 웃으며 입을 맞췄다.

조금 까슬해도 표정만은 밝은 리샤르의 얼굴을 매만지는 이 시간이 무척 행복했다. 앤시아의 얼굴에 기쁨만이 가득했다.

“부인이 행복해 보여.”

“네, 행복해요. 이제 큰 위험은다 지나갔잖아요. 너무 기뻐요.”

리샤르 역시 황태자 카일루스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처음 황제가 독에 중독되어 있으니 해독만 하면 모든 일이 해결될 거라고 앤시아가 말했을 때리샤르는 당황스러웠다. 황제를 만나기는커녕 황궁에 가 본 적도 없는 앤시아가 무얼 근거로 저리 확신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미 앤시아를 완벽하게 믿지 못해 그녀를 탑에 가두고 오랜 시간 감금한 후였다. 설령 그녀가 틀렸다 해도 리샤르는 앤시아가 원하는 대로 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앤시아의 말이 틀렸다 하더라도 해결할 방법은 있었다.

리샤르는 황태자를 찾아가 마석유통에 대한 으름장을 놓을 생각도 하고 있었다. 마석 채굴장을 폭파하고 마수 토벌조차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

영지 주변으로 벽을 쌓아 마수의 접근을 막고 외지인의 방문도 끊기겠지만, 그 안에서 안전을 도모하며 살아가리라. 어차피 공작가가 마석으로 인해 벌어들이는 건 황궁이 취하는 마석에 비하면 쥐꼬리 수준. 이미 선대들이 축적한 부가 넘쳐 나는 수준이었다.

마석의 수급이 끊긴 이유가 황태자 탓이라며 압박을 받게 하려 했다. 그럴 필요도 없이 앤시아는 몇 마디 말로 황제를 설득했고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갔다.

황제 역시 공작가에 대해 아예 수작을 부리지 않는 건 아니나 위협이 될 수준은 아니었다. 무력으로는 이겨 낼 자가 없는 그 윈티드 공작가에 여러 세작을 뿌리고 공작 부인의 납치를 사주할 정도로 선을 넘은 건 카일루스가 유일했다.

“여보.”

앤시아의 부름에 리샤르는 떠올리던 생각을 지우고 눈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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