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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이혼은 쉬울 줄 알았다-148화 (완결) (148/148)

“노아야. 내 아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특별한 아이.”

문자 그대로 노아는 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아이였다. 원래는 등장하지 않는 존재였기에 앤시아에겐 이곳을 현실과 묶어 주는 큰 매듭과도 같았다. 노아를 보면 이 아이를 지키기 위해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딸랑이를 흔들며 노아를 보듬었다. 한참 웃으며 즐거워하던 노아가 곤히 잠든 후에야 앤시아는 깊은 피로 감을 느꼈다. 도저히 부부 침실까지 갈 기운이 없어 유모에게 노아를 맡기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평소라면 앤시아가 잠들기 전까지 비앙카와 엘리가 따라붙었을 테지만, 비앙카는 떠났고 엘리도 미리 보낸 터라 아무도 없었다.

오랜만에 방에 홀로 누운 앤시아는 불현듯 어색함을 느꼈다.

자리에서 일어나 비앙카가 항상 서 있거나 종종 졸던 소파를 쳐다보았다. 처음엔 엘리에게 등이나 팔을 얻어맞으면서도 보는 눈이 없을 때마다 소파에 앉던 비앙카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항상 저 소파 옆에 서 있었다.

자유롭던 비앙카가 공작가 하녀로 적응해 가는 걸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그녀가 떠나며 보인 환한 웃음을 떠올리니 기분이 이상했다.

소파에 다가가 살며시 앉아 보니 푹신하게 몸을 감싸 주는 게 눈만 감으면 푹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래서 이 소파에 앉으면 졸았던 거구나.”

뒤늦게 안 사실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비앙카가 아니었다면 아이를 가지지 못했을 허약한 몸은 임신과 출산을 할 만큼 건강해졌다. 게다가 밤늦게까지 깨어 있어도 버뎌 낼 만큼 일반인과 비슷해졌다.

단지 최근에 좀 쉽게 피로해지기는 했다. 일이 많기도 했지만, 진료를 받아 볼까 싶을 만큼 피로감이 심했다.

“음… 약을 다시 늘려야 하려나.”

비앙카가 조제법을 의사에게 알려 주고 간 터라 약을 늘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늘따라 유독 어지럽기도 하고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쏟아지는 졸음에 꾸벅꾸벅 졸던 앤시아는 문득 이런 자신이 낯설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최근 생리를 하지 않았던 거 같은데?”

그제야 앤시아는 한 가지 가설을 떠올렸다.

혹시나 하면서도 확신이 들었다.

아직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배 위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은 앤시아의 목소리가 기쁨으로 가늘게 떨렸다.

“아가가 생긴 거야?”

노아를 가졌을 때는 막연히 피곤하다고만 느꼈지만, 이미 한번 경험했던 일이었다.

믿기지 않으면서도 기대감이 들었다. 당장 의사를 불러오고 싶은 마음을 참아 내기가 힘들었다.

언제 졸렸냐는 듯 또렷해진 눈으로 방을 서성이던 앤시아가 의사를 찾아가기 위해 숄을 걸쳤다. 막 방을 나서려던 앤시아는 문을 열고 들어서는 리샤르와 맞닥뜨렸다.

“침실로 오지 않기에 와 봤더니 어딜 가려는 건가?”

“여보.”

앤시아의 눈이 그렁그렁해진 걸 본 리샤르의 행동이 다급해졌다.

주변에 별다른 기척이 없음을 확인하고도 앤시아를 감싸 안으며 보호했다.

“어째서 울고 있지? 슬퍼 보이는 건 아니고… 혹시 울 정도로 좋은 일이 있는 거요?”

요즘 리샤르의 눈치가 제법 빨라졌기에 정답을 바로 알아챘다.

누구보다도 먼저 이 소식을 알리고 싶었기에 앤시아는 눈물이 고였지만 활짝 웃는 얼굴을 보였다.

“저 의사를 만나고 싶어요.”

“의사를? 어디가 아픈가? 당장 여기로 의사를 부르지.”

“아니에요. 그렇게 급한 건 아니에요.”

당장 의사를 부르겠다며 앤시아를 앉히는 리샤르의 모습에 조급했던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어차피 밤도 깊어 가고 내일 일어나자마자 의사를 불러도 될 일이었다.

불안해하는 리샤르에게 앤시아는 다시금 웃음을 보였다.

“내일 불러 주세요.”

“지금은 아프지 않더라도 빨리 의사에게 보이는 게 좋을 거요.”

“그런 거 아니에요. 음… 내일 우리 노아를 받아 준 의사를 다시 불러 줄 수 있죠?”

개월 수는 맞추지 못했지만, 함께 지내는 동안 충분히 신뢰할 수 있게 된 의사와 산파를 언급하자 리샤르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바뀌었다.

“설마.”

“저도 그냥 짐작하는 것뿐이지만, 맞을 거 같아요.”

“당장 불러오지.”

앤시아가 다급히 말리려 했지만, 리샤르가 그보다 더 빨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와 함께 돌아온 리샤르는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음에도 상기된 얼굴이었다. 얼떨떨한 얼굴로 앤시아의 진맥을 하고 청진기를 대어 본 의사는 무척이나 신중했다.

두세 번 확인한 끝에 의사는 확신에 찬 얼굴로 웃음을 보였다.

“축하드립니다. 내년이면 노아님께 동생이 생기실 겁니다.”

예상대로였다. 앤시아의 얼굴에 행복한 감정이 배어드는 걸 보며 의사는 진중한 얼굴로 덧붙였다.

“3개월 정도로 보이나, 공작 부인께서는 이전에도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셨기에 차후 꾸준히 진료를 통해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늦은 시간에 미안하군.”

공작의 사과에 의사는 놀란 듯 했으나 고개를 숙여 보이고 물러났다.

의사가 물러가고 단둘이 되자리샤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큰 숨에 안도가 깃들어 있어 앤시아는 그가 얼마나 긴장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앤시아를 조심스럽게 침대에 앉히고 그 앞에 무릎 굽힌 리샤르의 눈은 애정으로 가득했다.

“정말 고맙소.”

“저도 고마워요. 둘째는 생각도 못 했는데 정말 몸이 많이 건강해졌나 봐요.”

기뻐하는 앤시아를 보며 리샤르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 정말이지 비앙카에게 상이라도 내려야 겠군.”

앤시아의 몸이 이렇게나 회복된 것은 전부 비앙카의 덕이었음을 리샤르도 인정했다. 그의 입에서 비앙카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었기에 앤아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 약속은 나중에 비앙카가 돌아오면 지켜 주세요.”

아직 비앙카가 떠났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리샤르는 의아해하면서도 곧 앤시아에게 집중했다.

“혹시 뭔가 필요한 건 없소? 이전에 못 해 준 만큼 이번에는 뭐든 해 주고 싶어.”

“갑자기 그런 말을 하셔도 생각 나는 게 없어요.”

“식욕은? 임신하면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게 많아진다던데.”

“음… 화채가 먹고 싶기는 한데.”

리샤르의 눈빛이 단단해지는 걸보니 마수의 숲을 뚫고 가더라도 어떤 과일이든 쟁취해 올 것 같았다. 저런 눈을 한 공작을 누가 말리겠는가.

앤시아는 즉각 리샤르의 착각을 풀어 주었다.

“작년부터 영지에 과일 가게가 새로 들어온 거 잊으신 건 아니죠?”

“아.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같군.”

“그리고 요리장이 항상 절 위해 웬만한 과일은 갖춰 두잖아요.”

“그랬지. 그대를 위해 항상 전력을 기울이라고 했으니.”

앤시아의 무릎 위에 손을 얹은 채 올려다보고 있는 리샤르의 모습에 앤시아는 자꾸만 웃음이 났다.

“왜 바닥에서 그러고 계세요?”

“부인이 너무 위대해 보여서.”

무슨 소리인가 의아해하자 기뻐하던 리샤르의 얼굴에 미약한 근심이 비쳤다. 무슨 일인가 싶어 들여다보자 리샤르의 진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토록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음에도 임신 소식에 두려워하기는커녕 기뻐해 주니 감동했소.”

“아… 잊고 있었는데. 정말 아팠어요.”

출산의 고통을 떠올린 앤시아가 원망하듯 리샤르를 흘겨보자 황급히 몸을 일으켜 조심스레 끌어 안았다.

“이번에는 어떻게든 수를 내겠소.”

무슨 수를 낸다는지 걱정스러우면서도 리샤르의 단단하면서도 믿음직한 품이 마음에 들어 얼굴을 기댔다.

“우리 아이만 무사하면 아파도 괜찮아요.”

“나는 그대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비장하기만 한 리샤르의 단호한 얼굴에 앤시아는 손을 뻗어 찌푸려진 미간을 문질렀다. 가벼운 접촉만으로도 리샤르의 깊게 팬미간이 스르륵 풀렸다.

“고마워요. 하지만 지금은 우리 행복한 것만 생각해요.”

리샤르와 함께 만들어 가는 행복이 앤시아를 한없이 기쁘게 했다.

이제 더는 원작을 떠올릴 일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의 모든 일은 새로 쓰일앤시아의 삶이자 미래였다. 노아와 태어날 아기와 함께 새로운 하루하루가 펼쳐질 터.

평범한 미래야말로 가장 바라는 바였다.

이런 행복한 순간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으며 잠들고 싶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밤이 될 것 같았기에.

“꼭 안고 잠들고 싶어요.”

“그대의 뜻대로.”

리샤르는 순순히 앤시아의 뜻대로 그녀를 안아 침대에 눕혔다.

항상 사랑스러운 아내는 오늘따라 더욱 아름다웠다. 뺨을 몇 번 쓰다듬는 사이 졸음이 몰려온 눈조차 예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느릿하게 눈꺼풀을 깜박이다 이내 눈을 감은 앤시아의 이마에 입 맞추며 리샤르는 감정이 흐르는 대로 속삭였다.

“사랑하오, 앤시아.”

“응… 저도요, 리샤르.”

잠에 취해서도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는 앤시아를 소중히 끌어 안으며 리샤르는 겨울의 긴 밤이 더욱 길기를 바랐다.

오늘도 그윈티드 공작가는 평화로운 밤이 지나갔다.

-완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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