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80)

#011

알렉산더는 클레어가 메이너드 저택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서서 지켜보았다.

뒤에서 다른 이들이 그를 불렀지만, 알렉산더는 요지부동이었다.

혹여나 그녀가 저택으로 돌아가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염려한 탓이었다.

클레어가 무사히 저택으로 들어간 후에도, 한참이나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그는 조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갑작스러운 습격을 받았을 때의 일이었다.

클레어를 창고 구석에 숨겨두고 케일럽의 수하들을 척살하면서도 그는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 창고 구석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마침내 모든 이들을 처리하고 상자 뒤를 확인했을 때, 그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클레어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한 채 두 손으로 입을 꼭 틀어막고 있었다.

덜덜 떨리는 손끝은 그녀가 겪은 두려움을 여실히 내비치고 있었다.

그뿐일까?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여태껏 이런 일반적인 사람의 반응을 접해보지 않았기에 알렉산더는 클레어의 두려움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알렉산더는 깨달았다.

자신이 떠나야 할 때가 왔음을.

이 이상 자신이 창고에 머물렀다가는 클레어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줄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과 함께 있었다는 정보가 노출된 이상, 클레어의 안위가 위험해질 수밖에 없었다.

알렉산더는 그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이곳을 정리해 떠나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알렉산더는 클레어를 안아 들고 창고를 떠나, 메이너드 백작 저를 향하였다.

자신의 수하들이 때마침 이 마을을 찾은 것은 어쩌면 신의 안배가 아니었을까.

알렉산더는 묵례를 마치고 천천히 떠나가는 클레어의 뒷모습을 눈 안 가득 새겼다.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참을 서 있던 그가 이윽고 몸을 돌렸다.

“크루거.”

“예, 공작님.”

알렉산더의 부름에 크루거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케일럽은 생포했다고 했지?”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오늘 습격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잔당은 아직 남아있는 것 같군. 일단 케일럽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알렉산더는 빠르게 생각을 마치고 크루거를 향해 지시했다.

“예, 이쪽으로 오십시오.”

크루거가 조용히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알렉산더 역시 입을 꾹 단은 채 굳은 얼굴로 크루거의 뒤를 따랐다.

창고가 습격당했다는 건, 곧 그의 위치가 이미 크루거 일당에게 발각되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클레어가 매일 같이 창고를 드나들었으니, 클레어에 대한 것 역시 그들에게 흘러 들어갔을 터였다.

알렉산더는 이곳을 떠나기 전에, 케일럽의 잔당들을 찾아내 정리해야만 했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

지겹게 쏟아지던 장마가 드디어 끝이 났다.

언제 먹구름이 끼었냐는 듯이 하늘은 선명한 파란색이었다.

나는 잠시 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알렉스와 있던 창고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객들에게 습격당한 날로부터 꼬박 사흘이 지났다.

나는 그날 이후로 창고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칼부림이 일어난 장소를 찾는다는 게 말만 쉽지, 그때의 끔찍한 기억과 다시 조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풋풋한 비 냄새에 섞인 지독한 피비린내와 사람들의 끔찍한 비명.

내가 직접적으로 목도하지는 않았어도, 간헐적으로 들려오던 소리와 코끝을 찌르는 불쾌한 냄새만으로 나에게 깊은 거부감을 심어주었다.

게다가 알렉스마저 창고로 오지 말라고 했으니 내가 거기에 굳이 갈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일이 생겼다.

창고에서 칼부림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마을에는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영지의 관리자인 영주성에 그 어떤 보고도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장마 기간에야 사람들이 돌아다니지 않으니 창고에 갈 일이 없었겠지만, 장마가 끝난 지금은 얘기가 달라진다. 분명 한 명쯤은 오다가다 창고에 들렀을 거라 예상했는데……. 이상하게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분명히 거기에 시체도 있을 거고, 피도 흥건할 텐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설마하니 사람들이 그것들을 보고도 모르쇠로 일관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장마 사이에 살인사건이 벌어졌는데, 아무렴 그럴 리는 없지.

그럼 알렉스가 그곳에서 벌어진 일들을 모두 정리했나?

그와 헤어지기 전에 수하들을 만났으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다.

알렉스는 이 제국에서 황제 다음가는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말 한마디면 그런 뒤치다꺼리 해줄 사람은 널리고 널렸을 터였다.

그의 수하들 역시 알렉스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는 자들이었으니 시체 처리하는 것쯤이야 아무도 모르게 정리했겠지.

그럼 역시 알렉스가 뒤처리한 건가?

하긴, 악당인데 뭔들 못하겠어?

몸을 가볍게 떨며 진저리를 쳤다.

그동안 나는 막연히 알렉스를 소설 속 악역이라고만 생각해왔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내게 있어서 알렉스라는 존재는 현실감이라고는 조금도 없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간과한 게 있었다.

소설이라고 비쳐 보던 세상이 이제는 나의 세상이라는 것.

당장 내 앞에 있던 알렉스가 악행을 저지를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잘생기고 몸도 좋았으며, 내 생각보다 성격이 그렇게 모난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난 그가,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달리 그렇게까지 막 나가는 악역은 아닐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전부 내 착각이었다.

그는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원작대로 모든 것이 진행된다면, 나 역시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원작 속에서 메이너드 백작가를 멸문시켜버리는 잔악한 위인.

베로니카 아가씨를 제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그게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베었을 악역무도한 사람.

그게 바로 알렉산더 베르첼이었다.

잘생긴 외모와 미소에 속으면 안 되었다.

나는 나를 향해 옅게 미소 짓던 알렉스의 얼굴을 떠올리다 이내 고개를 털어 생각을 지워버렸다.

차라리 잘 되었다.

알렉스도 메이너드 백작가를 완전히 떠난 것 같으니, 한동안은 아가씨와 알렉스가 만날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클레어.”

생각에 잠겨 있던 나를 일깨우듯,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느껴지는 인기척에 나도 모르게 몸을 크게 움찔거렸다. 경직된 어깨를 애써 내리며, 나는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베로니카 아가씨가 있었다.

베로니카 아가씨는 조금 염려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니?”

“네? 뭐가요?”

갑작스러운 베로니카 아가씨의 물음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아가씨는 사뿐사뿐한 걸음으로 내 옆에 다가와 섰다.

“요 며칠 사이 기분이 안 좋아 보여서.”

내가 기분이 별로였던 게 다 티가 난 모양이다.

사실 알렉스와 마지막으로 있었던 그 칼부림 사건으로 인해 나는 줄곧 마음이 무거웠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창고에서 벌어졌을 살해 현장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듯했다.

“그냥… 비가 그치고 나니까 마음이 좀 싱숭생숭하네요.”

비가 오던 그사이에 너무 많은 일들이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하나 같이 내가 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찬 것들이었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전생의 기억과, 알렉스라는 존재.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일어났던 참극까지……. 이미 그것만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그래도…… 잘 된 거겠지?

어쨌든 내가 아가씨와 알렉스의 만남을 막았으니, 적어도 지금 우리의 상황이 원작처럼 진행되지 않을 테니까.

근데, 그럼 나중에는 어떡하지?

아가씨가 평생 알렉스를 만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아가씨와 알렉스는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두 사람은 어쨌건 이 나라의 귀족이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때가 되면, 정말로 어쩔 수 없겠지.

…….

내 목숨을 보전하는 것은 쉬웠다.

아가씨의 곁을 떠나면 나는 차후에 벌어질 비극에서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은?

나는 평생을 이 집의 하녀로 살아왔다.

내 어머니께서는 아가씨의 유모였고, 나는 태어나면서 줄곧 아가씨와 함께 자라왔다.

아가씨가 내 자매나 마찬가지였고, 저택의 사람들이 내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을 알면서도 나 혼자만 도망칠 수 있을까?

……아니, 그렇게는 못 한다.

그럼 일단은 여기 남아있어야겠지.

그래도 내가 알렉스의 생명의 은인인데, 좀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정 안 되면 아가씨를 데리고 도망치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하나?

“아가씨.”

“응?”

내가 불현듯 아가씨를 부르자 베로니카 아가씨가 빙긋 웃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뭘?”

뜬금없는 질문이었다는 걸 알았지만, 사실대로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사실 이 세계는 책 속의 세계이고, 아가씨는 이 세계의 주인공이며, 또한 악당인 알렉산더 베르첼 공작에 의해 저택의 사람들이 모두 몰살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걸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마 나 혼자 미친 취급 당하고 끝나겠지.

“그냥, 이것저것이요.”

결국 나는 입매를 끌어 웃으며 대답을 회피했다.

“복잡한 일이니?”

“좀 그래요.”

“그래…….”

베로니카 아가씨가 근심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이 세상의 주인공답게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미소였다.

“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클레어 난 네가 뭐든 잘해 낼 거라고 믿어.”

그렇게 말한 베로니카 아가씨가 내 등을 가볍게 도닥거려 주었다.

“힘내.”

그 손길이 너무 다정하고 상냥해서, 한순간이지만 도망칠까 했던 내 비열한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아가씨.”

“왜?”

“한 번만 안아봐도 돼요?”

“그럼. 당연하지. 자.”

아가씨는 내가 안기 편하도록 두 손을 활짝 벌려주었다.

나는 그런 아가씨를 꼭 끌어안았다.

뒤이어 다짐하듯 작게 중얼거렸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노력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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