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4화 (74/80)

#074

이튿날이 되어서야 앤스티스 공작은 알렉산더로부터 받은 충격적인 소식에 베르첼 공작가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그럼 클레어 에버니저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앤스티스 공작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클레어 에버니저가 실종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건 말이 안 됩니다. 분명 베르첼 공작가의 장미 기사단 단장인 크루거 경이 그녀와 함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혹 사상자 중 그가 있었습니까?”

앤스티스 공작이 알렉산더에게 물었다.

알렉산더는 무서울 정도로 표정이 없었다.

안 그래도 앤스티스 공작에게 있어서 알렉산더는 상대하기 껄끄러운 존재였다.

그가 베르첼 공작가에 며칠 머물렀을 때는 클레어가 있기 때문인지 알렉산더 역시 많이 풀어져 있었다.

그래서 평소 왜 그를 껄끄럽게 여겼는지 순간 잊고 있었다.

알렉산더는 본래 이런 무뚝뚝하고 차가운 사람이었다.

말 한마디에도 가시가 돋아 있었고, 늘 냉정하고 살벌한 시선으로 상황을 대했다. 마치 주변에 다가오는 사람을 모두 거부하는 듯이.

그런 그가, 오늘은 여느 때보다 차가운 냉기를 풍기고 있었다.

클레어 에버니저의 실종으로 인해.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얼굴에는 옅은 살기마저 서려 있었다.

“사상자 중 단장님은 없었습니다.”

앤스티스 공작의 물음에 답한 것은 장미 기사단 중 한 명인 카인이었다.

카인 역시 알렉산더와 마찬가지로 늘 무표정을 고수하는 인물이었다. 비슷한 부류의 두 사람 사이에 끼자 앤스티스 공작은 머리가 절로 지끈거렸다.

“그럼 대체 크루거 경과 클레어 에버니저가 어디로 사라졌다는 말입니까?”

베르첼 공작가의 장미 기사단은 소수의 정예로, 뛰어난 실력을 갖춘 자만이 발탁될 수 있었다.

그런 기사단의 단장을 맡을 정도라면 크루거 또한 비범한 실력을 갖고 있을 터.

그런데 그가 함께 있음에도 클레어가 사라졌다.

이 말은 두 가지로 풀이할 수 있었다.

첫째로, 크루거와 클레어 두 사람이 다른 사람들은 예상하지 못한 어떤 위험에 처했다는 것.

둘째로, 크루거가 배신자라는 것.

두 가지 모두 가능성은 충분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알렉산더는 후자의 가능성을 더욱 크게 잡았다.

그만을 위한 정예 기사단이었지만, 이미 한 번 케일럽에게 배신당한 전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최근 일어난 사건들을 생각해 봐도 그랬다.

저택 내부에서 발생한 습격이나 독살 시도까지.

외부의 세력보다는 내부에서 이들을 돕는 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더욱 납득이 갔다.

“테넌트.”

“예, 각하.”

테넌트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고개를 숙였다.

“그때 상황을 자세히 말해.”

“갑작스럽게 날아든 화살이 마차를 끌던 말에게 적중했습니다. 그러자 말이 날뛰며 마차가 크게 휘청거렸고, 오래가지 않아 마차가 전복되었습니다.”

테넌트는 그때 당시에 자신이 보았던 그대로 알렉산더에게 설명했다.

마차가 전복하면서 습격자들이 들이닥쳤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전투가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차에서 클레어가 나왔고, 크루거가 클레어를 안아 든 채 사라졌다.

다들 크루거를 믿고 있었기에 아무도 이를 의심하지 않았다.

같은 장미 기사단이었던 이들은 더더욱 그랬다.

“혹시 단장님이 감당하기 힘든 위험에 빠진 건 아닐까요?”

페이비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말했다.

그것도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었기 때문에 자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장님 혼자 클레어 양까지 보호하면서 싸우려면 곤란한 상황에 부닥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때 알렉산더의 날카로운 시선이 자일을 향했다.

자일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클레어의 실종을 확실시하고 난 뒤로 벌써 하루째였다.

태연하게 탁상공론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러나 아무런 계획 없이 직접 발로 뛰어다니는 것도 곤란했다.

애초에 두 사람이 어디 있는지도 모를뿐더러, 알렉산더 쪽에서 움직임을 보였을 때, 크루거가 어떤 방식으로 나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클레어를 단순히 인질로만 데리고 있는 것은 아닌 듯했다.

그녀를 독살하려 한 것이 그 증거였다.

이미 그들은 한 차례 그녀를 죽이려 했다.

설령 독살이 아니었어도, 만일 클레어의 작업실에서 알렉산더가 그녀를 잡아채지 않았더라면, 클레어는 필시 화살에 맞았을 것이다.

단순한 위협용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들은 클레어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입장을 줄곧 보여왔다.

괜히 그들을 자극해서는 안 되었다.

“그런데 정말 단장이 배신한 거라면 이상하긴 합니다. 케일럽이야 로벨린 백작가의 기사였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단장은 아니지 않습니까?”

카인이 알렉산더를 향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게 문제였다.

케일럽이 알렉산더를 배신하고 나서, 공작가에서는 다른 장미 기사단의 출신을 대대적으로 확인하여 배신자들을 솎아냈다.

크루거는 노이만 준남작의 조카이자 양자이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그의 눈에 들어 노이만 준남작에게 입양되었다. 노이만 준남작은 퇴역 기사로, 황실 기사단에서 근위 기사로 활동한 사람이었다.

검을 잘 쓰는 것도 노이만 준남작의 피를 이어받았기 때문이라고 여겼고, 귀족 예법을 아는 것 역시 준남작에게 입양되었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런 그가 대체 알렉산더를 배신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알렉산더는 크루거의 정보가 적힌 서류를 바라보며 인상을 썼다.

어쩌면 이 정보 자체가 거짓일 수 있었다.

아무래도 크루거에 대한 정보를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마냥 넉넉한 것은 아니었기에 조사 방향을 좁힐 수밖에 없었다.

알렉산더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당연하게도 로벨린 백작가였다.

로벨린 백작과 크루거 노이만의 관계를 알게 된다면 숨겨져 있던 비밀이 풀리겠지.

“카인.”

“예, 각하.”

“노이만 준남작과 로벨린 백작가의 관계에 대해서 조사해. 그리고 크루거 노이만이라는 존재가 실재하는지에 대해서도.”

카인을 비롯한 장미 기사단은 알렉산더의 말에 몸을 움찔거렸다.

알렉산더의 말이 어떤 의미를 띠고 있는 건지 그들 역시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만에 하나 틀린 정보가 있다면 책임은 그대가 물어야 할 거야.”

“……예.”

카인은 곧장 대답을 마치고 알렉산더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뒤이어 몸을 돌린 그가 알렉산더의 집무실을 나섰다.

알렉산더는 닫히는 문을 보며 이마를 짚었다.

‘크루거가 정말로 클레어를 납치한 것인가?’

의문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가 정말 케일럽처럼 로벨린 백작가의 사람인 걸까?

혹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는 크루거가 보였던 모습에서 묘한 괴리감을 느꼈다.

클레어가 독을 마셨을 때, 크루거는 흡사 충격을 받은 듯 꿈쩍도 하지 못한 채 클레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알렉산더의 지시에도 선뜻 움직이지 못했을 정도로 그는 많이 놀란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만 떠올린다면 크루거가 클레어를 납치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괴한들에 의해 앤스티스 공작가의 마차가 습격당했을 때 두 사람이 함께 사라진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둔 조사가 필요했다.

“테넌트, 페이비, 자일.”

알렉산더가 이름을 부르자 그들이 알렉산더를 주시했다.

“병사들을 이끌고 인근을 샅샅이 뒤지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세 명은 동시에 대답한 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알렉스의 집무실을 나섰다.

집무실에 남은 것은 앤스티스 공작과 알렉산더뿐이었다.

알렉산더는 고개를 들어 앤스티스 공작을 올려다보았다.

마음만 같아서는 앤스티스 공작에게 주먹이라도 갈기고 싶었다.

마차가 전복되었을 때, 클레어를 그대로 내보내지 않았더라면, 클레어가 실종될 일도 없었을 터였다.

게다가 마차가 전복되어 클레어 또한 다쳤을지도 몰랐다. 그런 클레어에게 별 말 같지도 않은 잡일을 시키다니…….

이것만으로 그에게 주먹을 날릴 만한 타당한 이유가 되었다.

알렉산더의 맹렬한 시선에 앤스티스 공작은 어정쩡한 몸짓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만약 크루거가 배신자가 맞다면, 기사를 관리하지 못한 알렉산더의 탓이 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봤을 때, 만약 자신이 클레어에게 마차 밖으로 나가 보란 지시를 내리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실종되지 않았을 것이다.

옅은 죄책감이 그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무리해서라도 그녀를 찾았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일이 이렇게까지 커지지 않았을 것이었다.

느직한 후회가 그를 잠식했다.

앤스티스 공작은 답답하게 막혀오는 심정에 한숨을 내쉬었다.

베로니카는 클레어를 유난히 아꼈다.

이제 돌아가고 나면 베로니카가 클레어의 행방에 대해 물을 게 뻔했다.

이 일을 베로니카에게 어떻게 설명해주어야 할지도 그에게는 고민이었다.

“이만 나가보지?”

알렉산더가 앤스티스 공작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그럼 진전되는 내용이 있으면 공유 부탁드리겠습니다.”

“…….”

알렉산더는 답이 없었다.

앤스티스 공작은 찜찜한 기분으로 알렉산더의 집무실에서 나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타고 왔던 말에 오른 그는 곧장 앤스티스 공작가로 향했다.

앤스티스 공작가의 정원을 지나 저택 현관에 들어서자 베로니카의 모습이 보였다. 마차 사고의 후유증으로 그녀는 아직 혼자 서 있기도 힘들어 하녀의 부축을 받아야만 했다.

베로니카는 앤스티스 공작이 말에서 내리자 그에게 다가갔다.

“공작님, 클레어는 어떻게 된 건가요?”

앤스티스 공작이 예상했던 대로 첫 질문은 클레어의 행방에 관한 것이었다.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인 앤스티스 공작이 조심스럽게 클레어의 소식을 입에 올렸다.

“클레어 에버니저가, 납치된 듯합니다.”

“……네? 방금, 뭐라고…….”

베로니카는 앤스티스 공작의 말에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이해할 수 없듯이 그의 말을 곱씹던 베로니카가 이내 입을 작게 벌렸다.

“클레어가 납치됐다고요?”

“……예. 정확히는 실종되었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베르첼 공작가에서는 이미 확신하는 듯했습니다.”

불안한 눈으로 앤스티스 공작을 바라보던 베로니카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앤스티스 공작이 이상함을 눈치챈 순간, 베로니카가 그대로 자리에 쓰러졌다.

“레이디 베로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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