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혹시 서브남주? (2)
나는 그 말에 파바박, 하고 인소 특유의 남주 또는 서브남주의 가정사가 스쳐 지나갔다.
고위층의 부모. 그리고 방치된 자식. 그 자식은 엇나가고 결국 비뚤어지는데, 부모는 여전히 자식을 방치한다. 결국 자식은 완전히 비뚤어져 선택해선 안 될 길을 가는데….
그것을 붙잡는 게 여주의 역할이었지. 한참 엇나갈 때 그 중재자 역할을 보통 여주가 차지했었다. 거기에 감화된 남주 또는 서브남주가 여주에게 매달리고… 또 둘은 피 터지게 전쟁하고… 결국 여주는 남주 차지가 되고…, 뭐 그런 내용.
근데 저 녀석은 남주인가, 서브남주인가.
주위에 저 친구를 제외하곤 눈에 띄는 인상은 또 없었다. 보통 인소 남주라면 그 친구들이 있고 그 친구들도 꽤나 잘생기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쟤는 서브남주인 건가?’
나는 한창 속으로 추측하는데, 옆에서 어깨를 흔드는 통에 정신이 퍼뜩 차렸다.
“아, 그래. 한번 말해 볼게.”
“휴….”
서이수는 내 대답에 안심됐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나는 경찰에게 다시 한번 고개 숙이며 사과하고 부탁했다.
“저기, 죄송하지만 저기 있는 저 학생도 데려가도 될까요?”
“뭐? 하지만 학생은 성인이 아니다 보니….”
“부탁드립니다. 쟤네 집이 부모님 오실 환경이 못 돼서….”
“흠…. 어쩔 수 없지. 데려가 봐.”
경찰은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다행히 그리 성실한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일거리를 계속 두고 싶지 않아 해서 수월하게 풀어 줬다.
…아니, 이게 다행인 건가? 우리나라 공권력, 이대로 괜찮은 거야?
나는 떠나가는 경찰의 뒤통수를 미심쩍게 바라보다 결국 결과가 좋으면 그만이지 싶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어느샌가 이쪽을 보고 있던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워우…, 눈이 마주치니까 아주 심장 떨리게 잘생겼구만…? 나는 처음 접하는 미인이란 인종에 괜히 긴장이 되었다. 그래도 동생 앞에서 체면은 구길 수 없었던 난 최대한 침착하게 말을 걸었다.
“아, 가도 된대.”
앗. 너무 차가웠나. 말해 놓고도 지나치게 영혼 없는 언사에 아차 싶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의 시선이 냉담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무기질을 바라보는 것처럼 감정 없는 시선에 뭐라 말하지도 못하고 굳어 있는데 그런 절 도와준 건 이 사태를 만든 주범이었다.
“가, 가자. 휘혈아.”
생각도 못 한 도움의 손길은 아주 반가운 일이었지만… 어째, 왜 이렇게 어색하니, 너…? 아, 아니, 잠깐.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내가…, 내가 방금 뭘 들은 거지…?
‘…휘혈? 설마, 설마 이름이 반휘혈이라든가 그런 건 아니겠…지?’
하지만, 왠지 내 추측이 맞을 것 같다. 응. 확실해. 저건. 누가 봐도 인소 같은 이름에 흐린 눈을 했다. 세상에. 요 몇 년간 제대로 느껴 보지 못한 인소 설정을 여기서 다 맛볼 줄이야….
덜컹, 삼천포로 빠졌던 정신이 의자 소리에 깨어났다. 휘혈이라고 불린 애는 말없이 일어나 내 앞을 지나갔다. 나는 황급히 다시 경찰들에게 인사하며 그 뒤를 쫓았다.
“야, 야! 잠깐! 잠깐만!”
바로 가는 건 상관없었지만 감사 인사 하나 없이 가는 게 불만스러웠던 난 녀석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자 그는 발을 멈추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근데 중3이 왜 이렇게 커…?’
팔을 붙잡자 확연히 느껴지는 키 차이에 순간 당황해 하고픈 말을 잊고 말았다. 말없이 내려다보는 그 시선에선 어쩐지 압박까지 느껴졌다. 세상에. 겨우 열여섯 살이 이런 위압감을 준다고? 앞으로의 장래가 참으로 기대되는 인재였다. 어쩐지 오랜만에 심장이 뛰었다.
‘싸워 보고 싶다.’
이런 설렘을 언제 느꼈지?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에 빈손을 슬며시 쥐었다 폈다.
“…누나?”
핫. 나는 서이수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서이나! 정신 차려! 지금이 싸울 때냐! 그럴 체력 있으면 공부에 투자해! 나는 재빠르게 고개를 저으며 다시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마주친 얼굴은 여전히 엄청난 미소년… 아니, 좀 더 자세히 보니 미소년보단 미청년 같기도 하고…?
“누나!”
앗. 또 생각이 딴 데로. 흠흠. 나는 민망하게 헛기침을 했다. …왠지 감사 인사 같은 걸 받을 타이밍도 놓친 기분에 멋쩍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가 녀석의 얼굴에 난 생채기를 발견했다. 서이수에 비하면 꽤나 양반이었지만…….
“…잠깐 따라와 봐.”
꿈틀, 녀석은 아무 말 않고 눈썹을 찌푸렸다. 마치 싫다는 의사를 강렬히 내비친 것 같았다.
와, 이게 말로만 듣던 표정으로 말한다는 그거구나. 나는 속으로 맥없는 생각을 하며 녀석의 의사는 무시하고 팔을 붙들었다.
“서이수! 너도 따라와!”
“어, 응.”
서이수는 어째선지 어리벙벙해 보였지만 내 말에 정신을 차리곤 후다닥 내 뒤를 따랐다. 팔을 붙잡힌 이 잘생긴지 예쁜지 모를 미소년과 미청년의 경계에 선 학생은 내가 억지로 잡아끌자 당황한 건지 방금보다 눈을 크게 뜨며 말없이 따라왔다.
***
그리고 내가 막무가내로 녀석을 끌며 데려온 곳은 우리 체육관이었다.
잠겨 있던 자물쇠를 전부 풀고 껌껌한 체육관의 불을 켰다. 그리고 사무실로 데려와 의자에 둘을 앉혔다.
“잠시만 기다려 봐.”
그리고 서둘러 사무실 안쪽에 있는 약품 상자를 가져왔다. 약품 상자를 가져오자 서이수는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로 앉아 있었다. 누가 봐도 나 긴장했습니다. 라는 얼굴이라 나는 헛웃음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쟨 대체 무슨 배짱으로 같이 가자 한 거야?’
딱 봐도 친해 보이지 않는데 무슨 정신으로 내게 부탁했는지 모르겠다. 가끔 쓸데없이 착한 부분이 있다 보니 어쩜 그런 부분 때문에 도와준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혀를 조용히 차며 녀석의 앞에 앉았다.
“어, 누나. 나는?”
“넌 상처가 너무 많아서 나중에.”
그 와중에 먼저 안 해 준다고 못마땅해하는 게 좀 귀엽긴 했다. 나는 원수 같은 동생 놈의 코를 가볍게 잡아당겼다. 그러자 동시에 앓는 소리를 내는 동생 놈을 휙 무시하고 최소 서브남주로 추정되는 놈의 얼굴을 바라봤다.
“음…. 휘혈이랬던가?”
눈앞의 녀석은 아무 반응하지 않았다. 나는 그 무반응에 멋쩍게 뒷목을 문지르며 물었다.
“상처 좀 봐도 될까?”
“아, 우리 누나. 상처 치료 잘해!”
옆에서 거드는 소리에 힐끗 보니 서이수는 여전히 긴장된 모양인지 어색한 낯으로 있었다.
쯧쯧. 어떻게든 일짱 눈에 들고 싶어 하는 게 가상하구나. 동생 놈아.
나는 원수 같은 동생 자식을 한심하게 보다가 다시 녀석을 봤다. 휘혈이란 친구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 시선에 점점 무안해져 억지로 끌어 올린 웃는 상이 무너지려 할 때, 겨우 녀석의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끄덕.
…지금 겨우 저 대답 하나 기다리려고 이렇게 기다린 거야?
잠깐 좀 허탈해지는 기분에 튀어나오려는 한숨을 억지로 내리눌렀다. 거참, 소통하기 힘든 친구구만. 이것도 인소 세계라 그런 건가? 나는 잠깐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고 싶은 걸 참으며 녀석의 얼굴을 살폈다.
음. 경찰서에서도 느꼈지만 제 동생과는 달리 굉장히 깔끔한 얼굴이었다. 자잘한 상처를 제외하곤 굉장히 멀끔했다. 나는 잠시 경찰서에서 본 북새통의 인원들을 떠올렸다.
‘…역시 일짱 클래스라 이건가? 그런 패싸움에서도 이 정도의 상처라니.’
나는 보이는 대로 상처 소독과 연고를 바른 뒤 반창고를 붙였다. 대충 다 한 것 같긴 했지만 혹시나 싶어 몸 상태를 물어봤다.
그러자 녀석은 잠시 고민하다가 셔츠를 들어 안쪽을 보여 줬다.
‘오… 벌써 복근이…?’
그것도 완전 쫙 짜인 쌔끈한 복근이었다. 게다가 운동을 한 내 눈은 못 속인다. 이건 관상용이 아니라 진짜 실용적인 싸움꾼의 근육이었다.
역시 인소의 일짱 클래스는 중학생이어도 남달랐다. 나는 감탄하며 찬찬히 살피다가 눈에 보이는 자잘한 상처들을 살폈다.
옷 속의 상처도 싸움의 규모에 비해 적었다. 그렇다고 내버려둘 만한 상처들은 아니었다. 그것을 녀석도 알고 있기 때문에 이걸 보여 준 거겠지. 게다가 등 쪽은 상처 치료하기가 어려울 테고 말이다. 나는 그것들을 신중한 손길로 치료했다.
“다른 데는?”
그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 대답에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곤 동생 놈을 쳐다봤다.
“어휴….”
“뭐야, 왜 한숨 쉬는 거야…?!”
“아니다…. 약이나 바르자.”
나는 다시 한번 처참한 동생의 몰골에 한숨이 나오려 했지만 꾹 참고 동생의 상처를 치료했다.
“악! 살살해!!”
“약한 놈은 조용히 해라.”
“으이익…. 안 약하거든?!”
나는 그 소리를 비웃으며 찰싹, 소리를 내며 반창고를 붙였다. 서이수는 악, 소리를 내며 아파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옷이나 벗으라 재촉했다.
“그래서, 졌냐. 이겼냐.”
나는 녀석의 등짝의 상처를 치료하다가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그러자 서이수가 씨익, 웃었다.
“훗…, 당연히 이겼지.”
“뭘 잘했다고 처웃어?”
찰싹, 등짝을 찰지게 내려치자 서이수가 아프다며 몸을 비틀었다. 나는 그런 녀석에게 벗어 둔 옷을 얼굴에 던지고 일어섰다.
“둘 다 입 안은 괜찮아?”
“어? 살짝 터지긴 했는데 괜찮아.”
서이수가 별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걸 확인하곤 옆에 있는 조용한 놈을 쳐다봤다. 녀석은 몇 박자 늦게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행이네.”
나는 바로 핸드폰을 들어, 다이얼을 눌렀다.
“아, 후라이드, 간장, 양념 한 마리씩이요. 네. 네. 도방 무에타이 체육관이요. 네.”
스마트폰은 나왔지만 이제 막 상용화되는 시기인지라 아직 그것을 살 형편은 못됐다. 아쉽게나마 사용하는 2G 폴더폰을 접어 끄는데 서이수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보고 있었다.
“어…, 치킨 사 주는 거야?”
“그래. 감사히 처먹어라.”
“…왜, 왜? 누나 이런 거 싫어하잖아.”
서이수는 웬일로 의기소침해져 제 눈치를 봤다. 그동안 하도 사고 치지 말라고 갈궜더니…, 짜식. 그래도 내 눈치를 보긴 했구나? 나는 녀석의 코를 잡아 비틀며 퉁명스레 말했다.
“괘씸한 건 괘씸한 거고. 이긴 건 이긴 거니깐. 소소하게 축하 파티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