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8화 (8/306)

08. 혹시 서브남주? (3)

어차피, 저 자식이 일진을 그만두지 않았을 때부터 패싸움에 연루될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녀석을 찾으러 갈 때마다 싸우고 있는 걸 한두 번 본 게 아니었다. 인소 안에서 일진들이 주로 하는 게 뭐냐. 바로 영역 싸움, 패싸움 아니던가. …이렇게까지 스케일이 커져 버린 건 처음이었지만, 어찌 됐든 이긴 건 이긴 거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치킨이나 사 줄 생각이었다.

“…….”

그리고 그런 제 행동에 서이수는 꽤나 감동했는지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엄청 갈궈질 걸 각오했었나 보다. …그런 녀석이 아빠나 엄마가 아니라 야자하는 나를 불러? 아, 잠깐. 진짜 왜 날 부른 거지?

“야. 근데 왜 날 불렀냐. 엄마, 아빠도 있었잖아.”

특히, 엄마는 몰라도 아빠는 나보다 훨씬 서이수 이 녀석에게 관대한 면이 있었다. 덜 혼나려면 차라리 아빠를 부르는 게 나았을 텐데 왜 하필 나지?

“어…, 그게….”

서이수는 눈을 데록데록 굴리며 눈을 피했다. 저 딴에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주제인지 말을 피하는 모습에 나는 녀석의 다시 코를 붙잡았다.

“아악! 말할게! 말할게!!!”

빠른 항복을 외치며 내 팔에 탭을 거는 모습에 내가 가볍게 놓자 서이수는 제 벌게진 코를 붙잡았다.

“으…. 그냥 너, …누나가 가장 나을 거 그랬어.”

“내가?”

너, 라고 부르는 부분에 노려보자 서이수는 반사적으로 바로 말을 고쳤다. 그리고 뒤이어 들려오는 예상치 못한 말에 나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동안 얘가 사고 칠 때마다 가장 많이 때린 게 나인 것 같은데…. 정말 들으면 들을수록 오리무중이었다. 그러나 서이수는 놀랍게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얼굴까지 살짝 붉히며 입을 삐죽였다.

“때리긴 때리더라도… 날 가장 이해해 주니까.”

“서이수… 너….”

나는 그 말에 서이수의 어깨를 붙잡았다.

“잘 알고 있네.”

“응?”

“너 상처 다 낫고 나한테 좀 맞자.”

“뭐어…?! 아니, 이 상황에서 왜 그렇게 흘러가는 건데…?!”

서이수가 당황하며 소리치자 나는 대번에 정색하며 화를 냈다.

“싸울 거면 붙잡히질 말았어야지! 쪽팔리게 경찰서가 뭐냐! 경찰서가!!”

“난 신고 된지도 몰랐어!”

“닥쳐! 너 일주일은 기어 다닐 각오해라!”

“아! 누나!!”

서이수는 내 옷자락을 붙잡고 매달렸다. 나는 그 손들을 매정히 쳐 내는데, 문득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의 주인공을 바라보니 그 주인공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 빤한 시선에 민망해져 뒷목을 주물렀다.

“어, 음. 휘혈…, 휘혈이라고 불러도 되지? 아. 말 좀 놓을게. 난 서이나고. 이 자식 누나야. 어…, 넌 성이 뭐야?”

설마 진짜 반휘혈이라든가…, 반휘혈이라든가….

“아. 반휘혈이야.”

와. 진짜 반휘혈이구나…. 그렇구나…. 나는 먼눈을 하며 시선을 피하다가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근데, 넌 얘 대변인이냐? 왜 네가 다 말해?”

경찰서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단 한 번도 이놈 목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동생 놈은 내 말에 멋쩍게 시선을 피하더니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쟤가 진짜 말을 안 해…. 목소리 듣기 힘들걸.”

아, 그러니깐 내가 뭘 물어봤어도 대답 안 할 확률이 높다? 나는 바로 이해하곤 진짜 이름이 반휘혈이란 친구를 보았다. 녀석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채 우리를 보고 있었다.

“어…, 휘혈아? 지금 시간이 좀 늦었는데… 늦게까지 있어도 괜찮아? 치킨 시킨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니긴 한데…, 아. 물론 그냥 가라는 게 아니고 예의상 물어본 거야. 편히 먹고 가.”

내 말에 반휘혈은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저거 먹고 간다는 거지? 그런 거지? 나는 그냥 멋대로 해석하기로 했다. 어휴, 의사소통 한번 더럽게 힘드네.

똑똑.

“치킨 배달 왔습니다!”

한숨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고 있는 중인데 치킨이 왔다는 소리에 지갑을 들고 재빠르게 뛰쳐나갔다.

“치킨 왔다!!”

안 그래도 야자 시간에 공부하다 보면 배가 고프기 마련이었다. 정신이 없어 배고픈지도 몰랐는데 치킨 냄새를 맡으니 배가 공복을 호소했다. 치킨을 잽싸게 대령하자 서이수가 그것을 신속히 받고는 바로 세팅을 마쳤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나와 서이수는 득달같이 치킨에 달려들었다. 누가 보면 사흘은 굶긴 기세로 열심히 먹는데, 그때 작은 목소리가 귀에 걸렸다.

“…잘 먹겠습니다.”

나는 치킨을 뜯다 멈추고 조용히 치킨에 손을 뻗는 반휘혈을 보며 씨익 웃었다.

“눈치 보지 말고 많이 먹어. 얘보다 많이 먹어도 돼.”

“어? 왜? 누나 동생은 난데? 혹시 누나도 얼굴 밝히고 막…, 악!!”

“너보다 싸움 잘해서다! 왜! 약한 놈은 조용히 해!”

나는 다시 동생 놈의 코를 비틀어 버렸다. 서이수는 씨잉, 하며 코를 붙잡고 항의했다.

“나도 열심히 싸웠거든?”

“이 싸움의 일등 공신은 누구냐.”

“…….”

내 물음에 서이수는 조용히 치킨을 뜯었다. 나는 녀석을 한심하게 쳐다보곤 저희를 멀뚱히 쳐다보는 녀석에게 다리를 손수 쥐여 주었다.

“아. 신경 쓰지 말고 많이 먹어.”

반휘혈은 내가 쥐여 준 다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혹시 다리를 싫어하나 싶어 다른 걸 주려는데 녀석이 얌전히 다리를 뜯기 시작했다.

음. 싫어하진 않나 보네. 몰래 안도하며 나도 다시 치킨 뜯기에 열중했다.

그렇게 지나가는 돌도 씹을 청춘들은 한참 치킨을 뜯었다. 그리고 많게만 느껴지던 치킨들이 거덜 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역시 치킨은 1인 1닭이지.”

나는 만족스레 부른 배를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수야.”

“어?”

부른 배에 만족한 건 저뿐만이 아니었는지 늘어져 있던 서이수는 내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치워라.”

“으엑.”

“그럼 내가 하리? 얘가 하리?”

서이수는 누나가…, 라고 말하려다가 내가 인상을 굳히자 도로 입을 다물었다. 곧 입을 쭉 내밀며 투덜투덜 널브러진 치킨의 잔재를 치우기 시작했다.

“하여간 말이 많아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콜라를 한 모금 마시는데, 옆에서 일어서는 인기척이 들렸다.

“가게?”

끄덕.

여전히 말이 없는 친구였다. 나는 그 답에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여기서 집까지 멀어?”

이번엔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럼. 조심히 가.”

끄덕.

나는 문밖까지 녀석을 배웅해 주며 인사했다. 그러다가 불쑥 말을 꺼냈다.

“놀러 오고 싶음 언제든 놀러 와. 이수 녀석은 거의 매일 여기서 운동하거든.”

물론 안 하는 날이 더 많지만. 저 철없는 녀석은 늘 밖으로 쏘다니기 일쑤였다. 그런 녀석의 멱살을 잡아 이곳에 던져 놓는 게 거의 나였다고 할 정도면 믿겠는가. 그러한데도 불구하고 이 말을 꺼낸 건 그냥 서이수 때문이었다. 매번 일짱과 친해지고 싶어 하던 녀석이 이렇게 기회까지 만들어 노력한 게 가상하지 않은가. 그래서 예의상 말을 던지긴 했지만… 우리의 일짱께선 역시나 이번에도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저를 빤히 바라보다 말없이 떠나 버린 게 그가 보인 반응의 전부였다.

“이거 참… 딱딱한 녀석일세.”

나는 어둠 속에서 저만치 사라진 녀석을 배웅하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

그 이후로 녀석을 체육관에서 볼 일은 없었다.

서이수에게 넌지시 친해졌냐고 물어봐도 녀석은 미묘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나는 이 녀석이 일짱과 친해지는 데 실패했다는 걸 깨닫고 맥이 빠졌다.

그 잘생긴 얼굴 좀 구경할까 싶었는데, 좀 아쉽네.

나는 입맛을 다시다가 다시 학교생활에 집중했다. 아, 서이수가 상처가 다 낫고 응징하는 것도 잊지 않고 해치웠다. 그리고 약속대로 서이수는 일주일 동안 온몸을 부여잡고 살아야 했던 소소한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한다.

***

그러고 3개월 지났을까, 나는 예상치 못하게 녀석을 만났다.

“어…, 반휘혈?”

정말 다시 생각해도 너무 인소 같은 이름이었지만 그냥 넘어가자. 어쨌든 지나가던 공원에서 담배를 피우던 녀석과 우연히 눈이 마주쳤다. 게다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었다.

“휘혈아, 아는 사이야?”

수군수군. 나를 의심쩍게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반휘혈은 빤히 쳐다보기만 할 뿐 어떤 제스처도 취하지 않았다.

음. 아무래도 시기를 잘못 잡은 것 같군.

나는 멋쩍게 손을 적당히 흔들며 자리에서 벗어나는 걸 택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어.”

“…….”

길에서 여자와 팔짱을 낀 채 마주친다거나,

“앗.”

“…….”

편의점에서 나오다 일진들의 행렬과 마주한다거나,

“엇.”

“…….”

퍽. 퍼벅. 하고 살벌할 소리가 들려오는 싸우는 현장에 눈이 마주친다거나 뭐 그런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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