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서브남주 같은 녀석의 속을 알 수 없다 (1)
오늘은 패거리 싸움이었는지 두 교복이 뒤섞여 살벌하게 싸우고 있었다. 반휘혈이 이런 패싸움에 직접 나서는 일은 흔치 않다고 들었는데… 그를 알고 난 후, 그동안 피해 오던 그 유명한 일짱에 대한 소식을 여럿 듣게 되었다. 그중에 하나는 방금 말했던 것처럼 반휘혈이란 녀석은 패싸움에 잘 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어차피 그가 끼지 않아도 이길 싸움이라나 뭐라나. 시시한 싸움은 잘 안 낀다고 했던가? 어떻게 보면 맞는 말 같았다.
그동안 그 많고 많은 싸움에 저 얼굴을 본 적이 없기도 했고, 내가 서이수 멱살을 잡은 게 올해로 두 손가락은 옛적에 넘던 중에 반휘혈이 패싸움에 연루된 건 두 번밖에 마주치지 않았다. 물론, 어쩌면 타이밍이 안 맞았다거나, 그간 내가 눈치채지 못했던 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그냥 반휘혈의 싸움을 구경하기로 했다.
“아.”
잠시 한눈판 사이에 누군가가 쇠 파이프를 휘둘렀다. 나는 깜짝 놀라 입을 벌리는데 반휘혈은 제게서 시선을 거두더니 저를 공격해 오는 쇠 파이프를 여유롭게 피하곤 다리로 상대측을 걷어차 버렸다.
뻐억! 굉장히 심상치 않은 타격음에 나는 홀로 감탄하며, 그 싸움을 지켜봤다.
‘아, 이거 팝콘이 있었으면 딱이겠는데.’
역시 괜한 걱정이었군. 잠시나마 아찔해하던 자신을 반성하며 나는 흥미롭게 그를 구경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게 불구경이랑 싸움 구경이라더니. 운동을 하다 보니 여럿 싸움을 봐 왔지만 이건 꽤나 재밌었다. 아니, 정형화된 프로 싸움보단 개싸움이라 그런가? 더 스릴 넘치게 느껴지기도 했다. 게다가 반휘혈이 아주 시원시원하게 주인공처럼 훨훨 날아다니며 싸워 주니 더 흥미진진했다.
“흐음…. 서브가 아니라 진짠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그냥 친구가 없을 뿐이지, 실은 남주가 아닐까? 남주가 아니라기엔 저 얼굴과 저 스펙이 너무 아까웠다.
나는 한참을 구경하다가 이쪽으로 접근하는 한 무뢰배를 발견했다.
“응?”
왜 내 쪽으로 오지? 나 꽤 잘 숨어 있지 않았나? 이곳에 있다 보면 간혹 꼭 이렇게 나에게 와 시비를 거는 녀석이 있었다. 그게 공터든 길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나는 저 패싸움에 연루될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오늘은 한적한 공터였고, 나름 가깝지만 쉽게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 골목 쪽에 숨어 있었다. 하지만, 왜 이렇게 자주 들키는 걸까? 너무 꼼꼼하게 가려서 그런가? 나는 쓰고 있던 캡 모자와 후드를 툭툭 건드리며 갸웃했지만 의문이 해소될 일은 없었다. 결국 나는 다가오는 녀석에게 시선을 주며 들고 있던 짐을 내려놓고 물었다.
“저기, 왜 나한테 오는 거야?”
흠칫. 내가 겁먹지도 않고 아무렇지 않게 굴자 당황한 게 보였다. 나는 여전히 의도를 알 수 없어 갸웃해 보이자 녀석은 당황해했다.
“도, 도방중이랑 한패냐?!”
“음…”
나는 그 말에 어떤 말을 해야 될지 난처해졌다. 한패라고 하기엔 저 일진 패거리와 한자리에 싸잡히기 싫었고, 아니라고 하기엔 도방중 출신인 게 마음에 걸렸다. 이왕 이기는 거 모교가 이기는 게 더 좋기도 하고….
“으음…. 그럼 그냥 지나가는 행인?”
“뭐야, 그게….”
“말 그대로지 뭐.”
내가 어깨를 으쓱이자 녀석은 얼굴을 황당하다는 듯 일그러트리다가 힐끗 반휘혈을 보곤 짓씹듯이 내뱉었다.
“뭐, 됐어. 얌전히 인질이나 돼.”
“…싫은데.”
누가 인질을 얌전히 된단 말인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완강히 거부하니 녀석은 내 의사는 상관없다는 듯이 덤벼 왔다.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확, 하고 달려드는 폼에 난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리고 한순간에 자세를 잡고 놈의 품 안에 파고들어 팔꿈치로 명치에 한 번, 다른 팔꿈치로 턱에 한 번 꽂았다.
“크흣!!”
짧은 단말마가 울리고 내게 달려든 놈은 쓰러졌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곤 잠시 내려 뒀던 짐을 들었다.
“동작 한번…, 쯧쯧.”
너무 커서 인간 샌드백인 줄. 나는 혀를 끌끌 차며 이딴 놈도 일진이랍시고 설치는 꼴에 인상을 찌푸리다 어느새 조용해진 사위에 고개를 들었다. 어라, 싸움 끝났나 보네. 싸움은 녀석들의 승리로 끝난 모양인지 녀석과 같은 교복을 입은 애들을 제외하곤 전부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서이수를 찾아보려 두리번거리는데,
“어?”
“…….”
또 반휘혈과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이번엔 어째선지 시선이 엄청 길다. 나는 녀석의 빤한 시선에 민망해져 뻘쭘하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안녕…?”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인사는 씹혔다. 내 인사에도 여전히 말없이 바라보는 시선이 민망해 손을 거두기로 하였다.
거참, 다음부턴 인사하지 말까 보다. 매번 이런 식이니 저만 아는 사이 같지 않은가.
나는 속으로 불만을 꿍얼거리며 그 무리에 섞여 있는 동생 놈을 발견하고는 조용히 불러내 그 멱살을 잡아끌며 집으로 향했다.
***
그렇게 헤어지고 얼마 후.
“오….”
“…….”
나는 또 그 녀석과 마주쳤다. 이번엔 놀랍게도 그 유명한 17:1을 연출하려던 건지 주위에 반휘혈과는 다른 교복들이 쫙 포진되어 있었다.
‘아니, 그것보다 많은데…?’
하나, 둘…, 대충 30명 남짓 되는 수에 인상을 찌푸렸다. 저건 수적으로 너무 열세였다. 게다가 왜 저놈은 이번에 혼자… 아. 혹시 함정? 함정에 빠진 건가?
나는 제 추측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게 이곳은 인적이 드문 폐공장이었다. 그러니 함정에 빠져도 이상하진 않았다.
그런데 내가 왜 여기 있냐고? 이유는 간단했다. 몇 시간 동안 잠적 탄 동생 새끼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뒤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오늘 분명 도방중이랑 음…, 강신? 이던가. 어쨌든 다른 학교랑 패싸움이 날 거란 소문을 듣긴 했는데… 대충 장소를 추리다가 여기까지 흘러 들어오게 되었다.
‘그럼 서이수는 대체 어딜 간 거고, 쟨 어쩌다 함정에 빠진 거지?’
나는 연이은 의문에 인상을 찌푸리다가 나를 발견한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넌? 아, 혹시 반휘혈 똘마니?”
그러자 그곳에 있던 모든 이가 내게로 시선이 모였다. 얼마 안 가 그들 사이로 비웃는 소리가 퍼졌다.
“휘익~ 이열~ 반휘혈~, 그 반휘혈이 언제 똘마니를 부른 거래?”
“큭큭. 도움을 요청한 게 겨우 한 명?”
“천하의 반휘혈도 한물갔나? 저런 꼬맹이 한 명으로 우리랑 상대가 되나~.”
뭐? 꼬맹이…? 나를 향한 낮잡은 평에 인상을 굳혔다. 그리고 두 명 정도가 나를 향해 다가오며 비웃듯이 내려다봤다.
“야, 된통 당하기 전에 꺼지는 게 어때?”
“꼬맹이. 어서 엄마 젖이나 더 빨고 오지? 형아들한테 맞고 울면서 도망치지 말고. 큭큭.”
하. 나는 참을 새도 없이 헛웃음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뭐야, 웃어?”
“좀 봐주려니깐 눈에 뵈는 게 없냐? 어?”
한 녀석이 내가 꾹 눌러쓴 모자의 챙을 툭툭, 건드렸다. 나는 그 손을 바로 쳐 냈다.
“…요즘 애들은 대체 왜 이러나 몰라.”
나는 작게 한탄하며 찌푸려진 이맛살을 검지로 눌러 폈다.
“이게 자꾸 봐주니깐 기어오르네?!”
한 녀석이 그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발끈하며 손을 올렸다. 그리고 내리치려는 순간,
“크헉!”
눈앞에 있던 놈이 쓰러졌다. 왜냐고?
“뭐, 뭐야…! 이게…! 흐억……!!!”
내가 한 놈씩 명치랑 턱에 팔꿈치랑 주먹을 꽂아 넣었기 때문이었다.
“와…. 내가 어디 가서 힘으로 무시당해 본 적이 없는데….”
풀썩, 힘없이 쓰러지는 놈들을 향해 보란 듯이 손을 짝짝 털어 냈다. 그리고 느릿하게 시선을 올려 나를 멍하니 바라보는 전방의 무리들을 쫙 훑으며 상큼하게 미소 지어 주었다.
“내가 이런 쪽으로 무시당하는 건 못 참아서.”
죽을 준비 하렴. 꼬맹이들아.
나는 한순간에 적진에 뛰어들었다. 제대로 상황 분간이 안 된 녀석들에게 기회를 줄 생각은 없었다.
우선 한 명, 몸을 날려 팔꿈치로 머리를 내리찍었다. 그리고 쉬지 않고 바로 옆에 있던 녀석의 다리 옆을 내려쳐 중심을 잃게 만들고 뻗은 다리의 반대 주먹으로 얼굴을 강타했다.
“이, 이야앗!”
연이어 두 명이 더 쓰러지자 몇몇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나를 저지하려는지 내게 손을 뻗어 왔지만 나는 그것을 손을 들어 가볍게 흘리고 빙글 돌아 팔꿈치로 녀석의 옆면을 가격했다.
또 한 명이 쓰러지자 이번엔 덩치 큰 놈이 나를 덮치려는 듯이 몸을 크게 벌리며 내게 접근했다. 나는 그 모습에 눈살을 팍 찌푸렸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동작이 너무 어설프단 말이지. 나는 혀를 쯧, 차고 녀석의 허벅지 안쪽으로 가격한 후, 잠시 주춤한 녀석의 얼굴에 다리를 날려 가격했다.
쿵.
덩치 큰 놈이 맥없이 쓰러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정통으로 들어갔으면 어떤 거구라도 쓰러지는 법이다.
잠시의 공백에 숨을 고르며 살짝 흘러내린 후드와 흐트러진 캡 모자를 꾹 누르는데, 갑자기 쇠 파이프를 내게 휘둘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비틀어 피하고 살짝 거리를 벌렸다.
‘미친 새끼!!’
한 사람 잡겠다고 저런 흉기를!! 저거 살인 미수야, 살인 미수!! 나는 이를 순간 치솟은 분노에 얼굴을 험악하게 구기곤 다시 파이프를 휘두르려는 녀석의 손을 발로 차 버렸다.
“악-!!”
그것이 녀석의 마지막 말이었다. 곧이어 내 주먹이 녀석의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그와 동시에 살짝 아차 했다.
‘어…, 너무 세게 쳤나.’
갑자기 맞은 당사자가 걱정됐지만 그 생각도 오래가지 않았다. 왜냐면, 얼마 안 가 여러 명이 동시에 덤벼들었으니까.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두 명 잡자고 아주 죽기 살기로 달려드네. 나는 혀를 차며 순서대로, 턱, 명치, 관자놀이를 노려 차례대로 쓰러트렸다.
‘아니, 원랜 한 명이었나…? …더 개같은데?’
나는 다시 치솟는 화에 얼굴을 찌푸리며 저를 견제하는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모자챙 사이로 저의 사납게 치켜뜬 눈과 마주친 녀석들이 흠칫, 하며 몸을 떨었다.
“너희들 오늘 몸성히 못 들어갈 줄 알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