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11화 (11/306)

11. 서브남주 같은 녀석의 속을 알 수 없다 (3)

‘그러고 보니 그 폐공장 이후로 한 번도 못 봤네.’

그 생각이 들자 그 잘생긴 얼굴 한번 보고 갈까, 싶어졌다.

“그러지, 뭐.”

내가 고개를 끄덕여 주자 서이수는 부루퉁해져선 툴툴거렸다.

“동생이 붙잡을 땐 들은 척도 안 하더니만… 너도 결국 얼굴…, 악!!”

“조용히 해라.”

나는 시끄러운 녀석을 한 대 치곤 카운터 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동생 놈이 머리를 부여잡다 말고 다가와선 내 곁에 붙어 섰다.

“징그럽게 왜 이래?”

“에이, 누나~. 나 치즈스틱 하나만.”

이 새끼가 웬일로 붙잡는가 싶더니만 이게 목적이었구만?

“네 돈으로 사 먹어.”

“아. 누나~.”

나는 매정히 거절했지만 서이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애교라는 강수까지 뒀다.

“미친 거 아냐?”

효과는 만점이었다. 나는 동생 새끼의 애교에 치를 떨며 기겁했다. 하지만 동생 새끼는 포기하지 않았는지 자꾸만 엉겨 붙었다.

“아, 사 줄게! 사 준다고! 떨어져! 떨어져!!!”

결국 항복하는 건 바로 나였다. 내가 팔까지 휘저으며 소름 돋아 하자 서이수는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신나게 자리로 돌아갔다.

“어휴, 저 웬수 새끼….”

나는 신이 난 동생 새끼의 뒤통수를 잠시 노려보곤 카운터에서 햄버거 세트와 치즈스틱을 주문했다. 번호표를 가지고 자리로 가니 서이수가 옆자리를 비워 뒀길래 그 자리에 앉았다.

“저희 이렇게 만나서 얘기하는 거 처음이죠?”

“어…. 그렇지.”

뭐지, 이놈은. 뭔데 눈웃음을 치고 있지. 나는 오자마자 눈을 휘며 내게 말을 거는 놈을 쳐다봤다.

…어라? 이제 와서 보니 얘네들 얼굴이 좀… 생겼다? 나는 낯선 세 녀석을 바라봤다. 우선, 방금 나한테 말을 건 녀석은 좀 능글맞지만 예쁘장했다. 다른 놈은 사납게 생겼지만 남자답게 생겼고, 다른 녀석은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훈훈한 인상이었다.

‘오…. 뭔가 2퍼센트 부족한데.’

하지만, 반휘혈이 남주라고 하기엔 주위 인물이 이렇다 할 임팩트가 없었다. 주변인이 조금만 더 미남들이었다면 얘 남주구만! 하고 땅땅 내리찍었을 텐데 말이다.

‘그럼 역시 반휘혈은 서브남주일 확률이 높으려나.’

그건 좀… 안타까운데. 나는 그 잘생긴 외모를 떠올리곤 동정심이 일었다. 몇 년만 지나면 아주 여자 몇백이고 몇천이고 울리게 생길 미인형 미남인데 말이다. 서브남주란 이유로 좋아하는 여자한테 차이다니, 불쌍한 녀석.

“전 한도훈이에요.”

“이재현이라 합니다.”

“…김시원입니다.”

순서대로 능글맞게 생긴 놈, 훈훈하게 생긴 놈, 사납게 생긴 놈이 자기소개를 해 왔다. 나는 잠시 저 멀리 던져 놨던 정신 줄을 서둘러 끌어왔다.

“아, 나는 서이나라고 해. 얘 누나.”

“알고 있어요! 매번 얘 끌고 가잖아요.”

능글맞은 놈, 한도훈이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열 전쟁 할 때 저희끼리 내기도 할 정도예요. 오늘 얘 끌려가나 안 끌려가나.”

훈훈하게 생긴 놈, 이재현이 거들었다.

아니, 그보다… 그 개싸움이 서열 전쟁으로 불리는 거였냐…. 나는 오글거리는 명칭에 잠시 흐린 눈을 하며 피하다가 번호표를 부르는 소리에 자리를 벗어났다.

“자, 감사히 먹어라.”

“아싸!”

트레이를 가지고 다시 돌아와 치즈스틱을 건네주자 서이수가 환호하며 먹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녀석에게 혀를 차 주곤 햄버거를 먹으려다 제게 시선이 몰렸다는 걸 깨달았다.

“어…, 왜?”

아직 먹지도 않았는데 뭐 묻었나? 아니, 그러기엔 셋 다 호기심 넘쳐 보이는데.

“누나, 그거 사실이에요?”

“뭐가?”

나는 햄버거를 한입 베어 물었다.

“폐공장에서 휘혈이랑 같이 싸웠다는 거요! 30명을 상대로 싸웠다고 들었어요!”

“크흡, 큽, 커헉.”

얘네들이 그걸 어떻게 알았지? 나 그날 분명 후드랑 캡 모자 눌러쓰고 가서 내 얼굴 제대로 못 봤을 텐데? 나는 사레 걸린 목에 황급히 콜라를 들이붓고 진정시켰다.

“누, 크흡, 누가 그런 소릴….”

“누나 동생이요.”

나는 대번에 옆을 봤다. 서이수는 치즈스틱을 맛있게 먹다가 내 시선과 마주치곤 바로 시큰둥하게 무시했다.

“넌 또 무슨 근거로 내가 거기에 갔다고 생각해?”

“그야 누나, 그날 휘혈이랑 만났잖아.”

“우연히 마주친 거야.”

“폐공장에서?”

“길에서.”

내가 일일이 대꾸하자 서이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날 걔네 쪽에서 150대 키 정도 되는 사람이 왔다고 들었어. 싸움 완전 잘하는데 싸우는 기술이 무에타이 같다고 하던데?”

앗. 너무 핵심을 찌르는 말에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난 슬쩍 시선을 피하며 감자튀김 하나를 물며 말했다.

“…무에타이를 하는 인간이 우연히 지나가다가 도와줬나 보지. 어? 남자일 수도 있잖아.”

“내가 이 근방 무에타이 선수들 거의 다 아는데 거기서 그렇게 날뛸 만한 애들 거의 없어. 특히, 실력 좀 있다 하는 애들은 선수 준비해서 그런 길거리 싸움 연루되면 안 되는 거 몰라? 그럼 실력도 있는데 키 150대인 놈 범위는 확 줄어들고…. 그.런.데. 누나도 한 155 정돈 되지? 그.리.고. 우.연.찮.게 그날 누나랑 반휘혈이 만났네?”

서이수는 말을 하나하나 끊어 내면서 강조하며 집요할 정도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 새끼, 이거 평소 쓰라는 머리 공부에 안 쓰곤 여기에 다 쓰네.’

나는 눈을 가늘게 떠 녀석의 시선을 마주 보며 식은땀을 좀 흘렸다. 하지만, 나의 소극적 대항은 결국 내가 한숨을 내쉼으로써 끝나 버리고 말았다.

“아, 알았다. 알았어. 나 맞아. 나 맞다고. 거기에 너 찾으러 갔다가 반휘혈 만났다.”

“헹.”

서이수는 내 항복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으며 거봐, 하는 표정으로 앞에 있는 녀석들을 봤다.

“우와! 누나 진짜 짱 세시네요! 와, 휘혈이 그 자식은 거의 가만히 있었다면서요?! 대박!”

능글맞아 보이는 놈이 갑자기 호들갑을 떨어 댔다. 나는 그 말에 반휘혈도 거들었었다고 반박하려 했지만, 연이은 질문들에 말이 막히었다.

“평소에 훈련하시는 건가요?”

이제껏 침묵하다가 날카로운 눈을 빛내며 흥미롭게 물어보는 사납게 생긴 놈의 말에 나는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거의 체력 위주긴 하지만.”

“운동 쪽으로 진로 잡으신 거예요?”

“아니. 대학 갈 거야.”

훈훈한 놈의 물음에 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녀석들이 의외라는 듯이 표정을 지었다.

“누나 수준이면 프로로 가도 손색없지 않을까요?”

“아, 누난 그런 데 관심 없어. 대학 가서 체육 교사 한댔어.”

서이수는 재미없단 듯이 빨대를 물고 있었다. 나는 다시 몰린 시선에 어깨를 살짝 으쓱였다.

“그거랑 그거랑은 별개니깐.”

그리고 이곳에선 아니더라도 다른 곳에선 이미 선수 시절을 뛰어 봐서 그런지 별로 그리 큰 집착은 없었다.

“근데 나 궁금한 거 있어.”

그보다 이 세 명을 보자마자 떠오른 게 있었다. 서이수에게 따로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말을 안 해 줄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냥 대놓고 물어보기로 했다.

“뭔데요?”

능글이, 한도훈이 눈을 휘며 대답했다.

“너네들… 혹시….”

나는 말하기 앞서 심호흡을 작게 했다. 설마 이 단어를 직접 말하게 될 줄이야. 나는 오글거려오는 손을 몰래 쥐었다. 오글거리는 걸 견뎌서라도 이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어졌다.

일짱과 그 친구들이라 하면… 혹시….

“이짱, 삼짱, 사짱…, 뭐 그런 거냐?”

그 말에 눈앞의 세 명은 잠시 놀란 듯 눈이 커졌다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능글이 한도운은 재밌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사나운 놈 김시원은 불만스러운 얼굴을 지었고, 훈훈한 이재현은 난처히 웃고 있었다.

“와~, 저희 나름 이 근방에서 유명하다 생각했는데…. 진짜 몰랐다니. 누나, 이런 거에 완전 관심 없죠?”

“뭐….”

멋쩍게 답하는 내 모습이 한도훈은 무엇이 그리 웃긴지 싱글벙글 웃다가 테이블에 턱을 괴며 말했다.

“네. 제가 도방중학교 이짱이에요. 여기 시원이가 삼짱, 재현이가 사짱.”

음. 그렇, 그렇구나…. 역시 그럴 거 같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급속도로 손가락이 오징어가 될 것 같은 걸 겨우 참았다.

“그, 그래…. 역시 그랬구나….”

그렇다고 뻔뻔하게 마주 보며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내 멘탈은 그리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선은 자연히 먼 산을 바라보고 말았다.

“그리고 명색이 동생이 오짱인데 관심 좀 가져 주세요~.”

…뭐?

나는 먼 산을 바라보다 말고 토끼 눈을 뜨며 서이수를 봤다. 서이수는 오히려 나를 보며 몰랐냐는 얼굴을 짓고 있었다.

“네…, 네가? 니이가아???”

“뭐야? 몰랐어? 아니, 그 반응은 또 뭐야?”

내가 정색하며 놀라워하니 서이수가 불쾌했는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이 놀라운 사실에 기겁하고 있을 뿐이다.

못해도 10위 아래일 줄 알았는데 설마 5위였냐! 이거 참, 엑스트라 주제에 이 정도 실력인 걸 놀라워해야 되나…? 내가 알기론 이 일대에서 도방중학교보다 강한 중학교 세력은 없다고 들었다. 그, 왜, 동쪽 지역 최…, 최강이 도방이라며…? 그런데 그 안에서 5위씩이나 차지했다니…, 나는 복잡해진 심경에 저절로 얼굴이 굳어졌다.

“그래서 네가 반휘혈한테 말이라도 붙일 수 있었던 거구나….”

그제야 겁 없이 반휘혈을 경찰서에서 빼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그래. 저 정도는 되어 줘야 말이라도 붙일 수 있지. 말단이 어디 일짱에게 말을 걸어 보겠는가.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받든가 나중에 오지랖 부렸다고 몰매나 안 맞으면 다행이었다. 아니, 그건 그렇고… 오짱… 그러니까 5위라고…? 나는 눈앞에 있는 동생 놈을 다시 보았다. 뾰로통하니 삐져 있는 녀석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세상에…, 이 꼬맹이가 5위라니.’

문득 가슴 속에서 뭉클한 게 느껴졌다. 아, 왜 이렇게 내가 다 뿌듯하냐. 이게 바로 자식 키우는 부모의 마음…? 밑바닥이라고 여겼던 자식의 성적이 알고 보니 상위권! 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짜식…. 우리 집안 유전자가 어딜 가진 않았나 보구나? 나는 대견하고 뿌듯한 마음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두드려 줬다. 그러자 녀석은 똥 씹은 얼굴이 되면서 내 손을 가차 없이 치워 버렸다. …이 매정한 자식 같으니.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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