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12화 (12/306)

12. 서브남주 같은 녀석의 속을 알 수 없다 (4)

“…누나도 도방중학교 나왔으면 관심 좀 가져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거 아냐? 아니, 그보다 날 그렇게 쫓아다녔는데도 몰라?”

“…조금은 알고 있거든?”

게다가 세상 물정 모른다는 취급까지 해 주니 방금까지 대견했던 마음이 다 사라졌다. 그래서 나도 욱해서 항의하니 서이수는 ‘아, 그러세요?’ 하며 빈정거렸다. …쟤 지금 한 대 때려도 되지 않을까? 갑자기 손이 근질근질했다. 그래도 친구들 앞에서 체면을 구길 순 없었기에 나는 참을 인을 속으로 끊임없이 되풀이하며 성질을 죽였다.

“근데요, 누나.”

한창 서이수한테 갈궈지고 있는데 한도훈이 나를 또 불렀다. 안 그래도 옆에서 쨍알쨍알 시끄러웠던 참이라 반갑게 고개를 돌렸다.

“누나도 휘혈이 좋아해요?”

“……뭐?”

반갑다는 말 취소.

“왜, 누나 매일 휘혈이가 무시하는데도 인사하는 데다가, 저번에도 휘혈이랑 같이 싸워 주고. 그리고 지금도 휘혈이 온다니까 있는 거잖아요.”

나는 그 말에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한도훈을 봤다. 능글맞게 웃는 그 모습이 지금은 뭐랄까, 재밌는 장난감을 본 얼굴이었다.

‘이 녀석…, 성격 안 좋을 것 같네.’

나는 한도훈을 빤히 보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딱히? 그냥 아는 얼굴이라 인사한 거고,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라 도와준 것뿐인데. 지금도 이왕 온다니까 얼굴 좀 보려는 것뿐이고.”

내가 너무 대수롭지 않게 말해서일까, 한도훈의 얼굴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그러다가 곧 다시 피더니,

“그럼 저희도 이제 얼굴 텄으니깐 인사해 주겠네요?”

라고 말하며 능글맞게 웃었다. 마치 그 말이 진짜 반휘혈한테 관심 없냐는 말로 들리는 건, 기분 탓은 아닐 것 같았다. 나는 한도훈을 가만히 쳐다보다 씨익 웃었다.

“그러게. 나중에 보면 인사할지도 모르겠네.”

그리고 햄버거를 크게 한입 베어 물며 생각했다.

‘거참, 요즘 중딩들은 다 저러나? 왜 약은 느낌이 들지?’

얼굴은 강아지처럼 생겼으면서 하는 행동은 뱀 같았다. 저 자식, 나중에 크면 귀찮아질 놈이다. 저런 타입은 별론데.

나는 시큰둥하니 생각하다가 갑자기 머리 위로 그늘이 졌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자연스레 시선이 올라갔다. 그리고 마주친 것은 저를 내려다보는 두 눈이었다.

“…쿨럭! 큽, 크흡…! 흠흠. 어…, 안녕.”

어우, 깜짝아…! 얜 왜 이렇게 불쑥 나타나? 뒷담을 한 것도 아닌데 심장이 놀라 쿵쿵 뛰었다. 저를 내려다보고 있던 사람의 정체는 아래에서 위로 봐도 꿀리지 않는 외모를 지닌 남자, 반휘혈이었다. 생각도 못 한 타이밍에 등장한 녀석 덕에 잠시 사레가 들렸었으나 금방 침착하게 평소처럼 인사를 건넸다.

“…….”

그러나 이번에도 말이 없는 반휘혈이었다. 정말 초지일관적인 자세였다. 어쩌면 내가 왜 여기 있나 생각하는 걸지도…. 그건 그렇고 지난번 폐공장 이후론 좀 나아지나 싶더니, 결국 제자리걸음이었나 보다. 조금 섭섭하긴 했지만 어차피 큰 기대는 안 했었다.

‘뭐, 어쩔 수 없지.’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남은 햄버거를 다 먹었다. 그리고 손을 닦고 음료수까지 다 마시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얼굴 봤으니깐 난 간다. 휘혈이도 맛있게 먹고. 이수 넌 너무 늦게까지 싸돌지 말고 일찍 일찍 다녀.”

떠나기 전, 서이수에게 잔소리를 하는 걸 잊지 않고 해 주자 서이수가 얼굴을 대번에 찡그렸다. 나는 쯧쯧, 혀를 차며 핀잔을 더 주려다가 저를 아직도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

“…….”

뭐지? 나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갸웃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왜 저렇게 보는 거지? 우리는 잠시간 눈싸움이라도 하는 것처럼 마주쳤으나, 결국 내가 먼저 항복을 선언했다.

“…뭐야? 뭐 할 말 있어?”

미심쩍은 기분에 다시 물어봐도 반휘혈은 여전히 답이 없었다. 결국 난 답답해져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저 능글이가 신경을 긁어 놔서 그다지 좋은 기분도 아니었다. 여기 있다간 속만 더 버릴 것 같았다.

“그럼 난 간다.”

그렇게 손을 대충 흔들며 지나쳐 가려 하는데,

“……?”

돌연 손목이 잡혔다.

‘…으응? 손목이 잡혀? 내가? 누구한테?’

나의 시선은 자연스레 손목으로 옮겨졌다. 거기엔 나보다 큰 손이 내 손목을 잡고 있었다. 내 시선은 저절로 그 주인을 확인하기 위해 쭈욱 올라갔다.

“…….”

“…….”

그리고 그곳엔 설마설마했던 반휘혈이 있었다.

뭐지? 지금 이 상황? 나는 순간 상황 판단이 되질 않았다. 아니, 진짜 이, 이게 대체 뭐지? 얘가 왜 내 손목을 잡고 있어? 나는 흔들리는 동공을 느끼며 자연스레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서이수 쪽을 봤다. 하지만, 그 녀석은 그다지 쓸모없었다. 물고 있던 빨대를 툭, 떨군 채 지금 이 광경을 충격 어린 얼굴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저 도움 안 되는…!!!’

나는 눈을 부릅뜨며 잠시 동생 놈을 욕하다가 여전히 저를 보는 시선에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 올리며 물었다.

“저기, 음…, 무슨 일일까?”

“…….”

반휘혈은 나를 잠시간 바라보더니 무언가를 불쑥 건넸다. 그에 얼결에 받아 든 나는 그것을 확인하곤 눈을 크게 떴다.

‘응?’

그것은 핸드폰, 아니, 스마트폰이었다. 그것도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최신 기종.

‘이 비싼 최신 기종을 대체 왜 나한테…?’

설마, 이거 내가 생각하는 그 설마야? 나는 눈을 껌뻑이며 혹시나, 호옥시나 싶어 조심스레 물었다.

“이거… 번호 찍으란 거야?”

그리고 그 물음에 반휘혈은 놀랍게도,

“응.”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모습에 하마터면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떨칠 뻔했다. 나는 흔들리는 시선을 느끼며 침을 꼴깍 삼켰다.

‘아, 아니, 난 그냥 인사만 바란 건데? 이거까진 안 바랐는데?’

당황스러운 속마음과는 별개로 손은 이미 다이얼 키패드를 눌러 번호를 찍고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넘겨주자 반휘혈은 툭툭, 두드리더니 곧 내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

모르는 번호에 점 하나뿐이었지만 그 주인공이 누군지 확실히 알았다. 나는 잠시 멈칫한 손가락을 움직여 번호를 저장시켰다. 그리고 반휘혈은 그걸 말없이 지켜보곤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 모습을 영문 모르겠단 듯이 바라보았다. 그런데 녀석은 자신을 바라보는 모두의 집요한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지 태평하게 앉아서 폰을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결국 명확한 해답을 얻을 수 없던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게 문을 나서자,

지잉-.

바로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별생각 없이 핸드폰을 여니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그런데, 그 주인공은….

[반휘혈 로부터 메시지가 왔습니다.]

너무 놀랍게도 방금 번호를 얻어 간 반휘혈이었다. 나는 그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모른 채로 떨떠름하니 열람했다.

[잘 가.]

열어 본 메시지는 지나치게 단출했다. 하지만, 그 담긴 내용만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벌린 입을 닫지 못하다가 허, 하고 실소를 흘렸다.

“쟤 왜 저래….”

설마 인사하려고 번호를 딴 건 아니겠지…? 갑자기 드는 생각에 의심스레 문 너머를 보다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별로 연락도 안 할 테니 상관없겠지.’

딱 봐도 연락 자주 할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나는 반휘혈의 변덕에 놀아난 기분이 들었지만 해될 건 없어 보여 최근 들어 가장 놀란 에피소드로 넘기기로 했다.

***

당연하게도 반휘혈과 개인적인 연락을 주고받을 일은 없었다. 왜냐면, 나도 반휘혈도 누구와 연락을 자주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래서 한동안 그 녀석 연락처가 있는지도 잊고 살았다. 아니, 무엇보다 시험 기간이라 신경 쓸 여력 따윈 전혀 없었다.

그리고 대망의 중간고사 마지막 날. 가채점까지 마친 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책상 위로 엎어졌다.

“망했어어….”

새삼스럽지만 이 돌대가리를 어쩜 좋지…. 어차피 인서울은 기대도 하지 않는다. 목표는 국립 대학교였다. 최대한 대학 등록금을 아끼고 싶었다. 그래서 지방 쪽의 국립대를 목표로 공부는 하고 있지만, 무식한 머리가 좀체 따라 주질 않았다.

울상을 지으며 풀이 죽어 있는데 옆으로 누군가가 쭈그려 앉았다.

“이나야아…. 너 시험 잘 봤냐….”

이혜인이었다. 이혜인과는 중학교 때부터 반이 떨어지지 않는 끈질긴 인연이었지만, 이 세계에 적응하는 데 큰 공헌을 해 준 소중한 친구였다. 이혜인이 없었다면 나는 또 학교에서 친구를 못 사귀는 불상사가 일어났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만큼 이 학교라는 곳은 제게 낯선 공간이었다. 아무리 이 세계 속 서이나의 기억이 있다지만…, 그걸 제게 온전히 적용시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나는 지금 닥친 이 참담한 현실에 얼굴을 엎드린 채 침통히 중얼거렸다.

“넌 이 꼴이 잘 본 걸로 보이냐아…”

나는 자꾸만 솟는 좌절감에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망했어…. 망했어어…. 이러고 어떻게 국립대를 가….”

아무리 머리가 터져라 공부를 해도 성적은 고만고만했다. 우리 집안 유전자에 공부 유전자가 없다는 건 알았지만… 너무나 서글픈 현실에 나는 울상을 지었다.

“나 그냥 운동할까….”

“너 체육 쌤 한다며…”

“그렇지…, 그렇긴 하지…. 근데 자신이 없다….”

나는 비참한 현실에 정말 울고 싶어졌다.

“안 되겠어! 이나야. 우리 노래방 가자!”

“크흥…, 노래방?”

“그래! 시험 스트레스 날리고 오자!”

나는 그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어차피 할 일이 없으니 괜찮겠지. 서이수도 요새 잠잠하고.’

“좋…았으! 가자! 노래방!!”

그렇게 이혜인과 나는 노래방을 가기로 약속하며 하교 시간만을 기다렸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