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서브남주 같은 녀석의 속을 알 수 없다 (5)
***
“……하아아.”
“왜 내 얼굴 보고 한숨 쉬는 건데?!”
나는 어김없이 보인 얼굴에 한숨을 깊게 쉬었다. 서이수는 그에 발끈했지만 나는 흘려들으며 녀석을 귀찮다는 듯 바라보았다.
“서이수. 너 요즘 왜 이렇게 자주 보이냐. 공부 안 해?”
서이수는 음료수를 사러 올 생각이었는지 자판기 앞에 서 있었다. 나는 늘 놀러 다니는 녀석의 행태가 못마땅해 한 소리 하자 서이수는 듣기 싫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내가 언제 공부했다고…. 누나야말로 왜 여깄어? 아, 안녕하세요.”
“아, 응. 안녕.”
녀석은 투덜거리면서도 옆에 있는 이혜인에게 꾸벅 인사했다. 이혜인은 어색하게 맞받아쳐 주고 내 뒤로 쏙 숨었다.
‘얜 몇 년을 봤는데도 서이수한테 유독 낯을 가린단 말야.’
나는 이혜인을 슬쩍 보곤 낯을 가리는 이 친구를 위해서라도 빨리 자리를 뜨기 위해 설렁설렁 대답했다.
“오늘 시험 끝나서 그런다. 됐냐? 그럼 난 간다.”
“어엉.”
나는 서이수와 짧은 인사를 하고 카운터에서 1시간을 결제했다. 그리고 안내된 방으로 들어가 마이크를 잡고 두 눈을 빛냈다.
‘아주 뽕을 뽑아 버리겠어!’
나와 혜인이는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광란의 파티가 시작됐다.
우리는 미친 듯이 열창하고, 미친 듯이 춤을 췄다. 이게 바로 K-고딩의 광란의 현장이다!! 지금 이 순간만은 30대가 아니라 10대의 파릇파릇한 청춘이다 이 말씀!!! 하하하하!!!!
처음엔 이렇게 노는 게 낯간지럽고 어색했지만 낯을 가리는 것도 잠시였었다. 나는 어느 순간 이혜인과 노는 거에 동화돼 미친 사람처럼 노래방을 즐기고 있었다. 운동으로 공부 스트레스를 푸는 것과는 별개였다. 속 깊은 데서부터 풀리는 이 통쾌함! 짜릿했다!
그렇게 한참 방이 떠나가라 미친 사람들처럼 노는데,
쾅-!!
“꺄아아!!”
찌이이이이이잉---.
갑작스레 크게 울린 소리에 이혜인이 놀라 마이크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울리는 소리에 나는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뭐, 뭐야?”
나는 이게 뭔 일인가 싶어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그리고 내 눈앞에 낯선 교복들이 우르르 보였다.
“헐.”
나도 모르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 무슨 어이없는 상황인가. 저 낯선 교복들은 대체 뭐야? 아니, 익숙하긴 한데 정확히 어느 학교였지? 바로 생각나지 않아 잠시 골똘히 생각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이 구도는 누가 봐도 서열 전쟁이라 하는 개싸움의 전조가 아니었던가.
“이, 이나야…, 우리 들어가자.”
내가 망연히 그 교복 무리를 바라보고 있자 이혜인이 내 팔을 잡아끌었다. 공포로 물들인 그 얼굴에 나는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닫기 전, 그들이 향한 목적지를 살짝 눈에 담았다.
‘어라, 저긴 이수가 있는 방인데…?’
나는 그것을 깨닫자 문을 닫던 걸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저거 서이수 쪽에 시비 털러 온 거 맞지? 어떻게 해야 되나 머뭇거리길 잠시, 나는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방문을 조심스레 닫았다.
‘…괜찮겠지. 반휘혈이 있는데.’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좀체 가시지 않았다. 나는 문을 닫고도 망부석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에 괜스레 초조히 문고리를 잡았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불현듯 생각지 못한 일을 떠올렸다.
‘그런데, 저기에 반휘혈이 진짜 있나?’
그동안 요즘 서이수가 있는 곳엔 거의 반휘혈도 함께 있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자연스레 이번에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반휘혈이 있으면 우선 싸움의 승리는 따놓은 거나 마찬가지니깐. …하지만, 이번엔 없다면? 그럼 저기엔 서이수만 있는 거라면? 저렇게 많은 애들에게 둘러싸여서…?
얼굴에 핏기가 단번에 사라졌다. 나는 황급히 문을 열고 나갔다. 뒤에서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무시하고 뛰쳐나갔다. 그리고 서이수가 있는 방을 벌컥 열었다.
“이수야!”
“어, 누나…?!”
서이수는 누군가에게 멱살을 잡혀 있다가 내 부름에 놀란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슬로 모션처럼 그 모든 광경이 내 눈 속에 담기기 시작했다.
멱살이 잡힌 서이수. 그리고 올라가져 있는 상대측의 손. 그 손은 마치 서이수의 뺨을 당장이라도 후려칠 것처럼 들려 있었다.
그리고 내 이성은 끊겼다.
“넌 뭔데 내 동생 멱살을 잡고 지랄이야!!”
깔끔한 스트레이트 훅이 동생의 멱살을 잡던 녀석의 옆면에 정타를 날렸다.
빠악-!!!!!
우람한 덩치가 저 멀리 날아갔다. 그리고 나는 바로 그대로 엎어진 녀석에게 달려들어 이번엔 내가 녀석의 멱살을 잡아챘다.
“야, 죽고 싶냐? 어? 죽고 싶어? 뭔데 가만히 있는 내 동생 건드려? 어?!”
“누, 누나….”
“이 새끼가 미쳤나! 내가 쟬 무슨 심정으로 키웠는데!! 감히 멱살을 잡아아?! 쟤 멱살 잡는 건 나뿐이거든?! 뒤지려고 환장했냐!!!”
“아, 누나!!”
“뭐!!!”
저를 부르는 시끄러운 소리에 나도 같이 고함쳤다. 나는 사납게 얼굴을 찌푸린 채 그대로 고개를 돌리자 서이수가 흠칫, 몸을 떨었지만 곧 다시 자세를 잡고 나를 뜯어말렸다.
“아, 아직 싸운 거 아냐! 게다가 여기선 안 싸우니깐…! 그리고 그 자식 기절했어!”
아. 나는 붙잡고 있던 멱살을 툭, 놓았다. 그러자 들고 있던 상체가 힘없이 추락했다. 쿵, 하고 묵직이 떨어지는 소리가 어색하게 들리자 나는 그제야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안에는 전에 봤던 한도훈, 김시원, 이재현, 그리고 반휘혈과 낯선 무리가 서 있었다. 그리고 다들 하나같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음…. 안녕?”
나는 뻘쭘히 자리에서 툭툭 일어나 손을 들어 인사했다. 그러자 벙쪄 있던 한도훈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고개 숙여 웃기 시작했다. 김시원과 이재현은 여전히 놀란 낯빛이었다. 처음 보는 낯선 놈들은 멍청한 얼굴을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눈앞의 현실을 믿기 어려워하는 눈치였다.
그런 혼란스러운 와중에, 반휘혈은 뜬금없이 스마트폰을 툭툭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니, 쟨 이 와중에 폰질을….’
쟤도 참 놀라운 놈이라고 생각하며 이 민망함과 뻘쭘한 분위기를 벗어나고자 눈을 도륵도륵 굴리는데,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그에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켜서 확인하니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그런데, 그 발신자가….
[반휘혈 로부터 메시지가 왔습니다.]
반휘혈이었다. 쟨 대체 갑자기 왜 메시지를…? 나는 황당함에 녀석을 봤다. 녀석은 어느샌가 폰에서 눈을 떼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눈빛이 평소보다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마치 어서 메시지를 보라는 것처럼. 딱히 메시지를 볼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 눈빛에 못 이겨 결국 메시지를 열람했다.
[안녕.]
“…….”
나는 메시지를 한 번 보고, 반휘혈을 한 번 봤다. 그리고 다시 메시지를 보고 또 반휘혈을 봤다. 말없이 그 행동을 몇 번 반복하다가 홀린 듯이 툭툭 키패드를 누른 후 발신 버튼을 눌렀다.
[어, 응. 그래.]
메시지가 도착했는지 녀석의 화면이 잠시 밝아졌다. 반휘혈은 그걸 잠시 확인하곤 다시 스마트폰을 껐다.
“…….”
나는 그 일련의 행위를 먼 산을 보듯 지켜보다 생각했다.
‘나 쟤 속을 전혀 모르겠어….’
이 어색하고 쪽팔리는 상황에 굳이 메시지를 보내는 의도는 무엇인가. 날 놀리기 위함인가? 그런 건가? 그렇지 않고선 이 상황에 저런 메시지를 날릴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나는 반휘혈에게서 금방 신경을 껐다. 온몸으로 따끔따끔한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를 향한 집요한 시선들에 뻔뻔함을 갖추지 못한 나는 눈을 어색히 굴리다가 겨우 헛기침을 내뱉으며 변명 아닌 변명을 시작했다.
“흠, 흠. 거참 허약한 학생이네. 별로 세게 때리지도 않았는데…. 진짜야. 진짜라니까?”
솔직히 내가 말하면서도 느낀 거지만 아무도 안 믿어 줄 것 같았다. 특히 내 앞에 있는 서이수의 황당한 표정이 그걸 증명해 줬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굴하지 않고 녀석의 옆구리를 살짝 꼬집었다. 그러자 서이수가 퍼뜩 정신을 차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그런 동생 놈에게 눈짓으로 내 말에 맞추라고 압박했다. 서이수는 제 말을 알아들었는지 어이없다는 듯 입을 벙긋거렸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으러게…. 우리 누나, 힘도 야, 약하잖아.”
…너 어디 가서 연기한다고 하지 마라. 나는 한심하게 보려다가 꾹 참았다. 그래, 노력이 가상하니 좋게 쳐주자. 나는 시치미를 뚝 떼면서 녀석의 말을 받아쳤다.
“아니, 저렇게 소리가 요란할 줄은 나도 몰랐네…? 이수야, 너 가르치는 데 소질 있나 보다. 하하하.”
“그, 그렇지…? 내가 좀, 하지?”
넌 그냥 입을 다무는 게 도와주는 것 같다. 나는 정색하려는 얼굴을 바로잡으며 녀석의 어깨를 툭툭 쳤다.
“네가 무사한 것도 봤고, 난 가 볼게?”
“어, …응?”
“하하하. 그럼 이따 보자! 친구들도 안녕!”
나는 그대로 뒤도 안 돌아보고 문밖으로 사라졌다. 이제 방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바 아니다. 더 이상 관여하는 건 그만둘 거야!
나는 홧홧해진 얼굴을 느끼며 방에 두고 온 이혜인을 데리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으으 쪽팔려!!!’
이혜인이 옆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지만 나는 좀체 대답해 줄 상황이 아니었다. 아니, 내 입으론 절대 꺼낼 수가 없었다. 그의 질문에 요리조리 말을 피하자 다행히 그녀도 질문하길 포기했는지 더는 묻질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대로 귀가하는 걸로 결정했다.
***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학교 체육복을 입은 채 침대에 뛰어들었다.
“피곤해애….”
아직 저녁도 안 된 시간인데 이렇게 피곤할 수가. 나는 끔뻑끔뻑 몰려오는 졸음에 눈을 비비다가 습관처럼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리고 메시지 알림이 떠 있음을 깨달았다.
“누구지?”
혜인인가? 잘 들어갔냐는 연락이라도 왔나 싶어 확인하는데, 발신자를 보자마자 졸린 눈이 확 떠졌다.
[반휘혈 로부터 메시지가 왔습니다.]
나는 몸을 확 일으켜 앉았다. 뭐, 뭐지. 이 녀석…? 왜 뜬금없이 메시지를? 나는 눈을 끔뻑이다가 메시지를 확인했다.
[잘 가.]
“…….”
왠지 데자뷔를 느꼈다. 언젠가 본 적 있는 듯한 메시지에 나는 오리무중에 빠졌다.
“…진짜 뭐지?”
나는 잠시간 황망하게 있다가 녀석이 메시지를 보낸 시각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메시지가 내가 노래방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됐을 시각이란 걸 깨달았다.
“…얘 진짜 인사하려고 번호 딴 거야?”
진짜로? 나는 황당함에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내가 인사 좀 받아 달라 하긴 했는데… 굳이 이런 식으로? 그냥 고개만 좀 까딱여도 상관없었는데? 이제 와서 반휘혈한테 예의를 바란 적은 딱히 없었다. 조그마한 반응을 바라고 한 말이 설마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얘도… 정상은 아니다….”
그래. 인소 세계관에서 뭘 바라겠냐마는….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방안에 내던져진 실내복으로 주섬주섬 갈아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