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서브남주 같은 녀석의 속을 알 수 없다 (6)
***
그러나 설마설마했던 나의 예상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안녕.]
[잘 가.]
[안녕.]
[잘 가.]
[안녕.]
[안녕.]
…….
나는 메시지 함을 보고 흐린 눈을 했다. 이게 전부 한 사람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그것도 반휘혈이라는 이름의 서브남주로 추정되는 놈한테서. 반휘혈은 다른 때엔 연락이 일절 없다가도 우연히 마주칠 때 내가 인사를 하면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정말 딱 이런 내용의 메시지만.
행동 자체는 크게 변하진 않았다. 여전히 무시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메시지로 인사만은 반드시 보냈다.
“이건 성실한 건지… 뭔지 모르겠네.”
얼마나 성실하냐면 어느 날은 진짜 스쳐 지나가듯이 인사를 했을 뿐인데도 그 이후로 바로 메시지가 올 정도였다.
이렇게 성실할 거면 차라리 손이라도 흔들어 주는 성의라도 보이면 참 좋을 텐데. 나는 미묘한 얼굴로 그 메시지를 훑다가 핸드폰을 꺼 버렸다.
정말 알 수 없는 놈이었다.
***
“서이수. 오늘 네 누나는 뭐 해?”
“야자할걸.”
서이수는 요즘 들어 부쩍 제 누나의 근황을 물어 오는 한도훈을 못마땅하게 바라봤다.
“근데 그게 왜 궁금한데.”
“왜~. 친해지면 좋잖아~.”
한도훈은 실실 웃으면서 두 손을 딱 맞잡았다.
“혹시 모르잖아? 나한테도 위험할 때 히어로처럼 딱! 등장해 줄지?”
“하나도 안 위험했거든?! 나도 이길 수 있었다고!!”
그 말에 서이수는 인상을 확 찌푸렸다.
“푸흣. 에이, 그건 아니지.”
한도훈이 피식, 웃으며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놀리듯 웃었다. 그에 서이수가 눈에 쌍심지를 켜며 뭐라 하려고 할 때였다.
“아, 근데 나도 그 누나랑 친해지고 싶긴 해.”
조용히 책만 보던 이재현이 불쑥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저 녀석은 고지식한 면이 있어서 빈말은 잘 안 하는 성격인데.’
서이수는 단번에 표정으로 풀고 조금 놀란 눈초리로 이재현을 보았다.
“그건 시원이도 마찬가지일걸? 그치?”
이재현이 김시원에게도 동조를 구하자 김시원은 얼굴을 살며시 찌푸리면서 고개를 휙 돌려 버렸다.
하지만, 서이수는 김시원이 얼굴을 붉힌 걸 봤기 때문에 이재현의 말이 맞다는 걸 깨달았다.
“헐….”
그리고 그는 이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지난번 그 반휘혈이 누나에게 번호를 가져간 충격도 채 가시질 않았는데! 학교에서 얼굴로나 실력으로나 모두 다 출중한 놈들이 누나에게 관심을 주다니!
‘그 고릴라한테 대체 무슨 매력을 느낀 거지?!’
서이수는 희대의 난제에 부딪혔다. 충격으로 얼룩진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지 이재현이 말을 이었다.
“지난번에 태산고 일짱을 한 방에 쓰러트리는 거 멋지더라.”
아? 아아??
“맞아, 맞아! 히어로처럼 딱! 하고 등장해서 내 동생한테 무슨 짓이야!! 하고 외치면서 한 대 갈기고 멱살 잡는데!!! 완전 멋지잖아!!”
한도훈이 적극 동의했다. 그리고 김시원도 이쪽을 힐끗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앗. 그런 거였구나?? 서이수는 왜 이 녀석들이 제 누나에게 관심을 가진지 알 수 있었다.
그때는 제 누나의 변명 같지도 않은 변명에 맞장구를 쳐 주긴 했지만, 그 자리의 그 누구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아니 태산고 놈들은 억지로라도 믿으려는 눈치긴 했지만 이 녀석들은 전혀 믿지 않았다. 그리고 서이나의 힘을 직접 목격해서인지 오히려 동경, 그래, 동경하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
“그 태산고 돼지 맷집 하나는 엄청 세잖아! 그놈이랑은 싸우고 싶지 않아. 생각만 해도 피곤해!”
한도훈은 질색하는 얼굴로 어깨를 두 손으로 맞잡으며 치를 떨었다. 그러다가 한 손을 불끈 쥐며 휙, 하고 앞으로 내질렀다.
“그런데! 네 누나가 원 펀치로 깔끔하게 K.O! 완전 멋져! 킹왕짱!”
“맞아. 맞아.”
이재현이 맞장구쳤다. 서이수는 한도훈의 연극 같은 동작을 보면서 그때를 떠올렸다.
그날, 녀석들은 저희들이 놀고 있는 와중에 쳐들어왔다. 그러고 나서 다짜고짜 하는 말이 자신의 부하가 되라나 뭐라나. 너무 어이없는 말에 서이수는 태산고 놈들에게 가벼운 항의를 했었다.
‘갑자기 쳐들어와선 무슨 짓거리….’
그때, 갑자기 태산고 돼지가 서이수의 멱살을 꽉 붙잡았다. 너무 불시에 일어난 일이라 아무 대응도 못 한 채 잡혔다가 뒤늦게 빠져나가려는데, 힘이 몸집만큼이나 강했던 모양인지 빠져나가기가 힘들었다.
‘반휘혈 따까리가 주제도 모르게 나서네?’
히죽, 하며 웃었지만 그 안에는 살의가 담겨 있었다.
태산고등학교. 이 일대 고등학교에서 서열 3위엔 속하는 학교였다. 그곳의 일짱이라는 건 그만한 힘이 있다는 게 자명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가 저들보다 약한 건 아니었다. 저희 학교는 서쪽의 강해중학교와 호각을 다투는 학교였다. 강해중학교는 그 지역에선 학급 위인 강호고등학교마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학교였다.
그런 학교와 라이벌인 도방은 어떻겠는가. 도방은 일짱인 반휘혈이 매사 무관심하기 그지없어 세력 확장에 그리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동쪽엔 아무도 그 이름을 함부로 놀릴 수 없었다. 그만큼 반휘혈이 가진 힘과 입지는 압도적이었다. 거기에 그 밑에 있는 한도훈, 김시원, 이재현, 그리고 자신까지. 그에겐 미치지 못하더라도 각자 무시할 수 없는 실력자들이었다. 그러니 그저 고등학교라는 이유만으로, 겨우 3위에 자리한 태산에 기가 질릴 위치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서이수는 그동안 고등학생이라고 기가 죽은 적이 없었다. 그만큼 제 실력에 자신이 있었고, 무엇보다 가장 강하다 여기는 존재가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눈앞에 있던 태산고 일짱을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그것은 실수였다. 제 방심으로 인해 녀석에게 우위적 위치를 제대로 넘겨 버렸기 때문이다.
‘망할…!’
서이수는 그래도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항했다.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서이수의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녀석의 정보가 나열되었다. 서열 3위 고등학교의 일짱. 현 사대천왕에 속하진 못했어도 상당한 실력자. 그 사실을 증명하듯 제 멱을 쥔 완력이 강하게 저를 옥죄어 왔다.
이건… 못 이긴다.
서이수는 직감적으로 패배를 느꼈다. 그래서 그는 저도 모르게 겁을 먹고 몸을 굳히고 있을 때였다.
‘이수야!!’
히어로. 그래. 한도훈의 말대로 딱 히어로였다.
서이수는 서이나의 얼굴을 보자마자 숨 막히게 굳어 있던 몸이 한순간에 이완됨을 느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서이나의 손에 순식간에 그 태산고의 돼지가 때려눕혀지고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솔직히 좀 멋지긴, 했지.’
절대로 서이나한텐 말 안 할 거지만. 왠지 자존심이 상하는 느낌에 서이수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어느 정도 그들의 말에 수긍했다. 어쩌면 자신이 저 녀석들 입장이었어도 관심을 가졌을지 모를 일이었다. 이런 부분은 누나, 동생인 입장이라 크게 신경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나는 너희들한테 관심 없을걸.”
하지만, 서이수는 이 녀석들이 서이나에게 관심을 가져도 자신의 누나는 그만한 관심을 이 녀석들에게 돌려주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왜? 왜에? 아, 혹시 휘혈이한테만 관심 있어서?”
한도훈이 능글맞게 웃었다. 서이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누나는 걔한테도 별로 관심 없을걸….”
“뭐어??”
한도훈이 이번엔 진심으로 놀란 기색이었다. 하긴, 그 반응은 자신도 이해한다. 자신도 처음엔 서이나가 반휘혈에게 관심을 가진 줄 알았었다.
그런데, 반휘혈에게 인사를 하는 건 진짜 아는 얼굴이기 때문임을 얼마 가지 않아 깨달았다. 왜냐면, 관심 있다고 하는 사람치곤 행동이 너무 담백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아는 여자애들만 해도 제가 반휘혈과 같이 다닌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질문을 들었던가. 게다가 서로 번호를 공유했음에도 딱히 연락을 주고받는 뉘앙스도 전혀 없었다.
‘아니, 그럼 누나 번호는 왜 따 간 거야?’
이제껏 반휘혈을 이해해 본 적은 손에 꼽지만 이번만큼 이해하기 힘든 적은 없었다. 주고받지도 않을 연락처를 왜 굳이 직접?
“그럼 둘이 뭔 사이인 거야?”
한도훈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서이수 자신이 묻고 싶은 말이었지만,
“몰라.”
그다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뭐야, 그럼 진짜 너 때문에 계속 마주친 거야? 너희 누나 혹시 브라콤이나 그런 거야?”
그 말에 서이수는 대번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딴 징그런 소리 하지 마라. 브라콤이란 사람이 비 올 때 먼지 날 정도로 두들겨 패냐?”
이건 진짜로 실화였다. 작년, 서이수가 사고를 친 날. 그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다. 그때 당시, 제가 생각하기에도 질 나쁜 놈들에게 조금 휩쓸리던 중에 길가는 애들 삥 뜯는 현장을 서이나가 목격했다.
서이수는 그날이 제 제삿날인 줄 알았다.
주위의 어른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진짜 죽는 줄 알았다. 그만큼 서이나는 화나 있었다. 서이수는 처음으로 무릎 꿇고 제 누나에게 빌고 또 빌었다. 그렇게까지 얻어맞은 적은 난생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화난 누나도 처음이었다. 또 제가 뜯진 않았지만… 나중에 어찌 됐든 피해자에게 사과하러 가기까지 했다.
그때의 충격은 아직까지도 그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한 전적이 있어서 나름 착실히 살아가던 중,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서이수는 도방중 일진 써클 내에서 가장 청렴하고 모범적인 인간 중 하나가 되었다. 술, 담배도 안 하고 얌전한 일진 활동에 처음엔 핀잔이 들려왔지만, 그게 이 녀석들의 마음에 들었던 걸까? 어쨌든 이 녀석들의 눈에도 띄게 되어 이렇게 같이 활동하게 되었다. 뭐… 시기적으로 보면 그때 그 경찰서 사건 이후긴 했지만….
‘에이…. 설마, 그래서 반휘혈이 날 챙겼겠어….’
서이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방금 한 추측은 심증마저 확실치 않았다. 그래서 서이수는 그냥 제 행실이 바르게 되어 이들의 눈에 띄었던 게 아닐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면 누나 말 잘 들어서 이렇게 된 거였다. 서이수는 여러모로 자신이 제 누나 덕을 많이 보고 사는 걸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서이수는 그날의 고통을 기억했기에 절대 고맙다는 말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럼 그 누나랑은 어떻게 친해지지?”
한도훈은 어지간히 제 누나에게 관심이 있던 모양인지 고개를 갸웃하며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서이수는 그런 한도훈을 뚱하니 바라보다 지나가듯 툭, 말을 던졌다.
“정 친해지고 싶으면 주말에 체육관 놀러 오든지.”
서이수는 자신이 가볍게 내뱉은 그 말이 무슨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전혀 예상치 못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