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17화 (17/306)

17. 체육관 문은 언제든 열려 있단다 (1)

***

녀석들도 가볍게 샤워를 마치고 식사를 하기 위해 짜장면집으로 향했다. 체육관 안에서 먹기엔 시선이 부담스러워 먹다가 체할 것 같은 나와 서이수의 강한 주장에 의해 결정된 일이었다. 이때만큼은 티끌만치도 느껴지지 않던 형제간의 유대가 발휘된 순간이었다.

그렇게 주문한 짜장면이 나오고 정신없이 먹는 중에도 한도훈은 옆에서 조잘조잘 떠들었다. 이 자식은 왜 이렇게 내게 관심이 많은 걸까…. 자리에 앉자마자 옆자리를 대놓고 차지한 걸 보고 나와 서이수는 대놓고 질색해 하는 얼굴을 지었다. 정말 오늘따라 마음이 너무 잘 통한다. 웬일인가 몰라. 평소에도 마음이 잘 통해서, 어? 말 좀 따박따박 잘 들으면 참 좋겠는데 말이다.

“아, 저희 한 달 정도 체육관 끊어 두려고요!”

“어, 그래? 잘됐네.”

대충대충 대꾸하며 면을 흡입하는 중, 들려온 희소식에 나는 살짝 반색했다.

“누나, 진짜 속 보이는 거 알아요?”

“원래 인생이 그런 거란다.”

한도훈이 내 세속적인 반응에 야유하듯 말하자 나는 뻔뻔스레 대꾸했다. 그러자 한도훈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와, 진짜 솔직해. 저 더 친해지고 싶어졌어요.”

“아, 그래….”

나는 좀 내외하고 싶은데…. 정말 독특한 취향이라고 생각하며 눈을 흐리는데,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일었다. 나는 앞에서 볶음밥을 먹고 있는 놈을 힐끗 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반휘혈은 등록 안 했지?”

“당연히 안 했죠.”

한도훈도 같이 속삭였다.

“…둘이 언제 그렇게 친해졌어?”

이 조용한 식탁 아래서 대화하는 놈이 나와 한도훈뿐이었다. 거기에 내가 한도훈에게 휩쓸려 만담하듯 주고받는 것도 모자라 이젠 붙어서 서로 속닥거리니 서이수가 황당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나는 그 말에 아니라고 반박하려 했으나 한도훈이 더 빨랐다.

“우리야 진즉에 친해졌지~. 내가 한 친화력 하잖아?”

후훗, 하며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녀석을 어처구니없이 바라봤다.

‘…아니, 생각해 보니 마냥 틀린 말은 아닐지도?’

어느샌가 이 능글이를 좀 편하게 생각하는 게 없잖아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 좀 자존심 상하는데?’

사람 사귀는 게 서툰 편이긴 하지만… 어째선지 능글이 녀석한테만큼은 왠지 멋대로 끌려다니는 기분이라 괜스레 못마땅해졌다.

“…사고 치고 다니진 마라. 우리 체육관 평판 망치지 않게.”

그래서 좀 아니꼽게 말이 나왔지만, 한도훈은 별 신경 안 쓰고 오히려 당당히 말했다.

“에이, 걱정 마요! 오히려 홍보 빵빵하게 할게요! 오히려 저희가 있는 것만으로 회원들 늘걸요?”

그 자신만만한 말에 나는 헛웃음을 흘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 그래?”

“진짜라니까요?”

“어어. 그래그래.”

내가 자꾸만 시큰둥히 답해 주니 한도훈은 심술이 났는지 볼을 퉁퉁 부풀렸다.

“두고 봐요. 제가 지난달 신규 회원 수에 두 배, 아니, 세 배 이상 매출 달성시킬 테니깐요!”

“그래 주면 우리야 땡큐지.”

요즘 적자를 간당간당 모면하는 중인데 그게 해결되면 우리야 좋지. 하지만, 그게 쉬웠으면 지난 생에서 해결됐을 거다. 정말 이것저것 시도를 안 해 본 게 없었다. 하지만, 회원은 쉽게 늘지 않았다.

‘무엇보다 요 앞에 엄청 큰 체육관이 있기도 하고….’

게다가 대중적인 복싱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그쪽을 찾아갔다. 결국 이 적자난을 쉽게 타개하기란 어렵다는 뜻이었다.

“이거나 먹고 조용히 해.”

“읍…!”

나는 옆에서 시끄럽게 종알거리는 녀석을 잠재우기 위해 탕수육을 손으로 집고 입에 쑤셔 넣었다. 일부러 큼직한 걸 쑤셔 넣어 주자 입 안 가득 탕수육을 씹는 한도훈이 항의하는 눈빛을 쏘아 보냈다. 그런 녀석의 시선을 대놓고 무시하며 나도 탕수육을 집어 먹으려 했다. 그러다가 앞에 있는 놈과 시선이 딱 마주쳤다.

“…….”

“…….”

…언제부터 보고 있었지? 나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저를 빤히 보는 앞에 있는 놈, 반휘혈의 시선에 등 뒤로 식은땀을 흘렸다. 옆에 있는 놈은 너무 말이 많아 문제고, 앞에 있는 놈은 너무 말이 없어 곤란했다. 이번에도 알 수 없는 녀석의 시선에 눈길을 데록데록 굴리다가 슬쩍 탕수육을 씹어 먹었다. 반휘혈은 그런 나를 말없이 바라보다 느릿하게 시선을 돌려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왜 본 거지? 나랑 이 녀석이 시끄러워서 본 건가?’

나름 가장 합당한 이유를 떠올렸지만 그래도 찝찝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다시 생각해도 어려운 녀석이었다.

***

적당히 밥을 다 먹고 난 후, 우리는 깔끔히 헤어졌다.

그리고 한도훈이 호언장담한 다음 주가 되었다. 평소처럼 어슬렁어슬렁 체육관을 찾은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뭐, 뭐야…?”

평소보다 많은 사람. 무엇보다 눈에 띄는 여성들.

“어…, 나 잘못 찾아왔나?”

나는 눈을 끔뻑이며 황급히 다시 문밖으로 나갔다. 어쩌면 실수로, 아주 드문 실수로 우리 체육관이 아니라 건너편 체육관에 들어간 걸지도 몰랐다.

“도방 무에타이… 체육관… 맞는데…?”

나는 얼떨떨하게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바로 아빠를 찾았다. 하지만, 아빠는 신규 회원들을 받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차마 일하는 중에 말 걸기 힘들어 멀찍이서 그 장면을 보다가 주위를 휙휙 둘러봤다. 그리고 원하던 인물을 찾아냈다.

“서이수!”

“어? 누나? 마침 잘됐다!”

서이수는 날 보자마자 한숨에 달려왔다.

“지금 회원용 S 사이즈 어딨어? 서랍에 다 떨어져서 창고 뒤졌는데 안 보여.”

“아, 그거 차량에 있을 거야. 아니, 그보단 왜 이렇게 사람이….”

“저기 한도훈한테 물어봐!”

서이수는 순식간에 내 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녀석이 떠나기 전에 가리킨 곳을 봤다. 그곳엔 뿌듯한 얼굴로 의기양양하게 서 있는 한도훈이 있었다. 설마, 설마 진짜로 저 녀석이 일을 저지른 거야? 나는 경악한 심정으로 녀석에게 다가갔다.

“너, 너어… 어떻게….”

“후훗. 다 방법이 있죠. 누나.”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 한도훈은 잔망스럽게 웃었다. 평소라면 그 얼굴에 똥 씹은 얼굴을 짓겠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왠지 이 녀석한테서 후광까지 보일 지경이었다.

“그 방법이 뭔데…?”

이 녀석은 사업의 천재인가? 한도훈은 겨우 일주일 만에 지난달의 두 배, 아니 세 배가 넘는 매출을 달성했다. 이게 단기적인 방법일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달성했다는 게 중요했다. 이 회원을 유지하는 건 이제부터 우리 몫이니 말이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온 거지? 아무리 이름 있는 일진이라도 이 정도의 파급력이 있진 않을 텐데?

“후후후…. 그건 말이죠~.”

“저희 팬클럽이에요. 누나.”

“아! 이재현! 내 말 가로채지 마!”

불쑥 튀어나온 이재현의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팬클럽…?”

“네. 저희가 이 동네에서 꽤 유명하잖아요. 근데 그게 일진이란 이유뿐만은 아니고….”

이재현은 잠시 부끄러운지 눈길을 살짝 피하면서 얼굴을 붉혔다.

“그… 외모로도 유명해서… 인터넷에서도 나름 유명한가 봐요. 카페도 있다곤 하는데… 도훈이는 거기서 소통도 하고 있거든요. 거기에다 말을 좀 흘린 것 같아요.”

아앗…! 그러니깐 너희가 이 동네 아이돌이란 뜻이었구나…?! 정말 상상도 못 했던 답에 기겁했다. 문득, 서이수가 몇 년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일진에 들어간 이유가 인맥을 잡기 위함이랬던가…?

‘이수, 너… 다 생각이 있었구나?’

당시엔 납득은 가지만 얼토당토않은 먼 얘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막상 눈앞에 현실로 들이밀어지니 놀랍기 그지없었다.

“그, 그렇구나…. 팬클럽…, 팬클럽이구나….”

나는 놀라움에 공허하게 중얼거리다 문득 드는 생각에 안색을 굳혔다.

“서, 설마… 서이수, 그 자식도…?”

“네. 이수도 팬 있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차마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 들어선 안 될 말을 들은 기분이었다. 나는 온몸에 돋는 소름에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 그 덜떨어진 놈한테?! 왜에…?!”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갔다. 이런 생각 하면 안 되지만 팬들은 눈이 삔 걸까? 어떻게 서이수 같은 놈의 팬이 될 수 있는 거지?!

“이수가 일진치고는 얌전하잖아요. 술, 담배도 안 하고 애들 삥도 안 뜯고. 오히려 도와줬으면 도와줬지 말이죠.”

앗. 그 말에 나는 바로 납득했다. 그래. 내가 그놈 사람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하긴 했지. 서이수의 팬들이란 사람들은 어쩌면 그런 부분 때문에 팬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이해는 잘 안 가지만.

“세상엔 별의별 취향이 다 있네….”

아직도 채 가지 않은 충격에 작게 중얼거리니 이재현은 작게 웃었다.

“어. 근데 그 김시원이란 애는?”

경황이 없어 한 명이 부족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의아함에 두리번거리며 찾자 이재현보다 잽싸게 한도훈이 입을 열었다.

“걘 정신 사납다고 다른 시간대 신청했어요.”

“어?”

“이왕 하는 거 제대로 배워 보고 싶었나 봐요. 그래서 최대한 사람 없는 시간으로 신청했다고 했어요.”

오오. 정말 올바른 마음가짐이네. 기특한 녀석 같으니. 나는 그 말에 흡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은?”

“저흰 팬들이 계속 다닐 수 있게 하기 위한 유지 시스템이죠~.”

찡긋, 하고 윙크하는 한도훈의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냥 데려온 것뿐만 아니라 유지까지 도와주다니! 나는 물결치듯 오는 감동에 입을 틀어막았다.

“너, 너희들…! 내가 그동안 너흴 잘못 봤구나…!”

나는 한도훈과 이재현의 손을 붙잡고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말했다.

“앞으로도 우리 이수랑 잘 지내주길 바랄게. 아, 내가 해 줄 게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고! 힘쓰는 일은 웬만한 건 거의 다 잘하니깐!”

내 말에 한도훈과 이재현은 단박에 얼굴을 피며 각자 붙잡은 내 손 위에 자신들의 손을 겹쳤다.

“무슨 그런 것까지…, 하지만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니깐 감사히 받을게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각자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하하 호호 하며 기쁨을 공유했다.

“오늘따라 너희들 참 잘생겨 보인다. 누굴 닮았길래 이렇게 똑똑하고 예쁘니?”

“전 원래 똑똑하고 예쁘고 잘생겼어요. 누나.”

“하하하.”

“…….”

그것을 멀리서 지켜본 서이수가 못 볼 걸 본 것처럼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질색하듯 피했다는 건 아무도 눈치 못 챘다고 한다. 알아도 신경 쓸 사람은 없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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