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현실은 상상보다 더한 법이다 (2)
“가끔, 아니, 자주 때려치우고 싶어. 범죄는 걔가 저지르는 거지, 내가 저지르는 게 아닌데. 왜 그런지 모르겠단 말이지.”
어차피 저와는 인연도 없는 동생이었다. 자신은 이 세계의 서이나가 아니다. 이 세계의 서이나는 사라지고 서이수가 없던 세계의 서이나가 이 자리에 있었다. 서이수와 자신을 연결해 주는 건 기억 속의 편린뿐이었다.
그런데, 자신은 왜 이렇게 필사적으로 서이수를 말리고 싶은지 스스로조차 모를 때가 많았다.
“근데 정말 나 스스로도 멍청하고 한심하단 생각이 들 정도로 걔가 사고 치고 있으면 그냥 몸이 나가더라. 그냥 걔 멱살 잡고 싶어져. 이것도 정상은 아니지. 말보다 손부터 나가는 누나라니, 걔도 참… 복도 없지.”
요 2년간, 나는 엇나가는 낯선 동생에게 해 줄 수 있는 거라곤 요령도 없이 손부터 나가는 몹쓸 누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 녀석이 제게 원망을 쏟아 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근데 어쩌겠어. 난 말주변도 없고, 할 줄 아는 거라곤 주먹 쓰는 법밖에 모르는데.”
그렇게 길러진 걸 어떡해. 기억이 있을 무렵부터 나는 샌드백을 차고 있었다. 체육관에서 사고를 치는 놈이 있으면 링 위에서 패는 것밖에 몰랐다. 그래서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이었다.
기억 속에 있는 이 세계의 서이나는 좀 더 상냥하고 다정했던 것 같았지만, 요령 없이 살아 사회에 치인 메마른 저로선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더 그 녀석에게 험악하게 굴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족이란 건, 나도 모르겠다. 특히 동생은 더 모르겠어. 매일 원수 같다가도 가끔 예뻐 보이기도 하고. 죽이고 싶다가도 누가 그 자식 건드리면 못 참겠고.”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여전히 엎드러져 있는 반휘혈을 바라보았다.
“…정확히 뭔 일이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너도 복잡한 거지?”
특히 예민한 중2를 지난 중3의 나이이니 더 복잡하겠지. 새삼 녀석의 나이가 와 닿았다. 평소에 입만 다물고 가만히 있는 것만 봐왔다. 그래선지 또래에 비해 성숙해 보였었다. 그런데,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자니, 그 나이가 새삼 닿아 왔다.
‘어린 녀석이 얼마나 속이 문드러졌을까….’
아직 사정을 듣지도 않았지만, 그 고통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 전해져 올 정도였다. 분명 이 녀석이 쉽사리 감당치 못할 상황임은 분명했다. 나는 말을 끝내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녀석이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려 줄 심산이었다.
1분, 2분, 3분… 몇 분이 지났을까, 드디어 옆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피웠어.”
“……뭐?”
그런데 내용이 심상치가 않다. 나는 불쑥 들려온 말에 바로 뇌가 굳는 느낌을 받았다. 방금 뭘 했다고?
“아버지가, 바람피웠어. …애까지 딸려 왔고.”
나는 떡 벌어지는 입을 억지로 다물었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잠시 침을 삼켰다.
“그 식구가 한 지붕에서 산 지 벌써 5년째야.”
“……”
저저저저저!!! 모, 몹쓸 새끼 같으니…!!! 나는 갈수록 커지는 스케일에 동공이 흔들렸으나, 그의 아비에 대한 욕은 잊지 않았다.
“어머니와 형은 집을 나갔어. …나만 남겨 두고.”
서글프게 갈라진 목소리가 들렸다. 이젠 걷잡을 수 없었다. 굉장히 무거운 내용에 나는 침조차도 삼키지 못하고 있었다.
‘대충 강압적인 아버지라든가 방치하는 부모…, 엇나가고 반항하는 자식…. 뭐 이딴 걸 생각했는데…. 어… 어어…?’
나는 당황해서 몸을 쩍 하니 굳힌 채, 엎드려진 반휘혈의 뒤통수만 바라보았다.
“끔찍해. 그 인간도. 그 여자도.”
그때, 반휘혈의 목소리가 짓씹듯 낮게 들렸다. 나는 그 말에 인상을 굳혔다. 나 같아도 그 인간들이 끔찍하게 여겨지는데, 이 아이는 오죽할까.
“그런데,”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제껏 분노에 찬 목소리와는 다른, 무언가 굉장히 슬퍼지게 하는 그런 목소리였다.
“그 아이가… 그 애가, …싫지가 않아.”
그는 괴롭게 일그러져 금방이라도 감정을 토해 낼 것만 같았다.
“진짜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인간들 자식인데, 너무 원망스러운데, …밉지가 않아.”
반휘혈은 묻고 있던 고개를 무릎 쪽에 더 파묻으며 쥐어짜 내듯 짧게 읊조렸다.
“그래서, 너무… 미칠 것 같아.”
그의 갈라진 목소리가 내 심장도 스쳐 지나가는 듯한 통증을 주었다. 그 아픔이, 그 괴로움이 전염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입을 달싹이다가 솟구치는 감정에 이를 악물었다.
“우, …우윽….”
참으려 했지만, 참을 새 없이 눈물이 솟구쳤다. 울면 안 되는데, 괴로워하면서 참고 있는 이 녀석 앞에서 울면 안 되는데. 자꾸 눈물이 솟았다.
“…왜, 우는 거야.”
자꾸만 솟구치는 눈물을 막기 위해 팔뚝으로 벅벅 눈물을 닦는데 반휘혈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물로 흐린 시야로 녀석을 보니, 녀석의 눈은 저완 달리 공허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그 모습에 더 울컥한 감정이 솟아올랐다.
“…너는 왜, 흐끅, 안 우는 건데.”
나는 통제가 되지 않는 눈물을 팔뚝으로 벅벅 닦았다. 그리고 인상을 굳히며 녀석을 바라봤다.
“네가, 울어야, 하잖아…!”
말하고 나니 더 감정이 웅성거렸다. 나는 인상을 확 찌푸리고 아직까지 붙잡힌 팔을 잡아당겨 녀석의 몸을 끌어당겼다.
“네 일이잖아! 그렇게 괴로운데 왜 참는 거야!”
화가 났다. 옳지 못한 화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화가 치밀었다.
“…참아야 하니까.”
여전히 아이답지 않게 공허한 눈으로 하는 그 말에 결국 녀석의 멱살을 붙잡고 소리쳤다.
“너 아직 열여섯 살이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꼬맹이라고!”
내가 바보 같다고? 너는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멍청이다. 나는 내 고생을 사서 하는 바보지만, 이 녀석은 알면서도 도피하고, 또 수렁에 깊이깊이 빠져 제 자신을 지옥의 아가리에 들이미는 바보였다.
하지만, 그게 이 녀석의 잘못이 아님을 안다. 이 녀석에겐 보호해 줘야 할 어른이 없었다. 길을 인도해 줘야 할 어른이 없었다. 나는 그 사실이 너무나도 괴롭게만 느껴졌다.
“…제발 참지 마. 너 아직 중학생이고, 보호받아야 할 학생이야. 감정에 솔직해진다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
“……토해 낸다고, 뭐가 달라져.”
처음으로 그의 공허하던 눈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나는 그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적어도, 후련해지겠지.”
미덥지 못한 어른이지만 이 불쌍하고 외로운 아이를 조금이라도 지지해 주고 싶었다. 이 감정을 토해 낼 줄 모르는 애처로운 아이의 감정을 받아 주고 싶었다.
“하….”
그게 뭐야. 바보 같아. 그가 작게 조소했다. 그리고 그의 눈가가 미미하게 점점 일그러져갔다. 나는 그런 녀석의 얼굴을 끌어당겨 제 어깨로 향하게 했다. 반휘혈은 어떤 반항도 하지 않고 힘없이 끌려와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나는 그 녀석의 등에 손을 둘러 서툰 손놀림으로 그 등을 두드려 줬다.
녀석은 한참을 그 상태로 움직이지 않았다.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반휘혈이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가 진정됐을 땐 어느새 해가 저문 뒤였다.
“잠깐 어디 가지 말고 기다려 봐.”
나는 녀석을 잠시 두고 근처 편의점에 가 시원한 이온 음료 두 개를 사 왔다. 녀석은 그것을 말없이 받아 들고 고개를 숙인 채 눈두덩에 눌렀다. 나도 그 곁에 앉아 페트병을 눈에 문지르자니, 퉁퉁 부은 눈이 좀 살 것 같았다. 집에 가기 전엔 가라앉아야 할 텐데… 나는 맥없는 생각을 하며 저물어 가는 노을을 멍하니 구경했다.
어쩐지 이 녀석이 일진놀이를 하고, 주변을 자꾸만 냉대한다든가, 아까 그 여자애를 차갑게 거절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간 이 녀석에게 접근한 여자애들도 주르륵 생각날 것 같았지만 어쩐지 그때도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휴, 얼굴이 죄지. 죄.’
경국지색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이렇게 잘난 얼굴에 키도 큰 데다 쌈질도 잘한다니. 여자들이 두 눈에 불을 켜도 이상하진 않았다. 게다가 말수도 없으니 얼마나 미스터리해 보이겠는가. 이런 요소는 그 나이대 여자들이 환장할 만한 요소였다. 이 녀석이 싫다고 거절해도 여자 여럿이 득달같이 계속 달려드니 어느 정도 포기한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은 집안에서 무슨 일이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안 그래도 저기압인데 여자애가 한 말이 그의 트라우마를 제대로 자극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모질게 쳐 낸 거겠지. 이제껏 반휘혈이 그렇게 여자를 쳐 낸 건 처음 봤었으나, 아까의 설명으로 대충 설명이 가능해졌다.
나는 녀석의 안타까운 사정에 동정을 금치 못하며 바라보다 엎드려진 등을 물끄러미 보다가 툭툭, 두드렸다. 반휘혈은 시선만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것만으로도 그가 하고 싶은 말이 충분히 전달되었다. 나는 녀석에게 웃으며 말했다.
“가자. 밥 사 줄게.”
울고 나니 배가 고파졌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감정 소모에도 많은 칼로리가 소모된다. 화를 낼 땐 내고 슬퍼할 땐 슬퍼하더라도 우선 배가 부르지 않으면 소용이 없었다. 나는 자리에 먼저 일어나 녀석이 일어나길 기다렸다. 반휘혈은 그런 나를 잠시 보다가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요 앞에 떡볶이집 알아?”
반휘혈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가려고 하는데 괜찮아?”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보기와 달리 반휘혈은 가리는 음식 없이 뭐든 잘 먹었다. 나는 그것을 만족스레 웃으며 바라보곤 경쾌히 발걸음을 옮겼다.
“넌 뭐 안 먹는 거 없어? 난 거의 다 먹는 편이거든.”
그리고 저완 정반대로 서이수는 심한 편식쟁이였다. 밥상머리에서 얼마나 말이 많은지…, 쯧쯧. 배가 불렀어, 배가.
“…없어.”
“오. 그럼 좋아하는 음식 있어? 난 불고기! 불고기 좋아해.”
불고기는 야들야들하게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그 맛이 일품이었다. 나는 상상만으로 고이는 침에 행복해하는데, 한참을 지나도 옆이 너무 조용했다.
“…….”
궁금해서 한 번 살펴봤다가 심각한 얼굴을 한 반휘혈을 발견했다. 깊이 고민하는 모양인지 얼굴이 조금 찡그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