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프로가 아닌 철 밥통을 노린다 (1)
***
주말이 지나고 수요일이 되었다. 그래서 학교가 끝난 후, 바로 체육관으로 향하자 이제는 좀 익숙해진 김시원의 얼굴이 보였다.
“시원이, 안녕.”
“안녕하세요.”
꾸벅, 마주 인사해 주는 시원이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줬다.
사람 없을 시간에 온다고 하길래 언제 오나 싶었는데, 그가 평일 저녁에만 다닌다는 걸 알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이 시간에 그의 팬이 없는 건 아니었다. 팬들도 자기 좋아하는 연예인 닮아 간다고 했던가? 그들은 김시원에게 방해되지 않게 멀찍이서 구경하는 게 다였다. 처음엔 주말반과는 다른 그 낯선 광경에 놀랐었지만, 이젠 얼추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어때? 할 만해?”
이왕 배울 거 제대로 배우고 싶다고 한 이 기특한 녀석에게 나는 나름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과묵하니, 제 할 일을 묵묵히 하는 게 참 보기 좋았다. 내 물음에 김시원은 끄덕, 하고 별말 없이 내게 답해 주곤 다시 훈련에 집중했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다 문득, 며칠 전에 본 반휘혈이 떠올랐다.
똑같이 조용한 둘이었으나 반휘혈과 김시원은 분위기가 너무 달랐다. 반휘혈은 흔히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북부대공 같은 차가운 귀족 이미지라면, 김시원은 묵직한 기사 느낌이었다. 아직은 둘 다 미숙한 감이 있지만 몇 년만 지나면 분명 그림 같은 청년이 될 것 같았다. 아니, 반휘혈은 충분히 지금도 그림같이 예쁘고 잘생겼긴 하지만….
‘어라…, 둘만 붙여 놓으면 꽤 볼만하겠는데?’
그런 속없는 생각을 하며 녀석이 훈련하는 걸 지켜보다 곧 몸을 돌려 굳은 몸을 풀기 시작했다.
“잠깐 시간 될까요.”
한창 근력 운동을 한 후, 잠시 쉬는 타이밍에 김시원이 말을 걸어 왔다. 평소에 다른 애들에 비해 나에게 말을 걸어 오는 게 드물었던 녀석인지라 나는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왜?”
“…스파링, 해 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그는 약간 긴장 어린 기색으로 내게 물었다. 나는 그 말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바라봤다.
“스파링? 나한테?”
“네.”
단호한 답변에 나는 눈을 깜빡이다가 난처히 뒷목을 주물렀다.
“나는 좀…. 저기, 저 오빠한테 부탁해 줄까?”
마침 아마추어 경기를 준비하던 오빠가 있었다. 김시원은 내가 가리킨 방향을 잠깐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누나랑 해보고 싶어요.”
“왜?”
굳이 이 체육관에 자신이 아니더라도 상대해 줄 사람은 여럿 있었다. 자신처럼 선수 준비 하나 없이 체력과 근육만 키우는 사람한테 부탁할 필욘 없단 뜻이다.
“누나가 가장 강해 보여서요.”
“뭐어?”
나는 그 말에 황당해졌다. 이제껏 얘 앞에선 제대로 싸워 본 적도 없는데… 굳이 따지면 노래방 때를 제외하곤 한 번도 없었다. 설마 그 단편으로 내 실력을 가늠했다고? 말도 안 된다. 무슨 무림 고수가 아니고 이제 막 제대로 배우기 시작한 햇병아리가 뭘 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인상을 찌푸리자 김시원은 덤덤히 내 이런 의문을 해소했다.
“싸우는 거 몇 번 본 적 있어요.”
“으응…?”
…뭘 봤다고?
“누나가 싸우는 거….”
“아, 이나야! 혹시 이수 봤냐!”
그때, 들려온 아빠의 목소리의 나는 황급히 김시원의 입을 틀어막고 외쳤다.
“몰라요!!”
아찔했다. 사무실에 계실 줄 알았는데 나와 계셨을 줄은…. 이 얘기를 들었으면 아빠는 분명 눈에 불을 켜면서 날 훈련시키려 했겠지. 등 뒤에 식은땀이 절로 흐르는 것 같았다. 나는 틀어막은 김시원의 입에서 손을 뗐다. 김시원은 말없이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깐 나와 봐.”
내가 휙휙 손짓을 하자 김시원은 말없이 따라 나왔다. 인적이 없는 골목길에 들어서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걸 확인한 나는 녀석을 난처히 바라봤다.
“…그러니까 뭘 봤다고?”
떨떠름히 물어보자 김시원이 덤덤히 답했다.
“누나 싸우는 거요. 서이수 찾으러 올 때 누나 쪽으로 몇 명 갔었잖아요.”
“…….”
“그때마다 거의 1초 컷이던데요.”
그, 그걸 봤어? 아니, 나 나름 잘 안 보이는 후미진 곳에 잘 숨었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날 공격해 오는 놈들도 그렇고 이 녀석도 그렇고 왜 이렇게 잘 찾지? 내가 그렇게 못 숨었나…? 아, 그러고 보니 반휘혈이랑도 몇 번 눈 마주쳤던 것도 같기도….
‘나… 그동안 뭐 한 거지.’
안타깝게도 내겐 미행의 자질은 없다는 사실을 2년 만에 알게 되었다.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했는데, 세 번이 넘어가니깐 알겠더라구요. 태산고 녀석도 그렇고요.”
세, 세 번이나 넘게 봤니…? 아니, 그건 그렇고….
“태산고 걔는 또 누구야….”
이번엔 또 뭔데. 내가 또 무슨 사고를 친 거야…..
“노래방이요. 걔가 그 학교 일짱이에요.”
“…….”
…하필 걔가 일짱이었냐? 아, 아니, 그보다 지금 내가 굉장히 거슬리는 단어 하나를 들은 것 같은데?
“잠깐. 태산…고? 그러니깐 지금 고등학생이 중학생 괴롭히러 왔다는 거야? 지금?”
김시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말에 인상을 확 구겼다. 나이 처먹고 어린애들 괴롭히러 왔다니! 그런 줄 알았다면 기절했을 때 몇 대 더 때릴 것 그랬다. 나는 순간 치솟는 분노에 주먹을 꽉 쥐었다.
“저….”
그때, 김시원이 나를 조심스레 불렀다. 나는 그제야 한껏 구겼던 얼굴을 풀곤 민망히 뒷목을 주물렀다. 괜히 잘못도 없는 애한테 화풀이한 느낌에 미안해졌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속으로 다짐했다.
‘태산인가 대산인가 하는 그놈 다시 만나면 두고 보자. 일짱이랬지? 근데 일짱이란 놈이 그렇게 쉽게 기절… 아, 잠깐.’
불현듯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나 유명해졌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얘들만 있으면 또 몰라, 노래방엔 또 다른 무리도 섞여 있었다. 무엇보다 무시하기엔 내 전적이 너무 화려했다. 나는 저절로 떨리는 눈으로 김시원을 바라보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나… 혹시 유명해?”
“뭐….”
김시원은 시선을 피하며 말끝을 흐렸다.
불길하게 왜 그래!
나는 안색을 굳힌 채로 절박하게 녀석의 두 팔을 붙잡았다.
“왜, 왜에…. 나 그렇게 유명해?”
울상을 잔뜩 지으며 묻자 김시원은 떨떠름히 나를 보다가 느릿하게 말했다.
“뭐… 뒤에선, 좀.”
그건 표면으로만 안 드러났을 뿐이지 알 사람은 다 안다는 거잖아! 나는 받은 충격에 잠시 휘청였다.
“나… 그렇게 눈에 띄었…, 띄었지. 띄었구나.”
그동안 외면했던 행적들이 떠올랐다. 패싸움 중에 나타난 의문의 인간, 반휘혈을 도운 이름 모를 인간, 그리고 태산고 일짱을 쓰러트린 커다란 전적.
유명하지 않은 게 이상했다. 나는 머리를 감싸 쥐며 좌절했다.
“그렇게 강한데 들키는 게 싫은가요?”
김시원은 내 반응이 이해가 가질 않은 모양인지 의아해했다. 그럴 만도 했다. 이곳은 인소 세계. 강하면 남부럽지 않을 대우를 받는 그런 세상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걸 정면으로 걷어차고 있으니, 이상해 보이겠지. 서이수도 처음엔 이런 날 이해를 못 했었기에 그 반응은 익숙했다. 물론, 그 녀석이 지금은 이해한다는 뜻도 아니지만.
세상은 주먹만이 다가 아니야! 이 어린 놈들아…!!!! 나는 터져 나올 것 같은 한탄을 겨우 내리누르며 체념 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문제가 아니야…. 유명해지면 아빠 귀에 들어가잖아….”
그래. 이런 걸로 유명해지고 싶지 않은 이유야 여럿 있다지만 우선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거였다.
“관장님이요?”
“어.”
나는 깊은 피로를 느낀 것만치 한숨을 내쉬며 푸념을 내비쳤다.
“아빠가 후계자 양성에 얼마나 목메는데…. 분명 나 키운다고 체육관 관리도 뒷전으로 할 거야.”
그건 절대 있어선 안 되었다. 지난 생에서 체육관이 망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나였다.
딱히 스스로를 탓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도 왜 내가 이유냐면 아빠의 성격 때문이었다.
아빠는 하나에 꽂히면 그것에만 밀어붙이는 불도저 같은 습성이 있었다. 그래서 나 하나에만 목을 매며 세계 챔피언 만들겠다고 열중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회원 관리가 미흡해져 회원들의 탈퇴로 이어지고 있었다. 안 그래도 간당간당했던 흑자가 크게 휘청여 도저히 메꿀 수 없는 적자가 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결국 아시안 챔피언까지 달성하고 세계 랭킹 상위권까진 진입했었지만… 거기까지였다. 도저히 선수 생활을 이을 형편이 못 돼 챔피언도 1관왕으로 머물고 바로 은퇴하고 말았다.
나는 선수로서 얻은 것은 명예뿐이지, 실제로 돈은 그리 크게 벌진 못했다. 게다가 한국은 특히 여성 챔피언에게 관심이 없었다. 국내의 명예는 못 얻은 거나 마찬가지다. 챔피언이 되면서 우승 상금을 얻긴 했어도 세금 떼고 빚 갚는 등 이것저것 빠져나가다 보니 오히려 제 선수 생활로 잃은 게 더 컸다.
스폰을 받았다면 좀 나았을지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아빠가 스폰서 측에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 버렸다. 그래서 국내 기사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올라왔다 해도 소리 소문 없이 파묻혀 그 누구의 관심도 못 받기에 이르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러냐고 몇 번을 캐물었지만 돌아오는 건 침묵뿐이었다. 그때, 아빠의 등이 그렇게 작아 보인 건 처음이었다. 결국 나는 아무 대답도 듣지 않고 선수의 길을 포기했다. 김서연의 제안을 거절했던 것도 바로 이 탓이었다. 어차피 어떤 체육관을 가도 절 받아 주는 곳은 없었으리라. 아시아 챔피언에 세계 랭킹을 차지해도, 막대한 권력 앞에선 한낱 글씨 한 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처음 깨달았다.
…그래, 뭐 어차피 이미 지나간 일에 미련을 두고 후회해 봐야 늦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새로 찾아온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다시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그 전철을 밟고 싶지 않았다. 아빠 눈에는 최대한 띄지 않은 채 지금 이대로 지내 체육 교사가 되어 철 밥통으로서 안정적인 길을 택하고 싶었다. 그리고 설령, 들킨다 해도 굽힐 생각은 없었다. 단지 피곤한 길을 택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