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29화 (29/306)

29. 오해는 되도록 빨리 푸는 게 좋다 (2)

***

“…어머?”

“…하하.”

“…….”

“…….”

“뭐야? 누구 왔……,”

툭, 서이수는 씻다 나온 모양인지 머리를 탈탈 털며 나오다가 문 앞에 선 존재를 보고 들고 있던 수건을 떨어트렸다. 나는 수건이 떨어지는 궤적을 눈으로 좇다가 조심스레 다시 가족들을 바라봤다.

충동적으로 데려온 건 좋았지만 이 어색한 적막을 어쩌면 좋을까. 엄마는 갑작스러운 손님에 놀란 기색이었고, 아빠는 눈을 홉뜨며 나와 반휘혈을 번갈아 쳐다보다 이내 내게 집요한 시선을 보내왔다. 그리고 서이수는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는지 아직도 멍청한 얼굴을 짓고 있었다. 난 이 혼란스러운 공기에 앞이 깜깜해졌지만, 이 사태를 저지른 장본인인지라 책임감 있게 앞에 나서기 마음을 다잡았다.

“이, 인사해. 여긴 우리 부모님.”

하지만, 책임감과는 별개로 나는 그리 뻔뻔한 낯을 가지질 못했다. 억지로 웃어서 그런지 올린 입꼬리가 심히 부자연스러웠고 나오는 말은 심히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반휘혈은 내 어색한 소개에도 부모님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여 주었다. 다행히 녀석도 자신의 처지가 어떤지 의식은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

하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뭐라 좀 더 말하길 희망을 가지며 기다렸건만 반휘혈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새삼 이 녀석이 목소리를 내는 걸 싫어한다는 게 떠올랐지만, 굳이 이 장소에서 상기시키고 싶진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더는 말 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집 안은 더 어색한 적막에 휩싸였다. 내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억지로 끌어 올려진 입꼬리에 경련이 이는 걸 의식하곤 황급히 부모님에게 반휘혈을 소개했다.

“어, 여긴 반휘혈이라고 이수 친구야. 전에 체육관에도 한 번 왔었는데… 어…, 기억하려나 모르겠네….”

이 녀석이 평소에 체육관이라도 좀 들락날락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빠의 눈치를 보자니, 기억에 없는 모양이었다. 내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어떻게 해도 어색한 공기에 속으로 혀를 깨물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한도훈이 반휘혈에게 와 달라고 질척일 때 나도 한번 매달려 볼 걸 그랬다. 신규 회원 충분하다고 만족하지 말고, 좀 더 높게 목표를 잡아볼걸…!! 그럼 반휘혈이 몇 번 더 체육관에 들렀을 확률이… 한 몇 퍼센트는 올랐을 텐데…! 그럼 이렇게 궁색하게 변명 같은 말 안 해도 되는데…!!

“…이수 친구가 왜 이나 너랑 오는 거냐.”

크윽. 안 그래도 수상쩍게 보던 아빠의 시선에 의심이 짙어졌다. 아, 진짜 아무 사이도 아닌데 이렇게 오해를 받는 게 너무 억울하다. 하다못해 서로 동성이었으면 이런 의심도 피해 갔을 텐데 왜 이 자식은 남자인가. 진짜 별 사이도 아닌데 꼭 저렇게까지 봐야 하는가. 나는 아빠의 명백한 의심에 뭐라 말해야 할지 곤혹스러워졌다. 저 상태에선 웬만한 말로는 안 넘어가는데 어떻게 말해야 될까. 나는 잠시간 고민하다가 슬쩍,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반휘혈을 쳐다봤다.

‘…넌 왜 그렇게 보는 거냐.’

인상은 여전히 무뚝뚝하기 그지없었지만, 시선만은 집요했다. 마치,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기대하는 것처럼. 그리고 아빠도 그걸 눈치챘는지 더 의심이 커지고 있었다.

안 되겠다. 좀 더 있으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 같았다. 나는 궁색한 변명들은 집어치우고 황급히 바로 생각나는 말들을 입에 담았다.

“내, 내가 동생 삼은 애야! 어…, 얘가 그! 집에 사정이 있어서! 잠깐 동안만 집에 재워 주면 안… 될까?”

달리 뭐라 할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벌써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지만 이미 말을 내뱉고 난 후였다. 나는 슬쩍 옆에 있던 녀석을 보았다.

“…….”

얼핏 차가워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지척에 있던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녀석의 주위로 파아아-, 하는 밝은 후광 효과가 나타난 것 같은 착란이 일어날 정도로 내 대답이 꽤 마음에 드는 듯한 그의 기색을 말이다. 아, 세상에. 저거 혹시 오해했다거나… 오해했다거나… 뭐, 그런 걸까. …응. 아무래도 맞는 것 같다. 나는 밝아진 녀석의 낯을 바라보며 이따가 오해하지 않도록 따로 불러내 정정할 필요성을 느꼈다.

“어, 이나… 의동생이란 거지? 아, 거기 서 있지 말고 어서 들어와.”

그런 와중 엄마가 내 말에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손님을 밖에 너무 오래 세워 놨다는 걸 자각했는지 서둘러 불러들였다. 그러곤 마실 걸 챙겨 온다면서 부엌으로 가 버렸다.

“…….”

“…….”

“…….”

“…….”

그리고 거실에 모여 앉은 우리 사이엔 무거운 침묵만 감돌았다. 나는 눈을 데록데록 굴리며 엄마가 오길 기다리는데, 옆에 앉은 서이수가 내 옆구리를 찔러 댔다.

‘왜.’

내가 눈짓으로 녀석을 보자, 드디어 상황 파악을 끝낸 서이수가 그 길게 째진 눈을 부라리며 내 옆에 있는 반휘혈을 몰래 눈짓했다.

‘쟤가 왜 여깄어?!’

‘설명해 줄 테니까 가만히 있어.’

마치 못 볼 사람을 본 것처럼 흥분한 기색에 나는 녀석을 진정시켰다. 그래. 네 맘 알지. 알고말고. 사람과 의사소통을 담쌓던 일짱이 갑자기 집에 들이닥치질 않나, 그것도 누나라는 인간이 의동생이랍시고 데려오질 않나. 당황스럽고 이해 안 되는 거 알고말고. 그래도 어쩌겠냐. 이미 이렇게 돼 버린 걸.

“여기, 오렌지주스 좋아할지 모르겠네.”

그때, 어색한 침묵을 뚫고 엄마가 돌아왔다. 반휘혈은 음료수를 받아들이고 재차 고개를 꾸벅였다.

‘…아니, 고개만 꾸벅이지 말고, 제발 입 좀 열어 주면 안 될까.’

나는 이 순간 처음으로 저 예쁜 머리통을 한 대 후려치고 싶은 충동에 빠졌다. 하지만, 그랬다간 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오겠지…? 나는 뻗으려는 손을 주먹으로 꾹 쥐었다.

“얘, 얘가 지금 목감기에 걸려서…! 그래서 목소리가 안 나와!”

옆에서 뭔 개소리냐는 듯한 서이수의 눈초리가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반휘혈도 딱히 내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다행히 엄마도 납득한 모양인지 내 말에 걱정하는 낯빛으로 바뀌었다.

“어머, 그랬니? 그럼 따뜻한 걸로 다시…,”

“괜찮아! 금방 나을 거야! 잠깐 목이 쉰 거뿐이랬어!”

다시 부엌으로 돌아가려는 엄마를 황급히 붙잡았다. 이 불편한 침묵 속에서도 강철의 심장을 가지신 어머님은 제 페이스를 잃지 않으셨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 엄마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런 간절한 마음이 전해졌는지 반휘혈은 나를 잠깐 보더니 스마트폰을 꺼냈다.

[오렌지주스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그리고 녀석은 빠른 손놀림으로 메모장에 타자를 쳐 엄마에게 보여 줬다. 정말 그 재빠른 대처에 감탄이 나왔지만 또 한편으론 나는 얼굴을 미묘하게 굳혔다.

‘…너 그럴 시간에 말 한마디 하면 안 되냐?’

새삼스럽지만 인소 속 세계관의 최소 서브남주라 그런가, 이놈은 지독한 마이 페이스였다.

나는 녀석을 떨떠름히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와서 뭐라 해 봤자 뭐 하겠는가. 이런 녀석인 건 이미 옛적에 알고 있었고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이 문제는 차차 짚어 넘어가기로 하고, 당장은 이 상황을 잘 모면해야만 했다.

“어…, 음…. 그니깐 얘가 왜 온 거냐면… 아까도 말했다시피 집에 일이 있어서 그래. 좀 예민한 그런 거.”

설명을 해야 된다는 걸 알았지만, 내 앞에서도 힘들게 꺼낸 고민을 쉽게 내비치고 싶진 않았다. 무엇보다, 이런 건 내가 아니라 당사자가 꺼내야 될 문제였다. 그렇다고 반휘혈에게 맡기기엔 이미 목소리가 안 나온다고 거짓말을 친 후였다. 그래서 대충 둘러댔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부실한 설명이었지만, 더 붙일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내심 초조하게 반응을 기다리는데, 잠자코 듣던 엄마가 덤덤히 입을 열었다.

“…뭐, 이나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이유가 있겠지.”

뜻밖에 엄마는 금방 수긍한 모양이었다.

“무엇보다 맨몸으로 집을 나온 덴 다 이유가 있을 테니… 나중에 말하고 싶을 때 말해 주렴.”

엄마는 반휘혈을 향해 잔잔히 웃으며 말을 건넸다. 녀석은 엄마와 시선을 잠시 마주했다. 그리고 잠시 뒤,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외간 남자를 집에 끌어들이는 건 좀….”

하지만, 엄마의 의견과는 달리 아빠는 아니었던 모양인지 못마땅한 얼굴로 태클을 걸었다.

찰싹!!

“어머, 이 양반 좀 봐! 이나 의동생에 이수 친구라잖아! 그냥 군소리 없이 받아 주면 될 것을 뭘 그리 따져!”

그러나 엄마도 지지 않고 아빠의 말을 단번에 일축했다.

“하, 하지만….”

찰싹!!!!

“멀쩡해 보이는 애가 집 나온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텐데! 그것도 아픈 애가 맨몸으로 나왔다잖아! 속 좁은 티 내지 좀 마!”

아빠는 결국 연이은 엄마의 타박과 폭력에 그 넓은 어깨를 움츠리며 쪼그라들었다. 나는 엄마에게 아빠 몰래 엄지를 들어 보였다.

여윽시, 우리 이정화 여사님. 최고시다. 아주 시원시원하시네요! 난 마음속으로 박수갈채를 보냈다.

“방은 이수 방에서 자렴. 아, 손님용 이불 꺼내야겠네.”

엄마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 말을 듣다가 문득, 부잣집에서 사는 녀석의 처지를 떠올렸다.

‘…얘가 바닥이랑 잘 맞으려나…?’

이 녀석 처지에 불평을 말해선 안 된다는 건 알지만, 안다는 것과는 별개로 그가 손님이란 입장과 내 동정심, 그리고 오지랖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슬쩍, 서이수를 한 번 보고 녀석에게 말을 건넸다.

“…바닥 불편하면 얘 침대 뺏어 버려.”

“…잠깐! 왜 멋대로…!”

찰싹, 이번엔 서이수의 등짝이 희생됐다. 물론, 내 손에 의해서.

“그럼 내 방에서 재우리?”

“아니, 그건 아니지만… 굳이 내 침대를 왜….”

나는 뭐라 항변하려는 서이수를 끌어다가 귀에 속삭였다.

“일짱과 친해질 기회를 놓치고 싶냐.”

이게 다 미래를 위한 투자란다. 동생아. 네가 전에 말했었지? 일짱과 친해져서 사회 진출할 때 빽으로 삼고 싶다고. 친히 예전의 서이수의 포부를 다시 상기시켜 주자 서이수는 깊이 깨달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바닥도 괜찮아.”

…일이 수월하게 흐르는 것과는 별개로 내 동생 놈이 벌써부터 물질의 노예가 된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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