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오해는 되도록 빨리 푸는 게 좋다 (7)
“담배 끊으라며.”
반휘혈은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짜증스레 봤다. 마치, 안 그래도 담배 끊느라 스트레스받는데 왜 말한 당사자가 잊어버렸냐 하는 원망이 담긴 눈초리였다.
“아, 아니, 진짜 담배 끊으려 할 줄은… 그거 끊기 힘들다며.”
나는 황급히 변명했다. 그러다가 진심으로 의아해졌다.
‘얘는 왜 이렇게까지 내 동생이 되고 싶은 거지?’
서이수가 부럽다곤 했지만 이게 그걸로 퉁칠 만한 이야기인가? 아무리 내가 남자를 몰라도 그렇지 이게 비정상적인 관심인 건 알았다. 오히려 지금 내게 동생 같은 위치가 적절한 건 한도훈이나 이재현 쪽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그날은 저녁이고 너무 당황해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지만 멀쩡한 정신으로 떠올리니 보통 이상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걸 건들어도 괜찮을까?’
이제껏 자신은 엑스트라 오브 엑스트라로서 그다지 자신의 행위에 큰 자각 없이 움직였었다. 하지만, 점점 자신의 행동에 따라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짐으로 다가오는 기분이었다. 이걸 보고 책임이라고 하는 걸지도 몰랐다. 그리고 갈수록 그 무게가 지금 내가 감당하기 버거워질 정도로 무거워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 이상으로 파고들진 말자. 난 지금 서이수 하나만으로 충분해.’
어쩐지 옆에 있는 존재가 무겁게 다가왔지만, 나는 그를 바라보던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결국 엄마 오리 쫓아다니는 새끼처럼 반휘혈을 달고 조깅을 마친 나는 왠지 피로한 눈길로 체육관 건물을 바라봤다. 반휘혈은 안 들어가고 뭐 하고 있냐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탓에 나는 조용히 녀석을 흘겼다.
“너 진짜 같이 올라갈 거야?”
“왜?”
너무나 태연한 물음에 나는 차마 네가 들어가면 안에 있는 회원들 전부가 뒤집어질 것 같아서 그런다. 라고 대놓고 말할 수가 없었다. 말해 봤자 신경도 안 쓸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
“아니… 너 평소엔 여기 안 왔잖아.”
나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하고 싶은 말을 넣었다. 반휘혈은 그런 내 속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평소와도 같은 얼굴로 무감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
아오. 저 입, 입, 입…!! 새삼스럽지만 이곳은 인소 세계였고, 최소 서브남주로 추정되는 반휘혈의 싹수를 기대해선 안 되는 일이었다. 가끔씩 제게 행해지는 자그마한 친절에 까먹다가도 저 입만 열면 바로 상기시켜 준다.
“…오늘 왜 왔는데. 집에 있어도 됐잖아?”
보아하니 엄마랑은 잘 지내던 것 같았고 말이다. 오히려 서이수보다 더 친해 보이던 건 내 기분 탓이냐. …음. 서이수는 그냥 반휘혈에게 공기 같은 존재다 보니 비교 자체가 미안하긴 한데… 아니, 잠깐. 얜 원래 다른 사람 공기로 취급하잖아?
‘엄마… 진짜로 둘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도무지 알 수 없는 의문에 혼란스러워하던 중, 반휘혈이 입을 열었다.
“누나 보는 게 더 재밌을 거 같아서.”
“…….”
이번엔 다른 의미로 내 입이 막히었다.
아니… 진짜, 아니… 너 정말….
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머리를 싸맸다. 내가 이러니깐 얘가 날 좋아하는 건 아닌가 의심을 하지! 평소 남을 공기 취급하는 놈이 이렇게 말하는데 내가 오해를 하지 않을 수가 있나!
“휘혈아… 다른 사람한텐 그런 말 하지 마라….”
저절로 나오는 한숨을 푹 내쉬며 나는 왠지 피로해진 눈으로 녀석을 바라봤다. 반휘혈은 내 말의 저의를 파악하지 못했는지 이상하단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친히 부가 설명을 추가해 주었다.
“네가 그런 말 하면… 남들이 오해해….”
“오해?”
반휘혈은 더 갈피를 못 잡았는지 얼굴을 찌푸렸다.
“내가 그딴 말을 남한테 왜 해?”
“…….”
…이 자식이 진짜? 지금 나 오해하라는 거야, 뭐야?
“그럼 나한텐 해도 된다는 거냐고. 나도 남이잖아.”
그것도 생판 남이지. 나는 남의 속도 모르고 저딴 말을 함부로 하는 반휘혈에게 울컥해 저도 모르게 날카로운 소리가 튀어나왔다.
“누나가 왜 남이야?”
“뭐?”
하지만, 반휘혈은 상상 이상으로 강적이었다.
“이제 내 누난데.”
“…….”
태평히 그 말을 하는 반휘혈의 얼굴은 지극히 당연하단 걸 말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말이 막히어 그 말에 어떤 반박도 못 하고 있었다.
‘반휘혈… 너는… 진짜….’
내가 보통 이렇게 말이 자주 막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반휘혈은 나를 그렇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수준급으로 말이다. 저 말의 뜻이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말하는 의미가 아니라 진짜 ‘누나’를 지칭하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더는 안 휘둘려… 안 휘둘린다고…!
“…나 아직 너 받아 준다고 하진 않았는데.”
게다가 이대로 당하고만 있기에도 자존심이 상했다. 원래 지고는 못 사는 게 나였다. 그래서 저절로 불퉁해진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어라, 잠깐. 그러고 보니 내가 이 얘기를… 했던가…?
“뭐?”
그 의문에 대한 답은 금방 알 수 있었다. 반휘혈의 기색이 대번에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표정은 지금 굉장히 못마땅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 낯이었다. 아, 그래. 맞아. 내가 아침에 까먹었던 게 이거였구나… 하지만, 때는 이미 늦고 말았다.
“…그럼 집에서 말한 건 뭔데.”
“그야 그땐 그게 필요한 말이었으니까… 임시적으로 한 말이었지. 미리 말 안 해서 미안한데….”
반휘혈의 기세가 날카로워지자 왠지 머리가 아파져 오는 기분이었다. 점점 일이 꼬여 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풀고자 입을 여는데,
“하… 그럼 지금 날 가지고 놀았다는 거야?”
그런 내 입을 반휘혈은 기가 차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리며 막아 버렸다. 나는 그 내용에 헛숨을 내뱉으며 인상을 팍 찌푸렸다.
“야, 반휘혈…. 말은 똑바로 해. 누가 누굴 가지고 놀아?”
“그럼 아니란 소리야?”
나는 그 말에 참고 있던 얼굴을 굳혔다. 울컥, 하고 뭔가의 응어리가 참을 새 없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곧 녀석의 나이를 상기시키곤 한숨을 삼키며 금방이라도 새어 나올 듯한 응어리를 삼켜 냈다.
“반휘혈, 너 지금…, 아니다. 그냥 내 잘못이라고 치자.”
안 그래도 오늘 아침부터 컨디션 별로였는데 이런 일로 감정 소모를 겪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자리를 피하려는데 돌연 팔이 잡혔다.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이 자식이 진짜…. 나는 순간 치솟는 혈압에 붙들린 팔목을 냉정히 뿌리치며 살벌하게 얼굴을 굳히곤 녀석에게 말했다.
“난 끝났어.”
이 이상 건드렸다가는 동정심이고 뭐고 다 필요 없었다. 바로 이 위에 링이 있으니 거기에서 주먹으로 결판을 낼 작정이었다.
“…….”
하지만, 그것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렇게 날카롭던 반휘혈의 태도가 뚝 하니 멈췄기 때문이었다.
‘…뭐지, 꺾인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나는 갈피가 잡히지 않는 녀석의 상태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쩐지 자신이 말실수를 한 것만 같았다.
“…….”
반휘혈의 벌어져 있던 입이 서서히 다물렸다. 그러나 다문 입과는 달리 그의 얼굴은 미미하게 일그러져 갔다. 그런 그의 낯을 정면에서 마주하자 점점 자신이 잘못한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난 그저 사실을 말했어. 이 녀석은 자기 멋대로 말했을 뿐이고.’
나는 바로 고개를 저으며 그 죄책감을 떨쳐 냈다. 아무리 어려서 그렇다지만, 제멋대로인 것도 적당히 해야 되는 법이다. 나는 그런 녀석의 이기심을 잘라 낸 것뿐이었다.
“…알았어.”
굳게 닫혀 있던 그의 입이 드디어 열렸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려 했지만, 그보단 반휘혈의 행동이 더 빨랐다.
왜냐면, 녀석은 나를 잠시간 내려다보더니 그 자리를 떠났기 때문이다.
나는 녀석의 갑작스러운 행위에 그의 등 뒤에라도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어째선지 입이 도무지 열리지 않았다. …녀석이 떠나기 전, 직전까지 마주했던 얼굴 때문이었을까.
“…뭐야. 진짜 내가 잘못한 것 같잖아.”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마치 상처받은 것처럼 날 내려다봤던 반휘혈의 얼굴을 떠올리곤 머리가 복잡해짐을 느꼈다.
“하아….”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왜 이런 대낮에 저 어린 녀석이랑 싸우질 않으면 안 되는지도 잘 모르겠고 말이다. 갑자기 피로가 확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오늘은 그냥 집에 가서 쉴까.’
하지만, 집에 가면 또 반휘혈을 볼 텐데? 아니, 걔가 집에 계속 있을까? 하지만 반휘혈은 자기 집을 싫어 하는 걸. …그렇다고 저 녀석이 우리 집에 남아 있겠어?
보통 인소 속 남주들이나 서브남주들은 상상을 초월하리만큼 고집이 강했고, 그만큼 자존심도 강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그 쓸데없는 설정에 또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저 녀석이 서이수야, 뭐야…?’
왜 이렇게 내 동생이라고 있는 놈들… 한 명은 우기는 거지만, 어쨌든 이놈들은 내 머리를 아프게 하지 않고선 못 배기는 걸까? 정말 피곤할 따름이었다. 이렇게 한숨을 많이 쉬게 하는 것도 그동안 서이수를 빼곤 없었는데… 이것만 봐선 반휘혈은 아~주! 동생으로선 합격점이었다.
“아… 짜증 나는데.”
눈 밑으로 피로감이 쫙 퍼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차오르는 스트레스에 머리를 북북 긁다가 힐끔 체육관을 바라봤다.
‘안 되겠다. 이왕 온 거 샌드백이라도 쳐야겠어.’
피로와 별개론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다. 될 수 있다면 지금 아빠가 체육관에 없길 바라며 나는 계단을 한 발자국 올랐다.
“야… 잠깐…! 밀…, 마!”
“악… 내 발…!”
“애들아, 제발 좀 조용히….”
그때, 계단 위, 정확히는 계단의 끝인 체육관 문 근처가 소란스러운 게 느껴졌다. 나는 그 인기척에 훌쩍 계단을 뛰어올랐다. 그리고 목도한 광경에 어처구니를 잃었다.
“…너희들, 대체 뭐 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