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35화 (35/306)

35. 난처한 부탁 (1)

“아, 아하하… 아, 안녕하세요…!”

“어… 누나, 왔어…?”

“…그러게 내가 들어가자 했잖아.”

“…….”

차례대로 멋쩍게 웃으며 인사하는 한도훈과 서이수가 있었고, 이재현이 머리를 감싸며 한탄하고 있었다. 그리고 침묵을 지키는 김시원이란 놈도 한 명 추가였다.

“…김시원, 너는 왜 여기 있냐.”

너 주말에는 안 올 거라며? 분명 내가 그렇게 들었던 것 같은데 그건 사실이 아니었던 거니?

내 차가운 시선을 정면으로 맞던 김시원은 슬쩍 눈을 피하며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얘가 오늘 오라고 해서요.”

김시원이 가리킨 ‘얘’는 바로 한도훈이었다. 한도훈은 자신을 가리킨 김시원을 슬쩍 째려보더니 나와 눈을 마주치곤 다시 민망히 웃음을 그려 냈다.

“어… 저희가 보려고 해서 본 건 아니구요…. 다 같이 밥 먹으려고 나가는데 소리가 들려서 그만….”

하하. 하며 웃는 한도훈을 말없이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럼 어서 밥이나 먹으러 가라. 배고프겠네.”

한창 점심시간이니 배가 고플 게 당연했다. 나는 손을 내저으며 인사를 하곤 체육관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아, 네. …근데요, 누나.”

하지만, 한도훈은 그런 나를 불러 세웠다.

“야, 한도훈. 하지 마.”

“잠깐, 비켜봐 봐. 내가 진짜로 궁금해서 그런다고. 알잖아? 나 궁금한 건 못 참는 거.”

옆에서 이재현이 그런 그를 막으려 했으나, 호기심으로 왕성한 눈은 꺼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는 저를 붙잡으며 말리는 이재현을 저 멀리 치워 내곤 내게 다가와 눈을 빛내며 물었다.

“누나, 휘혈이랑 언제부터 사귀었어요?”

나는 그 말에 멈칫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사귀어?”

누가? 누구랑?

“미리 말해 주면 어디 덧나요? 보니깐 서이수 얘도 모르던 눈치던데.”

한도훈은 옆에 굳어 있는 서이수를 팔꿈치로 찔러 댔다. 그러자 서이수는 그런 한도훈의 간섭에 굳어 있던 머리가 돌기 시작했는지 인상을 한껏 굳히며 내게 다가왔다. 뭔가 싶어 바라보는데 녀석이 척, 하고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누나, 너… 그런 거였다면 진즉에 말을 해 줬어야지. 그럼 내가 엄마랑 아빠 몰래 걔를 누나 방에…, 악….!! 왜 때려!!”

“네가 처맞는 소릴 하니까 때리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머리를 빡!! 하고 강하게 얻어맞은 서이수가 억울한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런 동생 놈을 경멸하듯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 나 반휘혈이랑 안 사귄다.”

만약, 그놈의 동생 고백이 아니라 진짜로 고백을 해 와도 사귈 생각을 한 푼도 없었다. 무엇보다 저런 유아독존은 내 쪽에서 거절이었다.

“…그게 안 사귀는 거라고?”

그러나 내 대답을 듣고도 서이수의 얼굴엔 한가득 의심이 서려 있었다. 나는 그런 녀석을 향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절대. 완전. 진짜로. 안 사귄다고 몇 번을 말해.”

“워… 진정해. 말로 해. 말로.”

점점 살벌해지는 내 표정에 서이수는 위협을 느꼈는지 두 손을 앞으로 펴며 나를 진정시키려 했다.

“하… 아무튼 안 사귀니깐 쓸데없는 소리 말고 밥이나 먹으러 가라.”

난 어서 이 안으로 들어가서 샌드백을 조져야겠으니. 안 그럼 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스트레스가 제어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알았어. 그럼 이따 얘기해.”

서이수는 그런 내 기분을 귀신같이 눈치채곤 슬며시 발을 뺐다. 하지만, 뒷말이 영 거슬리는구나. 동생 놈아. 나는 지끈거려 오는 머리를 붙잡으며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나는 딱히 할 말…,”

“이따 봐! 우리 밥 먹을 동안 샌드백에 맘껏 풀어 둬! 오늘 아빠랑 서연 누나는 경기 뛰러 갔고, 회원들 점심시간이라 안에 아무도 없어! 야, 빨리 움직여!”

서이수는 내 말을 끊고는 제 말만 후다닥 내뱉더니 다른 놈들을 데리고 사라져 버렸다.

저, 저… 싸가지…. 나는 그 재빠른 몸놀림들에 헛웃음을 지으며 바라보다 곧 고개를 젓고 안으로 들어갔다. 체육관 안은 서이수 말대로 아무도 존재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슥 둘러보곤 문을 닫은 후, 안에서 문을 잠갔다.

“후….”

뚜둑, 뚜둑. 뻐근한 목을 꺾으며 나는 들고 있던 가방에서 글러브를 착용한 후 저 멀리 있는 의자에 던졌다. 덜커덩, 던져진 가방이 포물선을 그리며 안정적으로 그 위에 안착했다. 난 그것을 보지도 않고 똑바로 걸어가 목적지로 향했다.

툭, 나는 머리를 한 번 그 위에 대고 눈을 감았다. 샌드백을 치기 앞서 숨을 크게 몰아쉬면서 한 번 감정을 가다듬은 나는 다시 눈을 뜨고 거리를 벌렸다.

으득.

쾅--!!!

내 입안에서 이가 갈리는 것을 시발점으로 강한 타격음이 체육관 안을 울렸다. 그리고 이 울림은 점심시간이 다 끝나도록 계속되었다.

***

“자, 진정했어?”

땀이 흥건한 채로 숨을 몰아쉬던 중, 제 볼 곁으로 차가운 무언가가 닿아 왔다. 나는 그것을 피곤한 눈길로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며 받아들이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래. 진정했다.”

건네진 건 파란색 스포츠 음료였다. 나는 그것을 열고 단번에 들이켰다. 땀을 너무 흘려 메말랐던 수분이 보충이 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한층 홀가분해진 기분에 목을 한 번 돌린 후 입을 대충 닦아 냈다. 그리고 그 음료수를 다시 닫아 제게 이걸 준 주인인 서이수에게 돌려줬다. 서이수는 그것을 받아 들곤 자신도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녀석을 흘겨보며 열린 체육관 문을 봤다. 분명 자신이 문을 잠그긴 했지만, 내게 체육관 여벌 열쇠가 있듯이 서이수에게도 여벌 열쇠가 있었다. 그러니 그것을 사용해서 눈치껏 들어온 게 틀림없었다. 그래도 자신을 배려한 점은 높이 사 줄 만했기 때문에 나는 그 문제에 대해선 별다른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눈앞을 가릴 정도로 떨어지는 땀을 닦기 위해 수건을 찾는데 제 눈앞으로 불쑥 수건이 들이밀어졌다.

“자.”

“…땡큐.”

이번에도 그 주인은 서이수였기에 나는 결국 감사를 입에 담았다. 얘가 웬일로 이렇게 신경 써 주나 모르겠네. 그만큼 자신이 예민해져 있었나 생각하는데 서이수는 내 근처에 털썩 주저앉았다.

“근데 다른 애들은?”

“돌려보냈어.”

“왜?”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궁금한 건 서이수뿐만이 아닐 거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솔직한 심정으로 물으니 서이수는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누나 너 지금 걔네들 만날 기분 아니잖아.”

“…….”

나는 그 말에 두 눈을 크게 뜨고 녀석을 바라봤다. 그리고 주저앉아 있는 녀석에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서이수의 이마에 손을 대며 심각하게 물었다.

“너 어디 아파? 왜 안 하던 짓을 다 해?”

“아, 사람이 신경 써 줬는데 꼭 이러기야!”

아니, 네가 이상한 행동을 하니깐 나도 모르게 그만…. 하지만, 그만큼 서이수의 행동은 내게 놀라움 그 자체였다. 평생 받아 볼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동생 놈의 배려라고 불릴 만한 행위는 그만큼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서이수의 냉정한 내침을 받은 내 손을 대충 회수하면서 얼떨떨하니 녀석을 바라보자 서이수는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진짜! 그러니깐 둘이 무슨 관곈데! 무슨 일인데 둘이서 권태기 온 막장 커플마냥 그러고 있던 건데!”

“권태기 온 막장 커플….”

나는 동생 놈의 입에서 나온 충격적인 말에 멍청하게 그 단어를 중얼거렸다. 그러고 바로 오싹, 하고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이게 미쳤나. 누가 누구랑 권태기 커플이래…?!”

진짜 사귀었으면 이렇게 억울하지도 않다. 서른 넘게 모태 솔로인 사람한테 그런 말 하는 거 실례야, 너! 나는 차마 내뱉지 못하는 울분에 휩싸이며 억울하게 얼굴을 찌푸렸다.

“그럼 거기서 그딴 대화를 주고받질 말았어야지!!”

“그딴 대화가 대체 뭔데?!”

나는 앉아 있던 몸을 확 일으키며 항의했다. 허 참! 내가 반휘혈이랑 무슨 거창한 말을 주고받았다고 이러…냐……?

“어, 잠깐.”

나는 문득, 방금 전에 있었던 반휘혈과의 대화를 상기시켰다.

‘하… 그럼 지금 날 가지고 놀았다는 거야?’

‘야, 반휘혈. 말은 똑바로 해라. 누가 누굴 가지고 놀아?’

‘그럼 아니란 소리야?’

‘반휘혈, 너 지금… 아니다. 그냥 내 잘못이라고 치자.’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난 끝났어.’

그리고 팔을 붙잡은 손을 냉정히 뿌리치는 나. 그 후에 상처 입은 채 떠나가는 반휘혈.

어… 이거 그림이…, 어어???

급격히 찾아오는 깨달음에 내 얼굴은 점차 아연해져 갔다. 서이수는 그런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알았어? 우리가 왜 오해했는지?”

“…….”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이 아니라 남이 그러고 있는 꼴을 봤다면, 어머어머, 저기 커플들 싸움하나 보네, 하고 지나쳐 갈 광경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린 나는 슬쩍 서이수의 눈길을 피하며 홧홧해진 얼굴을 식히기 위해 손으로 열심히 부채질을 했다.

“아, 아니… 어…. 생각해 보니 그, 그렇긴 하네…?”

정말 오해를 불러일으킬 장면이었다. 어쩌자고 길 한복판에서 그 꼴이 났는지 모르겠다. …반휘혈, 걔는 왜 그런 오해하기 쉬운 말을 그렇게 했는지 몰라. 아니, 근데 겨우 동생이란 단어 하나 뺐다고 저런 대화가 양성되었다는 것 자체도 신기할 노릇이었다.

“어휴… 이런 걸 누나라고….”

서이수는 그런 나를 아주 한심하게 바라봤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