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42화 (42/306)

42. 우리 대화 좀 하자 (3)

“이봐, 거기 학생.”

“…하, 학생? 저, 저요?”

“그래, 거기 너.”

녀석은 내 지목에 당황하더니, 얼떨떨하게 대꾸했다. 나는 그런 녀석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난 이 녀석이랑 안 사귀니까 그런 오해는 하지도 말고, 앞으로도 하지 마.”

“아, 예…. 네….”

내가 옆에 있던 놈, 반휘혈과의 연애 사실을 완전히 부인해 주자 그 친구는 어리벙벙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옆에 있던 녀석의 친구로 보이는 놈이 그 친구의 옆구리를 강하게 찔러 댔다.

“야, 뭐 저런 말에 휩쓸려! 정신 차려!”

“헉, 아, 그, 그렇지. 이익…! 날 가지고 놀았겠다!!”

…아니, 얘기가 왜 그렇게 되는 건데? 나는 갑작스러운 야구 배트를 든 녀석의 태세 전환을 어이없이 바라보았다. 녀석은 화가 났는지 단숨에 내게 다가와 야구 배트를 휘둘렀다. 나는 그런 녀석을 황당하게 바라보며 피하다가 혀를 차며 바로 팔꿈치로 녀석의 손목을 내려쳤다. 그런 후, 지체 없이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내질렀다. 야구 배트 녀석은 그런 내 주먹에 눈을 질끈 감았다.

“악…! ……흐잇…!!”

…어, 어? 그런데 한참을 지나도 타격이 없자 부들부들 떨며 기다리던 녀석이 슬며시 눈을 떴다. 나는 그런 녀석에게 피식, 웃어 주며 딱밤을 한 대 날렸다.

“악…!”

“봐줄 때 집에나 가렴, 꼬맹아.”

왠지 모르게 정감 가는 놈이었다. 소동물을 연상케 하는 큰 눈망울 때문에 그런가? 나는 큰맘 먹고 눈앞에 있는 녀석을 보내 주기로 결심했다.

“아, 예. 가, 감사합니다….”

그러자 녀석은 내 배려에 답하듯 쑥,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더니 후다닥 뛰어가 제 친구의 곁으로 갔다.

“…넌 대체 왜 거기서 인사나 하고 자빠졌어.”

그러자 친구가 그 녀석에게 핀잔을 줬다. 하지만, 야구 배트는 할 말이 많은 것처럼 제 친구의 옷자락을 끌어당겼다.

“야, 야, 가자…. 내 감이 말하고 있어. 저 사람은 위험해.”

“뭐? 그래 봤자 여자 아냐? 그리고 아무리 반휘혈이 날고 기어도 겨우 두 사람….”

“아니, 그 문제가 아니야. 야, 내 감 알지? 내 말대로 해. 어서 가자.”

친구란 녀석은 야구 배트를 든 녀석을 못마땅한 듯 바라보다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야, 늬들 어딜 가냐.”

하지만, 덩치 놈은 그게 못마땅한 모양인지 얼굴을 험악하게 찌푸리며 그 녀석들에게 경고했다. 아, 이 쪼잔한 자식…. 수도 많은데 곱게 보내주면 덧나냐? 딱 봐도 60은 거뜬히 넘는 수를 짧게 둘러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놈은 양심이 죽은 게 틀림없었다. 나는 짜증스레 덩치 놈을 흘겨보면서 손을 휘휘 저었다.

“어서 가. 어서.”

“아, 예. 감사합니다. 누님. 야, 어서 가라잖아…. 빨리 가자…!!”

“야, 미, 밀지 마…!!

그 친구들은 그렇게 퇴장했다. 아니, 퇴장하려 했지만, 이번엔 다른 놈들이 그 둘을 막았다.

“야, 중딩. 받아 줄 땐 좋다고 들어오더니, 이렇게 내빼겠다? 어? 우리가 만만해? 엉?”

아, 쟤네들 중학생이었어? …어쩐지 사복으로 껴 있다 싶더니, 학교가 완전히 달라서 그런 거였구나? 나는 새로운 사실에 놀라워하며 주위를 계속 견제한 채로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저희를 둘러싼 무리는 함부로 급습했다 뻗어 버린 일행들을 보곤 흠칫거리면서 쉽사리 공격을 못 하던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끼어 달라 했던 중학생 놈들이 멋대로 이탈하려 하자 옳다구나, 하고 타깃을 변경하며 그 둘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요…. 야, 너 때문에 이게 뭐야…!”

“…저흰 그냥 저 사람이 더 강해 보여서 그런 건데요.”

“야…! 저희가 뭐야! 저희가…! 전 아니고 얘만, 얘만 그런 거예요! 진짜예요!”

그런데, 야구 배트는 뚱하니 자신의 주관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 생각도 못 한 배짱에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녀석을 바라보던 중, 이런 내 빈틈을 노려 또 한 놈이 공격하려 들었다. 나는 그것이 귀찮아 짜증스레 명치를 정확히 가격해 치워 버리고 저 친구들의 대치를 다시 구경했다.

“하, 이거 어이가 없네. 야, 우리 숫자 안 보여? 어? 우리 짱도 있는데, 쟤네들보다 우리가 더 약해 보인다고? 어?”

“방금 그 짱이 한 방에 뻗었…, 읍읍…!!”

그리고 야구 배트는 소신 있게 한마디 하다가 친구에게 입이 막혔다. 나는 그 모습에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푸하하!! 와, 너 진짜 대박이다. 어쩐지 그냥 봐주고 싶게 생겼더라니, 내가 사람 보는 눈이 꽤 좋았네!”

굉장히 오랜만에 유쾌해진 기분으로 웃자 그 친구들 앞에서 대치하던 놈이 인상을 찌푸리며 내게 눈을 부라렸다.

“이 새끼가… 아주, 이 중딩 새끼들이… 우리가 존나 만만하지? 야! 그냥 떼로 쳐!! 씨발!!”

어이쿠, 제대로 방아쇠 당겨 버렸네. 하지만, 주위에 있던 녀석들은 주춤거리기만 할 뿐 쉽게 나서지 않았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전에 너부터 때려눕히면 되겠네.”

왜냐하면, 내가 먼저 발을 떼어 그 자식 앞으로 튀어 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스크로 보이진 않았겠지만 최대한 상큼하게 웃어 준 후, 뒤늦게 질린 얼굴을 한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그리고 덩치를 때릴 때와 비슷하게 날린 그 타격감이 울리며 녀석이 한 방에 쓰러졌다.

“자, 길 터 줬으니깐 어서 가.”

“아, 넵. 감사합니다! 누님!”

“어, 어… 가, 감사합니다….”

내가 빈 길을 가리키며 길을 터 주자 두 사람이 감사 인사를 해 왔다. 한 녀석은 얼떨떨해 보였지만 감사 인사는 착실하게 전하는 걸 보곤 두 사람 다 싹수가 그렇게 노래 보이지 않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나는 그런 둘에게 잠시 오지랖을 부리기로 했다.

“그래, 다시는 이런 데 엮이지 말고. 알았지?”

이게 다 어른이 하는 충고니 마음에 새겨야 돼. 아가들아. 나는 두 사람의 어깨를 짚으며 두드려 줬다. 두 사람은 멍하니 그것을 받다가 뒤늦게 서로 시선이 부딪히더니,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근데, 누님 되게 멋있으신데… 이름이라도….”

“알 거 없어. 아, 그리고 이젠 진짜 가라. 더 이상 너희들 뒤 못 봐주니까.”

야구 배트 녀석이 눈을 빛내며 제 이름을 물어 왔지만, 나는 무시하며 주위를 슥 둘러보았다. 방금과 달리 기세가 좀 더 형형해졌다. 음, 슬슬 진짜로 떼로 몰려와서 공격하겠는데. 나는 몸을 뒤로 돌리고 그 두 사람을 보호하듯 한쪽 팔을 뻗어 놈들의 진입을 가로막듯 세웠다.

“와, 미치겠다. 존나 멋져….”

“아, 그래. 이 미친놈아. …빨리 가자며! 얼른 와!!”

먼저 도망가자던 야구 배트 놈이 발이 묶인 듯 움직이질 않으니 다른 친구 녀석이 화병이 난 것처럼 소리를 지르며 녀석을 끌고 갔다. 야구 배트 녀석을 끌려가면서도 내게 외쳤다.

“누님! 저 오늘부터 누님 팬이에요! 나중에 또 봐요!!”

“미친 새끼야! 제발 그 입 다물고 빨리 뛰라고…!”

정말 요란스러운 퇴장에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사라지는 녀석들에게 손을 흔들어줬다. 그러자 야구 배트 녀석이 뭐라 하는지 들리진 않았지만 호들갑을 떠는 게 느껴질 정도로 난리를 치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허허, 거참. 재밌는 친구일세.’

나는 그런 녀석이 웃겨 흥미롭게 바라보는데 화가 난 음성이 들려왔다.

“하…! 와… 어이가 없네. 시발.”

고개를 돌리니 덩치 놈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한 채 나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나는 그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좀 우습긴 하다. 겨우 두 명을 상대로 다구리 치려는 너희들이 말이야.”

내 말에 덩치 녀석은 더 자존심이 상했는지 얼굴을 더욱 구겼다. 그리고 비소를 흘리며 이를 악문 채 뇌까렸다.

“이 새끼가… 그래, 그 우스운 짓 좀 당해 봐라. 야, 쳐.”

그런데, 주위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나는 그런 사위가 이상해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그건 덩치 놈도 마찬가지였는지 화를 내며 제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야! 죽고 싶냐?! 어? 아주 기가 빠져 가지곤…! 겨우 두 명 가지고 안 움직이고 뭐…!!”

“이야, 재밌는 소릴 하시네요. 태석이 형.”

그리고 덩치 녀석의 말을 자르고 끼어든 인물이 있었다. 나는 그 익숙한 목소리에 잠시 놀랬다가 곧 씨익, 미소를 지으며 소리가 들린 다리 밑쪽으로 고개를 꺾었다. 그곳엔 그림자를 짊어진 채 서서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한 인영이 보였다. 나는 그런 그를 향해 핀잔을 주었다.

“한나절은 지났겠다. 한도훈.”

“아, 죄송해요. 누나. 고의는 아니었어요.”

다리 밑에서 드러난 얼굴은 익히 알고 있는 한도훈이었다. 정말 너무 늦어, 이 자식아. 불러 놓고 한참을 기다리게 해? 내가 모자 아래에서 녀석을 노려보자 그것을 눈치챈 한도훈은 정말 미안한 듯 손을 모으고 사과했다.

“진짜로 미안해요. 저 정말 빨리 오려고 애썼다니까요? 그런데….”

한도훈은 말하다가 못마땅하게 뒤를 돌아보며 고자질을 했다.

“얘네들이 너무 늦는 거 있죠? 특히, 이재현이요.”

그의 말이 끝나자 다리 밑에서 점점 한 명 두 명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수는 점점 늘어서 족히 두 자릿수가 훨씬 넘어가자 뒤에 있던 일당들이 긴장한 듯 숨을 죽이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런 뒤를 힐끗 확인한 후 다시 한도훈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곁엔 어느새 나왔는지 급히 온 게 티가 나는 이재현이 흐트러진 차림새로 미안한 듯 나에게 사과를 해 왔다.

“죄송해요. 누나. 제가 독서실에 있어서 그만… 메시지를 너무 늦게 봐 버렸지 뭐예요.”

“아, 그건 봐줘야지. 한도훈! 너 열심히 공부하던 우리 재현이는 왜 불렀어!!”

“와, 차별 금지!! 어떻게 재현이만 이렇게 차별해요!! 이건 진짜 너무하다!!!”

한도훈은 내 발언에 울컥했는지 바로 억울하다며 소리쳤다. 이재현은 여전히 미안한 모양새로 제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전했다. 어휴, 저 철든 녀석 같으니. 내가 저러니 쟤를 안 예뻐하고 배겨? 나는 차별 반대를 외치며 항의하는 한도훈을 무시하며 그 주위를 싹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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