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46화 (46/306)

46. 우리 얘기 좀 하자 (7)

반휘혈은 고개를 숙인 채 이를 강하게 물었다. 마치 분을 참고 있는 듯한 모양새에 나는 쉽사리 녀석에게 말을 걸 수가 없었다.

“…….”

나는 녀석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왠지 그의 등은 굉장히 외로워 보였다. 분명 나보다 훨씬 널따란 등이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그 뒷모습이 저도 모르게 끌어안아 주고 싶어질 정도로 쓸쓸해 보였다. 그래서일까,

“……!”

“휘혈아.”

나는 녀석의 손을 조심스레 잡으며 그의 몸을 돌렸다. 반휘혈은 설마 내가 손을 잡을 줄은 몰랐던지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나는 그런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사과했다.

“미안해. 더 안 물어볼게. 그러니까… 그렇게 괴롭게 해서 미안해.”

반휘혈은 내 서툰 사과에 멍한 시선을 보냈다. 나는 그에 멋쩍은 기색으로 뒷목을 쓸었다.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게 된 게 미안했다. 내 무신경한 언사가 설마 이렇게까지 이 녀석을 날이 서게 만들 줄은 몰랐다.

‘화해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러냐고….’

나는 또 사이가 틀어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것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형이라는 작자 때문이라면 더더욱. 그래서 나는 뒷목을 좀 더 주무르다가 다시 사과를 했다.

“그니까… 어…, 무신경하게 집안 사정 들쑤셔서 미안해.”

좀 더 그럴싸하게 사과하는 방법은 없었을까? 말재주가 좋은 편이 아니다 보니 사과하면서도 이상하단 걸 느꼈다. 인상이 저절로 써지는 자신의 말솜씨 탓에 다시 뭐라도 얘기해 보려 입을 달싹였지만 당장 뭐라 할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아니, 그게, 으… 아무튼 미안해!”

결국 꺼낸 건 두서없는 사과였다. 내 얼굴은 자연스레 울상으로 변했다.

당장 반휘혈의 거처 문제가 해결될까 싶어 내세웠던 말들이 이 녀석에게 있어서 얼마나 괴로웠을지 생각을 못 했다. 당장 보이지 않았던 그 일주일간, 그가 그곳에 있었다 하니 거기는 괜찮았구나 생각했던 안일함 때문이었다. …한편으론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보니 죄책감마저 가중되어 자꾸만 속이 꼬여 갔다.

“아무튼 진짜 미안하니까 화 풀어 주면 안 될까…?”

정말로 미안함에 연신 그의 눈치를 살폈다. 반휘혈은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느릿하게 내가 붙잡고 있던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잠시 눈을 내리깔며 생각에 잠긴 것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났을까, 그의 입이 조심스레 떼어졌다.

“…그럼 위로해 줘.”

작은 속삭임이었지만, 나는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반휘혈은 시선을 사선으로 내리깔며 제가 한 말에 어색해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며 작게 웃음 지었다.

“그래.”

그 대답과 동시에 나는 붙잡고 있던 녀석의 손을 좀 더 잡아끌어 그 몸을 강하게 안았다. 외로워 보이던 그 뒷모습을 볼 때부터 안아 주고 싶었던 그 몸은, 상상 이상으로 컸다. 마주 안고 있자니 그 골격이 새삼 남자라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커다란 몸을 지녔어도 그 안에 있는 건 어린아이에 불과하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난 포옹에 굳어진 녀석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며 말했다.

“넌 이제부터 내 동생이니깐… 이 정돈 괜찮지?”

그러자 조금 경직됐던 그의 몸이 잠시 후, 천천히 이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내 등 뒤로 커다란 손이 조심스레 둘러지는 게 느껴졌다.

“…응.”

바람결에 속삭이듯 작은 소리였지만, 내 귓가에 자그마하게 내려앉은 그 소리를 놓칠 일은 없었다. 나는 그 대답에 만족스레 미소를 띠며 더 강하게 녀석을 끌어안아 주었다.

“외로우면 말해. 이렇게 안아 줄게.”

내 말에 반휘혈은 그저 어깨에 고개를 파묻은 채로 고개만 작게 끄덕였다. 그 화답에 나는 녀석의 머리를 부드럽게 다독이며 말을 이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네 편이 되어줄 테니까 편하게 의지해도 괜찮아. 아, 그렇다고 잘못했을 땐 마냥 싸고돌진 않을 거니까! 그 점은 명심해 두고. 사고 치면 나한테 맞을 각오를 하도록.”

나는 짓궂게 웃음 지으며 녀석의 머리를 작게 헝클였다. 그러자 녀석은 어깨를 작게 떨며 소리 없는 미소를 흘려보냈다. 내 말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어쭈, 웃어? 나 진심이다? 이제부터 너 사고 치면 나한테 혼나는 거라고.”

“응.”

어쩐지 진지하게 듣지 않는 것 같은 그의 반응에 투덜거리며 한 소리 했으나 녀석은 간단히 수긍했다. 그 대답 역시 진정성이 담기질 않아 한마디 더 하려 했으나, 반휘혈이 그보다 빨랐다. 그는 고개를 잠시 떼어 내 지척에 있는 내 눈을 똑바로 마주 보곤 말했다.

“알아. 나 사고 치면, 서이수처럼 혼난다는 거.”

그의 눈과 입이 부드럽게 휘었다. 기뻐 보이는 그 미소에 말을 잃은 건 바로 나였다. 나는 아주 찰나 동안 멍하니 그의 웃음에 시선을 빼앗겼다가 곧 정신을 차렸다.

“…아, 알았으면 됐어.”

왠지, 자존심이 상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는 것 같은 감각이 들었다. 아무튼 그런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잠시 녀석의 눈을 피했다가 곧 고개를 바로잡고 녀석에게 약하게 딱밤을 날리며 이 기분을 들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퉁명스레 말했다.

“그럼, 가자.”

“…어딜?”

반휘혈은 내가 날린 딱밤에 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도 별 불평을 내뱉지 않고 내가 한 말에 주목했다. 나는 그런 녀석에게 장난스럽게 미소를 띠며 녀석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디긴 어디야. 우리 집이지.”

그러자 녀석은 내 대답에 전혀 예상치 못한 걸 들은 사람처럼 눈이 커졌다. 나는 그런 반휘혈의 표정을 확인하자 그제야 이상하게 엉켜 있던 속이 풀리는 것 같은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왜 이러지…?’

나는 알 수 없는 낯선 느낌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곧 털어내 버리고 녀석의 손을 잡아끌면서 이상하리만치 후련해진 기분으로 웃으며 말했다.

“엄마가 너 걱정 많이 했어. 얼굴은 비쳐 줘야지. 물론! 자고 가는 것도 괜찮고! 마침 내일이 주말이고 딱 좋네!”

반휘혈은 그런 날 물끄러미 보더니 곧 작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화답했다.

“응.”

그렇게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맞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우릴 맞이한 엄마가 반휘혈의 등짝을 때린 건 순식간이었고, 그 후, 걱정으로 울상 짓는 엄마를 다독이려는 진귀한 녀석의 모습을 보는 것까지. 정말로 다사다난했던 하루가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

뚜르르- 뚜르르-.

어두운 밤길, 어느 한 골목에서 조용히 벽에 기대던 남자의 품에서 단조로운 신호음이 흘렀다. 남자는 품에서 유려한 손가락으로 소리가 울리는 물건을 꺼냈다. 그리고 밝게 신호를 보내는 그 물건을 잠시 물끄러미 보다 대충 툭 건드리더니 귀찮은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뭐야.”

[혁이, 혁이! 그 소식 들었어?!]

“뭐.”

통화를 연결하자 냉랭하게 느낄 정도로 시큰둥한 남자와는 상반되게 통통 튀듯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그런 상대가 익숙한지 여전히 감흥 없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러자 상대측은 여전히 흥분한 모습을 숨기지 않고 신이 난 것처럼 대답했다.

[도방중 조커 말이야! 조커!]

“…도방? 아아, 그거.”

남자는 상대의 말에 잠시 동안 눈썹을 슬며시 들어 올렸다가 곧 관심 없는 모양인지 다시 무신경하게 대꾸했다.

[그 조커가 태산고 일짱을 쓰러트렸대!!]

“태산? …거기 일짱이 누구더라.”

아~ 왜! 그 덩치 큰 돼지같이 생긴 녀석 있잖아! 남자의 말에 상대편이 답답한 듯 외쳤다. 남자는 그 말에 곰곰이 생각하는가 싶더니 아, 하며 알겠다는 것처럼 반응했다.

“그 돼지.”

[그래! 그 돼지!]

이제야 알았냐며 핀잔하는 소리에 남자는 시끄럽다는 것처럼 귀를 막았다.

“그래서 용건은 그게 다야? 더 없으면 끊어.”

[우우우!! 혁이, 너무 무신경해! 매정해!]

무정하게 느껴지는 남자의 말에 발끈했는지 상대측은 야유를 보내왔다. 남자는 그 말에 점점 인상을 찌푸리며 거절 버튼에 손을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아, 나야, 혁아.]

그때, 새로운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에서 흘러나왔다. 남자는 그 목소리에 전화를 끄려던 손가락을 멈춰 세웠다.

[아! 정한이! 너어…!!]

[아하하. 미안해 윤아. 근데, 더 지체하면 혁이가 전화 끊어 버릴 것 같았거든.]

“알면 빨리 말해. 네가 바꿨다는 건 더 용무가 있을 거 아냐.”

남자는 귀찮은 기색을 잔뜩 담으면서도 통화를 끊지 않고 계속 이었다. 그러자 정한이라고 불린 이는 웃음기를 달며 긍정해 주었다.

[맞아. 태산고 일짱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지. 우리가 도방중 조커에 대한 재밌는 소식을 들었거든.]

“…….”

흥미로워 보이는 상대편과는 달리 여전히 남자는 시큰둥한 모습으로 침묵했다. 하지만, 상대측도 그런 그의 반응을 예측했던 모양인지 재밌는 기색을 지우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 조커가 도방중이 아니라 도방고등학교 학생이라고 하더라. 게다가 여자래.]

“…호오.”

그 말에 남자가 처음으로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상대 쪽도 그런 남자의 분위기가 바뀐 걸 바로 눈치챘는지 웃음을 띠며 말했다.

[반휘혈도 그 여자 한 마디에 껌뻑 죽는다던데?]

“큭… 반휘혈, 그 자식이?”

이거 재밌네. 남자는 연이어 전해지는 소식에 점점 즐거운 듯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눈만큼은 냉정하게 사냥감을 발견한 것처럼 예리하게 빛을 내며 웃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정확히 추측되는 인물이 없다고 하더라고. 꽤 흥미롭지 않아?]

“흐음….”

도방고라… 도방고란 말이지….

남자는 잠시 동안 단어를 중얼거리며 턱을 쓸었다. 그리고 곧 무언가를 생각했는지 입을 열었다.

“좋아, 결정.”

[응? 뭐,]

상대 쪽의 묻는 소리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보다 빨리 툭, 하고 가볍게 화면이 두드려지고 통화가 꺼진 게 더 빨랐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휴대폰은 다시 주머니에 넣고 유쾌한 기색으로 코를 흥얼거렸다.

“내년은 더 재밌겠는걸.”

남자는 벽에서 기대고 있던 등을 떼어 냈다. 그리고 밝은 거리로 발을 디뎠다. 그러자 어둠에 잠겨 있던 화려한 외모가 드러났다. 이국적이게 느껴지게 만드는 밝은 금발과 그 금발에 꿀리지 않는 조각 같은 외모의 남자가 거리의 조명에 반사되어 그 존재를 과시했다. 주위를 거닐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자석에 이끌리듯 한순간 남자에게로 빼앗겼다.

“기다려지네, 고등학교.”

그러나 남자는 그런 시선들이 익숙한지 어떤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자신만의 목적을 유쾌히 말하며 유유히 걸어갔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