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47화 (47/306)

47. 고민 그리고 결심 (1)

***

서이수는 요즘 신경 쓰이는 일이 있다. 중요한 일이냐고 묻는다면, 중요하다고 해야 될까. 아니, 아주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자신의 누나와 관련된 사항임과 동시에 자신과도 연관될지도 모를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대체 뭐가 그리도 신경 쓰이냐고?

그건 바로….

“아, 휘혈아! 여기, 여기!”

그래. 저기서 멋들어지게 걸어오는 도방중 일짱 반휘혈이었다. 서이수는 오늘도 그 퇴폐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외모를 뽐내 주위의 모든 시선을 모으고 있는 일짱님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반휘혈은 그런 서이수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평소와 같이 감흥 없는 얼굴로 저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용건.”

그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하는 말이 저 말이었다. 무심하고도 매정한 내용이었으나, 여기에 있는 모두가 저 단어 한 마디가 얼마나 장족의 발전인지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서이수는 이 녀석을 알아 온 2년간 그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반휘혈의 태도가 유해지기 시작했다. 아주 미세하긴 했지만 어쨌든 반휘혈이 변하기 시작했단 뜻이다! 그것도 왠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누나 서이나로 인해서 말이다!

그래! 바로 이 점!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서이수는 반휘혈이 신경 쓰였다. 다름 아닌 자신의 누나와 반휘혈의 관계! 두 사람은 아무 사이가 아닌 그저 친한 누나와 동생 사이라 했지만, 서이수는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서이나는 몰라도 반휘혈만큼은 절대로!

그는 반휘혈이 자신의 누나를 바라볼 때, 어떻게 바라보는지 똑똑히 보았다. 게다가 몇 주 전에 있었던 다리 밑 싸움에서 그거 어떤 식으로 누나를 보았는지! 그는 확실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날, 서이수는 당황했다. 한도훈의 갑작스러운 호출로 모자라 그간 사라졌던 일짱의 소식에 체육관에 같이 있던 김시원과 함께 후다닥 뛰쳐나왔다. 뒤에서 아빠인 서이석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모른 체 그냥 빠져나왔다.

그렇게 도착한 그곳엔 서이수를 놀라게 할 만한 인물이 한 명 더 있었다. 얼굴은 모자와 마스크로 감쌌지만 그 모습은 서열 전쟁 현장에서 줄곧 봐 왔던 누나, 서이나였다. 서이수는 그녀를 발견하곤 바로 얼이 빠졌다.

‘아니, 누나가 왜 여깄어…?’

서이수는 곧장 날짜를 확인했다. 하지만, 곧 서이나가 학교에 있을 시간이란 걸 다시 확인하자 서이수는 더더욱 혼란에 빠졌다. 그런 와중 서이나는 태산고 일짱에게 선전 포고까지! 서이수는 좀체 상황을 따라잡지 못하고 입만 벌리고 서 있다 시작된 싸움에 얼떨떨하게 같이 싸웠다.

그런 중, 멀리서도 느껴지는 묵직한 타격음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서이수는 기겁했다. 발을 멀리 뻗고 있는 서이나와 그 방향 그대로 날아가는 태산고 일짱. 서이수는 그 모습에 싸우다 말고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것은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였던지 서이수는 멍하니 있다 얻어맞을 일은 없었다.

‘나, 그동안 저런 인간한테 얻어맞고 산 거야…?’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의 머릿속으로 그간의 행적이 주르륵 스쳐 지나갔다. 비 올 때 먼지 나게 두들겨 맞던 일, 사고 쳐서 등짝 두드려 맞은 일, 서이나에게 멱살 잡혔던 일, 체육관이 휴관이었을 때 링 위에서 스파링이란 면목으로 처맞은 일 등등 수차례 아찔한 순간들이 지나쳤다.

생각하면 할수록 이제껏 찾아왔던 수많은 목숨의 위협에 몸이 저절로 떨려왔다. 강하단 건 알았지만 저렇게 괴물 같을 수가 있나. 요즘 들어 부쩍 철이 들었던 그에게 앞으로 개기지 말아야 할 이유가 또 늘어나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서이수의 안색이 사색이 되어 가던 중, 그는 똑똑히 목격했다. 서이나가 반휘혈을 데리고 가려는 것을. 그리고 반휘혈의 상기되었던 그 얼굴을. 물론, 큰 변화는 아니었지만 그는 눈썰미가 굉장히 좋은 편에 속했다. 더불어 동체 시력만큼은 발군인 그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 미세한 차이를 서이수는 알 수 있었다. 특히, 최근에 그와 잠시뿐이지만 같은 지붕 아래에서 잠까지 든 그였으니 그 차이를 모를 수가 없었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거짓말.

서이수는 눈앞에 앉아 있는 반휘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보았다. 아무리 자신이 연애랑 관련 있는 삶을 살았던 적은 없었어도 그가 자신의 누나에게 가지는 관심이 평범한 호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의동생? 개소리 집어치우라지. 저건 누가 봐도 누나라는 족속을 바라보는 눈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서이수에게 확신을 심게 한 것은 그의 태도였다.

그날 이후, 반휘혈은 안 그래도 달리했던 저희와 누나와의 대우가 점차 극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자면,

“우리 이번 여름 방학에 어디 갈까? 바다 어때?”

“…….”

한도훈이 빨대를 씹으며 반휘혈에게 물었다. 하지만, 반휘혈은 어떤 관심도 없는 모양인지 아무 대꾸도 안 한 체 시큰둥하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런 녀석의 태도에도 한도훈은 언제나처럼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누나한테도 물어볼까~.”

한도훈이 슬쩍 핸드폰을 꺼내면서 중얼거리자 반휘혈의 눈이 바로 한도훈의 손으로 향했다. 그래, 이런 부분! 이제껏 일말의 관심도 내비치질 않던 녀석의 반사적인 반응을 똑똑히 확인한 서이수는 비어 있는 얼음 컵을 자꾸만 빨대로 빨며 반휘혈을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보았다.

“이수야, 왜 그래?”

그런 서이수의 태도에 곁에 있던 이재현이 의아한 듯 그에게 물었다. 서이수는 그런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만 젓고 여전히 반휘혈만을 미심쩍게 바라보았다. 이재현은 서이수의 모습을 이상한 것처럼 바라보았지만 곧 한도훈이 전화를 연결하는 소리에 관심을 돌렸다.

달칵.

[…여보세요.]

단조로운 신호음 끝에서 잔뜩 낮아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서이수는 저 인간이 지금 일어났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만화방에서 희희낙락하게 잔뜩 빌려 온 책들 읽겠다고 벼르고 있던 게 떠올랐다. 결국 그 많은 걸 다 본 건가. 그는 정오를 한참 넘겨 버린 시간을 확인하곤 납득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 지금 일어났어요?”

[어…. 무슨 일이야. 별일 없으면 끊어.]

더 자고 싶다는 기운을 팍팍 풍기는 차가운 목소리에 한도훈은 서운한 듯 입을 삐죽이며 툴툴거렸으나 서이나가 진심으로 끊으려는 의지를 보이자 바로 손바닥 뒤집듯 본론을 꺼냈다.

“누나, 바다 안 갈래요? 바다!”

[……바다?]

서이나는 한도훈의 말에 의아한 듯 말이 올라갔다가 곧 이상하단 것처럼 말했다.

[거길 내가 너랑 왜 가?]

지나치게 매정한 말에 한도훈은 크윽, 하며 상처받은 것처럼 가슴을 쥐었다.

“아, 왜요! 저랑 가는 게 어때서!”

[너랑 가는 게 문제니까 그렇지. …상상만 해도 피곤하다. 끊어.]

“잠깐! 잠깐!”

서이나는 여간 귀찮았던 모양인지 매정히 통화를 끊으려 했다. 한도훈은 그런 누나의 태도에 당황한 것처럼 황급히 붙잡더니 말을 덧붙였다.

“거기에 저희 집안에서 관리하는 해변 있거든요! 사람 없으니까 마음껏 놀 수 있다고요! 네?!”

[……관리를 한다고?]

한도훈의 말에 서이나가 떨떠름하니 되물었다. 제가 방금 뭘 들었나 확인하는 뉘앙스였다. 그건 그와 같은 서민인 서이수도 벙찌게 만드는 내용이었으니 제 표정과 지금 제 누나가 짓고 있는 얼굴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네! 게다가 근처에 놀이공원도 있어서 놀 거리 많아요! 그러니까 같이 놀러 가요. 네?”

[음….]

연이은 한도훈의 회유가 점점 먹혀 가기 시작했는지 서이나는 갈등하기 시작했다. 곁에서 듣고 있던 서이수는 이미 넘어간 지 오래였다. 와,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개인 해변, 개인 별장, 게다가 근방에 놀이공원까지! 이제껏 없었던 엄청난 여름휴가가 될 것 같은 기분에 벌써부터 들뜨기 시작했다.

[…스파도 있냐.]

그때, 폰 너머에서 조용히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의 넘어간 소리에 한도훈은 의기양양한 미소를 잔뜩 피우며 대답했다.

“당연하죠!”

[…….]

한도훈의 당찬 대답에 서이나는 잠시 침묵했다. 자신이 물어봐 놓고도 정말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했던 건지, 아니면 혹한 건지 모를 공백이 잠깐 흐르고 서이나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잠깐 사이에 무슨 상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피로가 덕지덕지 붙은 소리였다. 서이수는 그 목소리에 게슴츠레 눈을 뜨다가 자연스레 시선을 조금 옮겨 반휘혈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반휘혈의 시선은 아주 폰을 뚫을 것처럼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관심이 많아 보이는 그 자세에 서이수의 눈이 자연스레 샐쭉해졌다.

[귀찮게 안 하면 갈게.]

“아싸!”

그러던 중, 서이나의 체념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도훈은 그 말에 대번에 환해지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곁에 있던 반휘혈은 잠시 눈이 커지더니 곧 그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미세한 변화였으나 서이나의 답변이 그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는 게 여실하게 보이는 광경이었다.

‘그래. 남들이라면 그냥 평범하게 친한 누나가 같이 놀러 가 준다니 기쁠 수 있지.’

하.지.만! 반휘혈만은 그럴 만한 녀석이 절대 아니었다. 이제껏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동네에서 가장 예쁘기로 소문난 여자아이가 그에게 접근했을 때도! 매사 무신경했던 그 녀석이 단지 자신의 누나가 같이 가 주겠다는 긍정적 답변 한마디에 기분이 달라졌다. 그것도 아주 조금이지만 웃으면서 좋아하다니! 이건 누가 봐도 명백한 관심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서이수는 생각했다.

혹시나, 호옥시나아! 이 녀석이 미래의 매형 자리를 탐낼지도 모를 것임을!

서이나에겐 지난번에는 장난스레 말했지만 이것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니 서이수는 여간 침이 말라 온 게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 반휘혈을 지켜보기로 결심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먹에 쥐어박힌 기억밖에 없지만 이러나저러나 서이나는 자신의 누나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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