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50화 (50/306)

50. 고민 그리고 결심 (4)

그 말에 반휘혈의 시선이 한도훈에게 향했다. 하지만, 무표정했던 방금과는 달리 그 얼굴은 명백한 짜증이 깃들어 있었다.

“…시끄러.”

“오-오. 천하의 반휘혈이 질투도 다 하는 거야? 응?”

그러나 그의 짜증은 오히려 한도훈의 흥미를 더욱 자극하게 만들었다. 이런 방면으로는 영 감흥 없는 얼굴만 하던 녀석이 누가 봐도 확실한 관심을 보이며 그 곁을 사수하려 드는데 어떻게 관심이 안 생길 수 있겠는가. 한도훈이 자꾸만 헤죽거리며 관심을 표하자 반휘혈은 그런 그를 향해 질색하듯 혀를 차며 시선을 돌려 버렸다.

“질투해? 응? 질투하는 거야? 친동생한테? 응?”

그러나 한도훈은 여전히 끈질긴 사내였다. 반휘혈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지만 못마땅하게 표정을 짓는 그의 얼굴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은 되었기에 한도훈은 스스로 답을 내리고 짓궂은 미소를 더 깊게 그려 냈다.

“그렇게 이나 누나가 좋아?”

불쑥 한도훈이 건넨 말에 반휘혈이 멈칫했다. 그러고서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한도훈을 돌아봤다. 끝내 다시 자신을 보게 만든 데 성공한 한도훈은 만족스레 웃으며 반휘혈에게 재차 물었다.

“누나, 좋아하지?”

“…무슨 의미야.”

반휘혈의 눈살이 살풋 찡그려졌다. 그 질문은 방금 그가 서이나에게 들었던 내용과 같았다. 하지만, 그 안에 내포된 의미는 명백히 달랐음을 그는 바로 눈치챘다. 한도훈은 그런 그의 날카로운 반응에 깊은 웃음을 담은 채로 두루뭉술하니 답했다.

“말 그대로인데?”

그 말에 반휘혈의 눈가가 확 좁혀졌다. 그는 짜증스레 한도훈을 바라보더니 쯧, 하고 혀를 차며 단호히 말했다.

“헛소리하지 마.”

“헛소리 아닌데.”

한도훈은 그 말을 바로 반박했다. 그는 입가에 그렸던 웃음을 싹 지우며 말했다.

“너 지금 그만큼 오해되게 행동하고 있다고. 반휘혈.”

반휘혈은 그 말에 눈썹을 들어 올렸다. 마치 불쾌한 것을 들었다는 듯 그의 얼굴에 그늘이 졌지만 한도훈은 거기에 기가 눌리지 않고 재차 입을 열어 물었다.

“너 누나 좋아해?”

그 질문에 반휘혈은 고요히 한도훈을 노려보다 짜증스레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니.”

그 단호한 대답에 한도훈은 눈썹을 씰룩였다.

‘…좋아하지 않는단 말이지?’

그는 지난번에 서이나에게서 들었던 내용을 떠올렸다. 동생이 되고 싶다, 라. 정말 말 같지도 않은 소리였다. 방금 두 사람이 함께 있던 장면을 본 모두가 저와 같은 생각을 했음이 틀림없었다. 자신도 서이나를 좋아하긴 하지만 이 감정은 누가 뭐라 해도 이 녀석과 같은 선상에 둘 만한 감정은 아니었다. 그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 좋다 하는 기운을 발산하고 있는 놈을 누가 오해하지 않겠는가.

‘오죽하면 서이수 저 녀석이 널 매형 후보랍시고 견제하겠어.’

한도훈은 코웃음을 치며 이곳에 도착하기 전, 차 안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

서이나를 성공적으로 차까지 픽업하는 데 성공한 한도훈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마침 비몽사몽 할 때였던지 별다른 실랑이 없이 손쉽게 타자, 그는 정말 기분 좋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차를 출발시켰다. 곧 뒤늦게 정신을 차린 서이나가 한도훈에게 항의했으나 이미 차는 움직인 지 오래였다. 그 사실에 서이나는 맥이 빠졌는지 금방 포기하고 밀린 잠을 보충하기 위해선지 차에 기댄 채로 잠들어 버렸다.

그런 그의 모습에 한도훈은 어젯밤에도 설마 만화책 읽다 잠든 건가 추측하며 확인차 서이수를 바라보던 순간이었다. 그러다 한도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석연찮은 기색을 잔뜩 풍기고 있는 서이수를 발견했다.

‘…뭐지? 방금까진 괜찮았던 거 같은데.’

겨우 누나가 잔다는 이유로 저런 표정을 짓는 건 아닐 터였다. 오히려 좋아하면 좋아했지 저렇게 무언가를 의심쩍은 시선으로 몰래몰래 바라볼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한도훈은 서이수가 바라보는 방향을 따라갔다.

‘아하.’

그리고 그는 서이수가 왜 저리 탐탁지 않아 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한도훈은 그 재밌는 광경에 씨익 미소 지으며 톡톡 핸드폰을 두드리며 메시지를 발송시켰다.

지잉-.

곧 서이수가 쥐고 있던 손에서 짧은 진동음이 울렸다. 서이수는 울린 착신음에 시선을 거두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발신자를 발견한 그의 얼굴이 이상하게 구겨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뭐 하는 거야?’

서이수는 메시지 알림을 확인하자마자 고개를 들고 조용히 입만 움직여 속삭였다. 한도훈은 그런 서이수에게 의뭉스러운 미소를 달며 손가락으로 툭툭 핸드폰의 화면을 두드리며 메시지 보기를 재촉했다. 서이수는 저 녀석이 또 무슨 꿍꿍이인가 의심스러웠다.

‘쟤는 꼭 저렇게 웃을 때 기분 나쁘단 말야.’

하지만, 무시하면 무슨 이상한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경험이 다년간 쌓아 온 그였다. 서이수는 잠시 녀석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노려봤으나 그럴수록 한도훈의 미소만 더 짙어졌다. 결국 서이수는 미심쩍은 시선을 감추지 않은 채로 메시지를 열 수밖에 없었다.

[왜~? 누나 뺏긴 거 같아서 싫어~?]

그리고 확인하자마자 바로 폰을 접어 버렸다.

지잉, 지잉. 서이수가 차갑게 연락을 무시하자 한도훈은 짓궂은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로 연이어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서이수는 인상만 찌푸릴 뿐 보려고 하질 않았다. 한도훈은 그런 서이수의 모습에 웃는 채로 어깨를 으쓱이곤 다시 문자를 보냈다. 그러고 나서 그는 툭, 하고 발로 서이수의 다리를 건드리며 한 번 더 핸드폰을 보라고 눈짓했다.

서이수는 그런 한도훈을 재수 없다는 것처럼 불쾌하게 찌푸리다가 결국 다시 한번 주는 눈치에 마지못해 폰을 열어 그 내용을 확인했다.

[서이수 너 완전 시스콤이구나?ㅋㅋㅋㅋㅋ]

[뺏겨서 질투났어요?ㅋㅋㅋㅋㅋㅋㅋ]

한도훈에게서 보내져 온 메시지를 하나하나 확인하던 서이수의 얼굴은 와락 구겨진 지 오래였다. 결국 참다못해 화를 내려던 그는 연이어 온 마지막 메시지를 확인하곤 멈칫했다.

지잉-.

[휘혈이랑 이나 누나 사이 궁금하지 않아?]

서이수는 화면에서 시선을 떼고 한도훈을 바라봤다. 한도훈은 그런 서이수에게 어깨를 으쓱이며 반휘혈 쪽을 눈짓했다. 서이수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쪽을 향했다.

그러자 거기엔 손에 턱을 괸 채로 자고 있는 서이나를 꿀이 떨어질 듯 바라보는 반휘혈이 있었다.

서이수는 그 광경을 보자마자 당장이라도 토할 것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한도훈은 그런 서이수의 솔직한 반응에 곧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웃음을 참아 내기 위해 입을 틀어막아야만 했다.

[...둘이 무슨 사인데.]

그리고 이제껏 잠잠하던 한도훈의 핸드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한도훈은 그것을 보며 씨익 웃더니 여전히 저만의 세상에 갇혀 있는 반휘혈을 힐끔 구경하며 메시지를 보냈다.

[나도 몰라.]

그 답장에 서이수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저 녀석도 참 표정이 다채롭다니까. 역시 남매라 그런가? 한도훈은 서이수에 대한 감상을 속으로 늘어놓으며 메시지를 연이어 보냈다.

[그러니 차차 알아가 보자고. 어때?]

서이수는 그 대답에 눈썹이 샐쭉하니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잠시 후, 무언가 생각하던 그는 고심 끝에 결정한 모양인지 신중하니 타자를 누르기 시작했다.

[...근데 쟤가 진짜 내 매형이 되려고 하면 어떡해.]

“크흡…!”

그 말에 바로 웃음보가 터지려는 걸 간신히 억누른 한도훈은 죽일 듯 노려보는 서이수의 시선을 외면하며 헛기침을 해 댔다.

“크흠흠. 차 안에, 흠흠, 먼지가 많네. 흠흠.”

그리고 슬쩍 다시 메시지를 확인했다가 또 웃음이 터지려는 위기에 봉착했지만 이번엔 다행히도 터지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한도훈은 최대한 침착을 가장하며 차분히 메시지를 보냈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봐야지. 당장은 누난 몰라도 휘혈이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

한도훈의 물음에 서이수는 빤히 그 내용을 들여다봤다. 그러다가 뒤늦게서야 그는 고개를 겨우 끄덕였다. 그 긍정에 한도훈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러니 나 좀 도와줄래?]

서이수는 그 내용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분명 내용은 부탁인데 왜 강압적으로 느껴지는 걸까. 그는 의심스레 그것을 바라보았지만 저를 웃으면서 바라보는 그 압박에 못 이겨 고개를 움직여 수긍을 나타냈다.

그리고 그걸 확인한 한도훈은 배부른 포식자와도 같은 미소를 깊게 지어 보였다.

***

그렇게 서이수의 협조를 얻어 내는데 성공한 한도훈은 약속대로 반휘혈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서이나에게 접근하고 있는가에 대해 열심히 파헤치고 있었다.

반휘혈은 기본적으로 입이 무거운 데다가 만나기도 어려운 녀석이었다. 간단한 나열이었지만 정말 오랜 시간 함께해 온 한도훈은 그의 말을 이끌어 내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란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저건 그냥 과묵한 성격이 아니었다. 저놈은 그저 사람을 지나가는 개미와도 같은 것만치 개무시하는 정도의 어려운 난이도를 자랑하고 있는 놈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그 철벽과도 같은 선이 유해졌을 때가 있었으니, 바로 서이나가 곁에 있을 때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의중을 몰래 파악하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반휘혈은 서이나가 근처에 있을 경우엔 상시 그 곁에만 자리를 잡고 있다 보니 이렇게 단둘이 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도훈은 타이밍을 보다가 때마침 서이수가 제 몸을 던져 가며 죽기 살기로 서이나를 반휘혈에게서 떼어 내는 걸 목격하고 바로 실행에 나서게 된 거였다.

“정말 안 좋아해?”

한도훈은 여전히 치열하게 도망가고 있는 서이수를 슬쩍 바라보며 반휘혈에게 물었다.

“…시답잖은 소리 할 거면 꺼져.”

이제는 정말 질색해 하는 기색이었다. 분명 날은 뜨거워서 화상을 입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으나, 한순간 그들의 주위엔 서늘한 공기가 맴돌았다. 한도훈은 잠시 소름 돋은 제 팔을 몰래 쓸며 침묵했다. 이런 반휘혈은 함부로 건들면 안 된다는 건 그를 오래 봐 와서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한도훈은 서이나를 집에 초대해 그간의 사정을 들었던 그날부터 줄곧 가슴속에 자리 잡았던 의문이 하나 있었다. 그는 그것을 꺼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계속 망설였으나, 지금 이 순간 그것을 꺼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말야.”

한도훈은 말하기 전, 잠시 공백을 두었다. 그리고 천천히 제가 생각했던 것을 입에 올렸다.

“누나를… 휘석이 형 대신으로 생각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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