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고민 그리고 결심 (6)
“맛있어요?”
“완전! 완전!”
누가 묻는지도 확인도 하지 않고 흥분한 채 반사적으로 대답하며, 연이어 한입 가득 고기를 베어 물었다.
크-! 이 맛에 살지!
들고 있던 꼬치의 고기가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입맛을 다시며 이번엔 다른 타깃을 노리기 위해 고개를 휙휙 돌렸다.
“아! 해산물! 저것도 맛있겠다. 어? 저건 뭐지? 완자? 조개 완자인가? 저건 닭고기? 허억… 진짜 맛있겠다!”
…그런데 먹을 게 너무 많았다! 그것도 하나같이 다 맛있어 보여! 처음 보는 만찬들에 난 츄릅, 하고 입맛을 다시며 눈을 빛냈다. 그런 중 갑자기 옆에서 무언가가 불쑥 드밀어졌다. 확인해 보니 그것은 그릇이었다.
“아. 고마워.”
그 정체에 나는 그것을 건네준 이에게 감사를 전하며 그제야 옆에 있는 이를 확인했다.
“뭘요.”
안경 너머로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을 건넨 이는 바로 이재현이었다. …역시 재현이는 센스가 있다니까! 나는 그 녀석을 향해 같이 웃어 주곤 다시 눈을 반짝이며 주변을 돌아봤다.
“와, 뭘 먹지! 뭘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먹을 게 너무 많아도 문제였다. 나는 초조하게 발을 굴리며 이곳저곳을 서성이는데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재현이 돌연 움직이더니 이것저것을 담기 시작했다. 나는 녀석이 담는 것을 관찰하며 저게 맛있나? 어, 저것도 맛있겠다! 하며 정작 무엇을 담아야 될지 갈피를 못 잡고 구경하는데 갑자기 이재현이 음식을 다 담은 그릇을 내게 불쑥 내밀었다.
“이거 먼저 드세요.”
“어??”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나는 당황했다. 아니, 왜 그 그릇을 나한테…, 라고 생각하며 멀뚱히 바라보는데, 이재현은 내가 들고 있던 빈 그릇을 가져가고 자신이 들고 있던 그릇을 내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거 맛있거든요. 아, 다 드시고 난 후에 또 추천해 드릴게요. …너무 오지랖이었을까요?”
그는 뒤늦게 자신이 너무 과한 친절을 베풀었나 싶어 난처히 눈썹을 모았다. 나는 그 모습에 재빠르게 손을 내저었다.
“어? 아, 아니!”
“그래요? 다행이네요. 맛있게 드세요.”
이재현은 내 대꾸에 안도한 듯 웃더니 이번엔 자신의 음식을 담기 위해 떠났다. 나는 그 등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내 손에 들려진, 음식이 정갈히 담긴 그릇에 시선이 떨어졌다. 그리고 비어 있던 남은 한 손이 천천히 들어 올려져 입을 감쌌다.
‘나, 방금… 배려받은 거야?’
대박. 난생처음 받아 보는 남자아이의 배려에 점차 감격의 물결이 거세게 차올랐다.
아니, 세상에. 재현아! 네가 이러면 이 누나 너무 감동이잖아! 너 이 짜식… 내가 너 많이 아끼는 거 알지…? 앞으로도 많이 애정할게. 흑흑.
나는 벅찬 가슴을 끌어안고 그릇에서부터 올라오는 아찔한 음식 냄새에 혼미해지려는 정신을 다잡으며 테이블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엔 이미 착석해서 열심히 입으로 음식을 구겨 넣고 있던 서이수와 우연찮게 시선이 마주쳤다.
“칫.”
“쯧.”
그와 동시에 우리는 인상을 팍 찌푸리고 혀를 차며 시선을 돌려버렸다. 아, 젠장. 재현이로 눈 호강한 거 저 자식이 다 말아먹었네. 나는 바로 언짢아지는 기분에 불쾌한 티를 팍팍 내며 저 녀석과 가장 멀찍한 자리에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하지만, 기분 나쁜 것과는 별개로 이 음식엔 죄가 없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음식들의 모습에 다시 행복한 마음을 가득 품은 채 이재현이 퍼 준 음식들을 하나하나 입에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음식을 하나씩 입에 넣을수록 내 얼굴은 점점 굳어져 갔다.
“입맛에 맞으세요?”
그리고 그런 내 건너편에서 음식을 다 퍼 온 이재현이 말을 걸어 왔다. 나는 그런 녀석에게 심각하게 고개를 들어 올리며 진지하게 말했다.
“재현아….”
이재현은 내 심각한 음성에 표정이 사뭇 굳어졌다. 혹시 입맛에 안 맞았나 걱정하는 그의 기색을 확인했음에도 내 표정은 풀릴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러나, 나는 말해야 했다. 이건, 이건…!
“이거 진짜, 진짜 맛있다…!!!”
진심으로! 너무! 세상에서 제일! 엄청 맛있어! 조개가 이렇게 맛있던 거였나? 돼지고기가 이렇게 환상적인 맛이었어?! 그동안 자신이 무엇을 먹고 살아왔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이재현이 담아 준 음식들은 최고였다.
난 그동안 우리 엄마가 해 준 불고기가 가장 맛있는 줄 알았지! 이래서 사람들이 맛집을 찾아 그렇게 전국 방방곡곡을 떠도는 건가…! 그동안 이해하지 못할 행위들이 접시 위에 담겨 있던 음식을 먹자 전부 납득이 가기 시작했다.
“입맛에 맞아서 다행이네요.”
“어! 완전! 완전!”
나는 고개를 열성적으로 끄덕이며 엄지까지 추켜세웠다. 그러자 이재현이 안도했는지 웃으며 내 건너편에 앉았다. 그리고 그도 식사를 시작하기 위해 젓가락을 드는데… 그 사이로 심통 어린 목소리 하나가 끼어들었다.
“…이거 준비한 건 난데 왜 이재현 네가 칭찬받는 거야?”
그 주인공은 이 별장의 주인 한도훈이었다. 그는 굉장히 못마땅한 얼굴로 이재현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려 댔다. 그러면서 당연하게 내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는 녀석을 보며 나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아이고, 이 쪼잔한 자식. 하지만 오늘따라, 정확히는 밥 먹는 이 순간만큼은 그가 귀엽게만 느껴진 나는 푸슬푸슬 웃음을 흘리며 말을 걸었다.
“도훈아, 이거 진짜 맛있어! 잘 먹을게.”
“흥….”
그에게 엄지까지 치켜세워 주며 감사를 전해 주자, 한도훈은 입을 삐죽이며 코웃음 작게 쳤다. 심술을 부리는 것 같아 보였지만 귀가 빨개진 걸로 보아 그가 쑥스러워 괜히 그런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쟤는 직접 칭찬받는 거에 약하더라. 솔직하지 못하긴. 귀여운 자식. 나는 녀석 몰래 웃음을 띠며 눈앞에 있는 음식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하려 했다. 그런데 문득 누군가가 보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휘혈이는?”
묵묵히 음식을 흡입하는 서이수와 김시원은 저기 있고, 한도훈과 이재현은 내 근처에 버젓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정작 가장 돋보이는 존재감을 지닌 반휘혈이 안 보였다. 어디 갔지? 아직 안 왔나?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녀석을 찾는데 한도훈이 한 박자 늦게 답을 내놓았다.
“…아-, 휘혈이는 입맛이 없다고 방으로 들어갔어요.”
“입맛이 없어?”
진수성찬이 이렇게 눈앞에 있는데?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인상을 조금 모았다. 그러다가 잠시 고민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한도훈과 이재현의 시선이 자연스레 내 쪽으로 향했다.
“누나?”
한도훈은 그런 날 의아하게 바라보다 혹시나 싶었는지 내게 물었다.
“휘혈이한테 가 보게요?”
“어. 시원한 거라도 뭐 가져다줄까 싶어서.”
아무리 입맛이 없어도 이런 뜨거운 태양 아래에 있던 만큼 영양가를 보충해 주는 게 좋았다. 어쩌면 더위를 타는 걸지도 모르니 입맛을 돋우는 음식 위주로 챙겨 가자 생각했다. 시원한 게 뭐가 있으려나…. 요리조리 둘러보며 적당한 음식을 그릇에 주워 담았다. 아, 가져가도 안 먹을 수 있으니까 이온 음료도 챙기는 게 좋을까?
“…누나. 휘혈이 방은 어딘지 알아요?”
“응? 아니. 모르는데.”
당연히 네가 알려 줘야 하지 않겠니, 도훈아. 나는 멀뚱멀뚱 한도훈을 바라보았다. 태연한 내 반응에 녀석은 황당하다는 듯 웃음을 흘리더니 대충 손가락으로 별장의 위쪽을 가리켰다.
“누나 방 오른쪽으로 세 번째 방에 있어요.”
“땡큐. 금방 다녀올게~.”
나는 남아 있는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네곤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흥흥~. 빨리 다녀와서 밥 먹어야지.’
맛있는 걸 입에 넣은 내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경쾌하기 그지없었다.
***
“흠….”
서이나가 빠르게 건물 안으로 사라지는 걸 지켜보던 이재현은 눈을 멀뚱히 끔뻑였다. 무언가 생각이 잠긴 것처럼 그 뒤를 좇던 시선은 잠시 동안 그녀가 사라진 건물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느릿하게 옮겨져 꽤나 부루퉁해진 그녀의 동생을 향했다.
“…….”
입안에 음식을 얼마나 넣었는지 그의 볼은 퉁퉁 부어 올라 있었다. 물론 언짢은 기분의 영향도 없지 않아 있겠지. 서이수는 요즘 들어 반휘혈에게 날이 서 있는 느낌이었다. 이유는 짐작이 갔다. 얼굴만 보면 툴툴거리긴 해도 그는 꽤나 누나 바라기인 경향이 강했다. 그것을 직접 말하면 대번에 부정당하겠지만 서이수는 그만큼 그의 누나인 서이나를 좋아했다.
어쩌면 요새 사이가 부쩍 좋아진 서이나와 반휘혈의 관계가 그에겐 묘한 경계심을 일으켰는지도 모른다. 예전엔 반휘혈을 동경심 가득히 바라보았었지만 요즘엔 경계만 팽배해졌다.
‘…그래도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돈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전엔 길고양이처럼 거리를 두고 날만 서 있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당장이라도 하악질을 할 기세였다. 게다가 오늘은 기어코 두 사람의 사이를 방해하지 않았던가. 마치….
“어유, 이수 동생~. 누나 뺏겼어요~?”
그래. 빼앗길까 봐 두려운 것처럼. 이재현은 옆에서 들리는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쌍심지를 켜며 세차게 고개를 돌린 서이수와 눈이 마주치고 아차, 했다.
“뭐?! 아니거든?!”
서이수는 한도훈의 놀림에 테이블을 쾅! 치며 성질을 냈다. 하지만, 한도훈은 그가 그러든 말든 이죽거렸다.
“아~ 네~ 그러시구나~. 우리 서이수 군은 예비 매… 으붑!”
하지만 한도훈의 말은 도중에 끊기고 말았다.
“뭐야! 서이수!”
왜냐하면 서이수가 물티슈를 그에게 냅다 던졌기 때문이었다.
“시끄러! 아무튼 아니라면 아닌 거야! 멍청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