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60화 (60/306)

60. 예상치 못한 통보 (2)

“어….”

나는 그 모습이 어쩐지 석연치 않게 다가왔다. 그래서 무언가 뭐라도 말하고자 입을 열려고 했다.

쾅-!!!

“야! 누나!!”

난데없이 문을 세차게 열면서 우렁차게 등장해 주는 동생 놈만 없었으면 말이다.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 그쪽을 보자 서이수가 씩씩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너 진짜 얘기 좀 하자니깐 왜 무시해!”

“…그랬던가?”

“그래! 아침에도 말했고 문자도 계속 보냈잖아!”

어라, 아침?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들은 것도 같고…? 나는 긴가민가한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뒤늦게 메시지를 열람했다. 그리고 그곳엔 서이수의 말대로 어디 가지 말고 기다리란 내용이 주르륵 연달아 있다가 너 어디 갔냐고 욕하는 내용이 써 있었다.

“음… 그러네….”

나는 멋쩍게 눈을 굴리며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서이수는 화가 모양인지 얼굴이 벌게졌다.

“누나, 너는 진짜 너 좋을 때만 얘기 듣지?!”

“미안, 미안. 내가 정신이 없어서 그만.”

아이고, 제대로 화났나 보네. 나는 성질을 내는 서이수를 달래기 위해 두 손을 내밀며 진정하란 제스처를 보였다.

“사과만 하지 말고 좀…!”

“오늘은 아침부터 활기가 넘치네.”

“으왁-!!!”

서이수가 한 소리를 더 쏟아부으려고 할 때 녀석의 뒤쪽에서 얼굴이 빼꼼 튀어나왔다.

“어, 재현이?”

“누나, 안녕하세요. 이수랑 도훈이도 안녕.”

“왔어?”

갑자기 나타난 이재현의 등장에 서이수가 심장을 부여잡으며 기겁해 했으나 나는 그 등장이 기꺼워 반가이 그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이재현은 천연덕스럽게 인사를 하며 자연스레 우리 쪽에 합류했다.

“근데 무슨 일이야? 아침부터 열을 다 내고.”

“…글쎄 누나가 내 말을 자꾸 무시하잖아!”

“정신이 없어서 그랬다니까. 연락 한번 안 봤다고 자꾸 그럴래?”

1절이 너무 길었다. 나는 계속 되풀이되는 대화에 점점 얼굴이 굳어져 갔다. 그러자 이재현이 가운데 서서 중재를 자처했다.

“둘 다 진정해요.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이재현이 의아하게 서이수를 보았다. 서이수는 한마디 더 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이재현의 재촉에 못 이겨 입을 세모꼴로 삐죽 다물더니 고개를 팩 돌리며 중얼거렸다.

“…반휘혈 미국 가는 거 때문에 그래.”

“아, 그거.”

이재현도 소식을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대강의 상황을 납득했던지 개운해진 얼굴로 내 쪽을 바라보았다.

“오늘 아침에 이수한테 들었어요. 휘혈이가 누나랑 갑자기 집에 오더니 미국 간다고 통보했다고.”

…어쩐지 너무 쉽게 납득한다 했다. 서이수가 대략 상황을 전달해 줘서 가능한 일이었단 걸 깨닫곤 난 동생 놈을 흘끔 보며 수긍했다.

“그랬지. 내일 오후 1시 45분 비행기래.”

“네. 들었어요. 근데… 그래서 그랬던 걸까.”

그런데 이재현은 대답하다 말고 문득 어떤 것이 떠올랐는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난 뜬금없는 그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아, 별건 아니에요. 그냥….”

그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갑자기 이번 기말에 제대로 시험을 봐서 이상하던 참이었거든요.”

“…기말?”

“네.”

이재현의 말은 이러했다. 갑자기 석차 순위가 뒤로 밀려 한도훈이 1등을 차지한 건가 착잡해하던 중 그게 아니었단 사실을 알았던 것. 그리고 알고 보니 이번 시험 일등이 반휘혈이었단 것. 그 사실을 최근에 알았단 것을 말이다.

순간 나는 그 내용을 들으면서 기시감이 내달렸다. 그래서 한도훈에게 물었다.

“휘혈이가 원래부터 교환 학생 가려고 계획했던 거 같아?”

“음. 아뇨.”

한도훈은 내 질문에 생각하는가 싶더니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실은 나도 한도훈과 같은 생각이었다. 계획적으로 성적을 올린 느낌은 아니었다. 게다가 교환 학생으로 가는 이유가 형과 관련된 이유였고, 또 그 형에 대한 문제를 털어놓은 거 휴가 때…,

‘어, 설마 그때 교환 학생 가기로 정한 건가?’

바닷가에서 후련하게 고개를 들고 있던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왠지 답에 가까운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반휘혈이 성적을 올린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답답함에 머리를 벅벅 흩트리고 있자 한도훈이 불쑥 말했다.

“누나가 뭐라고 한 거 아니에요? 성적 좀 올리라든지 말이에요.”

“난 그런 적 없어.”

“정말요? 그럼 얘가 딱히 그럴 이유가 없는데.”

한도훈도 그 잘난 머리로 제대로 유추하기 힘들었는지 수수께끼를 직면한 것처럼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난 반휘혈에게 성적에 대한 말을 꺼낸 적이 없…,

“어?”

문득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기억 하나가 있었다. 반휘혈이 내 동생이 되겠다고 자처한 날. 내가 굉장히 횡설수설 떠든 그때가 말이다.

“잠깐….”

나 그때 뭐라 했지? 술 담배 끊고, 말 잘 들으라고 했고….

“성적 얘기를 했던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제대로 기억이 나진 않지만 어쩐지 자꾸만 기시감이 들었다. 심각하게 기억을 되짚어 봤지만 여전히 명확한 기억은 아니었다. 그런데 한도훈은 왠지 납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했다는 거네요.”

“했네요.”

“했구만, 뭐.”

더불어 이재현과 서이수마저 동조했다. 나는 할 말을 잃고 뻘쭘하게 뒷목을 문질렀다.

“…아니, 진짜 했다고 해도 설마 정말로 시험을 제대로 볼 줄은 몰랐지.”

나는 슬쩍 이재현을 보았다. 그는 눈을 흐리게 하며 허탈하게 웃고 있었다.

“미안하다. 재현아….”

어쩐지 그에게 미안한 짓을 저지른 기분이었다. 그래서 사과하자 이재현은 내 말에 놀란 듯 눈을 깜빡이더니 살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언젠간 일어날지 모른다고 예상은 했었어요.”

그리고 그는 무언가 복잡해 보이는 얼굴로 시선을 피해 버렸다. 나는 그 모습에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더 이상 들추는 건 좋은 행동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난 흐지부지 말을 마무리하며 다음 날 공항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자리를 파했다.

‘반휘혈 너도 참….’

알게 모르게 존재만으로 파급력이 큰 그 녀석을 떠올리며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그런 그가 내일 떠날 것이란 사실이 왠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게만 여겨졌다.

***

하지만 시간은 매정히 흐르는 법이다. 그리 와닿지 않던 현실도 눈앞에 다가왔다. 나는 간단한 짐을 짊어지고 게이트에 서 있는 반휘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말 가는 거야?”

그래서 나는 그에게 물었다.

“응.”

그가 간단히 대답했다. 어쩐지 그 대답은 날 우울하게 만들었다. 착잡해져 가는 기분에 입을 다물고 있는데 한도훈이 시큰둥하게 끼어들었다.

“거기 가선 내 연락 무시하지 마. 조금이라도 좋으니깐 대답 좀 해.”

“흥.”

“너 진짜… 에휴, 됐다. 내가 너한테 뭘 바라냐.”

반휘혈의 코웃음에 한도훈은 못마땅하게 인상을 찌푸리다 곧 한숨을 내쉬며 체념했다. 그리고 그는 잠시 말없이 반휘혈을 바라보다 느릿하게 말을 꺼냈다.

“아프지나 마. …형이랑 잘 이야기해 보고.”

“아.”

그러자 이번에도 무시할 거라 여겼던 반휘혈에게서 반응이 튀어나왔다. 그는 허리를 살짝 숙여 한도훈을 똑바로 바라보며 한도훈에게 나직이 말했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누가 이상한 착각 따위 하진 않도록.”

착각? 저게 무슨 소리래? 난데없는 말에 의아해져 한도훈을 보니 그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곧 짓궂은 미소를 달며 호응했다.

“정말 그러면 좋겠네.”

파지직. 순간 두 사람 사이에서 스파크가 화려하게 튀었다. …무슨 상황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알겠다. 저 두 사람 사이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걸 말이다.

“시간 됐어.”

그때 김시원이 시간을 확인하곤 조용히 둘의 사이를 끼어들었다. 그 말에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1시 20분. 예정 시각에서 25분 남았다. 확실히 슬슬 승차를 하러 가야 할 시간이었다.

“흥. 잘 가라. 성격 나빠서 친구 못 사귈까 참 걱정된다.”

“쓸데없는 걱정이네.”

“너 진짜…!”

“그만, 그만! 평소엔 잘 지내다가 오늘따라 왜 그래? 아무튼 휘혈아 잘 가. 연락하게.”

“잘 가.”

“…뭐, 몸조심하고.”

아직도 티격태격하려는 한도훈을 막은 이재현은 서둘러 인사를 건넸다. 뒤이어 김시원의 심플한 인사와 어쩐지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는 서이수의 작별 인사가 뒤따랐다. 반휘혈은 그들의 인사에 잠시 가만히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눈이 마주치자 어쩐지 말이 턱 하고 막혔다. 뭔가 울컥하고 올라오는 기분에 나는 억지로 삼켜 내며 자꾸만 막히는 목을 열심히 가다듬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잘 가. 형이랑 잘 지내고. …또 건강하고. 어, 그리고 되도록 사고 치지 말고, 연락 자주 해 주고 또… 그러니깐….”

이젠 정말 가는 건가. 왈칵, 하고 뭔가 넘칠 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눈시울이 뿌옇게 바랬다. 일렁이는 얇은 막 너머로 나를 보던 그의 얼굴이 당황으로 번져 가는 게 보이는 것 같았다. 그걸 보자 겨우 막아 놨던 감정의 댐이 와르르 무너지는 게 느껴졌다.

“흐어어어엉…… 떠나는 걸 이틀 전에 말하는 놈이 어딨냐, 이 바보야아아!”

결국 헤어진다는 외로움에 대성통곡이 터지고야 말았다. 알고 보니 난 이런 거에 굉장히 약한 사람이었나 보다. 한번 터진 눈물은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게다가 내 눈물에 반휘혈뿐만 아니라 다른 녀석들까지 우왕좌왕하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난 개의치 않고 녀석에게 다가가 녀석의 멱살을 붙들어 내 쪽으로 끌어당기며 외쳤다.

“크흥. 너 진짜 내 연락 무시하면 가만 안 둘 거야!”

눈물을 한껏 글썽이면서 코를 훌쩍이느라 위협 같은 건 하나도 안 느껴졌을지 모르지만 난 꽤나 진지했다. 이 유아독존인 녀석은 언제나 자기 마음대로였다. 그래서 화가 났다. 그리고 걱정됐다. 혹시라도 이 인연이 여기서 끊어질까 봐. 그래서 티 내진 못하고 초조하게 있는데 놀란 것 같던 그의 얼굴이 서서히 풀어지면서 화사하게 펴졌다.

“응. 연락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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