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61화 (61/306)

61. 아이들은 안 본 사이에 쑥쑥 큰다. (1)

***

2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찾아왔다. 그리고 난 강원도에 있는 외할머니 댁에 놀러 왔다.

[오늘의 날씨- 입- 지직- 다.]

할머니 집은 꽤 시골이었다. 연식이 오래된 낡은 TV는 주파수가 잡히지 않는지 자꾸만 끊겼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창밖을 향해 멀거니 시선을 던지고 있었으나, 밖을 바라보는 나의 눈빛은 공허하기 그지없었다.

[오늘 지직- 강원도에선 폭설이 이어져-,]

눈? 좋지. 시골 하면 또 눈이랑 잘 어울리지 않던가. 물론 이럴 때마다 내가 치워 줘야 했지만 너무 심하면 군인들도 도와주러 와서 별문제는 없었다.

[눈사태에- 지직- 주의-,]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창문 너머론 사정없이 몰아치는 눈발로 인해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버렸다. 분명 창을 보면 건너편 가까이에 있는 돌 담벼락이 바로 보여야 했으나 그마저도 보이질 않았다. 세상이 새하얀 스케치북이라도 된 것만 같았다.

그렇다. 난 불과 1시간 만에 이 강원도에 꼼짝없이 갇히고 말았다.

예정대로라면 오늘 정오쯤에 서울로 다시 출발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선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아 보였다. 지잉- 지잉-, 멍하니 새하얀 바깥의 풍경만 보고 있는데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려 댔다. 30분 전, 서이수에게 강원도에 갇혔다고 말했던 게 이제야 답장이 왔나 보다.

아빠랑 동생은 현재 본가에 있었다. 체육관을 관리해야 됐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할머니 집엔 나와 엄마만 오게 되었다.

‘다음 주에 꼭 와야 돼! 알았지?!’

갑자기 할머니 집으로 가기 전에 동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때 알았다며 걱정 말라고 큰소리쳤던 것까지 떠오르자 저절로 시선이 착잡해졌다.

지잉- 지잉- 지잉-.

…그런데 핸드폰 진동이 끊어지지 않았다. 나는 이상함에 핸드폰을 열어 확인했다.

[동생놈 (으)로부터 메시지가 왔습니다.]

[??????]

[뭔솔ㄹ ㅣ야]

[이재현 (으)로부터 메시지가 왔습니다.]

[누나 강원도 갇혔다면서요ㅠㅠㅠㅠㅠ]

[괜찮으세요????ㅠㅠㅠㅠㅠㅠㅠㅠ]

[김시원 (으)로부터 메시지가 왔습니다.]

[살아있어요?]

[한도훈 (으)로부터 메시지가 왔습니다.]

[누나를 안 본 지 어언 일주일하고도 15시간 37분...,]

[드디어 보는 건가 싶을 때 누나가 강원도에 갇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는데...]

[왜 운명은 우리를 자꾸만 갈라서게 하질 못해 안달일까요...¿? 또르륵...]

확인해 보니 서이수와 그 친구들이었다. 동시에 연락이 오는 걸 보니 지금 다 같이 있나 보다. 정말 하나같이 각자 개성 넘치는 내용들이었다. 특히 한도훈이 말이다. 나는 한도훈의 마지막 메시지를 흐린 눈으로 보다가 조용히 핸드폰을 들어 찰칵, 사진을 찍어 그들에게 동시에 메시지를 보내 주었다.

[하얘... 새하얘... 아무것도 안 보여...]

눈이 몰아치는 흰 배경밖에 없는 사진과 함께 지금 내 심경을 꾹꾹 눌러 담아 보내 주었다. 그러자 잠깐의 정적이 흐르더니,

지잉- 지잉- 또 소란스레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엔 문자가 아니라 전화였다.

[동생놈]

나는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하곤 통화를 연결했다.

“…어.”

[누나, 그럼 졸업식은?]

“……아무래도, 힘들 거 같다.”

연결되자마자 다짜고짜 묻는 질문에 나는 씁쓸하게 대답했다. 예정대로라면 내일 가서 사흘 후에 있을 서이수의 졸업식에 참여하려 했다. 서이수가 그렇게 다음 주엔 꼭 오라고 별렀던 이유이기도 했다. …원래는 이렇게 일정을 잡아선 안 되었지만 엄마가 연차를 2월에 낼 수밖에 없어서 이렇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서이수의 목소리가 들려오질 않는다.

“이수야?”

불러도 보았지만 여전히 통화 건너편은 조용했다. 혹시 시골이라 불시에 전파가 끊겼나 통신 상태를 확인해 봤으나 다행히 잘 잡히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그를 부르려는데, 드디어 조용하던 서이수가 대답을 해 왔다.

[…진짜 못 와?]

크윽…! 난 아찔해져 오는 정신에 심장을 붙잡았다. 이 자식은 왜 꼭 이럴 때만 동생 티를 내지 못해 안달이란 말인가. 잔뜩 풀이 죽어 있는 목소리에 내 가슴이 다 아파 왔다. 하지만 현실은 저 거세게 흩날리는 눈보라만큼 매정했다. 그래서 난 착잡한 심정을 가지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려고 그를 불렀다.

“이수,”

[몰라, 됐어! 감기 걸리든가 말든가!]

뚜- 뚜- 뚜-.

나는 허망한 시선으로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이거 뭐 사춘기야, 뭐야? 아니, 사춘기 맞기는 한데…, 황당한 기분을 감추지 못하고 망연하게 서 있는데 엄마가 날 불렀다.

“이나야, 방금 통화한 거 이수니?”

“어, 응.”

엄마가 부엌에서 불쑥 머리를 드밀며 물었다. 그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해 주는데 핸드폰에서 다시 진동이 울렸다. 한도훈의 문자 메시지였다.

[누나 진짜 졸업식 못 와요?]

[헬기 타고 갈까요? 거기 헬기 착륙할 만한 데 있어요??]

“……착륙할 데고 자시고 지금 이 날씨엔 이륙하는 거 자체가 힘들지 않을까.”

여전히 재벌임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한도훈의 모습에 나는 잠깐 할 말을 잃었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나야, 밥 다 차렸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

“어, 알았어!”

그러다 엄마의 호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부엌으로 가기 전,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서이수와 친구들에게 졸업식을 가지 못해 미안하다는 연락을 남겼다. …추가로, 한도훈에겐 위험하니깐 올 생각 말라는 내용을 더 남겼고 말이다.

‘어, 근데 휘혈이는…, 애들이 잘 이야기해 주겠지?’

인터넷이 될 턱이 없는 2G폰…, 아니, 되긴 하지만 쓰는 순간 요금 지옥이 시작되다 보니 쓸 수 있어도 사용한다는 선택지는 일 밀리그램도 끼워 넣지 않았다. 그리고 할머니 집엔 컴퓨터가 있을 리 만무했고, 무엇보다 난 노트북도 없었다. 물론, 있었어도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아 쓰지도 못했겠지만 말이다.

이곳에 오기 전에 미리 할머니 집에 가서 당분간 연락 못 한다고 하긴 했지만, 직접 소식을 전하질 못해 아쉬운 마음이 남았다. 정말 인터넷을 바로바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만큼은 지난 생의 최첨단 문물이 그립긴 했다.

‘…무엇보다 다들 다른 학교로 가서 꼭 가고 싶었는데.’

하아. 한숨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사실 이번 졸업식을 못 가서 아쉬운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하게도 다들 같은 학교로 갈 줄 알았건만…, 작년 초가을로 접어들 즈음, 그들이 지원하는 학교가 다 다르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재현은 과학고, 김시원은 체육고, 한도훈은…, 유학.’

그 사실을 처음 접할 때 얼마나 놀랐던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게 서로의 진로에 적합한 결정이긴 했다. 사실 가장 의외인 것은 서이수가 우리 학교로 지원해 붙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학교는 인문 계열 학교다 보니 당연히 어느 정도 성적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바닥을 길 줄 알았던 서이수가 딱 붙은 걸 보고 얼마나 기함했던지.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보니 서이수의 말이 가관이었다.

‘대충 벼락치기 하면 되던데?’

알고 보니 반에서 정리 노트를 빌려 몇 번 보고 시험을 치렀다고 한다. 게다가 성적도 중하위권. …아무리 생각해도 나보단 얘가 공부해야 됐던 거 아니냐며 왠지 모를 질투마저 느껴졌다. 진로의 위치가 서로 뒤바뀐 기분이 들었지만, 난 공부를 포기하고 싶진 않았고 그 녀석은 운동의 길을 포기하고 싶어 하질 않아 그냥 서로 떨떠름해하며 외면할 뿐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휘혈이는 어디로 가려나.”

이전이었다면 당연히 우리 학교로 지원할 거라고 여겼겠지만, 다른 애들의 희망 학교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된 것과 형과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후부턴 생각이 바뀌었다.

‘어쩌면 그대로 미국에 있을지도.’

졸업식은 온다고 했다. 하지만, 하고 나서 바로 떠날지도 몰랐다. 어느 학교로 진학하고 싶냐고 물어본 적은 있었지만, 그것도 몇 개월 전이었다. 대답도 ‘글쎄.’라는 짧은 답변이 다였다.

이번에 졸업식에 오면 다시 물어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았다. 대충 올 것 같은 시각에 맞춰 졸업 축하 문자와 함께 진학할 학교를 물어보는 게 최선일 듯싶었다.

‘그래도 형이랑 잘 지내고 있어서 다행이야.’

나는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한 번씩 주고받은 메일 속에서 그가 형과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도했다. 이쪽의 요청에 맞춰 미국의 생활을 담은 사진 몇 장도 보내 줬었다. 다니는 학교나 살고 있는 도시 배경이라든가, 음식을 말이다. 개인 사진은 하나 없는 내용을 전해 받곤 그 녀석답다며 얼마나 웃었던가. 특히, 음식 사진을 보내면서 적은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다.

[불고기 먹고 싶어.]

이 메일을 확인했을 때는 지금도 기분이 새로웠다. 그가 말하는 불고기는 우리 엄마가 해 준 음식이었다. 때마침 그가 떠나기 전에 해 줬던 것이기도 했다. 나는 그것을 보곤 기쁜 나머지 함박웃음을 지으며 엄마에게도 이 소식을 알려 줬다. 물론 엄마도 이 말을 듣곤 엄청 기뻐하셨다.

호불호가 분명치 않았던 녀석이 무언가를 찾은 게 기뻤다. 반휘혈이 미국 생활로 마음이 안정되어 가는 건 정말로 달가웠다. 떠나기 전, 그는 어딘가 후련해 보였지만 그렇다고 안심이 되었던 건 아니었다. 혹시 형과 사이는 더 틀어지는 게 아닐까, 그가 더 괴로워하진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그것은 전부 내 기우로 끝났다.

반휘혈은 형과 만나 대화를 나눈 후, 메일만으로도 충분히 그 생활이 심리적으로 안정되었다는 게 다가왔다. 아주 가끔 시간이 맞을 때 통화도 나눴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우리가 말이 많은 타입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때마다 그의 목소리는 꽤 편해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고 보니, 안 본 지 반년 정도 됐나?’

불현듯 식탁에 앉아 첫술을 뜨려다가 그 사실이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본 게 작년 여름 공항에서였다.

“…….”

그리고 난 그것을 떠올리는 것과 동시에 수저를 탁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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