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66화 (66/306)

66. 아이들은 안 본 사이에 쑥쑥 큰다. (6)

“뭐? …최강혁을 몰라?”

아, 젠장! 나는 엎지른 물을 수습하려다가 밥그릇, 반찬 그릇까지 다 뒤엎어 버렸다. 자신의 참담한 대응 솜씨에 환멸까지 느껴졌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아. 그래! 사실 몰라.”

그냥 수습하기를 포기했다. 어차피 글러 먹은 말솜씨, 여기서 빛을 발휘할 리도 없었다. 포기한 채로 냅다 얘기하자 고찬영은 희귀 동물을 본 것처럼 신기한 듯 나를 보았다.

“야, 현호야. 경기 쪽 애들 중엔 최강혁 이름 모르는 애는 없다며?”

“어…, 뭐 만에 하나란 것도 있으니까.”

“흐응. 그렇구나. 그럼 너 반휘혈은 알아?”

“알아.”

걜 어떻게 몰라? 오히려 이 동네에서 반휘혈 모르면 간첩이지. 내가 시큰둥하게 대답해 주자 고찬영은 날 유심히 바라보다 금방 관심을 껐다.

“하긴, 이 동네에서 걜 모르면 진짜 간첩이다. 그보다 늦네~. 이럴 줄 알았다면 좀 더 자고 올 걸 그랬어.”

다행히 이 녀석은 내가 그저 흔치 않은 소리를 해서 호기심을 가졌을 뿐인가 보다. 고찬영은 기지개를 쭉 펴며 다시 오토바이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그것을 지켜보다 슬슬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심심한데…, 누구 나랑 싸울래? 거기 넌 어때?”

근데 이놈이 갑자기 미친 소리를 해서 돌아서려던 내 발목을 붙잡았다. 그를 황당히 바라보자 고찬영은 비릿한 미소를 달며 느긋하게 사냥감을 탐색하고 있었다.

“야, 너. 어때? 나랑 싸워 볼래?”

“어, 저, 저기. 나, 난…, 싸, 싸움 모, 못하는데….”

한 덩치에 비해 가련한 힘을 지녔는지 지목된 아이는 바들바들 떨어 댔다.

저 녀석 대체 뭐야? 왜 갑자기 가만히 있는 애한테 시비를?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하고 있자, 고찬영은 김이 팍 식은 것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재미없게. 그럼 넌 어때?”

“어? 나? 나, 는 그, 그게…,”

그런데 녀석이 짚는 족족 다들 시선을 피하고 난리가 났다. 솔직히 패기 있게 한 명이라도 나설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가 보다. 이곳이 인소 세계라 당연히 그런 중2병 같은 행동이야 아무렇지 않게 할 줄 알았는데 조금 실망했다. 에잇, 쯧. 사대천왕이랑 싸우는 일이 그렇게 흔한 일도 아닌데 좀 나서 보지. 하긴 우리 학교는 일진이라고 해 봤자 구석에서 담배 피우는 찌질이들밖에 없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뭐야. 최강혁이 여기 왔다길래 실력 좀 있을 줄 알았는데, 여기 물 왜 이래?”

이젠 혹시라도 자신이 지목될까 싶었던 남자들이 눈치를 보며 전부 뒤로 빠지자 고찬영이 당황해했다. 나 같아도 그런 네임드가 직접 이 학교로 지원했다면 기대했을지도. 솔직히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순간적으로 이 학교의 어딜 보고 지원했나 진지한 의구심이 생길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니, 근데 진짜 왜 왔지?’

설마 반휘혈이 한국에 없어서 막 지원했나? …굳이? 아무리 그가 없어도 원래 강해중학교랑 이곳까지 거리가 꽤 됐다. 그런 거리를 감소하고서까지 메리트는 이 학교엔 없어도 너무 없었다. 진짜 이런 흔한 일반고에 대체 왜 온 거지?

“아, 맞아. 그럼 혹시 걔 알아? 걔?”

걔? 우리 학교에 또 엄청난 놈이 오나? 새롭게 거론된 인물에 저절로 긴장이 됐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새로운 인물이 많은지 모르겠다. 이 학교에 쓸 만한 인물이…, 아. 혹시 서이수 말하나? 이쪽 분야에선 그나마 괜찮은 놈이라곤 걔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근데 그 녀석이 그렇게 유명했…,

“조커 말이야. 조커. 이 학교 애라던데 혹시 아는 사람?”

…조, 커?

“그건 또 뭐야.”

예상치 못했던 호명에 황당함이 번져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더 당황스러운 건 주위의 반응이었다.

“조커? 조커가 우리 학교 애야?”

“그 조커 말하는 거야?”

“그거 소문 아니었어? 도시 전설인 줄.”

“아, 나도 그 소문 들었어. 근데 우리 학교였어?”

웅성웅성. 최강혁 이름이 나올 때 못지않게 주위가 들썩였다. 뭐, 뭐야? 이번에도 나만 모르는 이야기야?! 이럴 줄 알았다면 좀 더 주위에 귀를 기울이고 사는 건데…! 새삼 내가 주위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다는 걸 확인되자 사회적으로 혼자 따돌림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이래서 사회생활을 하려면 세상이 돌아가는 화제 몇 개 정돈 알아야 된다는 거구나.

직장에서 들었던 선배들의 조언을 이렇게 다시 새기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는 뒤늦게 찾아온 후회를 금치 못한 채, 혼자 끼어들지도 못하고 쭈뼛거리며 눈치를 봤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서열 싸움에서 우리 학교 교복 입고 나타났단 말 듣긴 했는데…, 사실이었어?”

…응? 잠깐. 방금 뭐라고?

“진짜 조커가 우리 학교야? 대박.”

“태산고 일짱 떡실신 만든 게 조커라며?”

“…….”

어라, 잠깐만. 이 정보들 왠지 익숙한 기분이 드는데…? 나는 곳곳에서 들려오는 정보에 저절로 시선이 방황했다.

“맞아. 게다가 여자란 소문도 있던데.”

“진짜?! 와, 대박. 나 그건 첨 들었어.”

“맞을걸? 교복 치마 입고 있다고 했어. 체육복 하의도 같이 입고 있었다고 했는데…, 그때 어두워서 색은 잘 안 보였다고 내 지인의 지인이 그랬어.”

…저거 나 맞잖아! 아니, 보통 건너 건너 소문을 들으면 디테일이 무너지기 마련인데, 왜 이렇게 정확해!

“강태석을 반 죽여 놨대.”

“다신 개기지 못하게 사지 뼈를 부쉈다던데?”

“헐. 존나 무서워. 근데 그런 애가 우리 학교 학생이라고?”

“싸이코 아님?”

“키가 2미터가 넘는다며?”

근데 뒤에 이어지는 말들이 정말 가관이었다. 앞 내용은 잘 맞았으면서 뒷말로 갈수록 점점 사람이 아니게 되고 있었다.

저거 누구야. 난 모르는 사람이야.

아니, 물론 그 태산고 일짱을 쓰러트린 적은 있다. 그리고 한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그랬다. 첫 번째는 노래방 사건, 두 번째는 반휘혈 찾아다닐 때, 그리고 세 번째는 비교적 최근이었다.

근데 그때는 내게도 할 말이 많았다. 그 태산고 돼지가 보복을 위해서 한도훈, 김시원, 이재현의 뒤통수를 노렸단 소식을 접했을 땐 얼마나 화가 나던지. 게다가 그땐 공부를 무리하게 했던 여파로 이재현의 몸 상태도 그리 좋질 못했다. 그래서 나는 이재현에게서 급하게 온 SOS 연락에 부리나케 달려가 지체할 거 없이 바로 몸을 날려 그 녀석을 때려눕혔다는 건 반박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강태석 아직도 병원에 있다며?”

“얼굴이 아예 함몰됐대.”

“온몸의 뼈가 다 부스러졌다고….”

“그때 거기에 있던 애가 그러는데 완전 괴물같이 생겼대. 그 왜 화나면 변하는 녹색 인간…,”

…그 정도까진 아니거든! 나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있는 힘껏 꾹 눌러 담았다. 지금 이 말을 해 봤자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이었다. 하필 그땐 얼굴도 가리질 않았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 얼굴을 제대로 식별하지 못할 정도로 주위가 어두웠다. 겨우 가로등 하나 있던 공터라 천만다행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앞으론 조심해야지.’

설마 이렇게 소문이 났을 줄이야. 이 휘몰아치는 인소 세상에서 조용히 살아가기로 했잖아, 나 자신아. 앞으로 경거망동하게 행동하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하며 슬쩍 주위를 눈짓하며 퇴로를 확인했다.

‘안 되겠다. 여기를 뜨자.’

처음부터 여길 오면 안 됐다. 그놈의 호기심이 사람을 죽인다더니 딱 그 짝이었다. 아침부터 불길하더니, 아주 오늘 날 잡은 모양이었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던 필요 없는 정보들이 자꾸만 들려왔다.

‘작년에 시원이가 말한 게 혹시 이건가!’

문득 김시원에게 내가 유명하냐는 질문을 했을 때 돌아왔던 뜨뜻미지근했던 반응이 떠올랐다. 그는 알 사람은 안다고 애매한 말을 했었다. 그때의 정확한 답이 오늘 들려온 말들이란 걸 자연스레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응? 너 어디 가?”

“으, 응?”

그런데 불쑥 고찬영이 나를 지목했다. 나는 당황해서 가던 길을 딱 멈춰 서고 어색하게 대꾸했다. 그러자 그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의심스러운 기색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왜 갑자기 뒷걸음질 쳐? …너 혹시,”

설마, 눈치 챘…!

“조커랑 아는 사이야?”

…진 않았나 보다. 나는 맥이 빠지려는 걸 간신히 붙잡고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아니, 그냥 곧 조례 시작할 거 같아서.”

나는 그러면서 슬금슬금 뒤로 발을 물렸다. 고찬영은 그런 날 여전히 의심스러운 기색으로 훑었다. 그러곤 무언가 퍼뜩 떠올랐는지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뀌었다.

“수상한데. 응?”

그러곤 갑자기 녀석이 눈을 크게 뜨며 깜빡였다. 갑자기 왜 이러지? 머릿속에서 비상 경고 등이 자꾸만 깜빡였다. 당장 이 자리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이대로 도망갔다간 녀석의 의심을 더 부추길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잠깐 실례.”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하고 있던 중, 불쑥 녀석이 내 손을 잡아챘다. 거절할 새도 없이 순식간이었다. 고찬영은 잡아채 간 내 손을 빤히 구경했다.

“뭐 하는 짓이야!”

나는 그 집요한 시선에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황급히 손을 잡아 빼자 어쩐지 고찬영의 단단한 시선과 부딪혔다.

“너 그 패딩이랑 마이 한번 벗어 봐.”

“…….”

이 자식, 촉 한번 더럽게 좋네. 나는 고찬영이 나를 조커로 의심하고 있단 걸 바로 알아챘다. 그리고 싸움 좀 해 본 사람이 싸움꾼의 손을 못 알아볼 리도 없었다. 내 손을 본 건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손에 박힌 굳은살을 못 알아차릴 시간은 아니었다.

‘어쩌지.’

침이 바짝 말라 왔다. 나는 녀석을 노려보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해?”

나는 최대한 불쾌한 티를 내며 녀석과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고찬영은 내 말에 별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감?”

“…찬영아. 너 혹시 저 여자애가 조커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그때 고찬영과 주로 대화를 나누던 남학생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내용이 가볍게만 들리지 않는 게 문제였다. 그 말로 인해 주위의 시선이 무겁게 닿아 오기 시작했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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