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징조가 안 좋을 땐 끝까지 방심하지 않는 게 좋다. (2)
“여보세요! 혁아!”
게다가 평소 연락을 잘 안 받던 이가 놀랍게도 재깍 받아 냈다. 다정한은 쓰게 웃으며 앞으로 닥쳐올 매정한 그의 언사를 떠올리며 한숨을 참아 냈다.
[…시끄러.]
이윤은 전화 음량을 최대로 키워 둔 상태인지 스피커 모드가 아님에도 소리가 크게 울렸다. 덕분에 잔뜩 잠겨 신경질적인 최강혁의 목소리가 그들에게 똑똑히 들려왔다. 아무래도 방금 일어난 모양이었다.
‘…개학 첫날인데 저래도 돼?’
서이수는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을 했다.
“오, 쟤가 최강혁이구나.”
아, 여기엔 싸움 걸러 온 놈도 있었지, 참. 서이수는 이 중에서 독보적으로 이상한 놈을 흐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센 놈들은 다 저렇게 이상한가? 생각해 보면 반휘혈 그놈도 정상이 아니었지. 한도훈도 이상한 편이고. 시원이는… 쟤도 좀 이상한가? 마지막은 긴가민가했지만 어찌 됐던 평범이랑은 거리가 먼 인물인 건 맞다고 볼 수 있었다.
‘…혹시 우리 누나도 알고 보면 사차원이라든가?’
서이수는 진지하게 걱정이 들었다. 가만 보면 자신의 누나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랐다. 뭐랄까, 그 나이대처럼 안 보인다고 해야 되나. 자신과는 한 살 차이밖에 나질 않는데 까마득한 느낌을 받고 있달까. 분명 몇 년 전엔 그런 느낌을 받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기분이 들고 있었다.
‘언제부터지?’
기억이 잘 나질 않았다. 서이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금방 신경을 껐다. 어차피 이건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보단 자신의 누나가 이상한 사람인가 아닌가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누나는 그렇게 강한데 이쪽에 전혀 관심이 없어.’
생각해 보면 서이나는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람 중 가장 이해 못 할 인간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그녀는 관심 분야가 전혀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운동에 임하는 자세가 지나치게 진지했다. 무엇보다 그가 이제껏 봐 왔던 사람 중에선 자신의 누나처럼 힘을 숨기려 드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과시하거나 당연하게 드러내는 쪽이 압도적으로 더 많았다. 그래서 한도훈에게서 누나가 조커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고 들었을 땐 얼마나 황당하던지. 누나가 이런 쪽으로 관심받는 걸 싫어해서 대충 모른 척을 하고 있긴 하지만…, 굉장히 평범한 축에 속했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자신의 누나가 가장 비범할지도 몰랐다.
‘…강한 놈들은 역시 다 이상한가 봐.’
누나인 서이나가 들었다면 억울해서 속이 뒤집힐 생각이었다.
“혁아, 조커 찾았어!”
[아아…, 그거.]
한참 서이수가 생각에 빠져 있던 사이, 이윤이 흥분하며 외쳤다. 그러자 최강혁에게서 잠시 뜸이 생겼으나, 곧 떠오른 모양인지 불쾌해 있던 목소리가 한결 차분해졌다.
‘조커한테 관심이 있었나?’
처음 접한 사실이었다. 서이수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들을 보다 한도훈을 보았다. 한도훈은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하면서도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응! 방금까지 여기 있었대!”
[…방금까지 있었다고.]
그런데 이윤의 밝은 목소리완 상반되는 스산한 반응이 튀어나왔다.
‘슬슬 시작이군.’
다정한은 그런 그의 기색을 파악하곤 난처하게 웃으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응! 고찬영이 그랬어!”
하지만 상황을 파악 못 한 이윤은 여전히 해맑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말에 초를 친 건 다름 아닌 그 통화를 얼결에 같이 엿듣던 고찬영이었다.
“어, 난 물어본 건데?”
“어?”
“응?”
서로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멍청하긴.”
그런 이윤을 향해 한도훈이 한껏 비웃었다. 다정한은 그에게 한마디 해 주고 싶었지만 자신의 친구가 성급했음을 인정했기에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에게도 한도훈의 조소가 이윤을 향한 건 당연지사였다.
‘역시 재수 없네.’
‘쌤통이다. 재수 없는 자식.’
서로 웃고는 있지만 그 안의 온기는 하나 일절 없는 냉랭한 미소와 함께 두 사람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파직거리는 시선이 잠시 동안 서로에게 오갔다.
[야. 이윤. 나랑 장난해?]
그때 낮은 미성이 음산하게 깔려 왔다. 이윤은 그제야 무언가 잘못됨을 느꼈는지 울상을 짓고 있었다.
“그, 그래도 확인은 안 했지만! 맞을 수도 있잖아….”
히잉. 그의 눈초리가 불쌍하게 내려갔다. 그것을 관람하던 구경꾼 중엔 또 심장을 붙잡는 이가 속출됐지만 한도훈은 지금 기회를 차 버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뻔뻔스러움을 얼굴에 깔며 시치미를 뗐다.
“아닌데?”
“어?”
“방금 그 누나 조커 아니라고.”
한도훈은 질문의 발화자인 고찬영을 보았다. 어차피 이 녀석들은 서이나의 얼굴을 보지도 못했을 터였다. 그러니 서이나를 직접 본 고찬영에게 제대로 해명해 두는 게 더 나았다.
“흠. 그래? 난 너희들이랑 친해 보이길래 당연히 그 여자애일 줄 알았는데.”
“어? 도훈이랑 친하다고? 와, 그 누나 굉장하다!”
고찬영의 말을 들은 이윤이 불쑥 끼어들었다. 이윤은 신기하단 듯이 한도훈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모습을 고찬영은 물끄러미 보며 곰곰이 생각하는 것처럼 턱을 두드렸다. 그러다 그는 한도훈을 가늠하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떴다.
“혹시 숨겨 주는 건가?”
보기와 달리 생각이란 걸 할 줄 아는 놈이었네. 한도훈은 텅텅 비었을 줄만 알았던 그의 인상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숨기고 말 것도 없이 그 누나는…,”
“내 누나라 그런다, 왜.”
대충 사실을 교묘히 섞어 말하려던 한도훈의 말을 가로막아 서이수가 그 앞에 섰다. 한도훈의 시선이 저절로 가늘어졌지만 서이수는 오히려 뻔뻔하게 굴며 눈짓했다.
‘뭐. 어차피 이거 말하려던 거잖아.’
한도훈은 그런 서이수를 못마땅하게 보는 것도 잠시,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뒤로 빠졌다. 네 마음대로 하란 뜻이었다. 어차피 이 부분은 그가 말하는 것보다 동생인 서이수가 직접 말하는 게 더 좋기도 했다. 다만 조금 걱정인 게 있다면….
‘뭐, 여차하면 내가 끼어들면 되니깐.’
한도훈은 조용히 상황을 주시하기로 결정했다. 가만 보면 서이나와 서이수, 이 남매는 닮은 구석이 많았다. 생김새가 달라서 남으로 착각하기 쉬웠지만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다 보면 성격이 굉장히 비슷하단 걸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욱하는 부분이라든가, 지기 싫어하는 부분이라든가, 안 그래 보이면서 소심하거나 잔정이 많은 부분, 또…,
‘뜬금없는 부분에서 엉뚱한 것까지.’
그에겐 지금도 서이나의 ‘너 나 좋아하냐?’와 서이수의 ‘휘혈이가 매형이 되면 어떡하지?’ 사건은 아직까지도 웃음 버튼이었다.
‘아, 위험해. 또 웃음 나올 것 같아.’
떠오르니 실소가 반사적으로 새어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정황상 웃고 있을 타이밍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입안을 깨물며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웃음을 참았다.
“?”
이재현은 옆에서 그런 한도훈을 발견하곤 잠깐 의아하게 보았으나, 곧 걱정 어린 마음으로 고찬영과 대치하고 있는 서이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누나인 서이나가 떠나기 전, 사고 치지 말라곤 했으나 지금 당장은 언제 사고를 쳐도 이상하지 않았기에 그라도 정신을 차리고 있을 요량이었다. 그래서 이재현은 차분히 이 상황을 관망했다.
“…누나? 친누나?”
“그래. 내 누난데 불만 있냐?”
고찬영의 시선이 서이수에게로 향했다. 서이수는 피하지 않고 그를 마주 보았다. 고찬영은 그런 그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안 닮았네?”
이젠 기억 속 얼굴마저 흐릿할 정도로 인상이 강하지 않은 여자애였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애와 방금 만난 여자애가 다르게 생겼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러다 그는 곧 납득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렇게 막아선 거구나? 난 또 여친인 줄 알았지.”
“…뭐?”
“풉!”
“크흡.”
“큭.”
고찬영의 한마디에 한도훈, 이재현, 김시원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당장이라도 폭소할 것 같은 걸 겨우 참아 내고 있는 그들을 신경 쓰지 못한 서이수는 한순간 어리벙벙하게 있다가 상황을 파악하곤 금세 토가 쏠리는 것처럼 표정이 구겨졌다.
“무슨 그런 끔찍한 말을…!”
상상도 하지 않았는데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서이수는 치를 떨며 팔을 북북 긁어 댔다. 그것을 보고 있던 고찬영을 더 고개를 깊게 끄덕였다.
‘진짜 친누나네.’
집에 누나가 한 명 있는 그로선 참으로 서이수의 모습은 당연한 반응이 아닐 수가 없었다. 같이 누나를 둔 입장으로서 왠지 오해한 게 미안해질 정도였다.
“미안, 미안. 근데 네 누나 진짜 조커 아니야?”
고찬영은 사과하면서도 끝내 의심을 버리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서이나가 사라졌던 방향으로 잠깐 머물다가 다시 서이수에게로 향했다.
“아, 아니라고.”
이런. 한도훈은 눈을 샐쭉 떴다. 순간적이지만 말을 버벅였다. 그리 티가 나질 않아 다행이긴 했지만…, 사실 그가 걱정했던 부분이 바로 이거였다.
‘하여간 쟨 거짓말을 더럽게 못해.’
친누나인 서이나도 그다지 거짓말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못하진 않았다. 그에 비해 서이수는 정말 심각하게 거짓말을 못했다. 특히, 연기는 자신이 봐 온 사람 중 가장 최악이었다. 분명 저 녀석, 눈도 떨리고 있을 거라며, 한도훈은 슬슬 자신이 나설 타이밍이란 걸 느끼곤 슬그머니 발을 앞으로 뺐다.
“흐음. 거참 이상하네.”
그때 고찬영이 의아한 듯 신중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저 멍청이가 바로 들켰나 싶었지만 뒤이어 들려온 말에 그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분위기가 정태우랑 비슷했는데.”